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진심이었다.
당장 목을 자를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에 바로 도망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총수파에게 이렇게 추방당하면 정말 갈 곳이 없었다.
남은 운명은 후궁전에서 첩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밭이나 일구고 소일하는 길이었다.
‘딸과 반려에게 구박 맞으면서 영원히 사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싫다.
더구나 금고아 정조대까지 차다니?
어떻게든 총수파의 수장이 되어서 가장으로서 권위를 되찾아야 해.
그래야 이게 풀려.’
대충 마음속의 말을 다해 속을 풀은 총수파들은 부서진 탁자를 수복시키고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네 말대로 총수님의 장인이란 신분은 외교적으로 쓸 만하겠다.”
“가서 꼭 성공시키고 그녀를 후궁으로 모셔와.”
“그럼 총수파도 아크람 일족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너도 보호하겠다.”
“........ 알았다.”
총수님의 주신성에 수작을 부려서 땅바닥에 떨어졌다가 딸 덕분에 벼락출세를 했다.
그러고 나니 요즘 들어서 정말 목숨을 거는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암울한 얼굴이 된 아크람이었다.
뚜벅-! 뚜벅-!
한편 차원창세신 코아는 사자왕과 한가롭게 통합신계의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
여기에 항상 쓰고 있던 얼굴의 로브조차 벗어버리고 흑금발에 황금 눈동자를 가진 절세의 미소년의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주변을 걸어가던 고위 정신체들조차 넋을 잃고 쳐다볼 지경이었다.
“..........”
그 옆에 잔뜩 경계심을 품고 있던 사자왕도 할 말을 잃을 정도의 미모였다.
신족 수백만을 학살하고 절대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악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바로 의문점을 정중하게 물었다.
“황금빛 구름으로 가려진 창조신이나 거신의 모습이라고 알려졌습니다만 갑자기 왜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지요?”
아무리 적이라고 하지만 상대는 지배층인 초월자들의 총수였기에 존중을 해야 했다.
정기를 주고 샀다고 하지만 창조주님의 인정을 받은 이상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주신성과 통합신계를 직접 보니 과연 적으로 돌려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악이 분명한데 이건 뭔가 달라.
더 분석해야 해.’
용자동맹의 역사상 처음으로 용자왕들의 통합된 결론이 흔들리지도 모르는 사태를 불러일으킨 차원창세신 코아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이게 내 본래 모습이라네.
위엄과는 먼 모습이라서 신계 내에서는 가급적 하지를 않지.
하지만 적의 방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무척 쓸 만하지.
후후후후후후후.”
“!”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분명 ‘적’이라고 했다.
‘적이라고?
이미 확신하고 정했는가?’
차원창세신 코아가 남녀 모두가 매혹될만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지만 담긴 내용과 기세는 숨이 막힐 정도다.
전투태세로 들어가려는 사자왕을 보면서 왼쪽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손톱 부위만 까닥거리면서 말한다.
“내 미숙한 부하들이 용자동맹을 많이 실망시켰겠더군.
하지만 말이야.
그들의 전력은 내게 겨우 이 손톱 정도라네.
군세로 만드는데도 일 년 정도만 들었지.”
“!!!”
사자왕의 표정이 확 굳었다.
하위 정신체수준이지만 십억이 넘는 엄청나 수의 지옥군단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엄청난 강자들을 잘 피해서 후방에 기습을 걸어서 전멸은 시켰지만 용자동맹의 피해도 꽤 컸다.
그런 세력을 겨우 손톱에 비유하고 일 년 만에 만들었다니 놀랄 일이었다.
“후후후후후. 전부 부활시켜서 주우주로 훈련하라고 보냈지.
그들은 이번 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니 이 정도 손해야 아무 상관없지.
이 일로 전혀 화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차원창세신 코아의 황금빛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 시선이 사자왕을 박살낼 듯이 강해졌지만 말투는 아주 부드러웠다.
“단지 그들을 부활시키는데 들어간 정기손해가 문제인데 그건 천천히 이야기하지.
일단 통합신계에 왔으니 푹 쉬도록 하게.
그리고 뭐지?
주신전에서 뭔가 벌어졌나?
자네 동료들도 도착한 모양이니 이만 가보겠네.
내 손해보상에 대해서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주신성 일차 수확의 날 보세나.
아직은 혈맹이니 용자왕들을 귀빈으로 모시지.”
스르르르르.
마치 지우개로 지워지듯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한참 후에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전투태세를 푼 사자왕이었다.
그리고 주저앉으면서 거친 숨을 몰아쉰다.
두려움과 고통을 모르는 기계의 신체지만 감당을 하지 못할 압박감을 받은 것이다.
“허어-! 헉-! 저것이 차원창세신 코아.
허계에서 온 진리의 대리자.”
신령 자체를 태워 재로 만들고 갈아버릴 것 같은 살기와 투기였다.
왜 초월자들이 끝까지 적으로 삼지 않고 대표로 인정했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더구나 황금빛 눈동자에 서린 광기를 보면서도 정체를 모르면 정의를 자칭할 수가 없었다.
두두두두두두-!
용자왕들의 신령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언제나 의지가 되던 그들이 자신의 위기를 느끼고 여기로 달려오고 있는데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전투태세로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용기의 상징인 가슴의 사자 형상조차 겁을 먹고 울부짖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제길-! 단순한 악이 아니라 미친 악이었어.
예측불가의 최악의 파괴신이다.”
저런 살기와 투기를 가진 존재가 미쳐 날뛰면서 용자동맹의 적으로 돌아서면 어떻게 나올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뚜벅-! 뚜벅-! 휘이이잉-!
미친 악이자 최악의 파괴신이라는 평가를 용자왕에게 받은 차원창세신 코아는 주신전의 긴 복도를 걸으면서 황금빛 연기를 내품어서 마력을 가린다.
황금빛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자 누가 오는지 알고 황급하게 고개를 숙이는 초월자들을 가로지르면서 느긋하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후우우우우-! 저것이 최강의 용자왕인 사자왕이라?
겨우 주우주의 주신정도의 신령에 기계주신의 몸체로군.
권능의 주체는 심장부위에 병렬신력 연결을 위해 극소신계를 담아놓은 소올 스톤인가?
대충 중급 주신정도이겠어.”
기계의 신체로 주우주 중급 주신의 위력을 갖추었다면 대단한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최강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중급 주신 정도는 창조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광역권능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이 광대한 세력까지 갖춘 지금은 적이라고 부르기도 부족할 정도였다.
“쿡쿡쿡쿡-! 이거 내 적으로는 너무 약한데 그래.
초월자들의 전력도 필요 없고 반 초월자와 코로나로도 충분하겠어.
이거 김이 팍팍 새는군.
손해보상이나 잔뜩 뜯어내고 끝내야 하나?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들이니 강제노동이라도 시킬까?
쿡쿡쿡쿡쿡-!”
초월총수로서 하는 말은 복도에서 갑자기 마주쳐서 당황해 하는 초월자들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용자동맹이 적으로 돌아섰다는 말에 생겼던 일말의 불안이 싹 사라질 정도였다.
더욱 깊숙이 머리를 숙이는 초월자들을 가로지르던 차원창세신 코아의 총수실의 문이 부서질 듯이 열려진 것은 동시였다.
꽈꽝-! 투가가가가가강-!
자신에게 차려 자세로 머리부터 날아오는 인영은 아주 익숙했다.
“아크람?”
살기는 없었기에 그대로 머리를 잡아서 멈추어 세운다.
곽-! 퉁-!
막강한 위력이 실렸으나 불가해 팔시조의 방어로 그대로 해소해버리고 땅에 세웠다.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리는 아크람에게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는 요즘 자주 날아다니는구나.
가급적 걸어 다닐 수 있게 노력해라.”
“총....... 총수님. 돌아오셨습니까.”
아크람이 지금은 꼴이 우습게 되었지만 지배자급 초월자 중에서 최상급의 강자이니 이렇게 때려서 날릴만한 존재는 아주 드물었다.
여기에 이마에 뚜렷하게 꽉 찍힌 작은 주먹 자국은 누가 그랬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호오? 대충 사정은 알겠다만 왜 이런 것이냐?”
“제 육군 위세를 담당할 후궁선발 때문에 딸하고 의견충돌이 조금 있었습니다.”
“응?”
아크람은 달걀모양의 정기가 뭉쳐진 신기를 꺼내서 이제는 희미한 흔적만 남은 눈가의 멍 대신 새로 생긴 이마의 자국을 전력으로 회복시켰다.
스스스스-!
이제 치료도 익숙해져서인지 멍이 빠르게 사라진다.
그렇다고 통증이 약해진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딸은 적응한 수준만큼 때리는 위력을 올리고 있었다.
“아오. 정말 지독하군요.
갈수록 사정을 봐주지 않아요.
빨리 초월자 후궁의 문제를 처리해서 총수파의 수장이 되어 가장의 위엄을 되찾아야 하는데.......”
총수의 앞인데도 총수파의 수장이 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도 않는 아크람이었다.
이미 총수가 어떤 성향인지 거의 파악이 된 것이다.
‘무능하고 쓸모없으면 올바른 소리를 해도 맞지만 능력이 있고 쓸모가 있으면 이 정도는 상관없다.’
과연 예상되는 총수파의 수장을 욕심을 내어도 전혀 상관없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번에 신속하게 처리했던 초월자들의 첩과 자식으로 오른 평가는 아직 유효했었다.
“초월자 후궁의 선발문제라?
그건 총수파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위임했다만?”
자신의 후궁인데 누가되든 능력만 있으면 별 상관이 없다는 말투였다.
총수에게 있어서 후궁이란 타인보다 조금 더 믿을 수 있는 동업자 정도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제 딸이 자신과 동격으로 싸울 정도가 아니면 후궁은 안 된다고 제한을 걸어버려서요.
그걸 철회해달라고 말했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응? 푸하하하하하하하-! 코로나와 동격의 여 초월자가 있을 수 있나?
그건 뽑지 말라는 것 아닌가?”
크게 웃으면서 총수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끼이이이익-!
총수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차원창세신 코아는 식식거리면서 총수의 의자에 앉아있는 코로나를 쳐다보면서 걸어간다.
움찔-!
황금빛 구름으로 가려진 차원창세신 코아가 총수의 자리로 다가오자 깜짝 놀란 코로나는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섰다.
힘의 차이는 명백했고 무엇보다 이계 부흥이 아닌 소멸이라는 선택을 할 경우 대적자가 된다는 미래는 굉장히 불안한 요소인 것이다.
‘내가 총수의 입장이었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정도의 위협요소이다.’
허나 총수는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할 리가 없으니 후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했으니 이해불가였다.
그러니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스르르-!
차원창세신 코아는 코로나가 비운 총수의 자리에 미끄러지듯이 앉고서 그동안 처리된 안건들을 바로 확인하고 감탄했다.
‘호오? 비록 섬세한 면은 떨어지지만 육감이라고 할까?
뭐가 자신에게 불리한지 유리한지를 잘 파악하고 조치를 잘 하는군.
역시 이계 흑염의 예비 후보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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