34권 35권
보기에도 제정신이 아닌 것이 확실한 눈빛들이었다.
저런 미친놈들 소굴에서 당장 물러나고 싶었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은 출발 전에 근원에게 들었던 신신당부가 생각났다.
‘직감이 이상하다.
이제 여유가 없다.
반드시 철저하게 정찰하고 보고해라.’
흑염 세력은 흑염의 절대자의 직감 덕분에 이제까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여도 더없이 잘 돌아갔다.
그런데 직감에 문제가 생기니 상황이 자꾸 일그러지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 은밀 정찰이라는 행위까지 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정상인 신계가 아니었다.
신계의 고위층이 분명한 두 명이 결투하면서 내뱉는 욕설들이 멀리까지 들려온다.
“으득! 여전히 네가 내 상급자인 줄 아니냐?
강함만을 추구하며 가혹하게 부하를 다루다 신망을 잃은 너는 어차피 허수아비였다.
고발당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그 자리를 유지하지 못했어.”
“호오? 그렇게 생각했느냐?
네가 부대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내가 허락하지 않았으면 과연 가능했을까?”
창조신의 공격을 주신이 너무나 쉽게 흘린다.
그리고 가소롭다는 듯이 받아치는 어투에 감정이 폭발한다.
“실질적으로는 내 부대였단 말이다!
내가 그 부대에 얼마나 투자를 했었는지 네가 알아?
부하들의 환심을 사느라 빚까지 졌는데 네가 모두 날려버렸다!
내가 얼마나 그 피해를 복구하느라 힘들었던 줄 알아?
이 빌어먹을 자식아! 부하 시절에 당했던 모욕까지 합쳐서 갚아주마.”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가 변명할 거리나 명분이 있다.
서로 원인과 감정의 문제가 없다면 싸울 리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상 하급자라면 자그마한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 점에서는 피해자인 신계관리주신도 분노에 차 있었다.
하지만 영웅동맹의 주신도 지지 않았다.
영구봉인 방에서 끝없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민을 했지만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받은 대로 갚아준다는 복수의 측면에서 자신은 무죄였다.
“풋! 그래도 타격은 주었으니 다행이야.
그나저나 말솜씨는 늘었는데 실력이 전혀 아닌데.
창조신이 뭐 이렇게 약해?”
급조된 결투장에서 치고받는 두 명의 기세와 말이 심상치가 않았다.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보기에는 연극이 아니었다.
‘마치 철천지원수처럼 살기를 품어내면서 싸우는데 주변에서 그걸 좋다고 내기를 하고 있다.’
‘느껴지는 것은 살기와 투기, 그리고 욕망뿐이다.
신계가 왜 저래?’
절대계에서 이런 유사한 분위기를 가진 곳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강함을 추종하고 전쟁에 열광하여 신족에서 재분류된 전투종족의 주거지였다.
“마신계인가?”
“현세계에서는 마신계가 아직 없다고 판정되었잖아?”
“하지만 저걸 보고 어떻게 따로 설명해야 하지?”
그런 오해를 받을 정도로 이제 연회 분위기는 과열이 되어서 축제 분위기였다.
목숨을 건 결투를 보면서 환호하는 지극히 야만적인 상황을 보면서도 신계 주신은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애장품을 더 올렸다.
조금 밀리지만 신계관리주신이 주신에게 질 리가 없었고 정기술의 가치를 조사해보니 위험을 감수할만 한 것이다.
“신계관리주신에게 더 걸겠습니다.
중간 보충도 가능하신지요?”
“그래? 나도 더 올리지.”
아이언은 내기의 열기가 강해질수록 ‘안주하지 않는 신성’의 효과도 높아지기에 더욱 판을 키운다.
구구구-!
탁자에 세계수의 술과 신기의 무더기가 높아만 간다.
다른 신계관리주신도 처음에는 장난이었지만 경품이 워낙 크다 보니 이제 정말 주머니를 탈탈 털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재산이 걸린 내기만큼 흥분시키는 일도 드물었다.
“심장을 날려버려!
어차피 죽으면 신격 따위는 상관없다.”
“창조신 주제에 주신에게 지지 마라!
권능으로 눌러!”
이제 과거의 악연과 현재의 감정, 그리고 미래의 진로를 위해 결전을 벌이고 있는 두 명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상대를 쳐다보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감정이 현재의 이성을 비틀고 미치게 한다.
“내 위에 네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너는 누가 위에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반골이었다.
그걸 가르쳐서 제대로 된 전신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 일이 내 유일한 오만이었다.”
“닥쳐! 난 반골이 아니다!”
“너와 관계된 상급자가 모두 너 때문에 피해를 보고 몰락했으니 반골이 맞아!
여기 증거로 내가 있다!”
“넌 힘만 센 꼴통이었다고!”
꼭꼭 숨겨두었던 속마음까지 튀어나오니 단지 서로의 목숨을 끊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뿐이었다.
물론 이 광경은 흑염 세력만이 아니라 예고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창조신계의 최고위원회도 보고 있었다.
“...”
“...”
창조신장은 패기가 넘치는 주신들이 대량으로 범죄신들이 된 원인을 파악했다.
그것이 누구의 실수이든 그들을 어떻게든 복귀시켜 흑염 세력을 신족 자력으로 처단하고 싶었다.
그러니 일단은 성공한 아이언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저런 행동을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아이언이 또 이상한 행동을 한다.
전쟁 직전에 저게 무슨 짓이냐?
이제 화를 낼 힘도 없다.’
창조신장이 경고를 한다고 아이언이 그대로 복종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그리고 솔직히 전쟁이나 투신에 관한 일은 잘 모르겠고 과거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없으니 옆의 조언자에게 살짝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것 같습니까? 브라이트.”
처음에는 반감도 가졌지만 계속되는 혼란에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는 조언자가 된 브라이트였다.
더구나 이 일이 끝나면 잠이 들기로 약속했으니 마음도 편했다.
“저런 결투의 공개와 관람은 병사의 사기를 높이고, 실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오랜 봉인으로 인해 둔해진 투쟁 감각을 되살리는데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과거 종족전쟁 시절에 신병들의 사망률과 조직원들의 불화를 낮추기 위해서 결투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브라이트도 연회와 결투를 보면서 투신들의 준비 상태를 점검한다.
확실히 처음보다 기세가 선명하게 강해지고 있었다.
‘효과가 크다.
강력한 흑염 세력이 오는 예고시간이 가까워지는데 아무도 겁을 먹지 않으니 놀랄 정도다.’
그리고 방금 보이는 승부가 결정이 난다.
어이가 없게도 영웅동맹 주신의 승리였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심장에 신기가 박혀서 쓰러지는 신계관리주신을 보고서 아이언이 환호성을 지른다.
“카하하하하하핫-! 이겼다.
대박이다!”
주신은 창조신을 당연히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영웅동맹의 주신에게 걸었던 존재는 아이언 외에는 없었다.
그것은 투신이나 관리신의 영역을 떠나서 넘을 수 없는 신격의 벽 때문에 상식이었다.
그러니 신계관리주신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주신이 창조신을 공격하면 신격의 차이로 위력이 일 할로 줄어든다.’
‘그럼 지금 저 주신이 열 배 이상의 공격을 성공시켰단 말인가?’
‘신계관리주신이 약할 리가 없으니 저 주신이 강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과거에 뛰어난 주신이라고 해도 영구봉인 방에서 제대로 된 수련이 될 리가 없어.’
하지만 현실은 신계관리주신의 패배였다.
이제 탁자에서 흘러넘칠 정도로 쌓아 올린 신기를 아이언이 모두 혼자서 챙긴 셈이었다.
세계수의 술을 노리고 애장품을 걸었다가 잃어버린 신계 주신과 신계관리주신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에이이이이잇-! 창조신이 주신에게 지다니?”
“나가 죽어라-!”
“우우우우우우-! 내 신기를 물어내!”
반드시 이길 거로 생각해서 엄청 걸어버린 내기에 졌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까워서 미칠 지경이지만, 내기를 취소하자고 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래서 거의 치명상인 신계관리주신을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고 욕하기 바빴다.
아이언은 내기에 걸렸던 신기를 모두 회수하고 정기술 한 상자를 기진맥진한 승리자에게 보냈다.
“자! 승자의 몫이다-!
팔든 마시든 마음대로 해.”
“헉! 헉! 고맙습니다.”
겨우 틈을 노려 이겼지만 기진맥진한 영웅동맹의 주신은 그대로 강렬한 정기의 향을 내뿜는 술병을 따고 그대로 들이킨다.
신력을 올려주는 정기술의 엄청난 가치는 알지만, 지금은 전쟁 직전이니 힘을 올리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번에 술을 마신 순간 신체에서 빛이 폭발한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
연회장을 눈부실 정도로 밝히는 빛 속에서 정기술은 주신의 모든 부상을 남김없이 치료하고 신력까지 높여주었다.
펄럭-!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전력 개방된 열세 쌍의 빛의 날개가 유형화될 정도였다.
정기 술의 효과를 실제로 본 신계 주신과 신계관리주신들의 눈에서 욕망의 황금빛이 더욱 강해졌다.
‘이건 분명 최상품이다!’
‘세계수의 정기술 중에서 처음 볼 정도의 정기의 농도야.’
‘나라면 조금 더 신력이 오를 수도 있어.’
직접 효과를 보게 함으로써 모두의 욕망에 불을 질러버린 아이언은 호기롭게 외쳤다.
“나는 누구보다 관대하고 자비롭다.
그래서 따고는 안 떠난다.
한 판 더 한다.
거기 서로 죽일 듯이 노려만 보지 말고 공식적으로 붙어.
똑같이 일 할을 주겠다!”
그 말에 방금 싸우고 있던 두 명과 비슷한 악연이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던 다른 영웅동맹의 주신과 신계관리주신이 바로 일어섰다.
아이언의 지적을 받자마자 주변의 시선이 모였고 살벌한 부추김이 더해진 탓이다.
“복수다!”
“눌러버려!”
치열한 결투를 보고 있었더니 애써 눌러놓았던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막대한 대가까지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서로의 신기를 뽑아 들고 어느새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결투장에 오르자 거의 동시에 비었던 탁자에 내기 물품이 쌓인다.
탁-! 파파파팍-!
주신의 몸을 순식간에 완치시키고 강화하는 정기술의 놀라운 효과를 보았기에 놀라운 호응이었다.
신계의 고위주신들도 어디서 났는지 귀한 신기들을 내기에 걸었다.
처음보다 더욱 가치가 높아진 신기를 확인한 아이언은 크게 웃었다.
“카하하하하-! 좋아-!
바로 한 판 간다.”
“이번에는 안 집니다.”
“신계관리주신의 체면이 있지 설마 또 지겠나?”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영웅동맹의 주신 쪽에 올려지는 신기가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양쪽에다 걸어서 영웅동맹의 주신이 이기면 신기로 돌려받지 않고 정기술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투기장과 도박장을 보니 창조신장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되물었다.
“단순히 도박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항상 이기는 도박을 싫어하는 존재는 없지요.
그리고 전쟁 전의 여흥으로서는 아주 좋아 보입니다.”
브라이트는 느긋하게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덜덜 떨면서 긴장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투지가 넘친다면 승산도 높아집니다.
종족전쟁 시기에는 출정 전에 반드시 연회나 자유 시간을 주었습니다.”
범죄신이 된 주신들을 어떻게 달래서 복귀시킬지 고민했는데 아이언의 행동에서 해답을 찾은 것이다.
‘지성체들의 용어로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던가?
고발했던 당사자와 결판을 벌일 수 있게 해주면 어느 정도 거래가 가능하겠어.
이걸 신세대 신족이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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