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촛불에 이끌리는 나방처럼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라면 차원의 오리진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흑염의 권능까지 가졌으니 흑염의 절대자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흑염 세력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향해 진로를 바꾸었다고 하면 타당성이 있었다.
‘확실히 내가 있는 은하 쪽으로 분명 이동하고 있다.’
절대로 자신의 존재를 알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지역우주 이상의 영역을 가진 권능은 자신 외에는 없었다.
‘내 차원권능이 아니면 주신성 정도의 정보행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도망자 주제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설마 감인가?
역시 아는 것이 없어도 직감으로 잘 사는 흑염 세력다운 감각이로군.’
결국 이대로 있으면 자신이 자라고 있는 은하까지 와서 진리의 추적에 휘말릴 판국이었다.
‘그렇다고 나를 상위자로 모실만한 싹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정기가 필요하면 곱게 뺏을 수도 있는데 신계를 전부 박살내고 중심핵을 뜯어서 기능정지에 빠뜨렸다.
이러면 보나 마나 자신들보다 상위인 나의 차원과 흑염의 권능만을 원하면서 행패를 부리겠지.’
결론은 오기 전에 두들겨 패서 원래 방향으로 도망가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짜로 싸우기는 그렇고 조금이라도 벌어볼까?
그런데 여기도 용병신이 있나?’
직접 싸워야할 이유도 있기는 했다.
주신성을 만들 정도가 아니면 추가 정기는 필요가 없었다.
삭월의 시즈지에게 얻는 강력한 창조력이 깃든 정기는 유아신의 성장에는 최적이었기에 생긴 문제였다.
‘유모만 추가로 보충하면 발육에 이상이 없다.
그런데 갈수록 차원일족의 유아신으로만 자라나는 신체와 아이와 같은 의식이 문제다.’
자신이 가진 최강의 힘은 누가 뭐라고 해도 흑염의 권능이었고 그 다음은 마력이었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그 둘의 사용에 제약이 큰 순수한 차원신이 될 수도 있으니 마력과 투기를 보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완전한 차원신이 되면 아주 곤란해.
일단 차원신의 육성상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분야도 강화해야 해.
마력과 투기는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터나 강적과의 사투에서 가장 순수하게 육성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흑염 세력은 최적의 상대였다.
그리고 마력과 투기를 키우면서 차원신을 육성하려면 신계가 필수적이었다.
기우뚱-!
아이언의 머리가 살짝 기울여지면서 기능 정지 상태의 신계를 바라보았다.
신족에게 복구를 포기당해 다 죽어가고 있지만, 그동안 축적된 정보는 외부의 세계에서 온 자신에게 천금의 가치가 있었다.
‘좋아!
이건 사용할 수 있겠어.’
잠시 후 창조신들이 떠나자 바로 신계의 중심부로 향한다.
정기 고갈로 신계가 정지된 이상 신족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기에 기존의 신족도 빠르게 철수해서 무주공산이었다.
파괴된 주신전을 지나서 신계의 중심핵이 있던 장소에 도착한 아이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신계의 기본 구조는 현세계와 절대계가 대동소이했다.
‘정점은 서로 닮아간다고 하던가?
역시 정신체의 정화인 신계의 구조는 어디서나 거의 같다.’
잠시 기다리자 하위신들도 공간이동으로 벗어난다.
정기를 잃고 죽어가는 신계는 잘못하면 신족조차 흡수하는 악성 변이를 일으킬 수 있으니 철수는 순식간이었다.
‘일단 기능이 정지된 신계는 다시 만들 정도로 추가 신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그대로 분해되어 소멸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죽어버린 신계를 되살리는 것보다 새로 더 좋게 만드는 것이 나으니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상당히 매정한 방법이지만 효율만 생각하면 합당했다.
그렇게 아무도 없어진 폐허가 된 신계에 아이언의 차원결계가 발동된다.
우우우우웅-!
정기가 고갈되어 기능정지가 된 신계를 차원결계가 감싸고 강력한 신력이 담긴 찬란한 황금빛에 휩싸인다.
파파파파파파-!
무너진 외곽성벽과 신전, 주신전이 일순간에 다시 재생되었다.
전보다 더한 강도와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보이는 신계의 모습이었다.
차원신의 오리진이라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계 주신을 얻은 신계의 극적인 발전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재생된 주신전 영광의 자리에 앉은 아이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후후-! 어차피 버린 물건이니 누가 주어가도 상관없겠지.
그럼 내가 챙겨가도록 하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순간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를 따르겠느냐?”
나직하게 묻는 아이언의 질문에 죽어가다가 되살아난 신계 자아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새로운 신계 주신님의 뜻대로 하소서.
따르겠습니다.”
정기고갈로 죽는 순간 신족은 자신을 포기했고 변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연결조차 끊어졌기에 거침이 없었다.
더구나 새로운 신계 주신은 이제까지 모셨던 어떤 고위신보다 강력하고 창조력에 넘쳐있었다.
아무런 전투나 협박도 없이 상급 신계 하나를 손에 넣은 날이었다.
아이언은 정보행성 코아로부터 넘겨받은 과거 자신이 주우주의 신계 주신이 되기 위해서 치렀던 혹독한 대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과 비교하면서 크게 웃었다.
“쿡쿡-! 역시 쉽군.
허약한 세계는 이런 면에서 참 좋아.
이렇게 현세계에서 오백억년동안 존경받으며 사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겠구나.”
차원일족의 유아신인 지금은 현세계 신족이 능력부족으로 포기한 신계를 되살리고 수중에 넣기조차 쉬웠다.
현세계의 신족들이 겨우 이 정도라면 온전하게 정체를 드러내면 아무리 절대계의 창조신이라고 해도 괄시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선택지가 많이 늘어나겠군.’
그렇게 차원권능으로 부활한 신계를 수납하고 다시 은하계로 돌아가는 아이언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현세계의 창조신계에는 비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허계 도적 떼들의 전담반인 창조신들이 이대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다고 요청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문제였다.
“초월자들까지 동원해서 신계 방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신계 주신의 전투능력이 부족한 곳에는 위원회의 창조신을 파견을 해야 해?”
“그렇게 그 놈들이 강력한가?”
최우선적으로 신청한 지원은 불안정한 감정문제로 엄격히 제한되어왔던 초월자들의 등용과 창조신들의 배치였다.
그동안 부작용 때문에 엄격히 금지해왔던 각종 조치의 해제였으니 커다란 문제였다.
더구나 우주신들의 지원까지 요구하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우주신 샤이니와 브라이트를 포함하여 차원권능을 가진 우주신들을 전원 동원해달라는 것인가?”
우주신들은 현재 신족들을 대체하고도 남을 강력한 권능이 있었다.
창조주님의 신뢰까지 두터웠지만, 현세계가 안정기에 들어간 이상 더 이상 강력한 창조력과 전투력은 필요 없었다.
그래서 소모 정기가 많다는 이유로 은거조치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가 무능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교체될 수 있다.’
‘공을 세우게 하면 위험해.’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직접 요구하니 언제나 기품이 넘치던 창조신장님조차 얼굴을 굳힐 정도였다.
그러나 무신경함을 성토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강력하던 열 명의 신계주신들이 신계를 잃고 창조신계에 들어와서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손해도 어마어마했다.
“잃은 신계가 열 개에 피해액도 십 조이상입니다.”
“.........”
창조신계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분이지만 빠듯한 예산으로 보아서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잘못하면 발전에 투입한 예산이 모두 증발한다.’
‘일부의 고위신들을 봉인 조치해야 할 정도다.’
창조주님에게 바치는 정기를 줄일 수 없으니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예산을 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최고 위원회에 불려 와 전투의 상황 설명을 하는 열 명의 신계주신을 쳐다보는 창조신장의 눈은 차가웠다.
‘이 한심한 놈들-! 겨우 육십 명의 허계의 도망자들을 신계로 막아내지 못해서 이렇게 만들다니 이게 무슨 추태인가?
이걸 어떻게 한다.’
마음속에서 치솟는 분노를 꾹 참고 다시 물었다.
전담반 창조신들은 지금도 차원이동을 반복하면서 멀어지는 허계의 도적 떼들을 추적하느라 참석하지 못했으니 이들의 증언이 가장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희가 보기에도 이 요구들이 타당한가?
허계와 현세계의 차이 때문에 백 분의 일로 힘이 줄었을 것인데도 그렇게 강하단 말이냐?”
신계를 잃은 신계 주신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대답한다.
스스로 패배를 이야기해야 하는 너무나 수치스런 자리였지만 그들은 진정을 담아서 외쳤다.
“한시라도 빨리 우주신들을 동원하시옵소서.”
“더 시간을 끌면 창조신들이 다스리는 신계조차 위험할 것입니다.”
적이 강해야 패배한 자신들의 체면이 산다는 과대평가가 아니었다.
실제로 싸워본 허계의 허신들의 투기와 저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
“!”
창조신들의 안색이 굳어진다.
신계 주신이 될 말한 주신들이 무능할 리가 없었다.
이들은 일족의 기대주였고 창조신을 바라보는 강자들이었으니 직접 상대를 한 이상 평가가 틀릴 리가 없었다.
다만 인정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허계에서 막 넘어온 허신들 주제에 주신조차 능가하는 강함이라니 이럴 수가 있나?”
“도대체 허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런 강자들이 도망쳐 나왔지?”
이제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이 대량의 정기를 확보해서 원래의 힘을 되찾으면 백배 이상 강해진다.
그럼 창조신장조차 월등히 초월하는 강자 육십 명이 현세계에서 약탈과 난동을 부리고 다닌다는 뜻인데 그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주 마음에 안 들지만 우주신들을 동원하기로 결정하는 창조신장과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들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샤이니를 새로운 전담반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브라이트에게는 차원권능을 가진 우주신들의 파견요청을 해라.”
우주신 샤이니는 창조주님에게 최고위 창조신으로서 활동을 인정받았기에 명령권은 창조신장에게 있었다.
그래서 쉽게 명령할 수 있지만 은거 중인 브라이트는 달랐다.
우주신들 중 극히 뛰어났던 샤이니와 동격의 강자였다.
‘강제 은퇴를 받아들인 대신에 그동안의 고생의 보답으로 은거를 명령받은 우주신들의 대표가 되었다.’
강력한 우주신들의 대표는 창조신장이라도 협조를 부탁해야할 입장이었다.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않는 대신에 의무도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의 차이는 이번 일로 극명하게 장단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지시와 부탁을 받은 우주신을 대표하는 두 신은 바로 장거리 통신으로 협의에 들어갔다.
긴 흰 수염과 머리를 기른 중후한 인상의 노신(老神)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한다.
“나는 이번 일에 우주신들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일세.
샤이니 자네도 나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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