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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력약화의 책임을 통감하고 거듭되는 죽음으로 신격하락을 견디다 못해 직위를 반납한 고위신들이 줄을 이을 정도였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렇게 물러난 고위신들이 모두 평화주의자로 돌변해서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반란세력, 이것이 문제의 다섯 번째였다.
‘우리가 전력이 강했으면 이미 끝났을 전쟁이다.’
‘전력을 감축한 자신들이 가장 큰 원인제공자면서 어처구니가 없군.’
‘감상을 앞세우는 존재들은 어디를 가도 도움은 고사하고 해만 끼치는 존재라는 점을 인증한 셈이야.’
이렇게 시위가 격화되면서 치안도 악화되는 아주 나쁜 상황이었는데 이상한 일이 발견되었다.
악질로 소문난 악신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연히 평소 때처럼 자기들끼리 죽고 죽였다고 생각하면서 무시했는데 수백 명이 넘어서 씨가 마르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인망 높고 존경받던 선신들까지 같은 비율로 실종되고 있다는 보고까지 들어왔다.
더구나 이제 치안이 약한 주변의 행성이 아닌 본성 서우리나에 거주하는 직위를 가진 고위신들까지 사라지고 있다.
전쟁 중이 아니면 당장 뒤집혀질 일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들은 못 잡았나?”
그 말에 지금 치안을 담당하는 주신은 가늘게 대답했다.
연일 벌어지는 시위통제와 사건사고에 이미 큰 소리를 칠 기력조차 없었다.
여기에 묶어서 갈취를 당한지 일 년이 지나니 거의 기계적으로 일할 뿐이었다.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소행 같다.”
“그들이 왜?
신족의 신체를 죽여도 신계가 없으면 정기 회수는 무리이다.”
“이유는 모른다.
증거도 없다.”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는 주신들이었다.
수백 명의 고위신들을 납치한 엄청난 범죄자들의 용의자를 특정하고는 지극히 무책임한 말이었다.
신뢰도 가지 않았다.
치안을 오랫동안 맡았지만 능력보다는 어디까지나 유명일족의 주신이란 점이 가장 컸다.
치안을 담당하는 주신으로서 전문적인 권능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는데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 직감이다.
신족의 영역에서 이런 대규모 납치를 누구도 모르게 할 수 있는 존재들은 그 놈들밖에 없다.
현세계의 유지는 상관하지 않고 진리만을 추종하고 초월권능을 사용하는 위험분자들이다.
내가 주장한 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쫓아냈어야 했어.”
“……겨우 직감이라고?”
역시 이어지는 말도 뭔가 지극히 사감이 넘쳐나는 말이지만 나름 설득력은 있었다.
그 정도의 강자들이 아니면 고위신의 은밀한 납치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치안담당 주신은 모처럼 주변이 수긍하자 기세를 탄 듯이 목소리가 올라간다.
‘드디어 개인의 강함만 믿고 멋대로 설치는 칭호를 받은 존재들을 싹 처리할 기회다.’
일족도 없이 진리에게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고개에 힘을 주는 것부터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동안 기회만 노렸는데 이번에는 통할 분위기였다.
“그리고 본성의 고위신들도 사라지고 있다.
본성 외곽은 진리 친위군이 지키고 있고 내부는 신계의 철저한 통제에 있다.
최정예 전력의 방어와 철통과 같은 경계태세를 뚫고 고위신들을 누구도 모르게 납치할 수 있는 능력자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이건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님들도 불가능하다.”
약간 흥분을 한 듯이 치안을 맡은 주신이 책상에 놓인 보고서의 일부를 공중에 띄워서 확대했다.
서류에 나타난 몇 명의 얼굴들이 크게 확대된다.
현세계에서 강자들로 유명한 존재들이었다.
대부분 칭호를 받은 존재들이었는데 가장 유명한 한 명을 지목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주장을 시작했다.
“신계와 내가 뽑아낸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칭호를 받은 존재들 중 최강이라는 허무다.
접촉하는 모든 것을 소거하는 그 불길한 권능만이 어떤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이런 불가사의한 대량 납치를 가능하게 한다.
당장 허무를 수배하고 억류해야 해.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보고되어 확인해보니 납치로 의심되는 고위신들의 수만 해도 일천 명이 넘었다.
이건 또 하나의 전쟁이다.”
그런데 주신들의 표정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치안담당 주신이지만 어디까지나 연줄이고 일족의 힘이었지 전문성은 주신급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일족을 동원해서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라고 했더니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도 많았다.
‘가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들까지 시비를 건단 말이야.’
재능부족인지 노력부족인 모르지만 주신들 중에서도 하위라서 진리에게 강함을 인정받은 칭호를 받은 존재들에 대한 질투도 대단했다.
‘조용히 자리나 지킬 것이지.’
‘또 시작이다.’
저렇게 범인이라고 장담하고 개인감정을 집어넣어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록 일족의 대표라지만 오리진도 아니었기에 상당히 위험한 짓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노리는 상대도 큰 문제였다.
허무는 증거가 없는데 의심만으로 체포할 수 있는 약한 존재가 절대로 아니었다.
적어도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님들이 몇 분이 동시에 나서야 처리할 수준이었다.
“의심만으로 허무와 칭호를 받은 존재들을 체포하자고?”
“허무를 정확한 증거도 없는데 체포?”
“적을 늘릴 생각인가?”
“누가 잡을 것인가?”
“네가? 설마?”
치안담당 주신 혼자만으로 당연히 허무를 상대할 수 없었고 허무가 그 동안 쌓아온 공적도 컸다.
그리고 신족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과거의 행적보다 허무라는 칭호가 가진 위험성은 심각했다.
접촉해서 부상을 당하면 영구손실이 되고 재생하려면 엄청난 정기와 노력이 필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신체와 신령의 일부가 영원히 사라지지.’
‘주신 체면에 장애인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제압을 위해 투입된 전력은 심각한 손실을 각오해야만 했다.
그러나 치안담당 주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치안을 유지하는 의무에 당연히 신원조사와 안전관리도 끼어있었다.
그런데 거의 일천 명이 넘는 고위신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청난 사태였다.
그걸 치안담당들은 모르다가 군부에서 추가 징병을 위해 위치조사를 하다 밝혀져 버렸다.
이번 일은 자신의 안위는 고사하고 일족까지 위험할 지경이었다.
‘지금 흥분상태인 창조신님들이 당장 목을 자르겠다고 나서도 이상하지 않은 비상사태다.’
그래서 이미 여러 번 의제를 삼고 적극적으로 행방불명자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상하게 다른 주신들의 반응이 영 미지근했다.
전쟁 지원으로 바쁘니 실종의 탐색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실종된 고위신들이 대부분 추가 징병대상자라서 군부의 압력도 엄청났다.
흔적도 없는 납치범과 주변의 압력에 이제 인내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치안을 맡은 주신은 소리를 높여서 주장했다.
“이해를 못 하겠는가?”
전선에 투입하기 위한 추가 징병을 위한 조사과정에서 행방불명으로 보고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납치된 피해규모도 밝혀졌다.
일 년 동안 행방불명이 된 수는 일천 명이 넘는다.
대상은 악신이나 선신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부류부터 사라지고 있다.
이미 그 쪽으로 치안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놈들은 그런 감시와 경호를 비웃고 거의 하루에 네 명 꼴로 납치하고 있단 말이다.
이건 심각한 공권력에 도전이자 우롱이다-!
전력으로 먼저 배제해야만 한다.”
“하루에 네 명씩?”
“일 년 동안 일천 명 이상이나 행방불명되었어?”
그 말에 놀라는 일부 주신들의 반응을 등에 업고서 아직도 찬성하지 않는 대부분의 주신들을 노려보면서 외쳤다.
“왜 침묵하는가?
너희들의 직계 중에서도 갑자기 행방불명되어서 납치가 의심된다고 보고된 건수도 많은데?
이걸 넘어갈 것인가?”
“…….”
하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전쟁이 우선이니 일단 추적보다 조사부터 하라는 결정이 내려지자 분통이 터진 치안 담당자였다.
“너희 직계들도 일부가 사라졌지 않는가?
도대체 왜 반대하느냔 말이다.”
직계들이 큰 범죄를 저질러도 없는 것으로 해달라면서 뇌물을 주면서까지 애지중지하던 주신들이었다.
그런 직계들이 완전히 행방이 묘연한데도 실종신고만 하고 무관심했다.
이건 지극히 비정상이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선전적인 말까지 하고 있었다.
“내 직계보다 신족의 일이 우선이다.”
“일단 전쟁의 지원이 우선이다.
최전선에서는 지금도 창조신님들이 사투 중이시고 투신들도 수백 명이 죽어서 부활을 반복하고 있다.”
“겨우 자식을 찾는 일에 신계의 전력을 쓸 수 없다.”
“…….”
지배층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뭔가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주신 놈들의 대부분이 평소에 신족보다 자신의 안위와 일족의 번영을 중시했던 존재들이다.
설마 이놈들이 연관되어 있나?
전쟁의 혼란 속에서 유력한 경쟁자들을 제거할 생각인가?’
더욱 의심과 의문만 증폭되었다.
그리고 절대로 물러날 상황이 아니었다.
“추가 징병할 고위신이 부족하고 지금도 계속 사라지고 있어.
참전시킬 대상을 선정해서 찾아가 보면 이미 납치되고 없어.
당장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 납치범들을 잡아야 해.
창조신님들이 요구하신 고위투신들의 추가전력 확보에도 심각한 문제란 말이다.”
“…….”
“…….”
하나 주신들은 더욱 대답이 없고 단지 자신들의 일로 돌아갈 뿐이었다.
현재 일어나는 납치사태의 책임이 있는 치안담당 주신으로서는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창조신님들이 고위신 전력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하면 나를 가장 먼저 끌고 간다고 했단 말이다.
그런데 어떤 미친놈들이 하필 이럴 때에 고위신들을 납치하고 있느냔 말이다.
그것도 하루에 네 명 이상씩을-!’
가장 큰 문제는 인망이 높은 선신들의 납치였다.
악실들처럼 서로 죽이고 죽일 리가 없는 선신들이니 분명 전원 납치였다.
그래서 경호를 붙이고 모두가 있는 장소에만 있도록 조치를 했다.
하지만 워낙 은밀하고 빠른 존재라서 소용이 전혀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니 경호하던 휘하의 신들도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경호를 늘리려고 해도 연일 계속되는 시위 통제와 반란세력의 억제에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 군부에서는 징집 대상자의 위치를 내놓으라는데 모두 사라져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이러니 치안담당 주신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치안담당이 그래도 권력이 있는 자리라고 냉큼 받았던 결정이 지금처럼 후회가 된 적이 없었다.
‘정말 못 살겠다.
이렇게 힘들 때는 확 무슨 일이라도 터져 버려야해.
더 이상은 정말 위험해.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하다못해 책임의 분산이라도 해야 한다.’
아직 관심을 끄지 않은 몇 명의 주신들의 작은 지지를 등에 업고서 외쳤다.
“범인은 분명 칭호를 받은 존재들과 허무다.
수배라도 내려야 해.”
“증거가 없지 않는가?”
“증인도 없는데 무슨 수로 유죄를 증명할 것인가?”
“일단 증거와 증인부터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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