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아이언이 여왕의 병실에 불을 지른 결과로 수도가 전쟁터로 바뀌어 버렸다.
이걸 어떻게 말려야 하나 고민을 하던 시즈지의 말이었다.
잠깐 생각을 한 아이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왕이 저와 적합자이기도 하니 원상태로 되돌릴 거예요.
그런데......”
여왕의 의자에는 창조력으로 완전히 치료를 끝낸 몸이 있었고 옆의 공주의 자리에는 기계재상의 비밀연구실에서 회수해온 진짜 여왕의 머리가 있었다.
생명유지 장치가 달려있던 수조에 담긴 머리를 몸과 접합만 하면 바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회수를 하고나서 복구를 망설이는 아이언이었다.
“왜 치료를 하지 않니?”
시즈지도 이제 초능력자다.
여왕의 머리가 잘려있지만 환한 생명의 기운은 충만했다.
그러면 이 정도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사실을 아는 시즈지의 물음에 아이언은 아주 미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상황과 세계가 거부하는군요.”
무슨 말인지 당연히 이해 못하는 시즈지였다.
허나 지금 아이언의 눈앞에는 또 다시 세계의 항상성이 발동되고 있었다.
파라라라라라라-!
이제까지 경험을 쌓았는지 공간과 시간의 어긋남이 아주 위험할 정도로 과격하게 꼬여있었다.
‘방해를 돌파하고 되살릴 수도 있지만 지금 여왕을 다시 원위치로 되돌리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종기는 최대한 빨리 터트리는 것이 답이었다.
‘이 정도로 사이가 나빠진 기계인간들과 초능력자는 한 판 붙어서 우열을 정확히 가려야 한다.
지금 내전도 자연스런 흐름인 것이다.’
그러나 여왕이 정상이 되어서 막는다면 나중에는 수도가 아니라 제국 전체가 전화에 휩싸일 수도 있었다.
꽈꽈꽈꽈꽝-!
덤으로 초능력자와 기계인간들이 격돌하면서 수도가 박살나는 소리가 참으로 시원하게 들린다.
공주들도 어쩔 수 없었는지 전력을 발휘해서 재상부에 돌입하고 있었다.
경비대도 비상출동을 했는지 땅에는 전차가 질주하고 하늘에는 전투기가 자욱했다.
본성의 고위 초능력자들과 기계귀족들의 전면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거 본의가 아니게 흑막이 되었군요.”
말은 곤란했지만 얼굴은 서서히 번져가는 희열을 감출 수가 없었다.
초능력자들이 발출하는 살기와 투기, 도시가 파괴되는 폭음과 굉음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는 본능의 불길을 태운다.
화르르르르르르-!
그것은 세계조차 불태우는 검은 불길, 절대계 최강의 파괴력이라고 인정받는 흑염의 투기와 살의였다.
아직 미숙한 초능력자 수준의 시즈지는 모르지만 정신체인 보조인격들이 벌벌 떨 정도의 강대한 파동이 행성 전부를 넘어서 우주까지 퍼져간다.
“으으윽-! 뭐........ 뭐야?”
“커어어어억-!”
대부분의 지성체나 기계인간들은 당연히 모르지만 영혼이 진화한 초능력자들은 이변을 알아챘다.
특히 고위의 초능력자들은 정신 전부를 강타하는 터무니없이 강력한 의지에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끔찍한 파동의 위치와 정체를 짐작한 크림 백작은 이를 갈면서 황궁을 바라보았다.
“크으으으윽-! 이 멍청한 슈가 백작-!
두 살에 각성한 천재라 하더니 결국 정체모를 존재였다.
갓난 아들을 방치하더니 역시 정체모를 존재들에게 육체가 넘어갔어.
그런데 초능력의 파동이 상상도 못할 정도의 강력하다.
하필 이런 난장판이 벌어질 때에 저런 거물이 나오다니?”
언제가 벌어질 줄 알았지만 기계귀족들과의 내전이 여왕님의 변고로 인해 터져버렸다.
그러나 정체모를 존재들이 육체를 완전히 가지게 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에 당장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이제 기계 수비병만이 아니라 전차와 전투기, 로봇까지 달려들어 오고 있던 것이다.
초능력자라면 무차별로 공격하는 기계전력들을 단숨에 박살 내버린 크림 백작은 다급하게 외쳤다.
“꺼져라-!
지금 너희들을 상대할 여유가 없다.”
허나 선공을 받아서 파괴되고 있는 재상부와 기계귀족들도 작심을 했는지 전투용 거대 로봇까지 보이고 있었다.
중재를 할 수 있는 여왕이 없는 이상 이제 내전을 막을 방법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고위 초능력자들의 기준에서는 지금 엄청난 병력을 가진 기계귀족이 문제가 아니었다.
황궁에서 품어지는 강력한 기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전면전이다.
그러나 그 전에 어떻게든 저걸 처리해야만 한다.’
정보에 의해하면 슈가 백작의 아들은 겨우 두 살이다.
그 정도 아기의 육체를 가진 정체모를 존재가 가질 수 있는 힘은 상급 초능력자정도였다.
성인으로 성장하면 고위 초능력자들이 합공을 해도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제압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해지만 아기의 육체로는 제한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발산한 투지는 자신조차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정체모를 존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위의 존재가 육체를 가지고 나타났다는 증거였다.
“공주님-! 정체모를 존재가 육체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여왕 다음의 강력한 초능력자인 공주들도 이미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전투를 멈추고 있었다.
정체모를 존재의 등장은 어마마마는 행방불명이고 기계귀족들과 전면전 중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였다.
“하필 이런 때에 저렇게 강력한 정체모를 존재가 본성에 나타나다니?”
“왜 저들은 자꾸 육체를 얻어 세상에 개입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반파된 재상부에서 기계재상 솔트는 갑자기 공주들이 살벌한 공격을 멈추고 황궁을 주시하자 의아했다.
불의의 기습과도 공격이라 감당할 수 없어서 위성궤도에 있는 우주전함들의 궤도폭격까지 생각했는데 전투가 멈춘 것이다.
그리고 분명 유리한 초능력자들이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한쪽만을 바라보자 위성을 조작하여 황궁을 확대했다.
황궁의 중심이며 최상부인 여왕의 알현실의 발코니에 흑금발을 가진 아이의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황궁의 알현실에 아이가 있을 수 있지?
공주들조차 무단 침입이 불가능한데?’
업무시간이 끝나면 여왕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출입시키지 않는 황궁의 철저한 보안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굴과 신분을 파악하기 위해 확대를 시작하자 아이가 오른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서 하늘을 향한다.
감시 위성의 카메라를 보는 듯이 똑바로 시선을 맞추고 가볍게 투덜거리면서 쏘았다.
“에이 들켰네.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흥을 냈나?
내 세계가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대로는 잘 안 되네.
계획을 다시 세워야하겠어.
그럼 잠시 빵야-!”
장난스럽게 치켜 올린 아이의 손가락에서 수도를 덮을만한 거대한 황금빛의 줄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구름을 증발시키고 우주공간으로 치솟은 빛줄기는 감시위성을 삼키고 끝없이 뻗어나간다.
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제국의 달에 처박혀서 태양과도 같은 빛을 내품었다.
파아아아아앗-!
그 날 제국 본성의 달은 정확하게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상도 못할 위력과시에 기계귀족들과 초능력자들이 전투를 멈춘 것은 당연했다.
여왕의 변고에 분노한 제국의 초능력자들과 기계제국의 내전은 그렇게 순식간에 끝났다.
달이 날아갔으니 본성조차 파괴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내전은 의미가 없었다.
결국 급히 마련한 협상장에 어색하게 마주 보게 된 초능력자들과 기계귀족들이었다.
“..........”
“..........”
초능력자들은 행성 위에서만 쓸모가 있다고 생각해서 은근히 무시하고 있던 솔트 기계재상은 이번 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본성의 정예 기계전력이 초능력자들에게 형편없이 밀렸으니 평가를 많이 오린 것이다.
‘역시 행성 위에서 초능력자들의 전력은 무시를 못해.
은하 전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필요해.’
나름대로 양보해서 한편으로 끌어들일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공주들과 크림 백작의 설명을 듣자 다시 어이가 없어졌다.
“정체모를 존재요?
그게 뭡니까?”
고위 초능력자들은 정적인 기계인간들에게 설명해주기는 싫었지만 정체모를 존재에게 멀쩡하던 달이 도넛이 되어버렸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정체를 잘 모르니 설명을 겉돌 수밖에 없었다.
공주들과 크롬백작의 설명을 한참을 경청하던 기계재상 솔트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능력으로는 흉내를 낼 수 없는 강대한 힘을 사용한다.
육체가 없어서 죽지도 않고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고요?
손짓으로 죽었던 아이를 되살리고 병과 장애를 말 한마디로 고친 기록도 있어요?
그건 아주 먼 이야기 속의 신화(神話)가 아닙니까?
지금 갑자기 신(神)이라고요?
은하를 손에 넣고 영원한 기계 몸까지 손에 넣으려는 제국의 귀족이 할 말입니까?
증명할 수 있습니까?”
기계귀족들의 금속얼굴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정과 비난이 쏟아지자 초능력자들의 표정이 확 굳었다.
‘기계인간들은 보이는 것만 믿고 증명되지 않는 현상을 무시한다.’
이래서 발표도 하지 않고 고위 초능력자들이 은밀하게 처리를 해왔는데 이번만은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보였다.
달의 가운데를 깔끔하게 도려낸 것 같은 저런 현상을 일으키려면 제국 전부의 화력과 과학력을 동원해도 불가능했다.
‘달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커다란 구멍이 났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
‘절단된 부위가 마치 거울처럼 매끄러운 면이라고 한다.’
‘이 정도 힘을 가진 정체모를 존재가 나타났던 적은 없었다.’
정체모를 존재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는 고위 초능력자로서는 내전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여왕의 가짜 목에 분노한 공주들조차 분노를 참고 아무 말 하지 않고 기계귀족들과 대책을 세우려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미 초능력자들은 결론은 내리고 있었다.
“이 강력한 정체모를 존재를 본성에 가두고 반드시 없애야 한다.”
“그래야 다른 제국의 영역이라도 산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성의 완전 봉쇄와 자폭도 감수한다.”
“본성에서 누구도 나가서는 안 된다.”
이 정체모를 존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본성의 모든 인간과 기계인간들이 함께 옥쇄하는 사태까지 감수한다는 말이었다.
정의감이 넘치고 인정이 있는 공주들까지 그렇게 나오니 냉혹하기로 유명한 기계재상 솔트조차 놀랄 정도로 단호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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