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아이언이 한 명을 주시하자 모두가 그 쪽을 바라본다.
모든 기계 귀족들의 영혼이 뇌의 모습이었지만 단 한 명만은 중년의 모습으로 온전했다.
바로 기계 재상 솔트였다.
“인제 보니 넌 기계 몸도 아니었군.
과학력이 편향되었지만 대단하구나.”
아이언의 시선이 쓰러진 솔트의 기계 몸을 향한다.
그러자 기계 몸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파사-!
기계 몸속에서 나타난 육체는 영혼의 상태보다 많이 늙고 무척 왜소한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분명 살아있는 몸이었다.
그걸 본 프롬 여왕의 분노는 컸다.
“솔트! 네가 기계 인간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나를 기계 인간으로 만들려고 해?”
아이언이 치료해주고 초월자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자신도 기계 인간이 되어서 저런 몰골이 되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인간이면서 기계 인간으로 제국의 신민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두를 속였는가?
이제 무슨 무슨 변명을 할 셈이냐?”
온전한 영혼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중년의 솔트는 늙은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프롬 여왕님. 인간의 몸에 가장 잘 아는 의사들이라고 해도 오래 살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빨리 죽지요.’
프롬 여왕은 이 말을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일갈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왜 모두를 속였냐고 묻지 않느냐?
제국을 기계 인간의 나라로 만들자고 주장한 네가 왜 기계 인간이 아니냔 말이다.”
기계 인간들의 세상을 주장하면서 대표가 된 솔트 재상이 기계 몸이 아니었다.
뇌만 남은 영혼의 모습이 되어서 미치기 직전인 기계 귀족들의 영혼이 이성을 되찾고 비난을 퍼부을 정도로 큰일이었다.
그래서 뇌만 남은 기계귀족들의 영혼이 몰려들고 있지만 솔트는 전혀 상관없다는 눈빛을 보이면서 똑똑하게 의지를 전달한다.
‘저의 과학력은 육체를 그대로 복제할 수 있고 뇌에서 기억을 추출해서 복제 뇌에 입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상적인 육체를 만들고 정보를 완벽하게 입력해도 기동하지 않거나 미쳐 날뛰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기하게도 뇌의 극히 일부라도 이식하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복제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뇌 이식 외에는 문제를 멈출 방법이 없더군요.’
솔트는 생명유지장치를 달은 노인의 모습인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반드시 본체의 뇌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기계 몸에 뇌 이식을 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제국의 기계 인간입니다.
그러나 저도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혼이 실재하고 이렇게 변형되는 부작용은 몰랐습니다.
육체는 병들고 늙는다.
그래서 버린 결과가 뇌와 척수만 남은 영혼의 모습이었다.
영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로서 예측할 수 없었다.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는 영혼의 결손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육체의 병이나 노화에서 벗어나서 뇌의 수명이 유지되는 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게 최선입니다.’
자신이 기계 귀족으로 끌어들인 결과로 수백 개의 뇌가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서도 솔트는 당당하게 주장한다.
이제 왜 기계 인간이 되지 않았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더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계 몸이 되려고 했는데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저의 탁월한 천재성은 육체에 기반이 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인간 모양의 움직이는 생명유지장치 속에서 거의 동면하면서 연구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제국에서 자신의 업적과 공적은 여왕을 제외하고는 따를 자가 없다.
불가능이라 여겨지던 초능력까지 사용할 수 있는 기계 몸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방금 아이언이 박살 낸 동면장치가 부착된 기계 몸이 바로 솔트의 최고걸작이었다.
여왕조차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완전한 갑옷 형태의 기계 몸이었으니 솔트는 지극히 아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주장한다.
‘은하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와 과학력을 가진 저조차 완전 분석에 실패할 정도로 인간의 몸은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초능력자들처럼 무한히 발전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 몸이 더 낫고 영원의 삶을 준다는 말을 믿고 속은 멍청이들이 더 문제입니다.
타의에 의해 쉽게 얻은 영원한 생명이 정상일 리가 없지요.’
옆에 있던 기계 귀족들의 영혼이 일순 흐려질 정도로 통렬한 비웃음이었다.
그러나 아이언은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후후-! 속인 똑똑한 놈보다 속은 어리석은 놈이 더 나쁘다 이거냐?
그것참 나름대로 아주 마음에 드는 주장이구나.
가해자로서는 무척 편한 생각이야.”
‘........’
참으로 섬뜩한 말이었다.
단숨에 기계 제국을 모두 죽이고 정체를 폭로한 아이언에게 솔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한다.
‘나는 초능력자들이 그렇게나 경계하던 정체 모를 존재들이 과거에 신이라 불리던 존재라고 확신했소.
그래도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생명체라고 생각하고 대화가 되리라고 믿었는데 다짜고짜 이러다니 역시 불가능했군.
전쟁에는 희생이 따른다.
반역자들이 점령한 행성을 부수었다고 제국을 책임지는 귀족들을 아무런 재판도 없이 모두 사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대들은 인간을 전혀 동등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
피지배층도 아니고 단지 정기라는 에너지를 얻기 위한 가축인가?
왜 초능력자들이 그렇게 지독하게 정보를 은폐하고 저항했는지 이해가 가오.’
이들에 관한 정보가 공개되려 하자 여왕은 제국과 기계 귀족들에게서 모든 정보를 지워버렸다.
하지만 동면장치 속의 뇌는 무사했고 연합과도 연줄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조사가 끝난 상태였다.
조사 결과는 역시 허황되기 짝이 없었다.
‘정체모를 존재는 인간의 정기를 흡수하며 살아가는 무형의 존재.
신 또는 악마.’
과학자는 신이나 악마를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에게 기생하는 무형의 생명체로 보고 서로가 만족할만한 거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늦어버린 것이다.
‘보아하니 여왕님과 거래는 끝난 모양이군.
나는 이렇게 끝나지만 즐거워하지 마시오.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오.
자유를 억압하는 상위자에 대한 반역과 혁명은 인간의 본능이오.’
솔트는 신화 속에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신과 악마, 통칭 괴물을 쓰러트렸다는 영웅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막강한 군대 앞에서 개인의 힘은 무력하니 당연히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저런 존재가 실재하니 영웅도 있을 수 있다.’
신화나 이야기 자체가 실제로 있었던 역사라는 생각마저 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언제인가 인간의 영웅이 나타나서 당신을 쓰러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되찾아 줄 것이오.
당신은 신이 아닌 영웅에 쓰러져 사라진 괴물이 되겠지.’
솔트는 아이언이 영웅에 의해 타도되는 괴물이 될 것이라는 말을 최후의 저주처럼 퍼부었다.
이 말은 아이언이 지성체들의 일에 관여하기를 바라지 않는 프롬 여왕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초월자가 되어서 어느 정도 상위 존재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 발언은 심각한 문제다.
본인과 주변까지 송두리째 소멸한다.’
어떤 상위자도 하위자의 비난을 참지 않는다.
상위 정신체를 인식한 지성체가 이런 식으로 무모하게 덤비면 배교행위라고 부르며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그것도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무한정의 처벌이었다.
‘이래서 어설프게 알면 더 곤란해.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정신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몰라.’
이건 자신의 책임이 컸다.
솔트의 기억도 제대로 못 지우고 완전한 기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눈치를 채지 못했으니 제국 최고의 과학력을 가진 여왕으로서 넘어갈 수 없는 수치였다.
‘아이언이 크롬 공주를 유모로 데려갔을 때 탄로 난 정체 모를 존재들의 관련 정보를 내가 직접 제거했다.
그런데 솔트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모양이구나.
하필이면 은하계의 정신체들을 다스리는 아이언의 앞에서 추태가 벌어졌으니 이런 망신도 없다.’
천재적인 지적능력과 정치력까지 겸비한 솔트의 능력은 출중했다.
그래서 은하계 지성체 전부를 다스릴 제국을 위해서 천족에게 속아서 자신의 몸을 병들게 한 것까지는 용서했는데 이것만은 참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번 일로 아이언이 지성체까지 직접 담당을 하겠다고 나서면 말릴 명분이 없었다.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화가 폭발한 프롬 여왕이 벌떡 일어나서 신체와 영혼까지 산산조각내려고 했지만, 아이언의 손이 더 빨랐다.
과아아아-!
발작하듯이 일어서려는 프롬 여왕의 허벅지를 손으로 꼭 누른 아이언이었다.
갑자기 몸 깊이 파고드는 강렬한 정기의 파동에 놀란 프롬 여왕이 멈칫하자 아이언은 솔트를 쳐다보면서 추가로 선고했다.
“나조차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한다.
모두가 주어진 의무라는 운명에 묶여있지.
지성체 주제에 꿈이 아주 크구나.
그리고 영웅이 나를 타도한다고 말했느냐?
내가 바로 너희들을 구할 영웅이다.
그러니 넌 영웅의 길을 가로막은 악인으로 확정되어 지옥행이다.”
‘뭐? 지옥?’
솔트는 먼 과거의 신화에나 있던 지옥으로 가라는 말에 당황했지만, 한때 은하를 넘보던 거물답게 최대한 당당하게 행동하려 했다.
‘지옥으로 가라고?
후후후후-! 죽은 죄인에게 벌과 고통을 주고 뉘우치게 한다는 지옥을 말씀하시오?
죽은 자를 회개하게 하는데 기억을 지워서 환생을 시킨다고 하더군.
기억이 사라진다면 지옥에서의 고통은 쓸데없는 짓이지.
이런 비이성적이고 쓸데없는 조직이 존재할 리가 없소.
이제 다 끝났으니 마음대로 하시구려.’
이제 평생을 꾸었던 은하를 다스리는 황제가 된다는 꿈이 물거품이 된 이상 두려움이 없어진 솔트였다.
‘나는 은하제국의 초대황제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직접 자손을 보기 위해서 저 육체를 유지했지.
당장은 완벽했지만, 나중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르는 뇌를 이식하는 기계 몸이 되는 것을 피했다.’
자신은 기계 인간이 아니면서 타인에게 기계 인간이 되기를 권고한다.
치명적인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왕님과 별도의 독자 세력을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래서 늙어가는 귀족들에게 기계 인간의 기술을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지.’
강력한 초능력자이지만 인간의 몸인 여왕님에게서 다른 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고 실제로 제국의 절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만 기계 인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통난 이상 이미 용서를 빈다고 회복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내 평생의 공든 탑이 무너졌는데 지옥 따위가 다 뭐냐?
그리고 지옥 따위가 실제로 있겠나?
죄인에게 고통을 줘서 뉘우치게 한다고?
육체가 없는데 무슨 고통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기억을 지워?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
최고의 천재 과학자답게 지옥이나 천국 따위는 믿지 않는다.
만약 실존한다면 엄청난 자본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죽은 영혼에게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영혼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지옥은 있을 리가 없다.
지옥이 실제로 있다면 모든 인간은 벌을 받은 사실을 기억하고 착해야 해.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는데 지옥에 떨어진다고 더 나쁠 리가 없다.’
솔트는 그렇게 아주 잠시 생각했다.
‘!!!’
바닥에 열린 형용할 수 없이 검고 깊은 구멍이 나타나기 직전까지였다.
우우우우웅-!
거기에서 품어지는 마력에 영혼이 몸서리친다.
정기추출 후 환생을 당하면서 완전히 삭제되었던 지옥의 기억이 솔트의 천재적인 기억력과 잠재되어있던 초능력으로 되살아난다.
‘잠깐-! 이 기억은 또 뭐야?
내가 지옥의 단골이었다고?
그보다 지옥이 정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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