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열쇠는 왜 필요한지 모르지만 결국 흑염권능이 예고한 대로의 해답이었다.
‘보물고의 개방과 열쇠의 획득.’
삭월(朔月)의 시즈지를 후궁으로 얻기 위해서는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납치 같은 힘을 통한 방식으로는 절대로 안 되었다.
‘원래 강제로 끌고 간다는 선택지조차 사라졌다.
정기만 부족하지 이미 완공된 기계 차원이동 항성계 요새(機械 次元移動 恒星系 要塞) 골드 로즈와 삭월(朔月)의 시즈지가 결합하면 제압할 수 없다.
내 힘이 부족해.’
‘올지도 모른 미래’와 ‘언제나 동전의 앞면’이 경고하고 보여준다.
십삼 써클인 삭월(朔月)의 시즈지가 손해를 감수하고 기계 주신성 신계의 지원을 받고 거기에 항성계 신계요새의 기능까지 전부 동원하여 십사 써클이 되는 광경이었다.
더구나 구름처럼 밀려드는 지배자급 초월자들과 악전고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전력의 전멸세계(全滅世界)의 연발이라면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어쩌지?
납치가 불가능하다.
십삼 써클인 삭월(朔月)의 시즈지는 본인의 신계 안이라면 지금도 나와 대등하다.'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십사 서클을 써서 제압할 대상은 아니기에 일단 포기하고 일어섰다.
쿠우우-!
상대가 요구를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확고하게 있는데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낭비였다.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에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다.
‘다시는 그 지독한 보물고를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십삼 써클의 강자를 후궁으로 얻을 수 있다면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다른 쪽은 알아서 하라 하고 잠시 여기 집중해야 하겠군.’
터덜터덜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물고로 돌아가는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머릿속에서는 후회만 일어났다.
‘아아-! 힘만 쓰고 얻은 것이 없어.
그냥 아까 수액바다 속에 뛰어 들어갈 걸.
그 놈의 체면이 뭔지........’
그렇게 물러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아주 의미심장한 미소를 하는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이었다.
바로 주변의 지배자급 초월자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단 둘이 남았을 때 하얀 휘장 너머의 삭월(朔月)의 시즈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마도 작정 상의 후퇴이겠지요.
절대 포기는 없다.
불리하면 물러서고 유리할 때 전진하라고 항상 말했어요.
그래서 과거에도 적들과 정말 지독하게 싸웠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다시 오겠지요.”
“..........”
대답은 없지만 말은 계속 이어진다.
“그가 확실해요.
그런데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시다니요?
저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던 열쇠들을 찾아서 오라고요?
거기에 저 우주수 보물고를 열어 달라고요?
원래 저 보물고는 완전히 가득차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쳐요.
그래서 결코 열리지 않게 설계되어 있지 않나요?
설마 잊으신 것은 아니지요?”
“.........”
보물고의 공간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계 차원이동 항성계 요새(機械 次元移動 恒星系 要塞) 골드 로즈가 영구적으로 가동할 정도의 수액과 열매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게 되어있었다.
그 외에는 열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가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참지 못하고 현세계로 나설 것을 우려해서 만들어낸 보물고이지.
장미 우주수 밀림이 생성하는 막대한 정기 양과 아직 준비가 안 된 사실을 아는 우리도 납득했다.
설마 오백억년이란 시간이 걸려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끝없이 확장될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야.’
가득 채워 넘치게 하는 방법 외에는 결코 열 수 없는 보물고였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삭월(朔月)의 시즈지가 보물고의 개방을 원했다면 협조할 생각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이제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우주수 수액바다에 잠긴 열쇠들을 찾아 달라니요?
우주수의 생명력이 압축된 그 바다에 장기간 접촉하면 어떤 강력한 신체라도 반드시 녹아요.
이러면 일원 때처럼 적으로 돌리실 각오까지 생각하고 완전히 물리치신 것이겠지요?
그가 지금 신계주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실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말에 휘장 안에서 지극히 곤란한 말투이지만 삭월(朔月)의 시즈지의 음성이 답했다.
“......... 그렇지.”
그가 정확한지 아닌지 확신은 없지만 맞는 것 같았다.
허나 각 여왕들의 완벽한 분업으로 완성된 지금의 세력에 그는 필요가 없었다.
‘각 세력의 근본부터가 다르다.
각자 자신들의 여왕만을 따른다.
그러니 신계주신이 나서서 통합하려 하면 안 돼.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겠지.’
나누어 있으면서 서로 대등한 관계로 협조하는 쪽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초월총수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
지극히 위험하다는 보고를 많이 받았고 직접 보니 분명 강력하지만 십이 써클이었다.
어떤 권능을 가졌다고 해도 써클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힘들었다.
‘내가 신계 안에서는 십사 써클까지 올릴 수 있으니 끝까지 달려들면 정말 끝장을 볼 수도 있다.’
초월총수이니 죽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다시는 후궁으로 원한다는 소리를 못 하게 뜨거운 맛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명분만 찾고 있었는데 정말 아슬아슬한 수준에서 대화하다가 재빠르게 물러났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다가 상대방이 강하여 자신이 불리하다 판단하자 바로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간다니?
저 정도의 강자에게 가능한 일인가?
이걸 보면 그 아이가 정말 맞는 것 같기는 한데........’
갑자기 그 아이가 벌였던 과거의 전투가 생각이 났다.
일단 적으로 돌리면 인정사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아군조차 공포에 떨 정도로 움직였다.
혼자서도 더없이 강한 존재였는데 저렇게 끈질기고 한없이 치사하기까지 했다.
‘지금 일단 물러났지만 일원(一圓)처럼 쉽게 포기할 아이가 절대로 아니야.
오히려 더욱 의지를 불태우면서 달려들겠지.
분명 이번 일의 패인을 분석하고 보완하여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확고한 명분을 위해서 열쇠와 보물고를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지.’
그 아이도 외부에는 은하 최고의 각성자이며 영웅으로 보였지만 모든 방해세력들을 철저하게 몰락시킨 잔혹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더없이 신사적인 모습에 함부로 덤비다가 아무도 모르게 본성을 드러낸 그 아이에게 자비를 구걸하다가 삭제당한 존재들은 무수했다.
‘적으로 돌리면 정말 두려운 존재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으니 예외로 해도 대처방법이 거의 없어.
지금 초월총수라는 신분이 더 큰 문제야.’
단지 모두의 의견을 종합한 발언권만 있는 대표가 아니라 독자적인 군사력까지 구축하고 있는 총수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 어쩌지?
창조주님이 인정했다는 초월 총수를 홀대했다고 악 소문이 나면 곤란한데.’
아무리 은거해서 영역관리에 전력한다고 해도 이 거대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와 긴밀한 협조와 거래는 필수다.
‘혁명의 상징이었던 일원(一圓)을 추방하고 흔적을 지우고 있다.’
더구나 점점 무소불위의 권위를 확보해 가는 초월 총수와 마찰이라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앞으로 그 아이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안 되니 더 힘들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전혀 모르겠어.
과거에 적이었던 천년의 지배(千年의 支配) 프롬이 그 아이 때문에 기계 육체에 있을 수 없는 두통과 위통에 시달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무슨 짓을 할지 전혀 모르니 같은 편일 때도 감당이 안 되었다.
적대하는 입장이 되니 이렇게 골치 아픈 상대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본성 전체가 흔들리는 굉음이 울렸다.
과르르르릉-! 꽈꽈꽈-!
거의 정리가 끝난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일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전에 다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삭월(朔月)의 시즈지님-! 초월총수가 황금열차들을 전부 파괴했습니다!”
“뭣이?”
최후의 방어선인 인공지능 기뢰들은 기계 주신성 총괄자아의 통제가 완벽하게 통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자율의지를 가진다.
그러니 황금열차를 타고 정해진 궤도로 이동하는 것만이 인공지능 기뢰들에게 절대적으로 안전한 왕복방법이었다.
‘전부 파괴당했다는 사실은 기계 주신성에서 나가는 방법이 봉쇄되었다는 뜻이었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인공지능 기뢰들이 본성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보물고의 열쇠와 개방을 하고 다시 오겠다던 초월총수가 본성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하게 교통수단을 부셔버린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삭월(朔月)의 시즈지를 보면서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은 살짝 미소와 함께 한숨을 쉬었다.
“하아. 드디어 후방의 파괴를 시작했군요.”
상대의 거부로 일이 어긋나는데 가만있을 그가 아니었다.
‘자신이 곤란한 만큼 반드시 상대도 곤란해져야 공평하다.
그래야 다시 거래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
역시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급박한 보고가 뒤를 따랐다.
“본성에 들어오던 황금열차와 타고 계시던 천년의 지배(千年의 支配) 프롬님과 친위대까지 기습당했습니다!”
“입성 중이던 황금열차 완파-!”
“다행히 중상자는 없습니다.”
“!!!”
그 말에는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도 벌떡 일어났다.
당한 상대도 문제이지만 순서가 틀렸다.
자신과 만나기 전에 싸워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설마 벌써 충돌했나?
이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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