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정말 했다면 할 말이 없는 기행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일 년 동안 통합신계의 중핵에서 주문을 받은 차원주신성을 계속 제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자신들이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믿겨져?’
‘우리조차 눈치 채지 못하게 통합신계를 벗어나서 현세계에 흩어져있는 현자들을 괴롭히고 다닐 수 있을까?’
하지만 소마(笑魔)는 자신들의 시야를 벗어나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확실한 근거도 있었다.
‘마도 현자에게 너도 맞았냐고 물어보았는데 대답을 못해.
단지 제발 차원창세신 코아가 주우주로 돌아갈 때까지만 휴가를 달라고 매달리더군.
단순한 불안으로 그렇게까지 말할 성격이 아니야.’
‘허어?’
그 말에 다른 십중심들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신들에 속해있는 현자들도 갑자기 모두 휴가를 내고 잠적한 사실이 생각난 것이다.
‘정말 현자들이 초월총수를 두려워해서 못 견디고 도망을 갔다면 용서하지 못할 사태다.’
‘당장 복귀명령을 내려야겠군.’
십중심들이 이미 휴가를 보내준 자신들의 현자들을 소집할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소마는 이미 조치를 취해놓았다.
‘죽어도 통합신계에는 못 간다고 해서 영역에 두고는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군.
자꾸 이상한 핑계를 대고 도망을 가려고 해서 사무실에 연금시키고 마신들로 감시와 보호를 시켜 놓았다.
이제까지 밀린 서류일이나 시켜야지.’
다른 십중심들의 의문도 의혹에서만 멈추었다.
‘한시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사태에서 현자들이 겨우 그런 이유로 집단이탈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초월총수가 뭐 하러 현자들을 그렇게 가혹하게 다룰까?’
‘차원주신성을 만드느라 바쁠 것인데 그럴 이유가 없지.’
개점식 행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데도 정작 주인공인 초월총수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주신성의 마무리와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는 사전 설명이 있었으니 납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차원창세신 코아는 통합신계에 없었다.
소마가 다스리는 영역에 몰래 숨어들어서 사무실에 구금 및 보호되고 있었던 마도현자(魔道賢者)를 패고 있던 중이었다.
역시 왔다고 절망하면서 창백해진 마도의 현자의 얼굴에 무례하다고 한방 날리고 시작한다.
“현자의 정점인 회색현재에게 현자가 인사를 안 하나?”
“히이이이이익-! 왔다!”
“존댓말을 해라-!”
도망이나 반항을 하기도 전에 가벼운 주먹 한 방에 코피를 품으면서 쓰러지는 마도현자였다.
퍼어어어어억-! 투가가가가각-!
밖에 감시 겸 보호하고 있는 마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현세계 전부를 파멸시킬 수 있는 진리대리의 앞에서 저 정도 마신들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귀찮은 놈! 그러나 축하한다.
정신체가 된 현자 중에서 네가 마지막이다.”
그대로 목을 한손으로 움켜잡고서 들어올린다.
“커에에에엑-!”
마도현자가 오래간만에 겪는 목의 뼈와 근육이 으스러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지만 차원창세신 코아는 아주 상쾌한 얼굴이었다.
‘마도의 정점 소마(笑魔)와 고위 마신들에게는 현실부정(現實否定)의 마도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차원주신성 일호 점의 개점식에 전부 참석해서 자리를 비웠으니 아주 좋은 기회였다.
‘다른 십중심의 지역은 내 마도와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에게 배운 순수한 의지만을 분리하여 침투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도의 정점 소마(笑魔)와 고위 마신들이 다스리는 여기만은 흔적 없이는 무리였지.
하지만 지금은 개점식에 다들 참석하느라 빠졌으니 아주 좋은 기회로다.’
개점식의 행상에 맞추어서 소마와 대량의 고위마신들이 빠지고 마침 사무실에 혼자 있는 것으로 파악되자 바로 습격한 것이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마신들 정도야 허수아비보다 못했기에 그대로 들어와서 이렇게 교육을 한다.
일단 목의 뼈와 근육을 손아귀 힘으로 전부 으스러트리고 곧바로 회복시키면서 모든 고위현자들에게 확인을 한 질문을 던졌다.
“묻겠다.
이계 회색후보는 어디에 있느냐?”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강력한 창조력이 섞인 힘으로 두들겨 맞아 신체는 멀쩡하게 회복되었지만 의지는 너덜너덜해진 마도 현자는 비명과 함께 다급하게 외쳤다.
“커어어어어억-! 없습니다!
현세계에 회색의 절대자 후보가 있........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던 의사표현이 꼬일 정도였다.
가끔 너무 막 나가서 상사인 소마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이건 격이 다른 위력이었다.
“아아? 그러셔?
이계에 회색 후보가 없다고?
죽어라고 따로 놀던 자식들이 이럴 때만 아주 주장이 일치해요.”
목을 쥔 그대로 가볍게 주먹에 힘을 준다.
우드드드드득-!
현자의 정점인 회색의 절대자로서는 생각하지 못할 전혀 다른 가공할만한 투기와 살기가 넘쳐흐른다.
마도현자로서는 왜 자신이 이렇게 맞아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너 혹시 아냐?
내가 차원의 오리진이기도 한 사실을 말이다.
나의 전력의 일초는 너의 일백년이다.
“!!!”
황금빛의 차원권능이 세계에서 별개의 공간을 구성한다.
우우우웅-!
시간이 느려진 반투명한 공간 속으로 속절없이 끌려들어간 마도현자는 입이 딱 벌어졌다.
바로 밖에 또 다른 자신이 투덜거리면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짜까지 사전에 만들어놓았어?
초월총수가 나 따위를 뭐하러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패는 거야-!’
다른 마도현자가 업무까지 하게 만들어 놓은 차원창세신 코아는 마도의 현자의 머리를 다른 손으로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우드드드드드-!
머리뼈가 그대로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비명조차 지를 힘이 없었다.
뇌리 속에 그마나 친분이 있는 현자가 걱정스럽게 알려준 끔찍한 소문이 생각난 것이다.
초월총수가 현자들을 끔찍하게 박살내고 다닌다는 풍문이었다.
‘소문! 그 악 소문들-!
진실 이었구나’
애써 헛소문이라고 치부했지만 지금 자신에게 실제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아차하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럼 이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느긋하게 우리 대화를 좀 해볼까?
왜 이계에 회색후보가 없지?”
“그거야 당연히 세계가 워낙 혼란하고 난잡해서입니다.”
질문에는 당연히 즉답이었다.
안정과 번영 속에서만 학문과 지식이 축적되고 세계가 발전의 절정에 도달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을 때 회색의 절대자가 나온다는 사실은 현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말에 차원창세신 코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 알기는 잘 하네.
그런데 이계는 왜 이렇게 중구난방이야?
정기와 출세를 보상으로 줄 것이니 열심히 일해서 세계에 기여하라는 말이 안 통해.
먹고 사는 것보다 정의가 우선이다?
세계가 망하고 모두 굶어죽고 나서 무슨 정의?”
차원창세신 코아의 눈에서는 숨길 수 없는 분노의 빛이 일렁거렸다.
일 년 동안 현자들을 교육시키면서 용자동맹의 와해와 설득 작업도 병행했는데 몽땅 실패했다.
‘용자동맹이 내세우는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義)라는 절대 명분 앞에서 어떤 협박이나 보상도 무의미했다.’
결과는 무시하고 과정의 말만 들어보면 분명 저쪽이 올바르니 실로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어린애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이끈 거야?
이계가 이 꼴이 된 건 전부 너희들 현자 탓이다.
이 주둥아리만 살아있는 감정적인 지식인들아-!”
“케에-! 그건 교육을 담당하는 놈들이 자기들은 편하고 배부르니까 애들에게 이상적인 헛소리를 해댄 겁니다.
저희 현자들은 항상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주지시켜왔습니다.”
“시끄럽다-!
지배자 자식들이 자기 자식들의 경쟁자 제거를 위해서 그런 우민교육을 한 줄은 나도 알아.
하지만 현자가 뭐하는 직책이야?
세계를 위한 정확한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은 너희들이 앞장서서 박살을 냈어야지.
자기 보신도 정도껏 하란 말이다.”
“........”
마도 현자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지배층들의 지침에 정면으로 반박을 하면 무사하기 힘드니 모두 타협을 하기는 했다.
‘힘이 약한 현자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차원창세신 코아의 짜증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모두 정의의 용사노릇을 하면서 주변감시만 하고 다니면 누가 죽어라고 일만 하겠어?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뒤에서 감시만 하는 자칭 용자들에게 언제 뒤통수 맞을 줄 모르는데 말이다.
초월총수인 나조차 세상을 위해 주신성을 만드는 동안 돕겠다는 놈은 하나도 없고 감시와 비평만 하는 것들만 늘어나고 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세계야?
거지와 은혜도 모르는 짐승들만 있어.
이건 전부 너희 탓이다.”
“!”
차원의 권능으로 격리된 공간에서 마도현자에게 무수한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진다.
퍼퍼어어어어어억-! 두각-! 두각-!
그렇게 마도현자는 다른 고위현자들도 분명히 당한 것 같은데 일제히 입을 다물었는지 깨달았다.
상대가 이렇게 워낙 막무가내로 나가니 함부로 입을 놀리면 무슨 짓을 추가로 당할지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아오-! 내가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해야 해.
회색후보가 정말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
못 하면 쓸모없이 주둥아리만 살아있는 머리를 어디다 쓸까?
너도 저 하늘의 별 아니 공이 되어라.”
인정사정없이 바닥에 몸을 내동댕이치고 쓰러져있던 머리를 오른발로 차버렸다.
투가가각-! 휘이이이이-! 퍽-!
정말 소문처럼 발에 채여서 머리만 분리되어 날아가는 경험을 하는 마도현자였다.
“크악-!”
더 황당한 일은 이런 꼴을 당했는데도 몸과 머리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데구르르르르르-!
머리가 벽에 부딪쳐서 바닥으로 구르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는 몸이 보였다.
어떻게 목이 잘린 몸에 감각까지 연결하면서 살려두고 이렇게 고문을 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버둥-! 버둥-!
목이 없는 자신의 몸의 팔다리가 개구리처럼 펄떡거린다.
고위 현자가 되어 마도의 정점인 소마(笑魔)에게 임관하고 나서 이런 꼴을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자결해도 바로 되살릴 것 같았다.
‘목이 잘려도 안 죽어?
이 무슨 창조력인가?
그럼 이렇게 영원히 안 죽이고 계속 팬다고?
소마님도 냉정하고 잔혹하지만 이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는다!’
목을 날려버렸는데도 전혀 만족하지 않은 차원창세신 코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계에 기준을 세울 이계의 회색후보는 어디 있나?
이계는 왜 거지와 은혜를 모르는 짐승만 있나?
전부 회색이 없어 현자들이 입만 살은 탓이다.
그러니 없으면 만들어라-!
그때까지 이계 현자들 전원은 모두 내 공이다.
말이 안 통해서 짜증날 때마다 와서 차고 밟아주마.”
그리고 목이 사라진 몸의 허리를 그대로 발로 내려찍는다.
우드드드드득-!
“어어어어어-!”
분명 몸에서 목이 분리되어있는데 등뼈가 박살나는 느낌이 생생했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창조주의 대리인 창조신장인 이상 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일 초가 정말 일백 년이면 얼마나 이런 꼴을 당하고 있어야 할지 예측도 할 수 없었다.
“우가가가가가가-! 하.......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힘을 모아서 회색 후보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너무 빠른 완전한 항복 선언이었다.
회색후보를 선발하고 만드는 일이 현세계 현자들이 힘을 모아도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미친 짓을 당하고도 입을 다물고 숨는 다른 고위 현자들에게 이를 갈았다.
허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런 젠장-! 다들 네가 싸가지는 없지만 가장 강직한 현자라고 마지막에 남겨두었더니 겨우 몇 분도 못 버텨?
근성을 보여라.
평소대로 없는 것을 어떻게 있다고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을 어찌 할 수 있냐고 덤비란 말이다!
부조리와 억압에 대한 투쟁 속에서 진실의 불꽃은 더욱 타오른다고 네 놈이 주장했다면서?”
“........”
당연히 기개와 말이 통하는 상대나 직언을 좋아하시는 소마(笑魔)님에게 그렇게 했다.
‘허나 이 정도 미친 상대에게 그렇게 덤빌 리가 없지.’
덤비면 오히려 손맛이 더 있다고 좋아할 그런 부류에게 반항은 매를 버는 어리석음이었다.
‘아오 시바-! 죽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이제 복종심이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이는 마도 현자를 쳐다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혀를 찼다.
“쯧-! 자료 내놔.”
“예? 무슨 자료를........”
차원창세신 코아는 잘 걸렸다는 표정을 잠시 하고서 그대로 발을 휘둘러서 머리를 벽으로 차올린다.
그리고 허리에도 다시 발끝이 작렬한다.
퍼어어어어억-! 두-! 두둑-! 우두두둑-!
더럽게 재수가 없었는지 입을 정통으로 맞아서 이빨이 송두리째 날아간 마도의 현자였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으스러진 허리뼈를 느끼고서 새된 비명을 질렀다.
“커에에에엑-!”
“가지고 있는 책과 자료를 몽땅 바치란 말이다.
메모가 적힌 종이 한 장까지 전부-!”
현자들에게 가진 자료나 책, 업무성과는 목숨과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두들겨 패면서 내놓으라고 하자 마도 현자는 확실히 깨달았다.
‘절대계 현자들의 정점인 회색의 절대자가 미친 회색이라고 불린다고 했지.
왜 그런가 했더니 이래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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