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바람가의 오리진들이 이러는 이유가 있다.
옛날이야기 속의 선조가 풍습인 ‘도장 깨기’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문을 발로 차고 다음에 현판을 떼어서 들고 갔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바람가의 결계까지 파괴하고 제 발로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라면 정식으로 상대해야 했다.
“정신체로는 좋은 속도로군요.”
“힘은 인식이 힘들 정도로 약해보이지만 정말 도전자라면 우습게 여길 상대가 아니다.”
“옛날 선조들의 이야기대로라면 당연히 진리 할아버님이 도전자를 가장 먼저 맞이해야 한다.
길을 열도록 해라.”
차차차차차차착-!
서로 의견을 교환한 바람가의 오리진들이 정문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바람가의 오리진들인 양 옆으로 벌어지면서 만든 길 끝에 바람가의 본가가 보였다.
거기에는 무슨 일인지 진리에게 뒷목을 왼손으로 잡힌 채로 오른손으로 얼굴을 두들겨 맞고 있는 2대 흑염의 절대자가 보였다.
퍼어어어억-! 퍼어어어억-!
2대 흑염의 절대자는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비명도 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하지만 진리는 용서 없이 주먹을 휘둘러서 얼굴을 아예 뭉개버리고 있었다.
‘저거 아무래도 순수하게 맞아서 정신을 잃은 것이겠지?
세계폭탄 코아로 두들겨 맞아도 끄덕도 하지 않았는데?
그나저나 몰아의 경지를 배우러 간다고 한 뒤로 일 년이다.
그동안 대련을 하고 있었나?’
차원의 마도신이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어떤 마도를 동원해도 어쩔 도리가 없던 2대 흑염의 절대자였다.
그런데 겨우 주먹에 두들겨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광경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절대계 최강의 육체라는 흑염의 절대자가 맞아서 정신을 잃는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구나.’
하지만 진리가 상대라면 이해가 갔다.
그런데 저런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는 곳으로 가는 길을 바람가의 오리진들이 활짝 열어주었다.
바람가 현판을 가지고 있는데도 빼앗으려는 오리진들은 아무도 없고 가서 맞아죽으라는 눈빛이었었다.
‘눈……, 눈이 정상이 아니야.
시선들이 너무 무섭다.’
그렇게 현판을 양손으로 붙잡은 채로 바람가의 오리진들의 살기와 의외의 광경에 바짝 얼은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그런데 귀에는 정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카하하하하하하하-! 바람가 습격이 아닌 바람가 깨기로 오해를 받는다?
이것도 그런대로 재미있겠네요.’
당연히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이이셨다.
십중심의 서명이 발동되면 본인이 알 수 있도록 기능까지 추가해 놓으셨으니 바로 관람 태세로 들어가신 모양이었다.
‘차원의 오리진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옵니까?
바람가로 쉽게 들어가는 방법이 아니라 이건 정말 습격이 아닙니까?
저보고 죽으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항의인데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왔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천재도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위기조차 즐기는 자만이 가장 강해질 수 있어요.
위기를 즐기세요.’
정말 기가 차는 대답이다.
‘천재가 왜 존경과 두려움을 두려워 받는가?’
그것은 평범한 존재가 무슨 짓을 해도 할 수 없는 위업을 천재는 너무나 쉽게 달성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존재가 아무리 즐기면서 일을 해도 어차피 양산품이고 천재는 하나만 해도 명작입니다.
두 개는 가치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위기를 즐기다가는 가장 먼저 죽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사백구십구 주우주 차원의 오리진이기도 한 저한테 이러십니까?’
혼자서는 수습 못할 상황에 열이 올라서 하는 말인데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님은 역시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분이시다.
‘일을 즐겁게 하는 자는 세상이 천국이요.
일을 의무로 하는 자는 세상이 지옥이다.
이계의 화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돌발사고도 즐기세요.’
‘일이 즐거울 정도로 쉬우면 누가 대가를 주고 시키겠습니까?
그 화가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정도로 능력 있는 천재니까 그런 건방진 말이 가능하지요.
더구나 평범한 상급자가 주는 일이 얼마나 자기 기준에 우습고 쉬웠으면 그런 말까지 남겼을까요?
그 천재화가는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기본적인 일에도 죽을 정도로 힘들어 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존재들을 자만심으로 모독했습니다.
평범한 존재들이 분노로 던진 돌에 맞아서 돌산에 묻혀야 정신을 차릴 겁니다.’
‘카하하하하하하-! 평범한 존재들이 던진 돌이 산이 아니라 산맥이 되어도 천재는 이해 못할걸요?
그리고 이치는 맞는 소리예요.
일이지만 즐겁다고 자기 최면을 걸면 효율은 증가하지요.
힘들어 죽겠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도 못해요.’
‘맞기는 하지만 이게 지금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전 이계의 일을 중간보고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그렇게 차원의 마도신이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과 의지와 의견을 교환하면서도 멍하니 서있자 뒤에 있던 황금착각의 안색은 창백해져만 갔다.
‘진리를 만나러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상황이 극도로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손에 쥔 바람가의 현판을 보는 시선들이 점점 심상치가 않았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도륙을 할 의지를 보내는 존재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저 멀리 그렇게나 바라던 진리가 있지만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빨리 현판을 원위치를 시켜야 하는데 차원창세신 코아는 이런 살기 속에서도 누군가와 태평하게 의견만 교환하고 있었다.
‘무슨 간담인지 존경스럽기까지 하군.’
실상은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에게 이번 일을 해결해달라고 하기 위해 치열하게 의지교환을 하고 있었다.
‘저 이러면 죽습니다.
와서 직접 꾸미신 일이라고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후후후후-! 내가 나설 것이면 뭐 하러 그렇게 자동으로 설정해 놓았겠어요.
이러는 이유도 있어요.
오래 살수록 평범한 일로는 자극이 안돼요.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에도 싫증을 내지 않고 재미를 추구하는 자만이 영원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어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는 유머야말로 세상을 사는 가장 큰 힘입니다.
1대 십중심들은 바로 이 점에서 실패했죠.
너무 심각하게 창조주의 일을 받아들이니 바로 자멸을 했죠.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즐겁게 했으면 아주 오래 갔을 거예요.’
1대 십중심의 최후까지 언급하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본인 의견이십니까?’
‘아뇨. 가장 오래된 할아버님의 의견이지만 동의해요.
그래서 영원체인 선조들이나 후손들은 심심치 않게 가끔 자극을 주어야 문제가 없어요.
바람가의 소속원으로서 이런 일을 벌이는데 정말 사명감을 느껴요.
이게 바로 어른의 보살핌이며 후손의 효도랍니다.’
‘그러면 직접 하시지 왜 하필 저를 이용하십니까?’
‘저번에는 직접 했어요.’
‘에? 벌써 하셨다고요?’
바람가의 일원이 바람가를 습격했다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감탄사까지 붙이면서 의지를 보낸다.
‘카아아아-! 내부에서 결계와 정문을 다 박살내고 이계로 나설 때는 주변 반응이 진짜 좋았지요.
언제나 근엄한 표정만 유지해서 돌조각상과 같던 최고 어른들까지 기겁을 해서 달려왔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똑같은 일을 하면 식상하잖아요?
정신체가 혼자서 감히 바람가를 습격, 아니 바람가 깨기가 되었나요?
주변을 보세요.
전혀 뜻밖의 사태를 직면하니 영원체인 저 아이들도 얼마나 생기가 넘쳐요?’
‘컥-! 컥-! 전 뒷수습이 안 된다고요.
와서 해결해 주세요.’
‘싫어요.
모처럼 즐거운 일인데 열심히 해결해보세요.
여기 사백구십구 창조주 아저씨도 보고 있으니 힘내세요.’
‘일 년 동안 다과회하셨습니까-!?’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와서 해결해 줄 생각은 전혀 없고 분통이 터지는 대답만 해대니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망각한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결국 살기어린 영원체의 기세에 견디다 못한 황금착각이 뒤에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코아. 이러다 큰일 납니다.
빨리 아무 조치나 행동을 해야 합니다.”
“…….”
언제 자신을 앞지를까 노심초사하면서 주시하던 황금착각의 부름에 현실로 돌아온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가득채운 살기와 2대 흑염의 절대자를 두들겨 패는 진리에게 열려진 길, 손에 쥔 현판까지 모두 파악이 되었다.
‘유일한 희망인 마도신의 오리진님은 폐관수련 중이고 차원의 오리진님은 오히려 일을 더 크게 하실 것 같다.’
결국 자연스런 해결방법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현관을 손에 쥐고 모든 마력과 권능을 동원한다.
화르르르르르륵-!
바람가의 현판이 일순 황금빛의 불길에 둘러 싸여 타오른다.
무슨 짓을 하는지 주시하던 바람가의 오리진들의 살의가 치솟았다.
감히 자신들의 앞에서 가문의 현판을 태워 없애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에 드러난 광경에 살의를 멈추었다.
현관을 둘러싼 투명한 막이 생겨있고 군데군데 낡아서 갈라지던 부분이 모두 수리가 되어있었다.
더구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현판을 다시 원래 위치로 돌린다.
“저번에 왔을 때 낡아진 현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별히 먼지가 안 붙게 개조를 하였습니다.
허락을 받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려서 먼저 한 무례를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그 말에 바람가 오리진들은 살의를 거두었다.
확실히 개선된 현판의 상태는 좋아보였고 무엇보다 다시 정성스럽게 다는 모습이 보통 성의가 아니었다.
아니 바람가의 현판을 보완할 수 있는 강력한 창조력을 가진 신족이라는 면에서도 처분대상이 아니었다.
가장 앞에 있던 바람가의 오리진이 나서서 물었다.
“도장 깨기를 하는 도전자가 아닌가?”
“설마요?
이계 진리대리 회색현재 차원창세신 코아로서 중간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이계 진리대리? 아-! 진리 할아버님이 가끔 신경을 쓰시더군.
어서 와라.
가서 보고를 하도록 해라.”
그리고 바람가의 오리진들이 흩어지자 김이 빠졌다는 듯이 차원의 오리진이 투덜거리는 의지가 울렸다.
‘에이-! 식상하게 그게 뭐예요?
예비 목숨도 두 개나 있으면서 끝까지 버티다가 장렬하게 산화해야 재미있지요.’
‘제 목숨입니다-!’
‘예비 목숨이 많이 있으면 나태해지고 무모해져요.
빨리 써버리고 또 재미있게 사세요.’
그렇게 말씀하면서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겼다.
예비 목숨을 빨리 소모하라는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님의 하시는 말씀이 진심인 것은 확실했다.
직접 시키신 이계의 영웅에 대해서 직접 경험하고 알아오라고 한 일을 미룬 이유가 가장 커 보였다.
일 년 동안 지옥구원계획 사업을 한다고 준비조차 안 했는데 그것이 거슬리신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역시 맡은 의뢰 모두가 기한이 아슬아슬했어.
빨리 영웅의 확인 의뢰라도 실시해야 한다.’
유일용신제에게 차원의 오리진님의 파멸유혼검에 서명을 받는다는 대가로 받은 용신족의 의뢰는 아예 감이 안 잡혔다.
그나마 1대 흑염의 절대자에게 영원권능인 몰아 흑염의 조언을 받는 대가로 진리가 칭호로 바꾼 과거 흑염 세력의 복귀를 돕는 의뢰가 쉬울 정도였다.
가장 큰 문제는 모두 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모두 진리의 승인이 필요한 일이다.
여기서 잘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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