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여기 모인 존재들은 모두 이계의 지배계급이었다.
비록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이상하게 당해서 이런 상황이지만 만만한 상대고 세력도 아니었다.
이계 전부를 다스리는 지배자들 앞에서 두들겨 맞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시키신 일도 모두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에게만 보이도록 아공간에는 꽁꽁 묶여진 수백 명의 존재들이 있었다.
어찌나 철저하게 묶고 봉인을 해두었는지 몸 전체가 둘둘 말린 멍석과 같았다.
그리고 얼굴이나 눈도 철저하게 가두어서 주변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지시하신 대로 신족에서 가장 악명 높은 놈하고 착하다고 소문난 분을 하루에 한 명씩 납치해서 가두어 놓았습니다.”
뭔가 호칭과 어감이 이상했지만 차원창세신 코아는 슥 흩어보고 의문점을 물었다.
“호오? 수는 맞구나.
그런데 왜 안 죽이고 데리고 있었느냐?”
내 명령은 가장 악한 신와 선한 신을 하루에 한 명씩 죽이라고 했을 것인데?
왜 납치해서 가두기만 했지?”
“…….”
그 말에 허무의 베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처음에는 시킨 대로 납치해서 바로 죽여 버리려고 일을 했다는 증거만 남기려고 했는데 일부가 반대했다.
아무 도움도 안 되고 해만 되는 악한 신이야 상관없는데 도움이 되는 착한 신은 죽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차원창세신 코아의 성향을 알고 있는 자신으로는 실로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우리들이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그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상대가 선하든 악하든 어차피 납치해서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신족과는 끝이야.’
하나 워낙 반대 여론이 심하니 못 죽였다.
그렇다고 풀어줄 수는 없었다.
이미 납치를 했고 이들은 최고의 악질이거나 선하다는 명성답게 꽤 고위신들이라서 이미 어느 정도 자신들의 정체를 눈치 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가 시킨 일을 진행시키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납치해서 가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아주 잘못된 것 같았다.
자신의 멱살이 차원창세신 코아의 오른손에 잡혀서 들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둑-! 우둑-!
차원창세신 코아는 왼손으로는 언제든지 허무의 베인의 얼굴을 박살낼 준비를 하면서도 친근하게 물었다.
‘아주 괘심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면서 수작을 부렸다.’
그래도 진행은 했으니 즉결처분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인파악은 반드시 해야 했다.
“누가 내 말대로 하는 것을 반대했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칭호를 받은 존재들 전부는 죽고 신령은 나의 신령연옥에 가두어 지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차원창세신 코아의 이마 정중앙에서 빛나는 창조신의 보석 ‘신령연옥’이 빛을 발한다.
개방되어서 그 안에 보이는 모습에 허무의 베인은 진절머리가 쳐졌다.
자신과 비교해도 별로 떨어지지 않는 고위의 신들이 모두 작은 독방에 처박혀서 멍한 시선으로 보석 안에서 밖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독방에 갇힌 주신들은 그나마 나았다.
다른 하위의 신들은 공간이 아깝다 듯이 관에 가두어져서 탑처럼 쌓아 두고 있었다.
“대표인 넌 특별히 가장 작은 관에 영구히 가두어주지.
그러기 싫으면 대답하라.
누가 내 명령을 감히 마음대로 바꾸자고 선동했지?”
관으로 만든 탑은 안에서 몸부림을 치는지 가끔 흔들리는데 소름이 쫙 올라왔다.
자칫하면 자신들도 저 꼴이 될 확률이 지극히 컸기 때문이다.
“불복종의 디스입니다.
시키면 그대로 하지 꼭 반대를 하는 그 놈이 항상 문제입니다.”
마침 옆에 없으니 마음 편하게 고자질 했다.
아니 이제 지켜 줄 의리도 없었다.
뭐 좀 제대로 죽이려고 하면 항상 반대하면서 다른 주장을 해대는데 아주 질릴 지경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권능이 ‘불복종(不服從)’이라고 해도 같은 편에게는 자제해야 하는데 제어가 안 되는 모양이군.’
반대만이 아니라 칭호를 받은 존재들이 모여서 세력이 커져가자 다른 생각까지 품은 모양이었다.
대표를 투표로 뽑아서 독립 세력을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여기저기 선동까지 하고 있었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멍청한 놈! 초월자들이 대부분 점유한 현재 이계 상태에서 독립세력을 무슨 수로 만들어?
정기가 있나?
쓸 만한 영역이 있나?
아무것도 없으니 전부 뺏어야 한다.
그럼 그게 도적집단이지 무슨 독립 세력이야?
신족이나 초월자들에게 토벌 당하기 딱 좋지.
그리고 지배세력의 수장은 아무나 되는 줄 알아?
투표해서 대표로 선출되면 끝 인줄 알아?
특출한 능력이 없으면 끝장난다.
다른 지배세력이 보기에 나은 점이 없으면 무시당한단 말이야.’
그러나 이계를 떠돌아만 다니다가 모처럼 세력을 이룬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입장에서는 매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묵묵히 납치만 하자는 자신의 말보다 이런저런 미래를 제시하는 불복종의 디스를 더 따를 지경이었다.
‘당장 박살을 내자니 차원창세신 코아가 주우주로 돌아가 버린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을 죽이면 신족과는 정말 끝이니 잘못된 말도 아니지.’
그러니 울화통이 터지면서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왜 시킨 대로 죽이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바로 일러바친 것이다.
그 말에 차원창세신 코아는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말했다.
아까부터 고속이동과 공간이동을 반복하면서 다가오는 칭호를 받은 존재들은 감지하고 있었다.
허무의 베인은 이미 도착했는데 이들은 아직도 오려면 한참 멀었다.
그나마 맨 앞에서 달려오는 놈은 그중 나아보였지만 격이 확실히 떨어졌다.
이것만 보아도 능력의 차이는 확연했다.
“지금 칭호를 받은 존재들 맨 앞에서 서서 오는 저 놈이 불복종의 디스냐?”
허무를 비롯한 칭호를 받은 존재들은 차원창세신 코아가 이계로 돌아오자마자 연결해둔 권능으로 알아챘다.
그런데 불복종의 디스가 또 무슨 생각인지 칭호를 받은 존재들을 전부 몰고 가서 세를 과시하자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먼저 와버렸다.
차원창세신 코아의 성격상 신속한 보고는 필수였는데 납치를 위해 흩어진 병력을 모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운 나쁘게도 꽤 신속하게 모은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참 세상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구나.
편히 살기 싫은 모양이지?
그리고 뭐 하러 일하고 있는 부하들을 전부 데려와?
내게 집단으로 덤벼보겠다고?
자살 희망자냐?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동반 집단자살?”
차원창세신 코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무의 베인의 멱살을 잡은 손을 풀어주었다.
딱-!
그런 다음에 뒤를 돌아보는 시선에서 정말 죽여 버리겠다는 살기가 은근하게 퍼진다.
동료를 죽이라고 고발을 한 입장이 된 허무의 베인은 은근히 죄책감이 들어서 변명을 해주었다.
“불복종의 권능이 그렇다 보니…….”
그런데 차원창세신 코아가 아공간 속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더니 읽으면서 말한다.
“맨 앞에 선 저 놈이 불복종의 디스라고 했지?
여기 있군.”
그것은 진리에게 넘겨받은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연명부였다.
거기에는 최초의 칭호부터 변화과정, 위치까지 전부 적혀있었다.
불복종의 디스라고 적힌 이름과 세부 내용을 허무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불복종의 디스는 진리님에게 칭호를 처음 받았을 때는 절대복종이 아니었나?
어떻게 살아야 절대복종이 불복종이 될 수 있지?
내가 칭호의 변질에 대해서 저번에도 경고했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맞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말에 은근히 불안해졌지만 그래도 동료가 죽는 꼴을 보기는 싫었다.
“워낙 이계가 살기 힘들다 보니…….”
“호오? 아직도 감싸나?
그러고 보니 너도 원래 칭호가 허무가 아니었지?
어디 보자.”
결국 자신의 과거에게까지 문제가 번지자 다급하게 외치는 허무의 베인이었다.
“저놈은 원래 반골입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동료고 뭐고 반드시 숨기고 싶은 과거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계기가 된다면 용서할 수 없었다.
갑자기 거세진 허무의 투기를 느끼면서 차원창세신 코아는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을 지었다.
허무의 베인이 가진 접촉하는 모든 존재와 권능을 완전히 지우는 파괴적인 칭호 특성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놈은 역시 나와 동류다.
세상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꼈으나 배신당하고 파멸했다가 힘겹게 기어오른 존재다.
남에게 잘 대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궁지에 몰리면 바로 잔혹한 본색을 드러내지.
지금은 단지 과거의 나처럼 조금 살만하니 이상적인 생각을 했을 뿐이다.’
약간의 협박으로 제정신이 돌아 은 모양이니 다음에는 마치 교과서를 읽듯이 지시를 했다.
“여기 도착하기 전에 전원을 되돌려 보내.
그리고 말 안 듣는 부하는 공개적으로 힘으로 굴복을 시켜.
뭐 하러 남보다 강한 힘을 길렀나?
이럴 때 편해지려고 수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납치해서 감금한 나쁜 놈과 착한 분들은 당장 목을 잘라서 처단……, 아니 잠깐만.”
아공간에 단체로 묶여있는 방해물들을 보다가 좋은 생각이 난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그리고 바로 웃으면서 칭찬을 시작했다.
“하하-! 그러면 되겠군.
그거 좋네.
아주 좋아.
이번에는 정말 잘 했다. 허무.
바로 안 죽이고 잘 모아놓았다.
앞으로도 모아라.”
“예?”
갑자기 칭찬이 쏟아지자 허무의 베인이 뭐라고 묻기도 전에 다시 수정된 지시를 내렸다.
“저것들을 이대로 몽땅 잘 포장해서 신족의 본성 서우리나로 옮겨라.”
“?”
저들이 워낙 고위신이고 잘 알려진 존재들이니 납치도 힘들고 숨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지금 신족은 전쟁 외에 유명한 고위신들의 계속되는 납치와 실종에 발칵 뒤집혀진 상태였다.
실종된 존재들의 특성을 분석한 듯 점차 경호도 심해져서 납치는 더 이상 불가능하고 힘으로 강탈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고위신인 이들의 납치로 신족은 지금 막대기로 쑤셔놓은 말벌집 상태인데 거길 왜 또 가?’
갑자기 경계가 가장 삼엄한 서우리나로 대상 전부를 옮기라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하기는 해야 했다.
‘그래도 싹 죽이라는 명령보다는 났다.
악한 신들은 본성에 가두고 선한 신들은 풀어주실 생각인가?
그러면 큰 문제가 없겠지.’
그런데 차원창세신 코아가 담담하게 하는 혼잣말을 듣고 경악을 하고 말았다.
“역시 절대독재의 백미는 공개 집단처형이지.
그럼 바로 공포정치의 시작이지.
하루에 두 명씩 꼬박 꼬박 죽이는 것보다 모아서 한꺼번에 처단하는 것이 효과가 더 낫겠군.
최고위원회 광장에 전 신족을 모아놓고 처단해하고 그 다음에는…….”
“!!!”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가 부지런히 중얼거리면서 공개 집단처형 이후의 사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제정신인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대화가 주변에 새어나지 않게 확실하게 만든 차원결계를 봐서는 확실히 이성적이었다.
이런 지시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영 헷갈리는 허무의 베인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도착한 불복종의 디스였다.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새로운 대표인 불복종의 디스가 차원창세신 코아님께 인사드립니다.”
필사적으로 따라붙었는지 숨을 헐떡이면서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말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장래 구상을 위한 집중을 방해받은 차원창세신 코아의 얼굴이 확 굳었다.
소개도 기가 찼다.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새로운 대표라고?
누구 마음대로?
전임자인 허무의 베인이 저렇게 멀쩡한데?’
자신이 아는 한 강자만을 존중하는 진리 휘하의 존재들은 결코 곱게 윗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후임자에게 패배하여 쫓겨나거나 소멸되든가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아무 탈도 없이 멀쩡한 허무의 베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대충 짐작은 갔다.
‘또 부하들의 다수결이냐?
강자 우선의 원칙은 어디 갔어?
이것들은 도대체가 진리의 휘하라는 자각이 전혀 없어.’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눈을 확 부릅뜨자 푹 숙여서 시선을 피한다.
자신도 이 상황을 잘 모르겠고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대표 자리는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
허무의 베인은 그렇게 대표 자리를 내놓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뒤통수를 친 불복종의 디스를 가만 안 두었겠지만 지금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로군.’
악한 신이야 죽였다면 칭송받겠지만 명성이 자자한 선한 신들은 죽이면 후환이 두려운 것이다.
더구나 신족의 본성 서우리나의 대광장에서 공개처형을 준비하라니 그런 미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불복종의 디스가 뒤따라오는 준비를 하면서 다른 놈들하고 자기가 대표하겠다는 이야기를 마무리를 한 모양인데 차라리 잘되었다.
네가 대표해라.
더 이상은 위험해서 못 해먹겠다.
신력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신족의 공적, 아니 전 지성체의 공적이 될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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