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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액에 저항하지 못하고 녹기 시작한 전투함대의 포신들이 일제히 최종방어태세를 갖춘 장미 우주수 밀림을 향한다.
이제 기가 막힌 것은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水月)이었다.
‘자신이 불리한데도 물러서지 않는다.
여왕이 될 정도면 어느 정도 통찰력이 있을 것인데 저 함대로는 정말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나?’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말로 실수했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하면 끝이었다.
함부로 자신과 일족 모두를 모독한 자신의 말을 사과하면 끝나는 일인데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싸우려고 한다.
‘초월총수가 그인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같은 편이 아니다.
무리해서 편을 들어줄 이유가 없어.’
아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에 가깝다.
무단으로 들어와서 마음대로 보물고에 들어가면서 막으려던 자신조차 희롱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보물고 안에 들어간 것을 숨길 이유도 없고 안내나 동맹까지도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여왕들에 대해 평가한 자료에서 상대에 대한 내용과 평가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실연의 상처(失戀의 傷處) 에메랄드는 함대의 여왕(艦隊의 女王)에 임명.
대규모 전쟁만 특화.’
아주 상세한 권능의 장단점 분석 말미에 내려진 짧은 평가였지만 지금 겪어보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대규모 전쟁만 특화라는 말이 칭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판단력이라니?
전쟁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잖아?’
같은 여왕으로서 지극히 한심해서 우주공간에 동등한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함대 앞에 보이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쏘아붙였다.
“정말 여기서 나와 싸우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사과 한마디만 하면 끝인데도 안 해?
역시 그가 전투 외에는 쓸모없다는 평가가 맞구나.
가장 철이 없고 손이 많이 가는 철부지 망나니 여왕이라는 여론도 정확했구나.
이러니 세력에서 뛰쳐나가도 삭월(朔月)의 시즈지님께서 찾지도 않으셨지.
그런 성깔로 있어보았자 방해만 되었겠구나.”
“뭐야-!”
이번에는 실연의 상처(失戀의 傷處) 에메랄드가 분노했다.
전투함대를 만들고 강화하여 지휘하는 대규모 전쟁에는 누구보다 뛰어날 자신이 있다.
대신 다른 쪽에서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아픈 부위였던 것이다.
‘자신을 강제로 능욕한 그를 찾아 복수하겠다고 뛰쳐나갔는데 다른 여왕들이 아무도 돕지도 막지도 않았다.’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 마신황제와 공멸할리는 없지만 엄청난 타격을 받았는지 여왕들에게 걸려있던 대부분의 제약이 풀렸기에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함대를 가진 자신이 직접 추적하겠다고 뛰쳐나갔는데 말리지 않았다.
‘모친이었던 존재와 친자매까지 아무 말 없이 보내줄 뿐이었다.
처음에는 암묵적인 동의나 배려라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방치였어.’
이미 여왕들은 혁명으로 피폐해진 현세계에서 완전 격리된 영역을 만들기로 결정하여 은거를 결정한 시점이었다.
그러면 대규모 전쟁이 있을 수 없으니 자신의 전투함대가 아무런 필요가 없어서 버려진 셈이었다.
‘세력이 안정되어도 나를 찾지 않았어.
나중에는 돌아갈 명분이 없어서 혼자서 세계를 떠돌아야했지.
이게 모두 그 때문이야.’
쓸모가 없으니 추방되었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상대가 약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왔다.
“왜 핵심이 찔린 것인가?
전투에만 쓸모 있는 여왕을 혁명이 끝난 후에 어디다 써?
당연히 쓸모가 없지.
그래도 자신의 자리는 자기가 노력해서 만들어야지 남이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 이후에도 현실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현세계를 떠돌아다녔어?
그를 명분으로 기껏 돌아와서 이런 행패를 부리다니 정말 아직 어리네.”
일단 불법침입을 한 자신이 잘못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멈춘다면 그래도 대화를 할 생각이 있었는데 한번 터진 독설은 멈출 줄을 모른다.
“정말 용케 여왕이 되었어.
하긴 전투용 함대밖에 다룰 수 없는 반쪽자리 여왕은 과거라면 가능하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인정할 수가 없다.
삭월(朔月)의 시즈지님에게 여왕직위를 완전히 반납하고 정식으로 떠돌이나 되는 것이 어때?
아니 영역도 없으니 실제적으로는 떠돌이 강도에 불법 침입자인가?
숨어살다가 들키면 어디 가서 여기 여왕출신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바로 그 점이 실연의 상처(失戀의 傷處) 에메랄드가 태양을 근원으로 하는 은밀 함대를 만든 실질적인 이유였다.
어떤 세력도 정체모를 대함대가 영역 내에서 움직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력을 희생해서라도 은밀성을 갖추어야만 한다.
‘누가 그의 여왕이 아니라고 할까봐서 약점만 찔러오고 있네.’
점점 짜증을 넘어서 분노가 솟구치고 다음 말에 도저히 물러설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상복 같은 전투복과 망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낡아서 보기 싫으니 벗지 그래?
네가 슬퍼한다고 죽은 자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오산이 아닐까?
아니 누군가 자신을 불쌍하게 보여주기를 바라고 그러고 있다면 참으로 딱하네.
“......... 죽고 싶은 모양이지?
겨우 그에 의해 만들어진 나무 정령 주제에 말이야?”
작심을 한 듯이 아픈 과거까지 들추는 가시가 잔뜩 솟은 도발이었다.
결국 실연의 상처(失戀의 傷處) 에메랄드의 눈에도 살기가 솟을 정도로 독설이 튀어나왔다.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水月)과 서로 얼굴을 노려보다가 거의 동시에 명령했다.
“쏴 버려! 저건 여왕도 아니다.”
“전 함대 쏴라!”
장미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과 함대의 여왕의 명령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시행되었다.
수없는 빛줄기가 교차하면서 서로를 향해 파괴의 권능을 품어낸다.
최종방어태세로 들어가 완벽한 요새가 된 장미 우주수 밀림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대함대의 포격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과과과과과과과-! 구구구구구구구-!
그리고 그 사실은 비상대기 중이던 경계 병력에 의해 바로 기계 주신성의 여왕들에게 보고가 되었다.
“.........”
“.........”
“.........”
모여 있던 세명의 여왕은 할 말을 잃었다.
휘장으로 가려진 영광의 자리에 삭월(朔月)의 시즈지가 결국 탄식을 할 정도로 엉망이 된 상황이었다.
“하아아. 이제야 여왕들이 전부 모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리고 왜 함대의 여왕은 위치도 숨기고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우리를 공격하지?”
처음에는 그렇게 돌아오라고 해도 거부하고 나중에는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숨어있던 실연의 상처(失戀의 傷處) 에메랄드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돌아오더니 장미 우주수 밀림을 급습하고 바로 장미 우주수 여왕과 전투 중이라니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삭월(朔月)의 시즈지의 긴 한숨과 한탄에 같이 있던 여왕들도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오래만의 복귀에 뜻밖의 행패였다.
현세계 창조주의 최후의 패였던 마신황제가 소멸되고 혁명은 마무리 되었다.
실망한 창조주가 잠들어 버리자 현세계의 정기는 급격히 감소했다.
‘격리된 독자영역을 만든다고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었지요.’
한시라도 세력을 유지할 영역의 창조가 급선무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자신은 자유이니 그에게 복수하겠다고 멋대로 뛰쳐나간 저 함대의 여왕이 바로 자신들의 가족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을 멋대로 살다가 돌아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저곳이 어떤 장소인지 모를 리가 없을 것인데요?’
긴급 송출된 두 여왕의 전투 화면을 보는 기계의 여왕 천년의 지배(千年의 支配) 프롬은 특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화면에 보이는 상복으로 보이는 전투복과 망사를 보니 아직도 미망인 흉내였다.
‘제 멋대로 결혼조차 하지 않고 짝사랑만 하던 남자가 죽었다고 미망인이라고?
그리고 저 상복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
도대체 지금 몇 년째 애도 중이야?’
저 철부지가 과거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가 있을 때는 감히 상복은 입지도 못하더니 뛰쳐나가서 계속 저러고 산 모양이구나.’
기계에 입력된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가졌지만 어떻게 해야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삭월(朔月)의 시즈지가 혼잣말을 하는 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정말 그 아이가 없으면 우리는 안 되는가?”
“말도 안 됩니다-! 삭월(朔月)의 시즈지님.
그가 벌였던 과거의 일들을 모두 잊으셨습니까?
다시 그런 위험천만한 길을 걸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사라지고 앞에서는 최고의 영웅지만 뒤에서는 최악의 간웅으로서 몰래 벌였던 공작과 음모를 전부 일러 바쳤다.
‘확실한 증거와 증인까지 동원한 덕분에 겨우 반대파로 끌어들였는데 이러면 안 돼!’
능욕당한 복수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 다시 신계주신으로 돌아오면 기계의 여왕인 자신의 입장은 나락이었다.
그가 복귀하는 순간 여왕이 아닌 조수 아니 팔 다리 취급이 될 수밖에 없으니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의 숨겨진 권능은 기계만을 지배하는 나의 완벽한 상위호환이라서 거역할 수가 없어.
돌아오면 또 다시 노예 같은 생활을 해야 해.’
그러나 역시 과거나 지금이나 너무 고집이 세고 상식도 없어서 원수 같은 딸이 문제였다.
겨우 만들어 놓은 유리한 명분과 입장을 정기가 약해진 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미 우주수 밀림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아서 완전히 망가트리고 있었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모른척할 수 없으니 정말 골치였다.
“하지만 여왕들은 모이기만 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이래서 무슨 수로 현세계를 제패하지?
자중자란으로 무너지지 않으면 다행이야.”
“.........”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하고 있던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이 말한다.
“제가 가서 말려 볼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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