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33권
마치 역병 걸린 환자취급을 하다가 조금 후에야 안정을 찾고서 말했다.
알고 보니 야수신도 과거 사고뭉치의 어린 시절에 징계로 당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겨우 이성을 찾은 야수신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긴고아(緊箍兒). 혹은 금고아(禁箍兒)라고 한다.
도저히 말로는 어쩔 수 없는 존재들을 제어할 때 쓰는 신계의 보물이지.”
“보물입니까?
고문구가 아니고요?
이거 갑자기 머리를 조여들던데요?”
이유도 모른 채 가혹한 징계를 당하게 한 교황신은 의기소침해서 뒤로 물러나고 용사신이 전면에 나서서 말했다.
그 말에 야수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대부분은 특정 주문으로 발동하게 통제하는데?
내가 쓸 시절의 긴고아와 뭔가 바뀌었나?
어디?”
그대로 손을 들어서 권능을 집중하여 머리의 금테를 잡았다.
일정수준의 신력이 없다면 아예 만질 수도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우두둑-!
손아귀에 힘을 주고 테를 빼내려고 하자 요란하게 뼈와 관절이 마찰하는 소리가 울린다.
그런데 전혀 미동도 없다.
물론 상급 창조신이 되신 차원의 마도신님이 직접 착용시켰다고 했으니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하지만 강제로 탈착시키려면 발동하는 조임이 보이지 않았다.
“응? 안 아프냐?”
“전혀요.”
“그래? 어디 이건 어떨까?”
퍼어어어어억-!
그대로 주먹으로 금테와 함께 용사신의 머리를 옆으로 후려갈기는 야수신이었다.
“캑-!”
토각-!
용사신의 머리가 야수신의 주먹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질 듯이 돌려졌다.
그리고 야수신은 금테와 직접 충돌한 손가락뼈가 하나 부서져나갔다.
“큭-!”
주신의 신체를 이렇게 쉽게 파손하다니 놀라운 강도였다.
더 놀라운 점은 일격을 맞은 용사신이 아무런 부상도 없다는 점이다.
목이야 충격을 받았지만 머리에 주신의 일격을 받고도 저 정도라면 거의 완벽한 방어였다.
“설마? 방어구로 개조하신 것인가?”
부러진 손가락뼈를 회복시키고 이마의 금테를 뚫어져라 보았다.
겨우 이마를 가리는 정도지만 머리에 가해지는 타격을 이 정도로 막는다면 대단한 신기였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설명에 크게 놀랐다.
“방어구입니까?
가끔 고위신 분들의 신력파동이나 권능의 방사도 집중하면 직접 보입니다.”
“뭐라? 상위신들의 신력파동이나 권능방사가 직접 보여?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마라.”
원래 상위신의 권능은 거의 탐지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고위신은 안심하고 신력이나 권능을 먼저 방사하거나 영역에 넣고 외부현실을 강화시켜간다.
그런 면에서 상위신의 권능영역을 본다면 엄청난 이득이었다.
너무 은밀해서 회피가 불가능한 권능공격을 피하면서 싸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내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지.
어디 시험을 해볼까?’
하위신들은 절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야수신의 고유권능을 깔았다.
그것은 야성을 강화시켜 힘을 증폭하는 고유권능이었다.
상대방에게는 이성을 잃게 하고 폭주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용사신과 동료신들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투하하하하하하-!
바로 앞에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서 전력으로 도주한 것이다.
완전히 창백해져서 저 멀리 떨어진 용사신들을 보면서 야수신은 황당함을 누르고 말했다.
“어라? 정말 보이냐?”
“보입니다.
그리고 상위신들의 권능에 닿으면 거의 대부분 이 긴고아가 머리를 조여 왔습니다.
여기로 찾아오는데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서 과거 어린 시절에 당했던 긴고아가 주는 고통과 머리를 방어하는 효과, 거기에 권능탐지와 시야제공까지 고려해서 검토를 했다.
그리고 조금 후 감탄을 했다.
“호오? 이거 멋지군.”
가장 치명적인 급소 중 하나인 머리를 방어해주고 권능방사까지 보여준다.
그럼 스스로 벗고 쓸 수만 있다면 이런 보물도 없었다.
해결방법도 쉬웠다.
직접 본인이 쓰면 해제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고통이 문제지만 패배보다는 나았다.
“정말 보물이로군.
아니 기물(奇物)이라고 표현해야하겠군.
정말 신기제작능력이 대단하셔.”
“예?”
야수신은 노골적인 욕심을 숨기지 않고 이마의 금테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걸 벗고 싶으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차원신성의 상위괴수를 잡지 못하면 안 풀어주시겠다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도전해도 이길 방법이 없던데 이걸 어떻게 하죠?
기한도 일주일 밖에 없습니다.”
그 말에 야수신은 아주 기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셨겠지.
역시 차원의 마도신님답게 징계를 내려도 반드시 빠져나갈 길은 만들어 주셨군.”
차원신성에서 상위괴수 상대라면 조금 부담이 되지만 저걸 대가를 받을 생각을 하면 결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같이 돕겠다.
대신에 너희들이 찬 긴고아는 풀리면 모두 나를 다오.”
“예? 차원의 마도신님이 회수를 안 하신다면 얼마든지 가지십시오.”
주신의 도움은 비싸다.
그러나 저런 보물이 대가라면 할만 했다.
‘이들이 아직 보물의 가치를 모르니 쉽게 대답하는군.’
무엇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용사신이 주춤해서 엉성한 대답을 하자 야수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약속했다.
빨리 가자.
오래간만에 행성 괴수들과 어울려 보자꾸나.”
야수신이 모두를 이끌고 의욕적으로 나서자 뭔가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용사신과 동료신들이었다.
강력한 주신인 야수신이 직접 도와주니 고맙기는 한데 아주 기분이 이상했다.
‘이거 아무래도 전문가에게 속아서 사기를 당하는 어린애 기분인데.’
마법신은 뭔가 알 것 같은지 미묘한 표정으로 긴고아가 있는 장소를 만지고 있었다.
신기가 분명한 긴고아라는 제어구에서 마력이 넘실거리면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겨우 8써클에 도달한 자신의 경지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강대한 마력의 흐름이 머리를 감싼다.
‘권능을 발동 시킬 때마다 약한 흥분상태, 아니 고양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상위괴수를 잡아보겠다고 전력을 사용할 때마다 온몸에 힘이 넘치게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지독한 탈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다른 동료들이야 워낙 둔감하고 익숙하니 잘 모르지만 마도로서 항상 내면을 관찰하는 자신에게는 확실히 느껴졌다.
급격하게 고양된 신체와 권능의 반동으로 급격하게 권능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부활과 치유가 손쉬운 하위신이라서 천만다행이지 만약 고위신이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정도다.
그런데 이거 설마?
강제 진화와 폭주 유도 기능까지 있는 것 아니겠지?’
상위신이 신기를 제작하면 무조건 가장 중요한 신성이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차원의 마도신님의 신성은 바로 진리가 직접 부여한 ‘안주하지 않는 폭주’였다.
‘빛의 창조신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광폭하기 짝이 없는 진화와 발전의 신성이다.’
그런 존재가 만든 신기가 평범하게 도움만이 될 리가 없었다.
그 이상의 위험도 상존한다고 보아야 했다.
‘이 제어구는 폭주와 진화가 공존한다.
마구 사용하다가 버티지 못하면 미쳐 죽을 확률까지 있다.
지독한 양날의 검인가?
그러나 지극히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순수하게 장점만을 넣어 만들 수 있으면서 이렇게 치명적인 단점을 일부러 집어넣어서 개조했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을 하시지?’
차원의 마도신의 이런 상충하는 점은 마법신으로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일단 지극히 위험한 제어구임에는 확실했다.
급격한 발전을 대가로 미쳐 날뛸 우려가 언제나 상존하다니 결코 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든 차원신성의 상급 괴수를 잡아내야 했다.
‘일단 벗자.
무슨 폭탄도 아니고 이런 걸 쓰고 살 수는 없다.’
야수신의 반응을 보니 고위신에게는 굉장한 보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알겠지만 하위신인 지금의 자신들에게는 안정적인 기초가 가장 중요했다.
갑자기 중급신이 된 여파로 아직 권능의 성질조차 숙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어떻게든 여유를 가지고 권능을 깊게 파악하고 숙달하지 않으면 부실한 결과만이 남는다.
모래 위에 쌓아올린 탑처럼 무너질 뿐이었다.
‘이런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면 결국 붕괴된다.
죽지 않는 신이 된 이상 시간은 많다.
더 높은 직위를 노리기 위해서는 보다 견고한 기초가 필요해.’
이 생각은 모든 동료신들이 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가 이 제어구가 심상치 않은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벗으려고 하는 것이다.
야수신을 따라서 차원신성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차원신계에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잉-!
신계자아의 급박한 경고신호가 울렸다.
“경고합니다.
차원신계에 머물고 계신 모든 신과 다른 존재들은 지금 즉시 개인 신전 혹은 대피소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족은 지극히 위험하오니 전원 개인 신전 혹은 대피소로 회피를 바랍니다.”
차원신계를 뒤흔드는 경보음과 함께 중요시설의 여기저기서 방호벽이나 방호막이 발동되었다.
우우우우우우우-!
거기에다가 신계 거리 전체를 감싸는 신력 방호막에 모든 신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이건 거의 전면전 수준의 방호체계였다.
그리고 주신전 주변의 숲을 지키던 전율의 진군과 마신족들의 안색조차 변하게 하는 말이 울렸다.
“다시 경고합니다.
상급 마신왕급의 마력이 차원신계에 전면 투사될 예정입니다.
이 마력에 직접 접촉하면 마신은 폭주하여 폭사할 우려가 있습니다.
마신족과 기타 종족도 거리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급 마신왕의 마력이라면 농담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높은 마력에 접촉하면 하위의 마력은 흡수되거나 자멸한다.
다급하게 모두 피하는 와중에 그나마 버틸 자신이 있는 주신이상의 고위의 존재들은 다급하게 휘하세력을 모두 이동시켰다.
무슨 일이냐고 항의하거나 공황에 빠진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몇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신계가 몇 번이나 망할 정도의 전쟁을 치룬 차원신계였다.
책임회피나 추궁과 같은 전장에서 자긴 무덤을 파는 짓을 하는 약한 존재는 이미 쓸려 나간지가 오래였다.
문제가 일어나면 신속한 대처만이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대피가 끝나자 신계자아의 최종보고가 뒤따른다.
“대피완료가 확인되었습니다.
지금 개방합니다.”
차원신계의 주신전 허공에 천둥과 같은 거대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강대한 신격을 가진 존재가 공간이동을 하려면 그만큼의 신력과 권능이 더 든다.
당연히 주변에 미치는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그런데 하늘을 가르고 열려지는 초장거리 공간의 문을 통해서 검은 마력의 구름이 태풍처럼 몰아쳐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른하면서 짜증이 서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무 늦다.
그리고 약하다.”
주신전 아래로 천천히 하강하는 검은 구름 속에서 나온 음성은 마신족의 창조신으로서 숨길 수 없는 살의와 투기가 퍼져 나와서 차원신계 전부를 억눌러갔다.
중급 마신왕과도 대등하다는 전율의 진군조차 일순간 압박을 받을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었다.
신계자아의 다급한 음성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신계가 만들어내는 초장거리 공간이동으로 이동하면서 그 안에서 또 마력으로 공간이동하면서 거리를 단축하다니?
이런 이동방법이 가능한가?’
아무리 초장거리 공간이동이라고 해도 개방과 이동에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것도 무시하고 스스로의 권능으로 가속화를 시킨다.
모든 신들의 권능이 모아서 발동하는 신계자아조차 따라가기 힘든 연산력과 처리속도에 다른 신계자아들도 경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서 오십시오.
차원 독립신계 신계주신 차원의 마도신님의 복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둥-!
주신전의 정문 앞에 내려앉은 검은 구름은 잠시 차원신계를 둘러보다가 그대로 문을 통해서 들어서면서 지시했다.
“주신전에 전원 접근을 금지시켜라.
마력을 개방한 지금의 나는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예.”
마치 하위신처럼 정신없이 대답하는 신계자아였다.
검은 구름은 감정이 철저하게 통제된 인공자아인 자신조차 제정신을 차리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악의가 넘치는 마력이었다.
이걸 일반적인 신들이 보면 어떻게 될지는 예상이 되었다.
하위신이면 바로 발광하다 죽고 고위신이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도 주신전의 접촉을 끊도록 해라.
내가 영광의 자리에 앉아서 직결되면 최고위 창조신급 신계자아라도 자아가 붕괴할 확률이 지극히 높다.”
“……핫-!”
신계자아가 다급하게 주신전 주변을 봉쇄를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느긋하게 주신전 안으로 이동하는 검은 구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황금빛 구름에 둘러싸인 차원의 마도신이 흐릿한 웃음을 띠우면서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이겼다.
역시 혼자 움직이니 본래 실력이 나오는군.
후후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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