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기계문명은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지만 그만큼 대량생산과 인구증가에 특화되어 있다.
여기에 소수정예가 특성인 마도문명이 결합한다면 정신체에게도 굉장히 껄끄러운 고도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성의 존재를 정밀하게 조사한 아이의 분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군.
뇌가 초과연산을 통해 초능력을 발휘하면서 나타나는 발광현상이야.
으음! 저 방식은 뇌에 상당히 무리가 가는데 아무 대책 없이 사용하네.
여기 초능력자의 방식인가?
그리고........’
남편이란 작자를 정밀 조사한 초능력자 아이는 왜 자신이 지금 실수하면 바로 실험실로 끌려가는지 알았다.
화면 너머지만 가면 너머를 투시해서 본 남성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초능력을 발생하는 뇌의 일부만 생체다.
나머지는 모두 기계인 기계인간이다.’
기계를 육체대신 사용하는 기계인간에게 육체를 가진 피를 나눈 자식이나 가족은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귀하게 여겨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끼지.
점점 냉정해지고 무가치하게 다루기 마련이다.’
자신과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에게 가지는 지성체의 본능적인 경계와 혐오를 보면 나중에는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여성의 남편이란 기계인간은 초능력까지 사용하여 화면에서 재생하는 아이의 모습과 자료를 남김없이 확인하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군.
수고했소.
아주 건강한 인간아이요.
벌써 각성의 징조가 보이다니 분명 강한 초능력자가 될 것이니 잘 길러주시오.”
초능력자 아이는 이미 각성했지만 혹시 몰라서 힘의 일부를 숨겼다.
그것을 여성에게 전달받아서 이렇게 나름대로 철저하게 조사한 것이지만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남편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기뻐하는 여성이었다.
“예.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당신의 힘이 되게 최선을 다해 기르겠습니다.”
그 모습은 활짝 만개하는 황금장미처럼 더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간절히 무엇인가로 바라는 얼굴로 남편을 주시했다.
“언제 뵐 수 있지요.
벌써 이년이나 우린 만나지 못했어요.”
제국 최강의 초능력자인 남편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전선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은 제국의 여제께서 영지로 내리신 식민 혹성들의 개발을 감독한다는 명분으로 아이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은거하고 있었다.
건설기계만으로 환경조성을 막 끝내고 제국의 추가적인 지원을 기다리는 식민행성은 아무도 없기에 완벽하게 안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보안을 이유로 한 달에 한 번의 정기 비밀연락만 주고받은 지가 벌써 이년 째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직도 전투가 끝나지 않았소.
본성의 세력다툼도 안정화가 되지 않아서 위험하오.
그러니 가장 안전한 그 곳에서 아이를 길러주시오.
보급과 자금은 우주철도편으로 은밀하게 보낼 것이니 얼마든지 쓰시오.
제국의 기둥이 될 아이의 육성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오.
보안을 위해 이만 끊겠소. 이만.”
딱-!
언제나 같은 말을 하면서 통신을 끊는 남편의 모습에 무엇인가 할 말이 있던 여성은 실망의 탄성을 지른다.
“아-!”
아직 전쟁 중이라면 제국의 가장 깊숙한 변방인 이곳이 제일 안정한 장소가 맞기는 했다.
어리광을 피울 생각은 없지만 다정한 한마디라도 해주었으면 좋았는데 결국 또 이렇게 된 것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꾸며보아도 변함이 없었다.
‘지금 나는 정말 내가 보아도 이상할 정도로 아름다워졌어.
그래서 이렇게 치장까지 해서 유혹해 보았지만 남편은 눈치조차 채지 못해.
사랑이 식은 걸까?
아니면 혹시 다른 여자라도?’
털썩-!
거기까지 생각해서 온 몸에 힘이 빠져서 긴 소파의자에 기댄 어머니였다.
그러나 초능력자 아이는 검은 가면과 갑옷을 입은 남성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이를 꽉 물었다.
‘으득-! 영혼이 없다.
여기 문명은 아직 영혼을 기계장치에 담을 정도가 아니야.
그럼 저건 초능력을 사용하는 기계병기로군.’
초능력자 아이가 보기에는 남성의 정체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기계병기였다.
뇌 조각을 제외한 모든 몸이 완전한 기계였고 갑옷을 벗기면 투명한 인공근육과 혈관대신 전선이 있고 피 대신 기름과 윤활유가 흐르는 몸이었다.
‘뇌의 일부를 유지하기 위한 생명 유지 장치를 제외하고는 생체부위가 없었다.
더구나 영혼도 없이 기억만 입력되어있다.’
이런 기계인간이니 친아들을 의심스럽다고 바로 실험실로 넘겨버리는 것이다.
‘제게 이 여성의 남편이라고?
저런 조잡한 고철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제국에서는 기계인간이 되어도 인간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되어있었다.
‘기계 육체가 우주에서 제약이 적고 기본성능이 높으니 오히려 높은 취급을 받고 있지.’
그런데 가면을 쓰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니 들켜서는 안 되는 음모의 일부인 것으로 보였다.
‘아내와 같이 있으면 반드시 정체를 발각당할 것 같으니 여기에 유폐시켜 놓고 미래의 초능력자를 육성하는 역할을 떠맡긴 것으로 보인다.
이건 여성이 알아서는 안 되겠지.’
여성이 받을 심리적인 충격보다 아직 자신의 신뢰도가 너무 낮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두 살짜리의 의심스런 아들 중 누구의 말을 믿을 지는 자명했다.
더욱 신뢰를 얻기 전까지 참아야 했다.
‘역시 극히 위험한 상황이었어.
그러나 내가 빠르게 성장이 된다면 초월자로 각성하기 전까지는 이상이 없을 것이다.’
초능력자가 큰 전력이 되니 성인이 되어 각성하기 전까지는 내버려둘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성의 흐느낌이 들렸다.
“흐흐흐흐흐흑-!”
여성이 소파의자에 기대서 애처롭게 운다.
평범한 인간이니 가면 너머를 꿰뚫어 볼 능력이 없었다.
그러니 저 고철덩어리를 남편으로 철통같이 믿고 무정한 반응에 슬퍼하는 것이다.
‘으음.’
초능력자로서 육체를 우선 개발하고 약해진 탓인지 타인의 슬픔에 마음이 울린다.
‘일단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길러주고 있는 유모는 맞다.’
그래서 분신을 이용해서 울고 있는 여성을 다정하게 다독이려 했다.
‘일단 평상심을 찾게 돕자.’
그러나 그러다가 잘못해서 걸리면 실험동물로서 바로 연구소 행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이-! 한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였다던 내가 이 무슨 꼴사나운 꼴이냐?
빌어먹을 기계문명-! 썩어빠질 세계!
이러다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싹 다 망하게 해주마.
아니 단지 그 정도로는 분이 안 풀려.
두고두고 바닥을 기어 다니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준다.’
초능력자 아이는 갈수록 멀어지는 고위신으로 복귀 전망을 느끼고 자신을 제외한 전부에 분노하면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암울하고 힘든 나날을 보냈던 초능력자 아이에 비해서 고위신 아이는 여유가 철철 흘러넘쳤다.
시간까지 멈추어놓고 보조인격들의 토론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결국 원하는 대답을 받았다.
“반드시 본래 힘을 되찾으실 수 있게 적극 협조하겠어요.
그리고 저라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모시지요.”
원하는 대로 토론을 끝내서 지극히 환한 미소를 지은 견습 마족에 비해 견습 천족의 표정은 착잡하기 짝이 없었다.
‘화면 너머의 초능력자인 아이는 천족인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허나 고위신 아이는 강제로 절대복종까지 가능하니 선택지가 거의 없다.’
지금 신사적으로 나오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지 이 정도 고위신의 신격으로 강제적으로 복종시키려했다면 견습 천족은 꼭두각시 인형 신세였다.
하지만 최소한의 선은 그어야 했다.
“저도 협조하겠습니다.
그러나 부디 강제로 삽입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럼 모유와 애액을 주는데 거부감을 줄이도록 협조하겠습니다.”
그것이 천족으로 이상과 도덕을 위해 살아온 슈퍼에고의 기준에서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건방지게 조건을 달은 대답이었지만 고위신 아이는 기꺼이 응했다.
‘여성과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통한 정기투입만으로도 충분한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모유가 목적이지 성행위를 통한 쾌락은 지금은 관심 밖이다.’
무엇보다 성행위를 통한 직접적인 정기투입은 효과가 빨랐지만 미처 흡수하지 못해 버려지는 부분이 있고 단기간에 엄청난 신력과 정기를 소모시켰다.
“걱정할 것 없다.
어디까지나 내가 원하는 것은 신체를 육성할 수 있는 정기가 함유된 모유다.”
더구나 함정과 같은 문제도 있었다.
남신과 여신이 성행위를 통한 정기교류를 하면 남신 쪽이 신력소모가 크고 교류효과도 적었다.
더구나 만에 하나 여신이 수정하여 유아신이라도 만들어진다면 그 순간 대량의 신력이 아이에게 흡수된다.
그렇게 흡수당한 정기와 신력은 신계가 없다면 보충이 지극히 힘들었다.
‘물론 임신한 여신의 입장은 남신보다는 낫지.
서로의 장점을 합한 강한 신을 자신의 아이로 만들 수 있고 아이를 통해 개인권능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여신도 임신기간 동안은 신력을 흡수당해 약해진다.’
이런 문제가 있으니 창조주가 개입하여 명령하지 않는 이상 신족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지성체 여성을 임신시켜도 똑같은 문제가 생기니 행성표면에서 아무 제약이 없어 강력하고 유용한 반신(半神)을 신족이 잘 만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급속하게 보충해줄 신계도 없는 지금 그런 낭비와 무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한 고위신의 정기를 성행위를 통해서 대량으로 직접 흡수한 지성체 여성은 행성신이 되는 경우까지 있다.’
지성체가 행성신이 되면 반드시 신족에게 반역하기 마련이었다.
우주가 아닌 행성 표면 위라면 열배이상 강력한데도 신족에게 장기간 멸시나 무시를 당하고 참을 존재는 없었다.
‘불완전한 감정을 가진 지성체인데 수련도 아닌 고위신의 정기를 받아서 갑자기 신이 되었으니 어떤 신계도 받아들일 리가 없지.
상대였던 고위신이 떠나면 다른 신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가 지성체를 규합해서 반란을 일으킨다.
행성신이라면 행성을 제압하고 방위하는 정도는 쉬우니 말이야.’
그래서 상대방 지성체가 행성신이 되기 전에 정기교류를 멈추거나 처리하는 것이 신족의 불문율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잘 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범할 리가 없었다.
“성행위를 통한 정기교류에는 대량의 정기가 소모된다.
그리고 설마 이 지성체 여성이 진짜 여신이나 여마신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여주신들을 후궁으로 두고 있다는 내가 뭐가 아쉬워서 지성체 여성에게 그렇게 해준단 말인가?
유모로서 충분해.”
정보행성 코아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본래의 세계에 후궁으로 여덟 명이 넘는 여주신을 두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신계주신이니 손만 벌리면 언제든지 관계를 받아들일 여신이 넘쳐나는데 지성체 여성에게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너무나 확실하게 선을 그어버리니 보조인격들에게는 실로 할 말이 없는 답변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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