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상위 존재의 권능으로 하는 예언은 거의 필연과 같다.
하위 존재가 결과를 미리 알고 어떤 수작을 부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동전이 멈추지 않고 계속 회전한다.
“!?”
다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아서 의아스러워 하는데 영웅황제 아이언은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호오? 희귀하구나.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니 선택권은 너한테 있다.
그럼 이제 네가 너의 운명을 결정하거라.
아주 잘해야 할 것이다.
이번의 선택에 앞으로 이 신계와 너의 모든 것이 정해진다.”
그 말에 옆에서 지켜보는 상급 창조신도 고개를 끄덕인다.
‘신생에는 중요한 선택의 기회가 세 번 온다.
처음과 중간, 끝이지.
그게 계속 반복돼.’
처음의 선택인 태어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으나 두 번째부터 가능하다.
욕망을 우선으로 하여 노력하고 사는 길과 욕심을 버리고 즐기면서 살지 결정하는 방식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인 신생을 어떻게 살아가지는 개인의 자유다.
세 번째의 선택은 어떻게 끝을 내냐는 선택이다.
이게 가장 어려워.’
그 대상이 직업이든 삶 자체이든 상관없다.
영원은 없으니 어떤 잘 나가는 직업이나 행복한 삶도 한계에 도달한다.
그 끝에 도달했을 때 자의로서 물러나던가 아니면 타의에 의해 강제로 끌어내려 질지 선택해야만 한다.
‘세 번째인가?
신계 주신을 관두어야지 살아남겠군.’
상급 창조신이 보기에는 신계 주신은 이번 흑염 세력을 방어하기 위해서 정말 잘했다.
‘방어에 전력을 다한 덕분에 다른 상위의 신계 주신들도 무력하게 털렸는데 홀로 무사하다.
그대신 신계 주신으로서 여유 정기와 부하들의 인망을 잃었다.
치명적이군.’
원래 더 무참히 털릴 운명을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서 바꾼 결과 신계 주신으로서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대로 두면 개인 신전이 없으니 피신을 시킨 부하들은 돌아오지 않고 협박을 당한 대부분 투신도 떠나는 광경이 그려진다.
즉 신계 주신으로서는 완전히 생명이 끝난 셈이었다.
빙그르르-!
영웅황제의 손바닥에서 동전의 회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경쟁자였던 혈족을 모두 처단하고 신계 주신에 오를 정도의 존재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모를 리는 없다.
왜 이러는지 모르지만, 최상위 창조신의 수좌 자리를 차지한 강력한 초월자가 직접 해준 예언이니 빗나갈 리도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결심을 하고 말했다.
“나의 잘못을 통감하고 후계에게 신계 주신을 인계한다.”
“아버님!”
옆에 있던 후계가 놀라서 외쳤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신계 주신은 외쳤다.
“그리고 부서트린 개인 신전도 모두 배상하겠다.
지금 가진 정기가 없으니 용병신으로 벌어서라도 반드시 갚겠으니 새로운 신계 주신을 도와달라.”
그러자 손바닥 안의 동전은 회전이 멈추어져 간다.
빙글! 빙글!
앞과 뒤가 흔들린다.
그러나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신계 주신은 결국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십시오. 아이언님.”
세 번째의 선택의 결과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반드시 엄청난 고난을 불러들인다.
가지고 있던 기반을 전부 상실하고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대부분 사멸하기 마련이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일족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런데 자신은 신계 주신의 경쟁에서 혈족들을 너무 많이 처리한 탓에 오리진에게 찍힌 몸이었다.
‘너무 희생이 컸어.
신계 주신이 되어 다른 직계보다 몇 배의 정기를 바쳐도 그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으셨다.
신계를 만드는데 투자분을 회수하자마자 오리진께서는 나와의 인연을 끊으셨지.’
후계자 경쟁에서 희생은 당연했지만, 혼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리게 만든 탓이었다.
다행히 혈족들이 신계에 눈이 뒤집혀서 서로 죽고 죽여대는 와중이었으니 자신이 거의 전부 처리했다는 증거는 당연히 없었다.
‘이런 과격한 신계 주신의 선발방식이 외부로 드러난다면 지탄받는 일이다.
그래서 오리진님이 침묵해서 넘어갔지만, 일족으로 돌아가면 무사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많이 죽였어.’
자신의 손에 죽은 혈족들에게도 독자적인 세력이 있었다.
그런데 혼자 돌아간다면 복수를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 매달릴 대상은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있는 아이언뿐이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초월자로서 신족을 움직이려면 제한사항이 크니 대신한 신계 주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데리고 일을 시켜보니 아주 잘해서 수하로 거둘 생각이었던 아이언은 호쾌하게 말했다.
“좋아.
배경이 되어주지.”
그와 동시에 동전은 멈추었다.
탁-!
영웅황제 아이언의 손바닥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금화의 모습은 숫자가 적혀진 뒷면이었다.
“.......”
“.......”
“.......”
절대로 나올 리 없는 뒷면에 영웅황제 아이언의 금속 얼굴이 부르르 떨렸다.
대충 부정적인 의미라는 사실을 안 신계 주신과 상급 창조신의 안색도 확 변했다.
‘언제나 동전의 앞면에 있다는 이만 오천 분의 일의 확률로 발생한다는 오류인가?
하필 이럴 때 왜 일어나?’
오류 한 번에 잘 넘어오던 고위 주신이 그대로 돌아설 상황이었다.
이만 오천분의 일이면 거의 무시할 만한 오차지만 고위 존재일수록 한 번의 오판이나 착오는 지금처럼 치명적이었다.
‘이 권능의 오리진인 이대 흑염의 절대자조차 불신하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럴 만 하군.’
그렇다고 지금 손바닥을 움직여서 앞을 보이게 하거나 다시 던질 수는 없었기에 첨언을 했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너와 이 신계를 건드는 놈들은 태어난 사실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와 동시에 금화의 모습이 바뀌었다.
딸각-!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 뒷면이 앞면으로 바뀌었다.
그제야 신계 주신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아무리 초월자지만 최상급 창조신의 수좌 자리를 차지한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렇게 전폭적으로 지원을 약속하면 후계가 이어받을 신계는 걱정이 없었다.
더구나 흑염 세력을 막아냈다는 안전한 신계라는 소문을 내면 더욱 부흥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영웅황제 아이언은 손바닥 위의 금화의 앞면을 뚫어지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
언제나 동전의 앞면의 권능을 가진 존재가 던진 동전은 반드시 앞만 나오게 되어 있었다.
방금 보인 뒷면은 분명히 오류가 맞았다.
‘언제나 바른 선택을 하게 해주는 직감에서 최고의 절대 권능인 언제나 동전의 앞면이다.
그러니 항상 바르다고 확신하니 한번 빗나가면 치명적이다.
이거 아주 위험한 권능이었군.’
오류로 뒷면이 나온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복수까지 약속해 주었으니 상당히 손해를 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부려먹으면서 회수할 생각을 하면서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는 아이언이었다.
방금 실수로 아주 좋은 방안이 추가로 생각난 것이다.
‘이 문제는 흑염 세력도 같겠군.
잘하면 이용할 수 있겠어.’
이렇게 흑염 세력의 예고한 강탈 일차 전은 아이언만이 지킨 신계를 제외한 두 개의 중앙핵을 빼앗은 흑염 세력의 승리로 끝나고 이차 예고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흑염 세력도 큰 타격을 받아서 무사하지는 못한 반쪽의 승리였다.
그래서 지역 우주 은밀한 곳에 고유세계로 은거지를 만든 흑염 세력은 격론 중이었다.
“신계의 저항이 점점 심해져.”
“이번에 두 명이 중상이라서 다음 습격에 빠져야 해.”
중앙핵을 자폭시키려는 상급 창조신을 막기 위해서 맞상대하다가 당한 치명상이었다.
정기를 퍼부으면서 치유했지만, 상위 신격에 당한 상처라서 요양이 필요했다.
지금 고유세계의 한쪽에서 수면까지 하고 있는데 하루 이틀로 나을 상처가 아니었다.
“예고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 저들도 서서히 우리의 투기와 살기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토벌단의 창조신과 고위 주신들도 만만치 않아.”
토벌단에 속한 관리신이 아닌 군신과 투신 출신의 창조신들은 지금의 흑염 세력보다 상위의 신격 때문에 공격도 방어도 잘 먹히지 않았고 아주 잘 싸웠다.
그리고 토벌단에 자원했다는 고위 주신들이 더 문제였다.
흑염 세력에게 신계를 잃었다고 복수심에 휩싸여서 광란 상태로 달려드는데 쉽게 처리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점점 거북한 상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는 적을 향해 돌진하여서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영웅신 따위는 이제 되고 싶지 않다.”
“최대한 정기를 빠르게 확보해서 원래 힘을 회복한 이후에 현세계를 제압하는 쪽으로 진행하자.”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자극하는 지금의 행동방식도 굉장히 거슬렸다.
현세계의 초월자들에게 명성과 신뢰를 얻는 데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인정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대 흑염의 절대자의 직속세력으로 힘만으로도 절대계 최강의 무력집단으로 인정받던 그 시절에 비하면 이건 상당히 구차한 방식이었다.
여기에 중상자가 둘이나 나오자 근원에게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중이었다.
“오십 명 중 둘이 당했다.”
“다음에도 예고하고 쳐들어간다면 지금보다 더 피해가 커진다.”
흑염 세력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였다.
무차별로 중앙핵을 빼앗으면서 진행속도를 내자는 요구였다.
오십 명의 영웅신과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가 하나로 뭉쳐서 밀어붙이면 주신이 다스리는 신계의 함락 따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셋으로 나누어 추진하는 방식보다 더욱 빠를 수도 있는데 일부러 어렵게 가니 불만이 터져 나온 상황이었다.
화르르르르륵ㅡ!
생각에 잠긴 근원의 몸에서 검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흑염의 절대자의 대리까지 했기에 몸에 남아있던 흑염의 가호는 다른 흑염 세력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다른 흑염 세력이 움찔할 정도로 강대한 기세로 입을 막은 근원은 이번에 실패한 삼조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왜 그냥 물러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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