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33권
그렇게 차원의 마도신이 잠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이에 이계에서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차원의 마도신이 절대거리 코아(絶代距離 Core)로 만들어 놓은 검은 길, 정식 명칭 ‘생사의 일방통행(生死의 一方通行)’이 문제였다.
신족의 세력에서 일방적으로 전력을 현세계 전부에 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위협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괴해야 한다.
자칫하면 병력 우위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심각성을 인지한 지배자급의 초월자들이 파괴를 위해 집결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신족의 현세계 진출을 막기 위해 쳐놓은 지지선 앞에 모인 초월자들의 군세는 확연히 나뉘어져 있다.
전면을 가득매운 군세와 뒤에서 몰려온 군세의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투기, 그리고 뚜렷하게 벌어져있는 간격이 있는 것이다.
절대로 합치지 않고 마치 전면전을 벌이기 직전의 서로 전열을 정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전투 준비로 보였다.
그 꼴을 보는 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초월자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초청한 존재들은 안 오고 왜 오는 거야?’
‘지배자급 미만은 도움이 안 돼.
왜 필요가 없는 병력을 다 끌고 왔지?’
‘이 미친 놈들이 설마 지금 끝장을 보자고?’
‘아무리 권력싸움 중이지만 이럴 때에?’
바로 뒤에서 자신과 동등한 군대가 대열을 정비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자신들도 신족을 향한 군세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로 전투준비가 완비되어 가면서 서로 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후방 군세의 뒤에서 앞으로 전부의 기운을 억누르는 강대한 기세를 뿜어내는 초월자들이 나서자 분위기가 바뀐다.
그 수는 거의 일천 명이 넘었지만 서로 다른 세력인 듯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렇게 추가 지원된 전력의 대표자들만이 나서자 전면에 대기 중이던 초월자들도 어쩔 수 없이 각자 마중을 나갔다.
양 군세가 대기하는 간격의 가운데서 결국 마주친 그들은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오래간만이군.”
“어서 오게.
동지들이여.”
하나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분명 자신들이 추가 요청한 것은 검은 길을 파괴할만한 지배자급 이상의 집결이었다.
주목적은 물론 진리에게 인정받은 동지가 애타게 부르짖던 최고급 전력의 확충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후방의 초월자들이 보급을 전담하는 대신 여기의 처리는 자신들에게 위임한다는 협약을 어기고 각자의 전력을 모두 끌고 왔다.’
더구나 신기와 갑옷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마주쳤으니 좋은 분위기로 환대하기는 틀렸다.
그래도 초청에는 응했으니 일단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나 곧 날선 추궁이 따랐다.
“왜 전부 왔나?”
“그것도 정예들을 전부 이끌고서 말이야?”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니 바로 오라는 말만 전해달라고 했는데?”
“아니 너희들 정도면 환영이지만 군대는 왜 이끌고 왔지?”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하고 조롱에 가득 차 있었다.
“풋? 동지?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케케묵은 단어를 쓰나?”
“신족에게 수작만 부리더니 똑같이 과거에 살고 있군.”
“너희들이 똑바로 못하니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나?”
이렇게 시비를 거니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인가?
우리는 신족의 강압적인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같이 혁명을 일으킨 동지가 아니었던가?”
“그때의 뜨거웠던 진심과 의지를 벌써 잊었는가?”
그 말에 후방의 군세를 이끌고 온 초월자들이 싸늘하게 물었다.
“그 후가 문제지.
하는 일도 없이 일방적인 지원만 챙기고 있지 않나?
우리는 후방에서 정기를 버느라 고생하는데 말이야.”
“검은 길을 파괴하고 새로운 신족 저지선을 만드는데 직접 협조하라고?
아니면 다시 신족의 지배가 될 수도 있다고?
이건 거의 협박이 아니던가?”
“그동안 걷어갔던 정기로 부족했나?
더 필요한가?”
“신족을 멸족하겠다고 거의 전 병력을 끌고 갔다가 진리에게 모두 잃은 너희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너희들이 우리의 위에 있지?”
대놓고 도발하는 말에 전면의 군세의 초월자들에게서 살기가 일어났다.
본래 강경파인 자신들과 온건파인 이들이 만나면 벌어지는 일상적인 논쟁이지만 이번에는 심했다.
이렇게 갈등이 표면화된 이유는 있다.
신족의 과다한 탄압을 명문으로 삼아서 모든 지원체, 정신체들의 지지로 승승장구하던 혁명이다.
그러나 진리로 인해 마지막 신족 숙청단계에서 허무하게 주저 않았다.
진리의 바람성의 주변으로 도망친 신족세력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집결한 최정예로만 이루어진 일백만이 넘던 대군세가 진리에 의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오직 우주공간을 난자하는 붉은 선과 파란 선의 무수한 교차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살아남은 것은 오직 지배급들의 초월자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었지.’
양쪽의 검 날이 붉은 빛과 푸른빛으로 나뉘어서 빛나는 대검을 오른손으로 든 진리가 가까이 오면서 말하자 왜 자신들만 살아남았는지 알았다.
“이계의 신족과 내가 인정하는 존재들 외에 내 거처에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을 너희들이 감히 어겼느냐?
잘못된 결정을 했으니 지도자라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하겠지?
너희들은 저들처럼 곱게 말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의 말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이계에 영원히 남을 본보기로 만들어 주리라.”
현세계의 창조주와 전성기의 모든 창조신들이 합심한 전력을 무시하고 오히려 압박해서 물러나게 했다는 진리의 투기였다.
상상을 초월한 살기에 연속된 승리로 자존심이 하늘에 닿았던 지배계급의 초월자들인 자신들이 모두 굴복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항을 포기하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때 처분되지 않은 것도 진리에게 인정받은 동지가 엎드려 빌어서 얻은 최선의 결과였다.
‘진리시여. 약자에게 기회를 주옵소서.
당신의 기준대로라면 저희는 약자이옵니다.
그럼 저희들에게도 용서받을 자격이 있나이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간절하게 비는 동지를 본 진리는 잠시 말이 없다가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허어? 네가 나에게 엎드려 애원하느냐?
참으로 귀한 부탁이구나.
너를 보아서 저들만은 용서하마.
하나 명심해라.
다시는 내 앞에서 엎드리지도 빌지도 마라.
각자의 길을 가는 이계 모든 강자들의 영원한 목표이자 지표인 십중심이 될 자질이 있는 너다.
그런 네가 굴복하면 너의 길을 따르는 모든 강자들의 패배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모두의 정점에 설 너의 패배는 전원의 패배이고 추락이다.
네가 단지 후보라고 해도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말고 끝없이 강해져서 나의 자랑이 되어라.
이번만은 용서해 줄 것이니 이제 물러가라.’
‘감사하옵니다.’
그렇게 진리에게 살아남고 동지의 부축을 받으면서 모두 정신없이 허겁지겁 도망을 쳤다.
한참을 도주하여 지금 영역에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혁명군의 전력의 대부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초월자 전 병력 일천만 중 일백만만 사라졌지만 전력만으로 생각하면 오할 이상이 소거된 것이다.
‘일백만-! 일백만의 동지들이 단숨에 말소되었다.’
‘누가 진리가 현세계 창조주처럼 침묵할 것이라고 자신했나?’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사실을 알면 신족들이 다시 공세로 나올 수도 있다.’
너무나 참혹한 사실에 공황상태에 빠져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하는 자신들을 수습한 것은 진리에게 지적을 받고 의기소침하던 동지였다.
‘그래서 내가 반대했지 않는가?
진리님은 결코 자신의 주변이 시끄러운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신족들이 저 곳으로 도망치기 전에 막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잔여 신족 거의 전부가 진리님의 바람성 주변으로 도망간 이상 멸족은 불가능하다.
원래 계획대로 경계선을 여기 만들어 봉쇄하고 신족끼리 자멸하게 한다.’
그렇게 되어서 쓰고 처분할 배신자 신족을 적극 지원하여 서로 싸우게 했다.
그리고 현세계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이곳에 저지선을 치고 철통같이 지켜왔다.
‘이런 갈등은 그때 당한 피해가 너무 큰 부작용이었다.’
온건파이든 강경파이든 신족에게 계속 이길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진리에게 최정예 전력이 한 번에 말소 당해버린 것이다.
엄청난 창조주의 힘에 겁을 먹어버린 온건파들이 너무 많이 생겨나 버렸다.
‘저런 힘을 가진 허계의 창조주인 진리가 신족의 편만을 든다.’
‘우리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신족에게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힘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다른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온건파들은 현세계 미개발지역에 숨어들은 신족탐색과 토벌을 명분으로 남은 전력을 나누었다.
그래도 신족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으니 연합으로서 작용하면서 협조를 했다.
저지선의 보급은 담당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독자적인 군벌이 되어 버렸다.
‘공동의 적은 있어서 연합은 유지된다.
그러나 신족이 저렇게 약하니 권력투쟁을 멈추지 않는 상태이지.’
그 후 강건파와 온건파는 끝없이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초월자의 전력은 분명 엄청나게 늘었으나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이 그때와 비슷한 이유였다.
‘하나 숫자는 저들이 많아도 전력은 자신들이 위였기에 감히 직접 덤비지는 못한다.’
이제까지 살벌한 상황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서로 병력을 대치시킨 지금 상황에 과거에 진리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수치를 들먹인다면 전쟁을 하자는 의미였다.
“지금 오백억년 전의 공과를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인가?”
“그때 진격은 너희들도 찬성하지 않았는가?”
분노어린 기색의 전방의 초월자들에 비해 후방의 초월자들은 여유로웠다.
신족들끼리 이간질시켜 약화시키기 위해 공작을 벌이고 반역세력에게 정기를 지원하느라 자체적은 발전이 더딘 저들과 자신들은 달랐다.
‘모든 무력을 손에 쥐고 주도권을 놓지 않던 혁명의 강경파들.
그 오만으로 진리의 분노를 불렀지.
우리는 오로지 저들의 폭주를 막고 세력을 능가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정해진 최소한의 지원만 하고 남은 대부분의 정기를 신들만의 전력을 키워왔고 마침내 이 정도까지 동등하게 올라선 것이다.
덕분에 지금 군세의 수에서 압도적인 우위였다.
바로 권력을 위한 전투를 벌여도 이길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총합전력은 역시 우리가 위다.’
‘다만 부족한 것은 바로…….’
바로 전방의 초월자 뒤에서 암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명의 초월자가 문제였다.
그의 눈은 자신들을 넘어서 후방의 군세를 계속 확인하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서로 살기를 피우면서 대립하고 있는 지배자급의 초월자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받지 못하고 있는지 상관도 하지 않는다.
끝없이 주변을 전력으로 탐색하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
‘절대적인 강자의 존재의 부재인가?’
‘진리의 인정을 받은 존재들.
일명 이계 십중심 후보들이 역시 열쇠인가?’
‘진리조차 인정하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저 동지가 계속 강경파에 붙어있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후방의 군세를 계속 파악하던 이계 십중심 후보가 결국 포기하고 물었다.
“동지들이여. 그들은 어디 있는가?
왜 같이 오지 않았지?”
간곡한 어조에 후방의 군세를 이끌고 온 초월자들도 적대만을 표시할 수 없었다.
지금 묻고 있는 진리에게 인정받은 초월자만은 결코 권력이나 욕망에 물들지 않았다.
신족의 지배를 타파하는 혁명의 최전방에서 서서 가장 많은 전투를 치르고 아무런 권력도 차지하지 않는 진정한 혁명가였다.
그리고 점점 농도가 감소하는 정기로 인하여 초월자들의 약화를 우려하여 진리에게 받은 모든 권능의 정보를 아낌없이 베풀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결국 그들의 입에서도 같은 호칭이 나오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동지.”
“누구를 찾고 있나?”
초월자들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이 재촉했다.
누구를 찾는지 이들은 정확히 알면서도 대답을 해주지 않고 있었다.
결국 정확하게 물었다.
“다른 이계 십중심 후보들.
분명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면 이번 소환에 응해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검은 길만 파괴하면 모두 들어주기로 했는데 왜 그들이 같이 오지 않았는가?”
강경파 초월자들을 간곡하게 설득하여 겨우 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들의 요구조건은 하나였다.
초월자의 지배와는 완전 별개의 독자적인 구역 제공이었다.
방대한 현세계로 보면 아주 일부였으나 완전한 자치권을 요구해서 곤란했으나 결국 통과시킨 것이다.
‘검은 길을 초월자들의 군세가 총공격을 퍼부었는데도 파괴는 되지 않고 오히려 확장된 공포 덕분이지.
이제까지의 논리적인 설득보다 더 효과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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