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자신의 주장을 펴기 시작한 차원창세신 코아의 음성이 용자왕들의 신령을 뒤흔든다.
본래대로라면 결코 듣지 않았을 말이지만 일 년 동안 용자왕들끼리 토론을 통한 혼란을 겪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악의 개념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시대는 정말 변했는가?
아니 악과 정의는 환경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상의 정의를 집행할 수 있는 더욱 확고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강자라는 개체가 아닌 빈곤이 세계의 멸망원인이라는 전혀 다른 악에 대한 개념을 주장하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말을 침묵하면서 경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다음의 주장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무상의 도움을 주지 마시오.
대가없는 도움을 바라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약자를 늘릴 뿐이오.
도움만을 바라는 존재들은 지킬 필요가 없소.
그런 자들이 늘어나면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까지 멸망시킬 것이오.
멸망해가는 이계에서 남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살 수 없다면 반드시 정리되어야하오.
아무 죄가 없이 구원을 바라는 선한 약자라고 할지라도 세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배제해야 하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계에는 지금 남을 도울 여력 따위는 없소.
자기 살기도 힘들단 말이오.”
여기까지 말한 차원창세신 코아의 주장에 당연히 용자왕들의 반응은 당연히 거부였다.
이제까지 자신들이 보호하던 약자들을 쓸모없으면 반드시 처분하겠다는 선고였던 것이다.
그것도 현세계 부흥과 구원을 명분을 삼아서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이었다.
명백하게 반대의 기세가 강했지만 이미 이 자리에서 수백 번을 반복해서 해온 주장이기에 계속 말을 이어간다.
“가능성이 있는 강자와 지성체들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부흥시켜 세계의 정기를 강화시키지 않으면 이계에 미래는 없소.
약즉멸(弱卽滅)-! 강즉생(强卽生)-!
지극히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약화되고 퇴보되는 세계를 살리기 위한다면 유일한 방법이오.”
여기저기 반대 의견이 나오려는 순간 차원창세신 코아의 주먹이 그대로 단상에 내려 쳤다.
꽝-! 구르르르르르응-!
단상에서 시작된 충격은 거대신전을 뒤흔들었다.
이것도 똑같은 과정이었다.
그러나 현자들의 제압이 완료된 지금 용자연합에 준 유예시간과 인내도 끝이었다.
“닥쳐-!
일은 안하고 제 멋대로 여기저기 분탕만 치고 다니는 이 양아치들아!
이제 이야기는 그만 하자.”
그대로 부서질 듯이 진동하는 단상을 잡고 양옆으로 잡아 찢는다.
우지지지지지지-!
차원창세신 코아는 서로 다른 목적, 신념을 가진 존재들끼리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단지 현자연합을 만들고 용자동맹의 의견을 분열시킬 시간을 버는 것으로 만족했기에 망설임 없이 대화의 상징을 찢어발긴 것이다.
“힘이 없는 정의가 무력이고 정의가 없는 힘이 폭력이란 주장은 낡아빠졌고 식상하다.
선과 악을 마음대로 따져서 상대를 심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야만이고 억지인 것이다.
그런 선은 승리해도 그 속에서 반드시 또 다른 악이 발생한다.
선과 악의 구분은 항상 무의미한 전쟁의 반복이었다.”
수많은 용자왕들이 올라와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던 단상이 두 조각나서 박살이 난다.
그리고 단상을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서 날려버렸다.
파가가가가각-! 꽈꽝-!
대화와 협상의 완전한 종료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정의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너희들이 불변이라고 믿는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意)’역시 신족의 압제 속에서 아무런 대가도 지불할 여력이 없던 지성체들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자신들을 보호하지 않고 억압하기만 하는 신족들을 공짜로 처분해주기 바란 것이다.”
“.........”
용자동맹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意)조차 비난하는 말에 용자왕들은 이미 대화가 끝났음을 알았다.
일 년 동안 계속 무의미하게 반복되어온 상황에서 벗어나 드디어 개전의 종이 울린 셈이었다.
기이이익-! 끼이익-!
용자왕들이 하나 둘 의자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대화가 안 통한다면 결국 전투밖에 남지 않았다.
결연한 눈빛을 보이는 용자왕들을 바라보면서 차원창세신 코아는 더 목소리를 높여서 외쳤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예로부터 힘을 가진 강자는 자신이 정한 가치를 위해 살면서 주위를 변화하고 발전시켰다.
이러한 강자들의 힘이 모여서 세상을 진화시켜왔다.
그러니 너희들도 힘으로 약자가 아닌 세계를 지키고 변화시키란 말이다.”
그 말에 대부분의 용자왕들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하면서 전부 일어선다.
기이이이이익-!
초월총수가 이미 일대 일로는 어쩔 수 없는 강자이지만 지금 여기에 모든 용자왕들이 모여 있었다.
더구나 통합신계의 외곽에는 용자들이 모두 집결을 완료한지 오래였다.
그럼 용자동맹의 합동오의가 가능했다.
‘마신황제조차 잡아낸 천라지망(天羅地網).’
일원(一圓)조차 이겨낼 수 없었던 마신황제를 묶고 궁지로 몰아넣었던 현세계 최강의 합동 봉인술이라면 승산이 있었다.
투기를 일으키면서 일어서 있는 용자왕들을 바라보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시선은 이제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했지만 역시 인내의 한계였던 것이다.
‘아무 대가를 주지 않아도 쓸 수 있는 믿을만한 부하를 얻기가 더럽게 어렵군.’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안 통하니 이런 고집불통들이 없었다.
일 년 동안 몽땅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참아낸 자신이 용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침 시간도 정확하게 되어갔다.
“신계 자아-! 발사 시켜.”
‘알겠습니다.’
거대신전 전부가 진동하는 굉음 속에서 쩌렁쩌렁한 차원창세신 코아의 음성이 울린다.
“너희들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지배층이 되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구구구구구-!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하는 용자동맹에게 날선 비판이 이어진다.
“뭔가를 하려할 때마다 옆에서 참견과 행패만 부리는 양아치들이 가장 방해가 된단 말이다.
내 사업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다.”
“...........”
전부 일어선 용자왕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투기를 올리면서 전투신체를 불러들일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자리에 앉아있는 사자왕 건을 쳐다보았다.
가장 결전을 원하던 최강의 왕자왕의 기세는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꽈꽈꽈광-! 좌르르르르를-!
거대신전 전체가 통합신계에서 날려지듯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외부의 벽과 기둥이 분리와 조립을 반복하면서 거대한 평지를 만들어갔다.
최종적으로 드러나려는 거대신전이 변한 모습은 광활한 강철의 평지였다.
구구구구구구구구궁-!
역사적인 개점식과 축제의 분위기에 취해했던 통합신계에 있던 모든 정신체들이 갑자기 솟아오른 강철의 대지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주신전에서 용자왕들과 대화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총수파들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악-! 역시 망했다!”
“제길-! 끝장났다!”
초월총수님의 직접 설득이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용자동맹은 설득 불가였다.
‘언제인가는 끝장을 봐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점식을 하고 있는 여기서 용자동맹과 초월총수가 전투를 벌인다면 모든 사업은 휴지조각이 될 수 있었다.
사회자인 아크람도 통합신계 허공 위로 솟아오르는 강철의 대지를 보고 입을 뻐금거리고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갔다.
‘아바바바바바-! 정말 하시네!’
총수파들은 당황이라도 할 수 있지 사회자인 자신은 불가능했다.
이 자리는 아크람 가문과 자신이 화려하게 세상에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었기에 절대로 망칠수가 없었다.
다급하게 총수파들에게 의지를 전파했다.
‘이 멍청이들아-! 당장 축제 불꽃들부터 쏘아-!
총수님의 발표시간이 되었다.
원래 있던 순서일 뿐이다.’
총수파들의 머리에 초월총수님이 용자왕(勇者王)과 성공왕(成功王)의 친선대결이란 절차가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허어어억? 뭐야?’
‘윽-! 순서가 맞기는 하네.’
행사표를 보니 분명 순서가 맞았다.
정해진 절차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총수파들이 다급하게 축제 불꽃들을 발사시킨다.
퍼어엉-! 펑-! 퍼어어엉-!
위성궤도로 날아오른 강철의 대지 위에 축제의 불꽃들이 찬란하게 빛난다.
이미 전투태세로 들어간 용자왕들과 차원창세신 코아는 미동도 없이 상대방을 주시할 뿐이었다.
아크람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대치 상황을 진땀을 흘리고 보면서도 최대한 매료의 권능을 발휘하여 외쳤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초월총수님이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선사하시는 현세계 역사상 다시없을 초 특별한 이벤트-!
용자왕과 성공왕의 친선대결입니다-!”
“와아아아아아-!”
갑작스런 거대 구조물이 하늘로 치솟자 불안감을 느끼던 정신체들이 화려한 불꽃놀이에 환호성을 질렀다.
사회자가 매끄럽게 진행을 추진하니 이것도 행사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에 약간의 의심을 가졌던 존재들도 편안하게 마음을 먹었다.
분명 초월총수가 용자왕과 함께 무엇인가를 소개한다던 순서가 온 것이다.
‘진짜 용자왕들이 왔다.’
‘그런데 성공왕은 뭐지?’
‘용자왕들의 싸움을 직접 보게 되었는데 알게 뭐냐?’
분위기가 일단 수습이 되고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사회자인 아크람은 긴장으로 요즘 들어서 생긴 위장병과 두통이 도지려는 기색을 달래고 기운을 내려했다.
‘아오-! 시바-! 진짜 이걸 하시네.
하지만 내가 어떻게든 이 개점식만은 성공시키고 만다.’
차원주신성을 구매한 일백 조는 딸에게 빌리고 총수파들이 긁어모았지만 절반도 안 되었다.
그래서 초월총수님에게 나머지를 빌렸기에 아주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초월총수님에게 빌린 빚을 못 갚으면 어떻게 될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성공해야 해.’
‘이게 망하면 빚을 갚을 방법이 아예 없다.’
말 그대로 목숨 이상이 달린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목소리를 높여서 소리를 쳤다.
“소개드립니다.
초월총수님과 깜짝 출연을 해주신 용자동맹의 용자왕들입니다.”
화면이 강철의 대지를 비추자 일만 명의 용자왕들이 보인다.
전혀 의외의 명사들의 출현에 정신체들은 환호를 멈추고 일제히 박수로 환영한다.
“용자동맹이다-!”
“진정한 정의의 용자들이 왔다-!”
좌좌좌좌좌좌좌좍-!
귀빈석에 있던 오리진들까지 열렬한 환영의 기세를 보이자 총수파와 아크람은 다급해졌다.
저 자리에는 초월총수님도 계신데 오로지 용자동맹의 용자왕들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제길-! 역시 용자동맹의 인지도가 훨씬 위다.’
‘이걸 어쩌지?
지금 전면전을 벌리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라.’
‘이런 분위기라면 대부분이 용자왕들의 편에 붙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야만 한다.’
용자동맹이 아무리 강력해도 지금의 초월총수인 차원창세신 코아를 이기지 못할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렇게 지지를 받는 용자동맹과의 전면전을 하려는 이번 사태만은 잘 속여야만 했다.
사회자인 아크람은 흘러가는 분위기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통합신계의 하위 정신체들은 내가 속일 수 있는데 귀빈석의 고위 정신체들이 문제다.’
현재 가장 중요한 귀빈은 차원주신성을 구매한 이계 십중심들과 최상층 오리진들이었다.
그런데 그 쪽의 분위기가 약간 이상했다.
정확한 행사순서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약간 이상함을 느꼈는지 조금씩 의지를 교환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특히 이계 십중심들은 급작스런 용자동맹과 초월총수의 출현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행사 순서표와 통합신계의 바닥을 번갈아 보고 확인하고 있었다.
‘강력한 매료의 권능으로 하위정신체들을 진정시킬 수는 있지만 당연히 십중심들이나 오리진들에게 안 통한다.
저들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대등한 존재가 필요해.’
다급하게 차원주신성 일호점에서 지금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코로나를 연락했다.
‘애야! 급하다!
어서 복귀를 해라.’
‘알았어요.
당장 가세하지요.’
초월총수님이 용자동맹의 설득실패로 지금 한판 붙으려는 상황을 파악한지 오래였다.
최상위 지배자급 초월자들을 능가한다는 용자왕 일만 명이 싸울 상대라고 하니 피가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허나 아크람은 다급하게 오해의 수정을 시켰다.
‘용자동맹과 싸울 전력은 초월총수님 혼자로도 충분해 보인다.’
지금 초월총수로서 차원창세신 코아가 보이는 존재감과 투기는 용자왕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았다.
힘으로 제압은 항상 하시는 말씀대로 너무나 쉬워보였다.
‘총수님의 평가는 정확해.
용자왕들은 힘이 문제가 아니고 끝없이 높은 평판이 문제다.
저 놈들을 다 없애도 분명 또 나타날 것이다.
이 인망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는다.’
용자동맹에게 과거 악연도 있었다.
아크람도 과거에 도저히 혼자서 벌어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족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투자처와 사업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용자동맹이 안 걸리는 곳이 없었어.’
불모지 행성이지만 개발하고 지성체들을 찾아 넣어서 좀 늘리려고 했다.
그랬더니 약자들의 권리 옹호이니 뭐니 하면서 용자동맹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었다.
결국 지성체들에게 거의 공짜로 넘겨주고 손을 털었던 아픈 추억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손해가 얼마였나?
총수님 말이 맞아.
저 놈들은 양아치들이야.
그런데 다른 지성체나 정신체들은 저 썩을 놈들이 뭐가 좋다고?’
차원주신성만 잘 운용이 되면 현세계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모든 정신체가 용자동맹만을 연호하는 모습을 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명문일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초월총수와 위치를 잃을 수는 없기에 전력으로 머리를 굴려서 지시를 한다.
‘너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러니 넌 전장이 아니고 총수님 옆의 후궁자리로 가야한다.’
‘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빨리 귀빈석으로 가서 귀빈들을 안심시켜.
이건 전면전이 아닌 친선행사, 아니 성공왕의 성능시험이라고 속여.
지금 용자동맹과 진심으로 싸운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의 모든 사업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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