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아이언이 원하는 것은 최대한 높은 직위, 브라이트가 바라는 것은 흑염 세력의 약화였다.
말은 안 했지만,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불필요한 도발을 통해 진심을 끌어낼 필요가 없는 아이언은 바로 본론을 이야기한다.
“이번에 예고해온 신계 하나는 내가 직접 맡겠소이다.
다른 쪽에는 영웅황제와 영웅동맹을 파견해서 막아내지.
마지막 하나는 토벌단과 초월자들이 연합해서 방어하시오.”
“왜 이번에도 셋이라 확신하나?
중앙핵을 또 확보했으니 공격 대상이 더 많아질 수도 있지 않나?”
흑염 도적단은 타락한 영웅신 오십 명과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 열 명이었다.
얼마든지 셋 이상으로 병력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언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단언했다.
“흑염 도적단에 속한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는 열 명이오.
한 명은 본거지로 만든 고유세계를 유지해야 하니 아홉 명을 운영할 수 있소.
목적지로 출발하는데 한 명, 복귀하는데 한 명, 세계의 항상성을 막는 차원 결계를 치는데 한 명이 필요하니 반드시 삼인 일조가 되오.
이러니 동시 타격할 수 있는 대상은 세 개가 한계요.”
“과연 그렇군.”
흑염 세력이 허계의 타락한 영웅신의 집단이라는 사실은 이제 모두 알았다.
영웅신들의 도적단이 이렇게 끔찍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큰 대가를 주고 깨달았지만 직접 상대할 만한 영웅신들이 부족하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더 많은 신계를 타격하기에 충분한 전력인데 왜 세 개만 노렸는지 의문이었는데 명확한 설명이다.’
브라이트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음 아이언의 말에 확 굳었다.
“그러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더 힘을 되찾게 되면 혼자서 이동과 복귀, 차원 결계가 가능하게 될 것이오.
그럼 동시 타격할 수 있는 신계는 아홉 개가 되겠지.”
“!”
흑염 도적단의 준동 이후 일 년 정도인데 벌써 사십 개의 신계가 무너졌다.
그런데 앞으로 세배 이상 붕괴속도가 가속화된다니 참으로 끔찍했다.
“그리고 각자가 고유세계까지 만들고 유지할 수준이 되면 이런 제약도 없어지오.
서로의 고유세계를 연결하여 중계점으로 삼아 차원 이동하면서 끝없이 신계들을 강탈할 수 있지.
흑염 도적단이 세계의 항상성만 벗어나면 현세계 신계를 치는 것은 혼자서도 충분하오.
그럼 지역 우주조차 순식간에 먹어치우겠지.”
“.......”
“.......”
일백 분의 일이라는 힘의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흑염 세력의 한 명이 상급 창조신조차 압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부정할 수 없었다.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온전하게 힘을 회복하면 열 개의 고유세계를 만들어 연결하고 각 지점으로 차원 이동을 한다고?’
‘흑염 세력이 영웅신이고 샤이니나 브라이트 정도의 힘을 보인다면 혼자서도 신계를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다.’
‘영웅신 오십 명이 날뛴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만약 그렇게 되면 막아낼 수 없다.
브라이트도 그런 상황이 도래했을 때 대응방법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완전한 힘을 되찾은 흑염 세력을 완벽하게 제압할 만한 힘을 가진 존재는 나와 브라이트, 창조신장 정도다.
신세대 신족의 최고위 창조신들은 불안해.’
겨우 오십 명의 영웅신들에게 현세계가 붕괴하는 끔찍한 미래까지 그려져 잠시 충격을 받은 브라이트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흠! 무엇을 원하시나? 아이언.
이 늙은이의 권한 내에서 줄 수 있는 보상은 전부 주었네.”
자신이 아이언에 준 최상급 창조신들의 수좌 자리는 최고위 창조신들은 물론이고 창조신장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높은 위치다.
전선에 보낸 고위 창조신이 인정할지 안 할지가 문제지만 진정한 영웅신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온전한 대가였다.
신계나 영역은 워낙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혔기에 약속을 해준다고 해도 실현될지 미지수였으니 직위로서 보상하기 위해 극도로 무리한 것이다.
그걸 아는 아이언은 깔끔하게 직위나 영역이 아닌 다른 것을 원했다.
바로 권위의 보장이었다.
“나와 내 병력이 파견 나갈 신계의 전권 통수권!
신계 주신과 후계를 제외한 모든 존재의 생살여탈권과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면책권을 바라오.
창조신장의 권한으로 정식으로 명령해주시오.”
“!!!”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당황한 창조신장이었다.
창조신장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 무례하기 짝이 태도에 화를 내기 전에 브라이트가 묻는다.
“흑염 세력을 치기 위해서라면 해당 신계와 신족을 전부 희생시킬 생각인가?”
“승리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나조차 바칠 것이오.”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아이언의 말과 눈동자에서 품어지는 황금빛 투기에 갑자기 어떤 광경이 브라이트의 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종족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이었다.
‘그때가 신족에 대항하기 위해 뭉친 모든 종족연합과의 마지막 전쟁이었지.’
거기에는 각 종족의 영웅신들이 참전했고 미래를 위해서 아낌없이 희생했다.
‘모든 종족의 영웅신들이 그 싸움을 최후로 생각하고 뒤를 생각하지 않고 싸웠다.
그래서 최강의 우주신이자 영웅신이던 샤이니조차 수없이 치명상을 입고 회복을 반복하던 최후의 결전이었다.’
후방의 보급을 책임지던 브라이트조차 최전선에 나가서 피를 뒤집어써야 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힘들던 그때 모든 우주신들의 눈빛은 지금 영웅황제로 보이는 아이언과 같았지.’
모든 전선에서 일시에 압박하는 수많은 영웅신을 막기 위해서 모두가 죽음을 통한 신격의 하락조차 감수하고 싸웠다.
다수의 영웅신들과 사투로 정기고갈에 빠진 자신과 샤이니의 회복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단 하나의 구호를 외치면서 전선으로 기쁘게 달려갔다.
“신족의 승리를 위해서.”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전쟁을 장기화했고 모든 종족의 영웅신들을 하나씩 타도할 수 있었다.
‘그때는 생살여탈권과 면책권은 당연했지.’
아무리 강대한 우주신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영웅신을 이길 수 없다.
더구나 신족을 제외한 모든 종족의 연합이었기에 영웅신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대한 적들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전선에서 도망치는 투신들은 반드시 있다.
그런 자들의 현장 처단은 일상이었고,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신계와 아군을 적과 함께 자폭시키는 방법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단련되고 살아남은 우주신들이 창조주님조차 거북할 정도로 강해진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나약해진 신족들에게 느낄 수 없는 투쟁만이 삶의 가치가 있다고 외치던 영웅신들의 지독한 살기와 투기가 느껴진다.’
영웅신의 기세가 바로 영웅황제 아이언에게 지독하게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생명을 건 전장에 나선 지휘관에게 전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승리를 거두고 나서 과정에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최선을 다해 싸우겠는가?
바로 승인해 주고 싶지만 이건 내 권한 밖이군.
우주신들의 은퇴 후 모든 규칙이 정지되고 새로 만들어졌어.’
브라이트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최고위 창조신의 가장 높은 수좌의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창조신장의 바로 우측이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었다.
“......”
오른손을 든다면 승인, 왼손을 든다면 거부였다.
신세대 신족들에게는 한 개의 신계의 생살여탈권을 일개 초월자에게 넘긴다는 초유의 결정이었지만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흑염 세력이 더 강해지면 샤이니와 나도 감당할 수 없다.
어떻게든 말소시키던가 여기서 기세를 꺾어야만 한다.’
더 큰 문제는 샤이니와 자신은 오랜 평화와 은거로 인해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점이었다.
‘최고의 힘과 권능을 가졌던 종족전쟁에서도 영웅신들의 상대는 최대 네 명이 한계였다.
지금의 우리라면 진짜 영웅신은 두 명 이상을 이기기는 힘들다.’
차원 결계로 세계의 항상성을 중화시켰지만 십 분의 일 정도의 힘밖에 없는 열 명의 영웅신을 샤이니가 놓쳤다는 사실이 증명했다.
그렇게 브라이트가 오른손을 들자 다른 우주신들도 잠시 생각하다가 하나둘씩 오른손을 든다.
고요한 가운데 오른손만이 올라가는 광경을 처음 본 관리신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지만 창조신장은 이를 악물었다.
‘침묵의 결정.
문서로만 존재했는데 정말 있구나.’
최고 위원회의 최상위에 있는 최고위 창조신들의 침묵의 결정.
어떤 결정을 해도 논란이 있을 사항에 있을 사항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나 논의도 하지 않고 본인의 의지와 판단으로 손을 들어 찬성과 거부를 결정한다.
신족이기에 다수결로 결정은 내려지고 일단 승인된 안건은 최고 위원회의 원칙이 된다.
‘원칙을 비난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누구라도 최고 위원회와 결투를 각오해야 한다.’
일단 인가된 안건에 대해서 거부하거나 반론을 이야기하면 바로 처단까지 가능한 종족전쟁에서도 몇 번 내려진 적이 없는 가장 강력한 의결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 안건들에는 신세대 신족으로 넘어오면서 없어진 비인도적인 조치가 상당수 있었다.’
전장의 지휘관에게 부여된 부하들에 대한 생살여탈권이 대표적이었다.
지금 아이언이 요구한 일과 유사했기에 우주신들은 너무나 쉽게 오른손을 든다.
그러나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는 창조신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으득-!”
창조신장은 이를 부득 갈면서도 오른손을 들었다.
현세대 신족은 여기 있는 브라이트와 우주신들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최고위 창조신신들은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다수결을 막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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