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샤이니는 아무 말 없이 커다란 주전자에 차를 끓이고 찻잔을 만들어서 모두에게 나누고 따라준다.
그러면서도 골똘하게 생각에 빠져있었다.
자신이 같이 있으면서도 중앙핵을 빼앗긴 그 전투의 분석과 대책 마련이었다.
같은 상황에서 이길 방안이 보이지 않았기에 근신도 기꺼이 감수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아직 정리가 덜 되었다.
설명하기 힘들군.’
전투에서 얻은 자료를 근거로 승리 방안을 짜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서 달려온 친구와 동료들이었기에 쫓아낼 수는 없었다.
‘브라이트와 의견을 교환하면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쪼르르르르르-! 호르르르르르-!
지극히 담백한 차 향기가 가득 차고 우주신들의 흥분은 가라앉았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샤이니는 말문을 열었다.
“적의 두목인 근원이라는 존재가 문제였다.
내 힘으로도 어떻게 해도 죽이거나 소멸시킬 수가 없다.
여기에 다른 흑염 세력도 비슷한 회복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불사체를 고유권능으로 가진 모양이군.
그런 상대가 다수라면 혼자서는 상대하기 곤란하지.”
종족전쟁 때처럼 전황을 차분하게 이야기하면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전방에서 샤이니, 후방에서 브라이트가 신족을 지휘했을 때 종족전쟁은 승리로 결판났기에 우주신들은 침묵하면서 경청한다.
“근원은 어떤 타격을 받아도 바로 회복을 해서 덤벼들었다.
전력으로 분쇄하고 멀리 날려버려도 다른 열 명이 나를 포위해서 시간을 끌면 바로 복귀해서 전투를 강요한다.
그들에게 발을 묶였는데 나머지 사십 명의 전력이 중앙핵을 탈취하기 위해 강습했다.
토벌단의 고위 주신들과 신계 전력이 얼마 견디지 못하고 빼앗겼다.
바로 차원권능으로 도주했는데 나는 추격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대처방법이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 위압 당하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된 고위 주신들이 있었지만 수와 전투력에서 밀려서 방어는 불가능했다.
‘그들이 쓰러지자 전투는 끝이었다.
투기와 살기에 압도당한 신계를 방어하는 투신들과 신계 주신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어.
창조신급의 강자들에게는 중앙핵의 최종 방어벽조차 돌파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지 않는다.’
근신을 당하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는 중앙핵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결론만이 나온다.
‘내가 아무리 강해도 근원을 죽일 수 없다면 반드시 발이 묶인다.
그래서 다른 전력이 중앙핵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흑염 세력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샤이니의 몇 마디의 말로 단숨에 그 당시 진행 상황을 자세하게 파악한 브라이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샤이니는 결투는 이겼으나 전투로는 패배했다.
‘이번 패배는 샤이니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해도 마찬가지였어.’
샤이니조차 죽일 수 없는 불사체 집단은 혼자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적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토벌단을 구성하여 맡긴 최고 위원회의 잘못이 가장 컸다.
“상위 권능에도 저항이 가능한 불사체(不死體)들이 상대였는가?
그럼 혼자서는 불가항력이로군.
지금처럼 소수정예의 토벌단이 아닌 정예 투신의 대군으로 바꾸면 바로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되네.
떨어진 명예는 승리로 회복해야 하니 갑옷을 입고 출전준비를 하게.
내가 창조신장에게 직접 가서 요청하겠네.”
“........”
우주신들을 모두 재우기 위해서 오랜 은거 중인 브라이트가 나서주겠다고 한다.
비록 권력에서 멀어졌지만 각 일족에게 가진 커다란 발언력을 보면 근신은 바로 풀리게 되어 있었다.
더없이 고마운 일이나 샤이니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근신이 풀려도 지금은 막을 방법이 없다.
직접 전투를 한 덕분에 이제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해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어설픈 전투 재개는 오히려 흑염 도적단을 더 강하게 한다.’
근원과 흑염 세력의 정예들과 신체를 가지고 직접 싸우면서 그들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그렇게 얻은 정보는 놀라웠다.
‘신족의 사기를 위해서 나도 허계 흑염 도적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줄었어도 그렇게 낮게 볼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허계를 절대계로 만든 십중심 흑염의 절대자의 직속세력이었다.
그것도 다른 십중심의 세력들에게조차 두려움을 줄 만한 엄청난 강자들이었다.
‘단 오십 명으로 절대계의 일 할을 좌지우지했던 최정예 강자들이 그 정체였다.’
십중심의 지배 이후 현세계보다 열 배 이상 강력해진 절대계의 전력으로 보면 그들 자체만으로 현세계의 전력과 동등하다는 뜻이었다.
‘겨우 오십 명으로 절대계 전력의 일 할로 평가받던 세력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세계의 항상성에 의해 일백 분의 일로 힘이 감소했다고 해도 절대계의 일천 분의 일의 전력이다.
즉 현세계의 일백 분의 일이라는 엄청난 전력이 한군데 뭉쳐있다.’
정신체 상대로는 거의 완벽한 불사체인 근원의 권능도 놀랍지만 다른 존재들의 힘도 강력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지만, 전투 시간이 길어질수록 급속도로 강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강적과 싸우면서 강해질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
바로 영웅신들이었다.
‘나와 같은 영웅신들이었어.
본래의 힘을 가지고 왔다면 나와 브라이트를 제외하고는 상대할 수 없다.
힘이 감소 된 지금도 신족 중에 이길 만한 투신이나 전신이 있을지 의문일 정도의 강자들이다.’
종족전쟁에서도 일족의 운명이 걸린 전투 외에는 보기 힘들었던 영웅신들이 뭉쳐있는 무력집단이라니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같은 영웅신들이다.
아무리 약해졌어도 나 혼자서 다수를 상대해야 하니 도저히 끝장을 낼 수가 없다.
브라이트와 연합하여 공격해도 도망치면 끝이다.
은하계를 도약하는 차원권능 때문에 잡을 수가 없어.’
더구나 상황은 갈수록 다급해져 갔다.
‘이들이 강력한 차원권능과 막대한 정기로 점점 힘을 회복하고 있다.
더 강해지기 전에 지금처럼 소수의 병력이 아닌 총동원령을 내려서 지역우주를 둘러싼 대규모의 토벌전을 벌여서 처단해야 한다.’
엄청난 대군으로 포위하고 끝없는 전투를 유도해서 정기를 고갈시켜 제압한다.
그럴 전력이 없으면 같은 수준의 영웅신으로 대항한다.
영웅신을 상대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영웅신이 집단이 되면 이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강력한 영웅신들이 서로 돕기 시작하면 일반적인 투신이 아무리 많아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설픈 전투는 저들을 더 강하게 만든다.
마지막에 근원이 보였던 투기와 살기는 나조차 뒤흔들 정도였다.
그들 전부가 온전한 힘을 되찾기 전에 신족의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토벌해야 한다.’
하지만 허계를 업신여기는 현재 신족에게 그런 주장이 먹힐 리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최고위 창조신들도 직접 경험해보면 바로 위험성을 알 수 있을 것인데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방법이 없군.’
이번의 패배로 무기한 근신까지 당했으니 발언권이 없어서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브라이트와 우주신, 최고 위원회의 창조신들이 전부 나서야 제압할 수 있다.
지금 창조신계의 운영이 문제가 아니지만 통할 리가 없군.’
절대계는 일 할의 세력은 현세계 전부와 맞먹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면 흑염 세력이 완벽한 힘을 되찾게 되면 단순한 수치상으로는 현세계 전력과 맞먹게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문제다.
오십 명의 영웅신을 막을 방법은 없다.’
더구나 흑염 권능의 특징이라는 무한대로 힘이 증가하는 폭주까지 걸리면 현세계는 마지막이었다.
‘다행히 흑염 권능의 오리진인 흑염의 절대자가 없으니 그럴 수는 없겠지.’
흑염의 절대자는 분명 진리라는 새로운 허계의 창조주의 손에 의해 처단당했다고 들었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 전투에서 분명 흑염 권능의 가호가 발동되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팔다리를 날려버리고 몸통과 머리가 으스러져도 바로 멀쩡하게 되살아나던 근원은 마지막에는 검은 불길에 휩싸여서 자신조차 위축시켰다.
그리고 다른 투신들을 너무나 쉽게 물리치던 흑염 세력의 몸 주변에서도 아주 흐릿하지만 검은 투기의 불꽃을 보았다.
‘절대계 최강의 파괴력이라는 흑염 권능의 흔적인가?
권능의 기원은 말소가 되었지만, 너무 강력해서 아직도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세계가 바뀌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흑염의 절대자가 살아있었으면 도대체 어떤 위력이었다는 것이냐?’
물론 아니었다.
이대 흑염의 절대자의 직접 가호를 받고 현세계에 떨어진 아이언의 영향으로 흑염 세력에게 심어 있던 흑염의 권능이 활성화되는 중이었다.
그러나 사이니는 흑염 권능의 잔류 흔적에 종족전쟁에서조차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느꼈다고 생각했기에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샤이니가 참전 준비를 하라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브라이트와 우주신들도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신족의 승리를 방해하기 위해 다른 종족이 연합하여 달려들던 최종 결전에서조차 여유가 있었던 샤이니였다.’
‘이렇게 전투를 망설이고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
‘그 도적놈들이 그렇게 난적들이란 말인가?’
‘현세계에서 와서 일백 분의 일로 힘이 줄었는데도 그 정도면 도대체 허계에서 어느 정도였다는 것이지?’
흑염 세력이 과거에 자신들의 종족과 행성을 파괴하고 홀로 절대계를 헤집고 다니면서 마구잡이로 신계나 마계를 털어먹으면서 살았다.
그러고도 흑염의 절대자에게 잡히기 전까지 무사했던 이력을 알고 나서 깜짝 놀라게 된 일은 한참 뒤였다.
그렇게 샤이니를 탈진시키고 탈락시키는 데 성공한 흑염 세력은 차원권능으로 고유세계를 만들고 자축연을 벌리고 있었다.
이번 신계에서 털어온 술과 음식이 가득한 연회장 중앙에는 은은한 검은 불꽃이 몸 전체에서 타오르고 있는 근원이 있었다.
화르르르르르르-!
술을 쥐고 마시고 있는 와중에도 투기와 살기의 융합체인 흑염의 권능은 끝없이 신체를 활성화하면서 전투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당장에라도 날뛰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면서 참고 있는 근원을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샤이니와 전투 이후 전혀 안정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안정이 안 되는가?”
근원은 샤이니에게 받은 타격은 이미 회복했다.
그러나 끝없이 공격을 받으며 버티다가 갑자기 폭발한 흑염 권능을 통제하기 힘들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아! 힘들군.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흑염 권능의 가호가 돌아온 일은 더없이 반가운데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이 상태로 전투를 벌였다가는 아군을 구분할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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