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33권
당장 대답하면서 감사해야 하는데 섬뜩한 예감이 스쳤다.
‘이.......이건 뭔가 미묘하게 이상한데?
빛의 창조신으로서 다시 삶의 기회를 주었으니 개심해서 충신이 되라고 해야 정상이 아닌가?
이거 저 피에 미친 황제처럼 또 줄을 잘못 잡은 것 아니야?’
성군 중의 성군이었던 선황의 아들들은 모두 유약하면서 욕심만 많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야망이 너무 컸으니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어난 이상 행성의 역사에 영원히 이름이 남을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스스로 황제의 자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바로 밑의 재상을 노렸지.
보통 재상이 아닌 행성 전부를 석권한 초제국을 만든 최고의 재상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목숨이 남아 있는 동안 황제 이상의 최고의 영화와 권력을 누리면서 만족감을 채우고 싶었다.’
그러니 황자 중 별종처럼 독보적인 야망과 패기, 능력까지 보였던 황제를 선택한 것은 필연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경쟁자인 친형제를 몽땅 죽이는 광기를 보일 줄은 상상도 못했고 그 이후로 질질 끌려 다녔지만 말이다.
‘가만있어도 황제의 자리를 안겨 주었을 것이었는데 그걸 못 참고 일을 벌이다니? 수습하느라 내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지.
적당히 욕심이 많고 덜 미쳤어야 했어.
그때부터 내가 이 꼴이 될 줄 알았어.
허나 다시 원래대로 부활했으니 기회가 있다.’
그런데 저 창조신에게 육친조차 무자비하게 숙청한 황제보다 더한 광기와 집착이 느껴졌다.
드러내고 있는 어둠의 마력조차 지옥의 악령 누구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진했다.
‘빛의 창조신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마력을 다루는 것도 그렇고 이 지독한 어둠은 뭐지?
이건 가까이 가서는 안 될 무엇인가다.’
마치 무능한 황제 덕에 충신을 포기하고 살기위해서 간신이 되었던 때처럼 위기감이 넘쳐흘렀다.
그래서 이렇게 완벽하게 부활시켜주었으니 당연히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상당히 괴상한 상황이다.’
빛의 신이 대놓고 충신은 포기하고 간신이 되라고 종용을 하니 말이다.
마신이면 모를까 상대는 분명 빛의 창조신이 맞았다.
‘나도 주변에 욕을 먹는 간신보다 충신으로서 칭송을 받는 것이 보기가 좋아서 그 쪽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충신은 포기하고 확실하게 간신이 되라고?’
그럴 수는 없었다.
누구도 간신을 목적으로 힘겹게 공부하고 죽도록 노력해서 관리가 되지 않는다.
주변 환경이 돌변해서 어쩔 수없이 살기위해 여기저기 배신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하 악령의 대답이 늦어지자 마신왕의 마력을 그대로 품어내는 차원의 마도신이 질문했다.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 방책을 선택한 주제에 스스로 변호하면서 주변으로 책임을 잘 떠넘기더군.
이런 교묘한 책임회피와 말솜씨를 보아서는 천부적인 간신의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겨우 평범한 충신이 되겠다고?
자신만이 아니라 나라까지 망하게 할 가능성이 있는 어설픈 충신 따위는 내게 필요가 없다.”
무능한 충신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차원의 마도신의 말에 간신은 뭔가 짜릿한 전율이 몸에 스쳤다.
아니 희열까지 느껴졌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재상으로 있었을 때 간단한 일도 처리 못하는 무능 주제에 고집만 센 부하들에게 수없이 윽박질렀던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말에 희열은 소름으로 바뀌었다.
“내게 쓸모가 없다면 부활을 취소하고 영격의 바닥까지 정기를 긁어내 최하위의 영격으로 환생을 반복하게 해주리라.
그러나 나름대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 특별히 기억은 영원히 남겨주마.
처음에는 선택권을 주지.
개나 고양이중 어느 쪽을 좋아하느냐?
생쥐는 어때?
포유류가 싫다면 개구리나 바퀴벌레로도 해줄 수 있다.”
단지 그렇게 말하면서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지옥의 마력이 요동을 치면서 창조신에게 몰려든다.
지옥의 악령들로서 이게 무슨 일의 전조인지 모를 리가 없다.
‘악령으로서 승격이 될 때 주변의 마력이 모여드는 현상이다.’
‘뭐? 빛의 창조신이 왜 지옥의 마력이 필요해?’
그런 광경을 보는 이계의 창조신들도 놀랐다.
차원의 마도신의 암흑의 날개가 지옥의 마력을 마구 흡수하면서 순도가 더해지고 작은 왕관 같던 검은 보석 뿔도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분명히 악마, 아니 마신들의 승급현상이었다.
‘지옥에 응축되어 있던 마력이 차원의 마도신님에게 전부 흡수된다.
상위의 마신왕으로 승급되고 있어-!’
‘그게 가능해?
‘순도는 지극히 낮지만 적어도 수십조가 넘는 마력이다.
신체가 버티지 못해.’
‘전부는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정제하면 일부의 흡수는 가능할지도.......’
그런 차원의 마도신의 마력집중에 간신이 가장 기겁을 했다.
마력은 현실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변화를 강요한다.
그리고 저런 강대한 마력을 가진 존재에게 지성체의 육체변환이나 운명조절 따위는 장난이었다.
‘정말 이성을 가진 벌레로서 영구히 환생을 거듭할 수도 있다.’
겨우 부활한 신체의 내부가 슬슬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서 떨려 왔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차원의 마도신의 음성이 울린다.
“후훗-! 기분이다.
무작위 환생으로 해주지.
포유류부터 곤충까지 다시 태어날 때마다 기대해라.
가끔 대박이 터지면 인간도 가능할지 모른다.”
우우우우웅-!
간신은 정말 방금 부활한 신체가 변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이제까지 허리를 숙였던 어떤 때보다 더욱 굽히면서 처절하게 외쳤다.
“반드시 최고의 간신이 되겠습니다.”
정말 가능하면 충신으로 남아서 칭송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저 창조신은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고 징벌도 감수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어떤 형벌도 지옥이 끝인 단순한 빛의 신이 결코 아니었다.
‘지옥보다 더한 상황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힘과 의사를 가진 존재를 거슬리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신체 변화직전에 머리가 땅에 박힐 정도로 숙인 간신에게 만족한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훗-! 그래야지.
재능이 있는 쪽으로 노력해야지.
좋아하지만 아무 성과도 볼 수 없는 쪽에 매달리면 개인과 사회의 커다란 손실이다.
진정한 간신의 길을 선택한 너의 목표는 백억이다.
투입한 행성 아니 항성계의 지도층이 되어서 평소대로 생활하면서 몽땅 망하게 해 버려라.”
“예-! 백.......백억이요?”
자신이 잘 못 이해하지 않았으면 이건 분명 죽이라는 숫자였다.
과거 초제국의 전체 인구를 혼자서 몰살시키라는 말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허나 다음 말에 말문이 막혔다.
“왜? 어떤 선인이나 성인도 얻을 수 없는 완벽한 부활의 대가로서 적은 것 같나?
적당할 것인데?”
“.......맞기는 합니다.”
악령으로 최상위에 도달한 자신이 알기에는 고위신이면 지성체를 부활시킬 수 있다.
정신체란 상위의 존재이기에 지성체의 하위의 존재의 생사조차 주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막대한 정기와 신력이 필요하고 금기이기에 하지 않을 뿐이다.
‘신들은 지성체가 죽으면 나오는 정기가 주목적이다.
그래서 지성체를 번성하게 한다.
정기는 죽어야 수확할 수 있는데 살려둘 이유가 없다.
그리고 따르는 신도가 신앙의 대가로 막대한 신력이 필요한 부활을 요구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활은 신의 입장으로서는 이익은 없고 손해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조차 뒤흔든다.
모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고 죽기 직전에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부활이다.
따르는 신도가 모두 부활과 영생을 요구할까봐서 금기로 정해진 이유다.
‘그래서 신은 어떤 이유로도 절대로 부활을 시키지 않는다.
어떤 사례조차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런 일을 겨우 지옥의 악령을 위해서 해줄 리가 없다.
그런데 행성 역사에도 거의 없는 완전한 부활의 대상자가 되었으니 어떤 대가라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간신으로서 일백 억을 죽이라니?
빛의 신이면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했으면 그보다 더한 선행으로 덮으라고 말을 해야 한다.
정 반대가 아닌가?
왜 더 큰 죄로서 갚으라는 것이지?
정말 빛의 창조신이 맞나?’
간신의 당연한 고민에 차원의 마도신은 추가로 말을 했다.
“그럴 능력이 없나?
충신을 위장했으면서 그 정도로 죽였으면 간신으로 전력을 다하면 충분할 것이다.
아니 대가가 너무 적나?”
좋아. 기분이다.
이계에서 반역한 지성체들을 더 죽일 수 있다면 상을 주마.
처음의 약속에다 더 추가해 주마.”
그 말에 땅에 머리를 박고 고민하던 간신의 머리가 확 들어졌다.
은신처에서 튀어나오게 만든 처음의 약속이 떠올랐던 것이다.
‘일억 이상을 죽인 악업이 있는 악령이면 부활시켜주고 그 이상을 죽인다면 마족이 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비록 마족이나 정신체로의 진화이다.
지긋지긋한 환생을 거치면서 다시 시작하지 않고 꾸준히 영격을 올릴 수 있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 질문했다.
“일백 억이 아닌 일천 억을 죽이면 정말 마신이 되는 것입니까?”
이 대답에 차원의 마도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겨우 백년도 못사는 필멸자 주제에 일천 억을 죽이겠다는 말을 바로 하는가?
그런데 정말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군.’
이런 위험한 지성체를 되살린 것에 대해서 창조신의 자비의 부분이 이의를 제기하지만 마신왕의 부분은 진심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죽일 대상은 적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지성체들이다.
‘지성체들이 서로 싸우다가 일천 억이상이 사라지면 현재 이계의 수준으로는 괴멸적인 타격이다.’
이계 초월자들의 끝도 모를 전력과 한없이 부족한 신족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런 큰 도움이 될 존재는 반길 뿐이었다.
“호오? 이백 억도 아닌 바로 일천 억이라?
패기가 아주 좋군.
좋아-! 아예 마족이 아닌 마신이 되게 해주지.
만약 일천 억을 넘겨서 죽인다면 너의 마음대로 다스릴 행성도 하나 주마.
정해진 정기만 바친다면 거기서 네가 충신 흉내를 내든 아무런 상관하지 않겠다.
독립마계의 마신으로서 완전한 지배권을 주리라.”
그 말에 간신만이 주변의 모든 악령들이 경악했다.
그렇게나 바라던 정신체로의 진화만이 아니라 행성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고위 정신체로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숫자지만 적을 죽인 공적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방법이었다.
지옥의 악령인 자신들에게는 아주 유리한 방식이었다.
‘다수의 지성체를 몰살한다.
수단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으며 약간의 지원만 받는다면 지극히 쉬운 일이다.’
악령들의 열렬한 반응은 부활한 간신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황제에게조차 하지 않던 진정한 복종의 모습으로 땅에 머리를 세차게 박은 것이다.
쿵-!
“맡겨주시옵소서. 전하.........아니 위대한 창조신이시여.
반드시 적의 행성 아니 항성계 전부를 뒤흔들어서 전부 망하게 해버리겠습니다.”
“좋아. 나는 널 이제부터 위장 충신으로 부르마.
너는 나를 차원창세신 코아라고 부르라.
앞으로는 진정한 간신으로서 능력을 보이라.
마신이 될 자신의 부귀와 욕망만을 생각해서 반역자들을 전부 죽여 공을 세우라.”
위장 충신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나마 대놓고 간신이라고 안하니 기쁘게 대답했다.
“예-!”
그렇게 간신악령을 정리한 차원의 마도신은 황제악령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살모사 황제. 너는 어떻게 할래?”
“살모사 황제-?! 으윽?”
대놓고 조롱하는 말에 격분하려고 했지만 그럴 입장도 힘도 없었다.
스스로 창세신 코아라고 소개한 저 창조신이 얼마나 지독하고 악랄한지는 기세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몸 주위로 넘실대는 검은 불길을 보면 생전에 누구보다 더한 패기로 초제국을 만들었던 광기마저 완전히 위축되어있었다.
결국 힘없이 고개를 똑같이 땅에 박으면서 말했다.
“살........살모사 황제. 당.........당연히 하겠습니다.”
그 순간 대지에 눌려진 이마의 느낌이 살아났다.
이미 악령으로서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여 부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어떤 고위신이라고 해도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창조력!
그런데 왜 이렇게 마력까지 강하지?
아니 어떻게 이런 마력을 가진 존재가 창조신이 될 수 있지?
너무 불공평하잖아?’
어떤 생각을 가졌든 살모사 황제와 위장충신이 부활해서 머리를 땅에 박고 복종의 기세를 보이자 마지막 한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최고위 창조신성의 지옥에서도 생전에 일억 이상을 직접적으로 죽게 한 악인은 이들이 전부였다.
‘어딘가 또 숨어있을지도 모르나 지금 하겠다고 나선이상 이들이 우선권을 받게 될 것이다.’
상위자로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자를 아주 좋아했다.
아니 명령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용맹한 부하는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귀찮은 과정을 거치면서 시범적으로 특혜를 베푸는 것이다.
“무식한 찬탈자. 넌?”
“하겠습니다.”
아무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찬탈자 악령에게 나름대로 감탄했다.
“나의 적이나 네가 그렇게나 사랑한다고 외치던 순진하고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이는 짓인데?”
“저의 편이 아닙니다.
또한 저를 부활시켜 주실 창조신의 의지라면 생각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모두 죽여 드리겠습니다.
일천 억만 죽이면 마신으로서 다스릴 행성을 주시겠다는 약속만 지켜주십시오.”
적은 죽인다는 무식 찬탈자의 힘차고 명쾌한 대답에 차원의 마도신은 아주 만족했다.
“남의 편이고 적이니 죽여도 상관없다는 생각인가?
무식해서 깔끔하구나.
적과 아군이라는 단순한 구분도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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