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녹색의 머리카락으로 알몸을 가리고 어느 정도 여왕으로서 품위와 위엄을 되찾은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이 뒤에서 대답을 했다.
그런 수치를 강제로 당했으니 뒤에서 확 밀어서 수액 바다에 처넣어 끝장을 낼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스스로 수액 바다에 손을 집어넣고도 멀쩡한 것을 보고 바로 포기를 했다.
‘저 수액바다에 손을 넣고도 상처 하나 없다니?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한 신체네.’
가장 친화력이 높은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인 자신조차 머리카락을 제외하면 무사하기 힘든 장소였다.
그런데 저 정도밖에 타격을 안 받으면 바다에 넣어보았자 죽을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왜 안 빼주고 이렇게 만들었나?
가끔 수확만 해주었으면 이렇게 접근불가의 지경까지는 안되었을 것인데?”
“삭월(朔月)의 시즈지님도 들어올 수 있지만 빼낼 수는 없다고 합니다.
내부에서 정기구슬의 방출은 보물고를 주관하는 단 한명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 제작자이겠군.
그 놈은 어디 있는데?
어떻게 여기를 이렇게 방치해서 이런 꼴로 만들어?”
여기까지 오면서 악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생긴 지극히 험악한 목소리에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으도 동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과거에 마신황제(魔神皇帝)와 싸우다 같이 소멸 혹은 행방불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마신황제는 이계 일원과 초월자들이 힘을 합쳐 쓰러트린 것이 아닌가?”“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일원은 마신황제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지만 이길 수 있는 공격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초월자들이 집중공격을 하는 와중에 결정타를 그분이 넣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신황제의 최후의 반격과 소멸 여파에 휘말려 같이 사라지셨다 합니다.”
일원이 초월자들과 힘을 합쳐서 마신황제를 쓰러트렸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다.
사실과 많이 다른 진실이었지만 일단 무시하고 질문을 이어갔다.
여기서 뭘 해야 할지 흑염권능이 발동이 안 되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보물고는 왜 무사해?”
보물고를 함부로 건들면 지역우주 이상을 날려버리는 방법장치를 설치한 존재가 자신이 죽거나 소멸하는데 멀쩡하게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소멸되거나 죽는 순간 같이 날아가게 해 놓아야 했다.
“그래서 그 분이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으면서 삭월(朔月)의 시즈지님과 다른 여왕들이 찾고 있습니다.
환생체라도 존재한다고 믿으시더군요.”
“어떤 놈이야?
나는 초월자들의 총수이기도 하니 내 정보망으로 찾겠다.”“예? 초월자들의 총수시라고요?”
이계 거의 전역을 실효지배하고 초월자들을 총동원하면 아무리 세계가 넓어도 환생체를 하나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군사력을 통제하지 못하지만 존재 하나를 최우선적으로 찾게 하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침입자가 초월자들의 총수라는 말에 깜짝 놀란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이지만 사진 한 장을 권능으로 아공간에서 꺼내었다.
장미 우주수의 정기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 우주수 드라이어 여왕만은 권능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저 고농도의 수액바다에 잠기면 아주 위험했기에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로 뒤에서 손만 내밀어서 건넨다.
“저희들도 현세계 전부를 뒤지면서 노력해왔는데 결국 못 찾았으니 힘드실 것입니다.
얼굴사진은 여기 있습니다.”
“..........”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이 넘겨준 사진을 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주 익숙한 얼굴이로군.’
빛나는 흑금발을 가진 아름답기 짝이 없는 절세의 미장부였다.
한참을 보다가 나직하게 신음하듯이 말한다.
“....... 내 미래 자식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절대계 십중심 중 서열 십위 회색의 절대자 사이안 이대, 즉 자신이 청년으로 성장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차이점은 있었다.
애용하는 긴 담뱃대 대신 흰 막대 같은 것을 입에 물고 검은 로브도 안 쓴 말쑥한 정장차림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아주 똑같고 세상 전부가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진만이고 고위 존재라면 비슷한 얼굴은 많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같다.
무엇보다 마도신 특유의 현실부정의 존재감!
주우수에서도 희귀한 마도신이 이계에 있을 리가 없다.
이건 다른 존재일리가 없어.’
신력을 기반으로 마력을 도구처럼 다루는 마도신은 극히 희귀하다.
입문도 어렵지만 다른 빛의 신들이 경멸하는 마력까지 필요할 정도로 구석에 몰리면 대부분 소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마도신을 선택해도 위기를 넘기고 다른 신으로 전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위로 가며 갈수록 자멸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지.
그런데 저 정도 수준의 현실부정의 권능을 기반으로 하면서 안정적으로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권능까지 가졌다니?
차원권능을 가진 나 이외에는 없다.’
엄청난 연산력이 필요하여 버려진 차원권능을 가졌으면서 마도신이 된 존재는 자신뿐 이었다.
마력과 신력을 같이 다루는 것도 힘든데 차원권능까지 추가되면 거의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원권능과 마도신의 조합만은 결코 다른 신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예? 아시는 분?”
차원창세신이 한 말에 다급하게 뒤로 다가온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이었다.
그 분을 찾아 보물고에 쌓여만 가는 막대한 정기구슬을 얻어 현세계로 나서야 했다.
이것이 바로 삭월(朔月)의 시즈지님 휘하의 모든 정신체의 염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잘 안다고 하니 몸이 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제야 차원창세신 코아의 얼굴을 보고서 나직한 감탄사를 터트렸다.
“어머?”
보물고 안에 들어오자 차원창세신 코아의 모습을 가리던 황금빛 연기구름은 걷혀있었다.
보물고의 권능봉인이 십이 써클의 강대한 주우주 창조신의 신격조차 완벽히 제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얼굴을 바라보게 된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은 침입자의 전혀 뜻밖의 흑발의 미소년의 얼굴에 저절로 얼굴이 붉혀졌다.
상위의 존재일수록 신체가 이상적으로 변해갔기에 대부분 아름답지만 이 정도의 미소년은 처음 볼 지경이었다.
‘정말 그분과 닮았네.’
여왕들 사이의 사적인 대화에서 전설처럼 들은 그의 업적과 기행들을 생각하니 분명 맞는 것도 같았다.
‘여왕들은 모두 그의 것이라고 했던가?
아니 그와 여왕들은 일체라고 했었지?’
우주수 드리이어드 여왕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차원창세신 코아는 갑자기 나타난 자신의 미래의 사진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미래 자식이라면 이렇게 하고도 남지.
하지만 이계에서 뭐 하러 이런 귀찮은 짓을 해?
절대계의 회색영역을 약간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더 순도 높고 강한 정기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정말 내 미래가 맞나?’
다시 보니 분명 미래의 청년인 자신이 맞는데 조금 이질적인 분위기가 풍기었다.
그리고 가진 힘조차 너무 달랐다.
절대적인 위력과 영역을 가진 광역 마도권능과 기동력에서 따라올 권능이 거의 없는 독자적인 차원권능까지 가진 미래의 자신이면 하루정도면 이계는 끝장이었다.
물론 이계 십중심 전부와 이계 창조주를 포함해도 그렇다.
‘절대계 십중심인 나의 미래는 이계 창조주를 포함한 세계 전부를 박살내는 일조차 쉽다.
주우주 마신황제조차 일격을 못 견디는데 이계 따위야 우습지.’
절대계 회색의 절대자는 이계 전부가 달려들어도 순식간에 처리가 가능한 강자인데 겨우 이계 마신황제와 싸우다 같이 소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계 마신황제의 마지막의 반격에 같이 사라졌다는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
사진의 존재감을 보니 마도신이다.
그러니 정면승부보다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회심의 일격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마도신이 세력이 우세한 상태에서 개인을 기습하는데 반격할 여유를 줄 리가 없지.’
사진은 자신의 미래인 청년모습의 회색의 절대자가 확실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진 힘과 상황이 전혀 맞지가 않았다.
결국 일차적인 결론을 내렸다.
“말도 안 되는군.
나조차 간단하게 상대할 수 있는 이계 마신황제를 처리하려다 절대계 십중심인 회색의 절대자가 공멸했다고?
차라리 창조신이 감기에 걸려서 죽었다고 해라.”
절대계 십중심과 비교하면 아무리 창조주의 무력의 상징이라고 하는 마신황제라도 신격의 차이가 큰 것이다.
그래서 사진을 다시 정밀조사해보니 어딘가 절대계 회색의 절대자인 미래와 조금 달랐다.
애장품인 담뱃대 대신 물고 있는 흰 막대가 꽉 다문 이빨에 맞물려서 거의 부러질 정도로 휘어져있었다.
‘건들면 다 쓸어버린다는 표정이군.’
이 사진 쪽이 조금 더 세상에 짜증내고 있다고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세상 전부를 다 같이 죽자고 파멸시킬만한 살기나 투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한심한 이 세상이 매우 지겹다는 그런 분위기였다.
사진을 보고 깊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문만 늘어났다.
최종 결론은 결국 포기였다.
“에이. 모르겠다.
어차피 마신황제와 공멸할 정도의 존재라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야.
그나저나 보물고의 보물은 이게 전부인가?
절대적인 신기라던가?
아니면 권능 같은 것은 없나?”
그 말에 잠시 고민한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은 우주수 수액의 바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대답을 했다.
“열쇠들이 저 안 어딘가에 있다고 하더군요.”
“열쇠?
저 수액 바다 속에?”
흑염의 신체조차 위협하는 고농도의 수액 바다 속에 열쇠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기구슬까지 가득 채워져 있으니 찾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하지만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자발적으로 제공한 귀중한 정보였으니 확인을 해야 했다.
“보물고의 자폭 봉인을 해제하는 열쇠인가?”
그 말에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쉽게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오백억년동안 손도 못 댔을 리가 없다.
“아니요. 그렇게 편한 해결방법을 그 분이 만드실 리가 없어요.
보물고 자폭 방호는 절대 해제불가이고 그분만이 보물을 빼낼 수 있게 되어있다고 해요.”
아무리 조사해도 만든 본인 외에는 열 수 없는 보물고라는 결론만 나왔다.
보물고의 안을 모르면 포기라도 하겠는데 현세계 전부를 압도할만한 정기가 수치스럽지만 뒷문통로 들어가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더욱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분이 마신황제와 싸우러 가기 전 여기에 던져 넣었다고 하는 열쇠들은 단지 삭월의 시즈지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어요.
초기에는 삭월의 시즈지님이 가끔 직접 여기에 들어가셔서 찾기도 했는데 보물고가 이렇게 되어버리고 나서는 포기하시더군요.”
“.........”
거짓은 아니었다.
엄청난 생명력의 축적으로 신체에 극독이 되어버린 수액바다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갈 만한 존재는 거의 없으니 이런 사실을 속일 이유가 없었다.
아니 정기구슬과 전혀 상관없는 열쇠를 갑자기 말할 이유도 없었다.
이제야 흑염 권능이 무슨 목적으로 여기로 이끌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기야 처지곤란으로 남아도는 상황이라 필요가 없으니 열쇠를 획득하란 뜻이었다.
‘그러니까 삭월의 시즈지를 후궁으로 얻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하다.
그러니 여기를 들어가서 찾으라고?’
아까 손을 살짝 넣었을 때 당장이라도 재로 만들겠다는 듯이 치솟아 오르던 생명력의 파동이 생각이 났다.
‘흑염의 신체조차 타격을 입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저런 뒷문 통로까지 뚫고 들어왔는데 그냥은 물러설 수 없어서 다시 살짝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았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손가락을 통해 몸 전체를 관통하는 강대한 생명력의 파동에 저절로 험악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제길-! 나도 아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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