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분해하는 여왕의 혼잣말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한 공주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
“........”
기계귀족들의 정보 삭제가 끝나고 외부로 퍼진 정보소거를 위해 물러나게 한 여왕은 공주들을 바라보면서 환상의 몸을 치웠다.
허공에 떠 있는 투명한 구체에 쌓인 여왕의 머리를 본 공주들은 거듭되는 충격에 어쩔 바를 몰랐다.
“!!!”
“!!!”
제국의 과학력은 목만 남아도 생명보조 장치로 얼마든지 살아가게 할 수 있지만 여왕이 저렇게 되었으니 충격이었다.
여왕은 지금 머리만 남은 자신의 상태를 가감 없이 공주들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너희들에게는 정체모를 존재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주마.
그들의 정체와 목적, 우리가 만든 제국의 관계까지 말이다.”
그것은 여왕이 아직 제국을 만들기 한참 전의 이야기였다.
강력한 초능력과 과학력을 가진 고대문명이 행성의 노화와 어떤 이유로 인한 마지막 운명을 맞게 되면서 존재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역사이기도 했다.
여왕은 머리만 남았지만 환한 초능력의 빛을 발산하면서 여왕에게만 전해지는 역사를 이야기한다.
“고대문명은 은하 전부를 장악할 정도로 너무나 발전해서 정체모를 존재들에게 도전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기계병기와 초능력자들이 넘쳐났기에 승리를 자신했지만 너무나 큰 전력차이로 패배했다.
정체모를 존재들이 은하가 아닌 전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존재들이란 사실을 몰랐던 것이 패착이었다.”
여왕의 의자에서 극비의 입체영상이 비추어진다.
거기에는 흰 날개와 검은 날개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가진 존재들이 우주공간을 나르면서 우주함대를 부수고 행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찬란한 휘광에 휩싸인 존재들이 빛줄기를 쏘거나 주먹과 발을 내지르는데 우주전함이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빛나는 날개를 가진 존재들에게 초능력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해갔다.
능력의 차이도 큰데 수조차 상상할 수 없이 많으니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병력 수에 밀려서 무참하게 패배하고 무조건 항복했다.
하지만 정체모를 존재들은 용서하지 않았다.
수천억이 넘어가던 인간들이 수확이란 이름으로 모두 죽임을 당하고 도시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의 시간이 걸려도 고대문명과 인간을 모두 지우려고 했다.
모든 행성을 수색하여 모든 인간들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했지.
주력부대가 무너진 이상 은하 전역에 흩어져있던 광대한 세력이라도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른 은하에도 그들의 세력은 강성하다고 판단되었으니 도주도 할 수 없었지.”
행성들의 모든 인간과 도시들이 증발되듯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창백한 표정이 된 공주들의 표정을 본 여왕은 다른 영상을 띠웠다.
딸깍-!
거기에는 지하 깊숙이 마련한 요새에서 수천 명의 남녀가 수정관에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수정관들은 소형 우주함에 나누어 실려서 아주 은밀하게 은하 전역에 흩어져갔다.
“그래서 이주보다 은하 전부의 모든 행성에 특별히 선발된 인재들을 은밀하게 숨기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왕의 이야기는 수정관을 품고 각 행성의 땅으로 파고들어 숨어가는 우주함들을 보여주면서 이어졌다.
“고대문명의 후계자들은 혜성이나 이미 정체모를 존재들이 초토화시킨 행성 위주로 숨어들어갔지만 대부분 발각되어서 파괴되었다.
그러나 극히 일부는 살아남아서 정체모를 자들이 확인할 수 없는 지하 깊숙이에 잠들어 때를 기다렸다.
정체모를 존재들이 워낙 광대한 영역을 다스리기에 우리 은하 하나에 언제까지 전력을 집중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지.
과연 예상대로 행성의 표면에서 인간들이 모두 사라지고 문명의 흔적이 거의 없어지자 그들은 떠났다.
그리고 바로 다른 은하에서 새로운 인간들을 데려왔지.”
딸깍-!
행성 위의 표면에 거대한 빛의 문이 열리면서 거기에 초라한 행색을 한 인간의 무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확인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땅에 입 맞추고 빛의 날개를 가진 존재들을 칭송했다.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만족한 정체모를 존재들은 무리의 지도자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고는 그대로 공간이동으로 대부분이 떠난다.
그 다음에는 중세시대 수준의 문명을 가진 인간들이지만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아주 약간 남은 정체모를 존재들을 떠받들었다.
“정체모를 존재들은 반역한 인간들을 모두 멸종시키고 자신들에게 순종하는 인간들로 행성을 다시 채운 것이다.
수확과 파종이라 부르는 이것이 바로 정체모를 존재들의 지배방식이다.
그들은 우주 전부에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
정기라고 부르는 무형의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 말이다.
정기는 지성체들의 생명력이자 정신 에네지의 일종으로서 인간들이 늘어날수록 늘어나고 특이구조물로 가공해서 수집한다.”
이제 많이 늘어난 인간들이 신상이나 신전에 절하자 환한 기운이 모이고 하늘 높이 발송된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양은 많아졌지만 빛줄기가 약해져가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여왕은 확신하듯이 말했다.
“정기는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살아도 흡수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그들을 인식하고 받들면 그 농도가 높아진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인식을 하지 못해도 발산되는 정기의 농도는 정체모를 존재들이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창조나 파괴에 사용하기에는 강도가 부족하다.
이들의 개입을 줄이려면 정체모를 존재들에 대해서 인간들이 인식하지 못하게 해서 정기의 농도를 줄이는 방법이 가장 유효하다.”
극비 동영상을 끈 여왕은 공주들에게 확고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이 고대문명의 후계자 중 하나다.
너희들은 그 피를 강하게 이어서 현재 인류에 비해 강하지만 명심하라.
정체모를 존재들을 정면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형의 존재이기에 육체를 가지기 위해서는 강하면서도 대량의 정기가 필요하다.
현재 제국의 약한 정기으로는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육체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자아가 약한 어린 초능력자의 육체를 뺏어서 빙의하는 방식으로 개입하려 하고 있다.”
정체모를 존재들이 초능력자 아이에게 빙의되었다가 밝혀지고 벌어진 토벌 전투를 보여주면서 말한다.
“완전한 육체를 가지면 고위 초능력자도 당해낼 수 없는 권능이란 능력을 보이지만 초창기에 잡아내면 비교적 쉽게 몰아낼 수 있다.
더구나 어린애의 육체라면 강한 초능력자 정도이지.
그러니 그들의 육체로 바로 사용될 수 있는 어린 초능력자들은 특별히 관리하고 정보를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지금처럼 인간이 다스리는 제국의 지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여왕은 모든 영상과 화면을 닫고서 공주들에게 다짐하듯이 말한다.
“오랜 노력으로 그들은 이제 빙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솔트를 조작하여 그들을 경계하는 나를 병으로 쓰러트리려고 했으니 이제 직접 개입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없다는 증거다.
제국의 백성 누구도 존재조차 모르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절대로 그들은 과거처럼 대군으로 쳐들어 올 수 없다.
적대도 인식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
공주들은 믿기지 않았다.
제국을 만든 강대한 여왕의 발언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약한 항복선언이었던 것이다.
여왕조차 두려워할 정도의 정체모를 존재들의 강대함에 놀라 달을 급히 쳐다보았다.
거대한 나무의 화분이 된 달에 은하 단위의 인간과 문명을 멸망 시켰다는 정체모를 존재가 분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휴-! 여기 신족들이 사업을 참 무식하게 했네.
잡초라 판정했으면 뿌리만이 아니라 씨앗이 있는 땅까지 갈아엎어야지 멍청하게 줄기와 앞만 제거했어.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어설프게 후환을 남겨두니 평판이 이 꼴이지.”
알현실의 허공에 마치 그려지듯이 화려한 황금빛의 거대 문이 생기면서 열린다.
투덜거리는 소리는 그 안에서 이어졌다.
“하여간 이계의 신족들은 무능해.
모두 처분대상이야.”
그 문을 열고 나온 흑발의 미소년의 모습에 여왕과 공주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끼이이익-! 뚜벅-! 뚜벅-!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과 모습은 문제가 아니었다.
등 뒤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날개들이 문제였다.
특이하게도 정체모를 존재들이 나누어 가졌던 빛의 날개와 암흑의 날개를 동시에 가진 것으로 보였는데 너무나 많았다.
‘저 무형의 빛과 암흑의 날개들은 정체모를 존재들의 힘과 계급의 증거다.
그런데 빛의 날개가 열세 쌍에 암흑의 날개 열세 쌍, 그리고 혼합된 회색의 날개가 한 쌍이다.
극비영상에서는 아무리 많아도 여섯 쌍이었는데 자그마치 스물일곱쌍이라고?’
정체모를 존재들은 날개가 늘어날수록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정보를 가진 여왕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이럴 수가?
영상에 기록이 되지 않았지만 고대문명의 지배층이던 고위 초능력자들을 전멸시킨 총지휘관이 열세 쌍의 빛의 날개를 가진 주신(主神)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 이상의 고위의 존재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지?
그럴 수 있는 정기가 없을 것인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 중에 틀린 것이 있나?’
낮은 정기 속에서 주신 이상의 신족들은 신력을 회복하기 힘드니 꺼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이언이 시공간 구멍으로 다른 세계의 먼 미래에서 여기로 떨어진 사실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모를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알현실에 차원결계를 치고 모든 날개를 개방한 아이언은 아주 환한 미소를 띠우면서 여왕과 공주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말을 했다.
“후후후후-! 금방 다시 뵙는군요. 프롬 여왕폐하.
제국과 개인의 치부를 처리하는 빠른 대처를 아주 감명 깊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크롬과 에메랄드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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