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회색후보가 의지와 노력만으로 될 수 있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요구조건이 엄청났다.
‘힘만 강해도 안 되고 지식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독기서린 의지가 필수였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현자는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되었지만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운에 천신만고(千辛萬苦)의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넘겼는지 지금도 생각해보면 끔찍할 지경이었다.
그걸 겨우 이계를 이 꼴로 방치한 현자 따위가 욕심을 내다니 용납할 수 있었다.
투우우우웅-! 투우우웅-!
이번에는 반대편 벽에 이쪽 벽에 연속으로 두 번 부딪쳤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마도 현자의 목이었다.
눈동자가 핑핑 돌았다.
“헤에에에에에에!”
차원창세신 코아는 너무 강렬한 충격을 받아서 제정신이 아닌 목을 바로 신체에 붙여주었다.
우드드드드득-! 지지지직-!
마치 뼈가 어긋나고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지만 너무나 강력한 창조력에 급격하게 회복되는 소리였다.
마도의 현자는 목이 붙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털썩-!
이런 상황에서도 그래도 끈질기게 양손은 가방들을 쥐고서 놓지를 않는다.
참으로 대단한 욕심과 집착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서 더욱 마음에 든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이 정도 욕망과 고집이면 현자연합을 만드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겠군.
회색 후보에 대해서는 아직 입을 다무나?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의 몽환적인 기세를 보니 분명 이 놈이 원흉인 것 같은데?
그럼 이걸로는 부족하지.
역시 경쟁이 있어야 해.’
개인 아공간을 열고서 무엇인가를 찾았다.
우웅-!
아공간에 끄집어낸 것은 금발을 가진 머리통이었다.
그리고 꽉 다물어진 입에 손가락을 대고 가볍게 창조력을 발동시키자 비명과 같은 애원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입만 살아 죄송합니다.
시키신 대로 추진하겠으니 제발 원래대로 살려만 주십시오.”
“........”
처음 만나러 왔을 때는 신념을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대쪽 같은 현자의 초상과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조금 심했나?
아니 목만 자르고 나만 돕게 했잖아?
보조도 못 버텨?’
그때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의 처절한 울부짖음에 흐릿하게 의식이 돌아온 마도현자였다.
그리고 흐린 눈을 억지로 뜨자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아주 잘 아는 원수 같은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선도현자(善道賢者)?
저 기회주의자 새끼가 왜 저러고 있지?
흐흐흐-! 너도 당했냐?’
고통으로 의지가 뒤흔들렸지만 바로 통쾌하면서 음침한 웃음을 속으로 짓는다.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머리통만 잡혀있는 선도현자와는 지성체 시절부터 한 스승과 사문 밑에서 수련을 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초월자가 된 동문이기도 했다.
물론 성향은 정반대였으니 결과적으로 마도를 추구하게 된 자신과는 아주 사이가 나빴다.
아니 감정의 대립에서 시작한 악연이 얽히고 충돌한 지독한 악연이었다.
‘혼자 잘났다고 고고하게 살더군.
나보고 십중심들에게 편하게 붙어먹는다고 욕하던 썩을 자식!
부러우면 너도 대신(大神)님에게 임관할 것이지 왜 나에게 난리야?
그런데 정말 왜 목만 있지?’
뇌가 흔들려서 흐릿한 의식이지만 현자답게 빠르게 저렇게 된 사유를 파악해간다.
‘설마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토론을 걸었다가 패배를 해서 목이 잘리고 혀가 뽑혀서 마도구가 되었다는 현자가 저 자식이야?
겁 없이 덤비다가 머리가 잘려서 마도구가 된 것이 너였구나-!
크크크-! 줄다리기를 잘못했구나.
덤빌 상대에게 해야지.
그것 참 통쾌하도다.
쿠하하하하-!’
그 동안의 원한이 싹 씻겨나가는 느낌에 마음속으로 폭소를 터트렸다.
허나 일 년 동안 현자들 사이에 돌았던 참혹한 소문이 대부분 사실이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는 충격적인 현실에는 절망했다.
‘이상과 신념에 목숨을 거는 고위현자들이 모두 당하고도 침묵했다.’
그러니 어떻게 참혹하게 굴복을 당했는지 예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에게 현재진행형이었다.
무슨 꼴이 될지 초긴장상태였다.
불쑥-!
그런데 선도현자의 잘린 목을 그대로 자신의 얼굴 가까이에 들이민다.
“허어억-! 에비-! 저리가-!”
동문이고 뭐고 꼴도 보기 싫고 죽이려고 기회만 노리던 놈이었다.
그런데 잘린 얼굴이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갑자기 눈앞에 오자 놀라서 그대로 뺨을 손바닥으로 갈겨버린다.
짜아아악-!
갑자기 얻어맞은 선도현자는 작은 비명을 지르고 눈에 불을 켜고 비난을 퍼부었다.
“어억-! 이 죽일-!
사문의 부역자(附逆者)!”
지금은 우선순위가 밀려서 기억조차 아득한 과거의 일을 물고 늘어지는 지긋지긋한 악연이었다.
“아직도 그 소리냐?
날 내친 사문을 잘 살게 남겨둘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죽이지는 않고 건물만을 날렸는데 바로 망했다면 어차피 끝날 조직이었어.”
“닥쳐라-!
이 꼴만 아니었으면 가만두지 않았다!
헉-! 허어억-!”
차원창세신 코아는 서로 사연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대로 머리를 흔들어서 말을 막았다.
달랑-! 달랑-!
선도현자의 살아있는 머리가 눈앞에서 흔들리면서 오만상을 찌푸리자 소름이 오싹거리는 마도현자였다.
이건 절대로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할 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입만 살아있던 시건방진 이 자식을 너 잘 알지?
이놈은 회색 후보의 육성은 힘들지만 현자연합의 설립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지명했는데 대가가 없으면 하기 싫다고?
내가 시킨 대로 하기 싫으면 애하고 교대를 하겠느냐?
이 자식은 목을 자르고 내 일을 돕게 하니까 무조건 둘 다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하던데 말이다.”
그 말에 선도현자가 지옥에 천국의 구명줄이 내려온 것을 느끼고 악을 썼다.
“제가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저 자식은 마도구가 딱 입니다.”
그 말에 연속되는 너무 강한 충격에 정신이 확 나가서 혼란하던 마도현자의 의식이 그대로 다시 안착되었다.
‘이건 진심, 아니 현실이다.’
재빨리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서 외쳤다.
“현자연합의 맹주이신 차원창세신 코아님 만세-!
반드시 회색의 후보를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초월자가 되어서 한 번도 안 해본 아부였다.
고위현자 중 누가 했다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욕할 지경이었으나 상황과 상대가 너무 나빴다.
그런데 차원창세신 코아의 얼굴이 찡그려지자 속으로 아차 했다.
지금 말이 틀린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정신체에게 일만년은 지성체의 일년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즉 정신체에게 지금 말에 신생아에서 죽으란 욕이었다.
역시 참을 수 없는지 인상을 일그러트리고 마도현자의 배에 발길질을 해서 몸을 날려버리는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뻥-!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날아가는 마도현자를 보면서 차원창세신 코아는 소리를 쳤다.
“나보고 겨우 만세?
꼴 보기 싫으니 빨리 죽어라 이거냐?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몸이 아플 것이다.”
이번에는 몸까지 저 멀리 벽으로 날아가서 튕겨지는 마도현자를 보고 그동안 현자들의 성향과 위치파악에 잘 써먹었던 선도현자를 쳐다보았다.
선도현자의 눈에 핏발이 서서 마도현자를 노려보는 것이 아주 쓸 만했다.
그리고 더욱 마음에 드는 점은 입만은 흐뭇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굉장히 통쾌하면서도 불만에 가득 차 있어 보인다.
감시역이자 경쟁자로서 쓸 만하겠어.’
똑같이 때리고는 있다.
하지만 본인은 목만 남은 보조 연산기 취급인데 누구는 현자연합의 대표가 되라고 혼을 내고 있으니 천지차이이기는 했다.
그리고 원래 원한이 있으니 더욱 그러해 보였다.
그런 의지를 파악한 차원창세신 코아는 목에 물었다.
“너 저 자식이 싫지?
공장에서 벗어나서 네가 여기 일 할래?”
“예-! 저 배신자 자식보다 제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즉답이었다.
창조주의 인정을 받은 초월총수가 나타났다고 해서 통합신계까지 찾아가서 이상적인 지배자의 도리와 지배를 주장했다.
‘그런데 자근자근 논리와 힘으로 두들겨 맞고 마도구가 되어 버렸다.
후회막급이나 나만 이렇게 당할 수는 없지.
아니 어떻게든 수를 늘려야지 벗어날 가망성이 있다.’
공장일이 너무나 힘들지만 고위현자가 많아질수록 부담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끈질기게 현자들 특히 마도현자를 같은 상황으로 끌어들이려 했는데 이러면 오히려 도운 꼴이었다.
“능력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품성이 똑바로 되어야 합니다.”
누가 제일 현자 중에서 겁 없고 능력이 높으냐는 질문에 마도현자를 추천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판국이었다.
원하던 대로 얻어맞고는 있지만 출세하는 쪽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없는 위가 뒤틀리려 하고 있었다.
“저 놈은 현자로서 바른 길만을 추구하던 사문의 이단자이자 배신자입니다.
금서를 읽고 연구하다가 들켰으면 바보가 안 되고 몸도 성히 쫓겨났으면 고마워해야합니다.
그런데 원한까지 품었습니다.
초월자 아니 현자가 되자마자 사문을 뒤집어엎고 몽땅 태워버린 더러운 반역자 자식입니다.”
그래서 과거 일까지 전부 끄집어내서 일러바친다.
“그런 악질이 현자연합의 대표라니요?
마도구가 딱 입니다.”
“호오?”
“차원창세신 코아님을 만나서 저의 눈이 떠졌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현자연합과 반드시 회색의 후보를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흐음. 누가 하든 상관이 없기는 하지.”
그 말에 바닥에 배부터 떨어진 마도현자가 내장이 뒤집어지는 고통을 참고 일어났다.
털벅-! 발딱-!
너무 아프다고 그대로 발광하고 있다가는 머리통 마도구가 될 지경이었다.
“크으으-! 이 기회주의자 자식이-!”
차원창세신 코아는 자신이 보기에는 결과만 보지 과정 따위는 관심도 없는 유형이었다.
‘여기서 아차하면 끝장이다.’
일초에 일백년이라는 시간의 흐름도 그렇고 밖에서 일하고 있는 가짜는 자신이 보아도 분간이 힘들었다.
‘도대체 저 분신은 도대체 뭐야?
왜 저렇게 완벽해!
이러면 잘못하면 정말 마도구가 될 판국이다.
소마(笑魔)님의 구원도 바랄 수가 없어.’
밖에서 일하고 있는 가짜의 완성도가 너무 높았다.
직접 쳐다보고 분석하고 있던 자신조차 분간을 못 할 정도이니 누구도 구분을 못할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되면 구조도 바랄 수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생각을 한다.
‘이대로 자신이 사라진다고 해도 초월총수인 차원창세신 코아를 범인으로 지목할 이유가 없다.
소마(笑魔)님도 내가 서류일 하기 일하기 싫어서 도망간 것으로 여기고 현상금이나 거시겠지.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수고를 들여서 현자들을 괴롭히지?
이럴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잖아?’
현세계를 지배하는 초월총수가 일족의 오리진도 아니고 겨우 일개 현자들을 상대로 이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당했던 현자들이 모여서 외쳐봤자 통할 리가 없어서 모두 도망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제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던 감정서린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이 개자식아-! 내가 사문의 정당한 후계자였고 넌 다음 서열이었다는 소리를 왜 빼?
넌 원래 나보다 못 났어-!
그리고 금서라고?
어차피 문주가 되면 보고 익혀야할 책들이었다.
그래서 예습을 조금 하고 있었는데 그걸 장로와 동문들에게 고자질하고 소문낸 놈이 너 맞지?
대놓고 하는 배신보다 뒤에서 수작부리는 고자질이 더 나빠-!”
그 말에 선도현자는 목만 남았지만 크게 소리를 쳤다.
“내가 고자질 했다는 증거 있어?”
배신자나 기회주의자, 고자질이나 모두 지배자들이 무조건 싫어하는 유형이었으니 반박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의심은 하고 있겠지만 증거는 물론 없었다.
‘여기서 토론에 밀리면 정말 영구 머리통 마도구가 된다.’
머리만 남은 채 차원주신성이란 괴물 같은 행성의 창조를 돕는다고 항상 한계치를 넘나드는 연산을 하는 공장생활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선도현자가 증거를 내놓으란 말에 마도현자는 시퍼런 살기를 내품었다.
항상 여기서 막혔다.
‘사문을 통째로 불태워버렸으니 증거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억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내가 쫓겨난 다음에 네가 후계자가 된 것이 증거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
가장 크게 이득을 본 놈이 범인?
남편이 사고나 병으로 죽으면 유산 물려받는 가족들이 전부 범인이냐?
이게 현자가 할 이야기냐?
날 모함하려면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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