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아이언은 이제 최고 위원회의 정식 위원이지만 샤이니는 최고위 창조신이자 총사령관이었다.
명백하게 불손한 행위였지만 평등을 강조하는 신족에게는 아슬아슬하게 허용범위 안이었다.
여기에 유일한 승리자였기에 샤이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통신을 끊었다.
파아아-!
통신을 끊고 검은 화면을 보는 샤이니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진다.
사실 샤이니도 중앙핵이 연속적으로 강탈당하는 이 난국을 벗어날 확실한 방법은 알고 있었다.
‘신계의 중앙핵을 빼앗기기 전에 분리하여 회수하면 된다.
역시 아이언도 그 방식도 알고 있었군.’
중앙핵을 잃은 신계는 소멸하겠지만 중앙핵이 보관하고 있는 대량의 정기만은 지킬 수 있었다.
‘실제로 종족전쟁에서 최전선의 요새나 신계를 적에게 빼앗기기 직전에 많이 사용했다.’
다만 신계의 핵인 신계 주신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중앙핵을 돌려받아도 처음부터 다시 신계를 만들어야 한다.
신계를 소유한 신계 주신에게는 엄청난 손해였으나 신족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감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창조신계에 그동안 바친 세금을 근거로 지원만 요청하고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의 신계 주신들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 왔다.
‘투지가 아예 없고 벌벌 떨기만 해서 소모전의 강요조차 비밀로 해야 할 판국이다.’
이번에도 중앙핵을 빼앗기기 전에 파괴하라는 명령을 끝까지 방해한 것이 신계 주신들이었다.
‘그 덕에 중앙핵을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지금은 종족전쟁 중이 아니니 강제로 명령할 수 없다.
하지만 전투에는 반드시 희생이 발생한다.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전쟁의 승리도 없다.
그런데 지금 신족에는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추진할 동료가 없다.
중앙핵 회수를 나 혼자 주장한다고 해도 더 고립될 뿐이다.’
혼자서는 신족의 방침을 바꾸기는 무리이니 믿을 만한 동료가 필요했다.
최고 위원회에서 군권을 얻은 자신이 자리를 뺏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창조신장을 달래면서 안심시키고 있는 브라이트와 추억에 잠겨있을 우주신들의 참전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사실도 알기에 묵묵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인 지역 우주의 완전 포위망을 완성해가는 샤이니였다.
은하계 전부를 완전봉쇄하는 대규모 결계 또한 결정적인 승리수단이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완성되면 어떤 차원권능을 가졌어도 외부로 도약할 수 없다.
그때가 너희들의 마지막이다.’
신계와 고위 창조신들의 동조로 은하계 전부를 둘러싸기 시작한 차원 결계를 보는 샤이니의 눈빛은 한없이 강해져만 간다.
이것 또한 원래의 흐름과는 너무 빠른 최종조치였기에 진리의 현세계 강림은 또다시 앞당겨질 것이다.
그리고 현세계의 절반이 소멸한다는 사실은 아이언이 가장 잘 알았기에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아오! 저 검붉은 바퀴벌레 놈들을 어떻게 한다?
자꾸 나에게 접근해오지 말란 말이다!”
흑염 세력이 자신에게 걸려있는 이대 흑염의 절대자의 직접 가호를 느끼고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 덕에 자신의 은하계와는 이미 지척이었다.
이렇게 근접해 있으면 진리님의 광역 세계말소에 같이 휘말려 들어가니 성질을 안 낼 수가 없었다.
‘자꾸 이러면 원래 흐름이고 뭐고 내가 치워버린다.’
저 흑염 세력은 결국 차원신계의 신계관리주신들이 된다.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나서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았다.
흑염 세력의 토벌을 위해 오실 진리님에 의해 현세계의 절반이 날아간다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 저들이 현세계 반대편에 있어야 안전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가까우니 자신조차 위험한 것이다.
아이언은 이를 악물고 결심을 했다.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신족을 더는 믿을 수 없다.
일단 내가 직접 나서 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기세를 꺾는다.
그런데 이러면 원래 흐름을 더 가속 시키는 것이 아닌가?
지금도 위태로운데 위험해.’
신계 주신의 영광의 자리에서 부르르 떨면서 화를 내는 절세의 금발 미소년의 모습은 더없이 귀여웠다.
하지만 발아래 엎드려서 떨고 있는 영웅동맹 소속의 초능력자들은 감히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이언이 지독할 정도로 강대한 살기와 투기로 그들을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언은 이들을 전부 처리할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모두 서열전 중간에 포기해서 일반병으로 떨어졌다.
과연 앞으로 쓸모가 있을까?’
전투 포기로 끌려온 영웅동맹의 후계자들과 초월자들은 후회막급이었다.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전투를 포기했는데 설마 살기 넘치는 아이언의 앞에서 대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지금 자신들을 노려보는 아이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잘못하면 끝장이다.’
‘이런 제길!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버티어 볼 걸 잘못했다.’
아이언이 기대에 어긋나거나 임무를 포기하는 존재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이제 알고 있으니 어떤 처벌이 떨어질지 몰라 벌벌 떨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런데 아이언은 흑염 세력에 대해 고민 중이라서 초능력자들을 직접 손볼 여력이 없었다.
더구나 병력이 모자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에잉! 직접 손대기도 귀찮다.
너희들은 근성이 부족해.
이래서는 전력은 고사하고 관객이라도 써먹을 수 있겠나?
지옥에서 독기를 더 키우고 와라.”
“헉-!”
직접 손을 안 쓰신다니 다행이지만 결국 지옥이었다.
소환에 불응했다가 지옥에 산채로 끌려가서 마족에게 지독하게 당했다가 충성을 맹세하고 겨우 풀려난 초능력자들은 기절할 지경이었다.
뭐라고 애원을 하기도 전에 지옥의 구멍이 뚫리면서 십만의 영웅동맹의 초능력자들을 삼킨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깔끔하게 사라진 빈 공터를 쳐다보던 아이언의 머리에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아! 에메랄드 공주의 연인이라던 우주 해적은 구분해놓는 걸 깜박했다.
면회 올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뭐 상관없나?
나와 카르마의 계획서가 있는 한 어차피 죽지도 소멸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나머지는 분리해 놓아야 하겠군.”
초능력자들이 서약한 카르마의 계약서 십만 장이 허공에서 떨어지면서 탑을 만들어간다.
파라라라라라라-!
여기저기 치솟는 서류의 산에서 끝까지 전투를 포기하지 않은 일백 명의 정예의 계약서를 빼내고 나머지는 아공간으로 돌려보낸다.
일백 장의 서류를 확인한 아이언은 그대로 자신의 정보행성 코아에 계약서를 입력해버렸다.
“전부를 가져갈 수 없으니 선별해야 한다.”
아이언이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면 계약의 주체가 사라져서 영웅동맹은 자유를 찾는다.
자유를 되찾은 대신 영웅황제의 망토에 적혀서 얻은 신족에 대한 자유와 불사불멸도 잃게 되겠지만, 일단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였다.
그러나 이제 정보행성 코아와 카르마의 계약서로 연결된 영웅동맹의 정예들은 아니었다.
절대계의 창조주인 진리의 권능과 연계되어서 아이언이 돌아간다고 해도 카르마의 계약서의 효력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러면 내가 원래의 미래로 돌아가도 영웅황제와 연결이 유지되어서 죽거나 소멸을 못 한다.
영웅동맹의 정예들은 무조건 오백억 년의 세월을 버티고 창조신 이상의 존재가 되겠지.
그보다 더 강해진다 해도 정보행성 코아에 속한 카르마의 계약서를 파기하지 않는 한 배신은 어림도 없다.
아직 진리님의 광역 말소로 절반, 초월자들의 혁명으로 나머지를 폭삭 망하기 전의 현세계는 자질이 높은 인재들과 자원이 풍부했다.
그래서 차원 신계의 심각한 고위신 부족을 채울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조금 기분이 나아진 아이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인재는 아껴야지.”
아이언은 이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흑염 세력이 아무리 골치 아픈 상대라고 해도 처리할 방법이 있었기에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니 이제 더는 보아줄 수가 없었다.
“멍청이들! 왜 이렇게 당해주는지를 모르겠다.”
신족의 무능함에 치를 떨면서 부지런히 다음 계획을 수립해가는 아이언이었다.
샤이니가 지역 우주 전부를 감싸는 봉쇄경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아무리 보아도 무리였다.
결계의 구성은 완벽한데 구성하고 있는 신족들이 영 시원찮은 것이다.
‘사자가 지휘해도 양 떼는 결코 맹수들을 사냥할 수 없다.
아무리 지휘가 뛰어나도 양들에게는 포식자를 물어뜯을 용기나 이빨이 없잖아!’
어떤 완벽한 계획도 그대로 실현해줄 병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아이언이 보기에는 샤이니가 단독으로 움직이면서 흑염 세력을 하나둘 처단하는 방식이 차라리 효과적으로 보였다.
“내가 시범을 보여주지.
날 본받아서 제발 반대쪽으로 쫓아내라.”
시간을 보내면서 계획을 완성 후 영웅황제의 기계신체를 쓴 그 모습 그대로 최고 위원회에 바로 연결하는 아이언이었다.
그러자 침통한 표정의 브라이트가 바로 받았다.
다른 우주신들은 샤이니의 연이은 패전에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없었다.
‘중앙핵을 또 빼앗겼다니?’
‘샤이나가 총사령관으로 직접 나선 이상 이럴 리가 없는데 참으로 곤혹스럽군.’
브라이트조차 한 군데는 지켰지만 다른 두 곳의 중앙핵을 빼앗겼다는 소식에 기가 막혀 하고 있었다.
과거 종족전쟁 시절의 샤이니가 거두었던 완벽한 전과를 생각하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창조신장마저 충격에 빠져있었으니 갑자기 긴급연락이 오자 바로 받았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난 거대한 기계신체의 금속 얼굴을 보자 바로 누구인지 알아챘다.
무척 만나보고 싶던 상대였고 유일한 승자였기에 반갑게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그대가 아이언인가?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기계신체인 모양이군.
이번의 전과를 축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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