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날개처럼 양옆에 달린 작은 보조 깃발들에는 황금 바탕에 파란 글씨로 내용이 적혀지고 휘날리기 시작한다.
‘약자에게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義).’
‘강자에게 유상의 성공(有償의 成功).’
상반되는 목적을 가진 본래의 흐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패기가 넘치는 글씨가 쓰인 깃발들이 존재감을 높이면서 휘날리고 있었다.
스스스슥-! 우우웅-!
본래대로라면 만날 일도 거의 없던 고대 문명의 후계자들을 부하로 만들기 위해서 피떡으로 만들어 버린 아이언이었다.
정중한 권유를 거부한 대가로 무참한 모습이 되어 신음하는 천국에서 아이언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세력의 깃발을 더욱 높이 들어 올렸다.
‘미래의 이계(異界)를 좌지우지하던 기계신체를 가진 초월자들의 거대 연합인 용자동맹(勇者同盟)의 원형이자 완성형이 될 조직의 탄생이다.
용자 놀이에 몰입하다가 완벽한 양아치가 된다고 하던데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 다음에는 창조신계가 요구한 영웅동맹의 조직도를 만들기 시작한 아이언이었다.
최상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고 나머지는 공백인 간단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맹주는 영웅황제 아이언.
현재 소속 인원은 일만이다.
정확한 수와 수준은 비밀이다.’
창조신계가 원하던 상세한 조직표와 명단은 무시하고 그대로 공백 상태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떤 멍청이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세력을 전부 까발리나?
더구나 전력을 전부 넘겨달라고?
내가 돌았나?”
정식으로 위원회의 위원을 준다고 하지만 방대한 구역을 맡고 관리하는 신계 주신에게 전력 전부를 넘겨달라는 요구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온 정상적인 행동이었지만 또 어떤 파문이 일어날지 걱정되어 암울한 표정을 하는 워터 문에게 당당하게 외쳤다.
“맡긴 일과 확실하게 처리하고 세금도 내줄 것이니 시비를 걸지 말라고 해.”
“아이언님. 제발 불필요한 도발은 그만두세요.”
아이언의 파격적인 행동에 더는 놀라거나 화를 낼 힘도 워터 문이었다.
그러나 전혀 해가 되지 않고 도움이 되고 있으니 짜증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잔에 가득 찼던 세계수의 술을 어느새 마셔버리고 다시 술을 채우려 하고 있다.
‘굉장한 정기와 효과를 가진 술이네.
세계수의 수액이라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너무 정기가 강하네?
설마 우주수(宇宙樹)는 아니겠지?’
세계수는 행성 개조용으로 신족의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우주수는 상위 창조신들이 다스리는 본성의 신계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이었다.
‘그런 보물의 수액을 술로 만들다니 들어보지 못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창조신계에서 주목받던 고위 천족답게 신력을 높여주고 신체까지 강화하는 세계수의 술의 가치를 단숨에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 다시 술병을 잡았는데 이미 비어있었다.
“........”
범인은 프롬 여왕이었다.
가볍게 맛을 보자마자 독이 아니고 영약의 일종임을 알고 바로 전부 마셔버린 것이다.
혼자서 제국을 일으킨 여걸답게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았다.
“........”
“........”
프롬 여왕의 눈빛과 워터 문의 눈빛이 날카롭게 부딪쳤다.
어쩌다가 아이언의 유모라는 신분을 강요받고 같은 입장이었지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입장을 보면 서로 원수 사이였다.
워터 문에게 프롬 여왕은 은하의 절반을 지배하면서 신족의 인식을 악화시켜 정기를 악화시키고 있는 악질 범죄자였다.
그리고 프롬 여왕에게는 워터 문은 호시탐탐 인간의 정기를 노리고 가축화시키려는 가증스러운 신족의 앞잡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것 봐라?
앞으로도 혼자 다 먹겠다는 뜻인가?’
‘초월자로 만들어 준다는 영약을 나누어 먹을 이유가 없지.
절대로 신족도 아닌 천족에게 지지 않는다.’
정신체에게 가장 중요한 신력을 올려줄 보물을 놓친 워터 문은 은근슬쩍 살기를 뿌리면서 말했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겨우 지성체들의 여왕이면서 신계를 책임지고 있는 천족의 대표에게 상당히 무례하군요.”
상황을 보니 앞으로 꽤 마주칠 것 같아서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지성체들의 여왕이라고 하지만 천족은 정신체다.
존재의 무게가 다르다.’
그러나 프롬 여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말투부터 가렸으면 좋겠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상위의 존재를 섬기는 노예보다 자유로운 존재들의 여왕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서로 적대하던 입장이었으니 의견이 합치될 리가 없었다.
강력한 초능력과 신력을 가진 서로의 눈빛이 부딪쳐서 실제로 번개가 일어났다.
빠지지지지직-!
자신이 만들 영웅동맹의 세부 조직표를 만들고 있는 아이언의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면 당장 결투를 벌인 기세였다.
“아무리 보아도 상하관계부터 확실히 해야겠군요.”
“그것만은 동감이에요.”
지금 두 여걸의 의견이 일치했다.
아이언의 입장으로서는 귀엽기 짝이 없는 살기가 느껴지자 혀를 차면서 손을 튕겼다.
“쯧-! 지금은 싸우지 마라.
한 병으로는 부족한가?
하긴 여유가 평화를 부르지.”
딱-! 우르르르르르-!
허공에서 세계수의 술이 담긴 커다란 상자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탁자 위에 수십 병이 놓여있는데 겨우 한 병 때문에 싸우려 한 셈이 되어버린 프롬 여왕과 워터 문은 할 말을 잃었다.
“........”
“........”
어느새 파악했는지 후계자들의 이름을 일사천리로 적어가는 아이언의 모습만을 볼 뿐이었다.
그런데 프롬 여왕의 눈빛이 한순간 빛났다.
맹주인 영웅황제 아이언의 바로 옆에 아주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영웅동맹 군사(英雄同盟 軍師)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
병에 쓰러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유모의 역할을 자처했던 장녀의 이름이었다.
‘유모만이 아니라 다른 직위를 맡길 모양이구나
그런데 제국의 공주이자 다음 여왕을 맡길 인재를 겨우 용병 같은 집단의 군사로 쓰려고 하는 것인가?
아무리 무력 수준이 높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
크롬의 역량은 누구보다 잘 아니 뭐라고 이견을 말하려고 하는데 아이언의 혼잣말이 입을 다물게 했다.
“지역 우주까지 완전 제압을 시키려면 최저한의 병력이 일억인가?
일단 일만의 초월자와 십만의 초능력자가 탑승한 하위 기계신들로 가볍게 시작하고 늘려가야 한다.
내가 겨우 기계신 군단을 붙잡고 있을 수 없으니 크롬에게 맡겨야 하겠군.”
하위신이라고 하지만 신족의 전력이 일억이면 은하 절반을 장악한 프롬 여왕으로서도 상상하지 못할 전력이었다.
‘그런 대군을 통제하는 군사의 직위는 은하를 다스리는 여왕보다 절대로 낮지 않다.
초월자가 되면 늙어 죽지 않는다고 하니 이렇게 되는 쪽이 더 좋을 수도 있겠어.’
은하를 다스리는 여왕인 자신과 지역 우주를 제패할 기계신 군단의 군사가 된 크롬의 조합이면 더 큰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고 있는데 아이언은 완성된 조직표를 상공으로 던지면서 외쳤다.
“끝났다.
이제 나와서 너의 부하들을 인식하라-!
영웅황제 아이언.”
그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천국이 진동한다.
파아아아아아앗-!
땅에서 하늘로 황금빛의 기둥이 솟아오르면서 서서히 강철의 거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크기는 일백 미터이며 극도로 화려한 장식이 된 황금의 갑옷을 입은 기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투구 대신 쓴 커다란 진주 같은 검은 보석이 이마에 붙어있는 화려한 황제의 왕관은 이 기계신이 어떤 위치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쿠쿠쿵-! 쿠쿵-!
기계신들의 황제가 천국의 대지에 내려선다.
몸에 두른 피처럼 붉은 망토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라난 행성의 문양이 푸른색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에 아이언이 던진 영웅동맹의 조직표가 닿자 찬란한 빛이 발산되면서 이름들이 아주 작게 무늬처럼 새겨진다.
파파파파파파파파-!
붉은 망토에 고대문명의 후계자 일만 명과 천족이 파악하고 있던 은하의 초능력자 십만 명의 이름이 남김없이 새겨져 간다.
그리고 영웅황제 아이언의 전신에서 품어진 황금빛이 피떡이 되어있던 후계자들을 비추었다.
파아아아아-!
그러자 후계자들의 영혼과 영웅황제 아이언의 검은 보석이 감응을 시작했다.
일만 개의 영혼에서 추출된 영혼의 일부는 모두 왕관의 검은 보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보석의 정체는 창조신의 신령까지 무수하게 가둘 수 있는 신령연옥(神靈煉獄)이었다.
영혼 전부를 흡수할 정도는 흡수하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신령연옥은 겨우 지성체들에게는 과분하지만, 이 수준에서는 어쩔 수 없지.
되도록 많은 수를 채워 넣어서 쓴다.
그리고 축하한다.”
초능력이 강한 후계자들은 천국의 도움으로 머리와 상체까지 복구했다.절반 정도 회복한 그들을 향해서 아이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영웅황제 아이언이 너희들의 유일한 천국이자 지옥이다.
마침내 얻은 신족으로부터 자유를 마음껏 기뻐해도 좋다.”
“?”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 줄 모르는 후계자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상급 천족 워터 문은 방금 일어난 권능의 흐름을 읽고 탄성을 지르면서 물었다.
“아-! 전투형 독립 기계 신계입니까?”
이렇게 작게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정답! 작게 만드는 정도는 기본이지.”
순수한 찬사에 아이언은 기분 좋게 응답했다.
위성 크기의 신계를 일백 미터의 인형으로 압축시킨 기계신이 바로 영웅황제 아이언의 정체였다.
‘독립적인 신계와 다름없는 영웅황제 아이언이다.
저 망토에 이름이 적히고 영혼의 일부가 신령연옥에 들어간 이상 죽으면 바로 회수가 된다.
그리고 기계신의 몸체를 복구하면 다시 영혼을 입력하면 원상복귀다.’
전투형 신계이니 바로 전장의 현장에서 부활시킬 수 있고 기계신이라서 수리나 보충할 재료만 있으면 정기의 소모도 거의 없다.
창조력이 강한 정신체이지만 권능사용과 부활에 많은 정기가 소모되는 신족으로서는 끔찍하기 짝이 없고 끈질기기 짝이 없는 기계신 군대의 탄생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만족스럽게 쳐다본 아이언은 아직 피떡 상태의 후계자들을 내려다보면서 의아하게 물었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신족의 지배에서 완전히 독립했는데 안 좋아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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