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33권
언제 두들겨 맡았는지 모르게 단정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는 후계의 모습에 임폴리이먼트는 시선을 여창조신에게 향했다.
“일반 창조신 골든 아이디얼(Golden Ideal).
너에게는 차원신계에 파견된 일족의 관리와 지옥구원계획에 파견될 차원신계의 신들과의 조절을 맡긴다.
중급 창조신 파퓰리스트의 지시를 받아서 이상 없이 임무를 수행하리라 믿겠다.”
“예. 맡겨주시옵소서.”
여창조신의 당찬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추가로 덧붙였다.
“차원신계에 성마신 전지의 성과 전율의 진군이라는 마신이 있다.
그들은 강하다.
가급적 마찰을 일으키지 말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차원의 마도신에게 보고하고 뒤로 빠져라.
오직 신계운영과 공동사업에만 도움을 주되 어떤 분란이나 그 외의 업무에도 나서서는 안 된다.”
그 말에 여창조신이 다시 반문을 했다.
말 그대로라면 단지 일만 해주고 모두 무시하란 뜻이었다.
“차원신계에는 절대 개입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현재 차원신계는 창조신계가 판단하기에는 거의 신계관리주신들의 전쟁터다.
여신혈맹의 여주신들과 정령주신들의 원한을 생각하면 안 그러면 이상하지.
기본적으로 올라오는 정보는 왜곡이 심하고 다른 계통으로 파악되는 정보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독립신계라서 직접 개입과 조사도 제한된다.
즉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파악이 힘들다.
하지만 거의 내전 상태라는 예측은 하고 있다.
이번 일로 사회신족의 고위신들의 파견을 어쩔 수 없이 보내나 그들의 안전에만 전력하라.”
즉 여창조신이 차원신계로 직접 파견 가는 이유는 업무 조율 때문이 아니다.
전지의 성이나 전율의 진군, 악명 높은 여신혈맹의 여주신들, 다른 신계관리주신들에게서 일족을 보호하는 일이 주가 된다는 뜻이었다.
“차원의 마도신과는 꽤 장기간 공동사업을 해야 할 것 같으니 가급적 얼굴을 붉힐 일은 피하도록 해라.
일족의 보호 다음으로 이 지침을 최우선으로 하라.”
“알겠사옵니다.”
여창조신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고 삼대를 쳐다보았다.
멍청하게 아버지의 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서 특위 창조신들의 영역으로 겁 없이 침투하여 이번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철이 없어도 정도가 있다.
특위 창조신들과 명문신족들이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함부로 들어가다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구해왔지만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속인 놈은 나쁘지만 바보같이 속은 놈은 어리석지.
그것이 일족을 이어받은 후계자라면 기본적인 자질 문제다.’
그런 오리진의 지극히 못 마땅한 시선에 바로 반응한 삼대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경솔하고 어리석었다.
일족에게 무려 일조 이천 억의 손해를 한 번에 보게 하는데 일조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리진에게 무자비하게 맞았지만 억울함 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추가 조치를 기다릴 뿐이었다.
“일반 창조신 골든 레블루션(Golden Revolution)’
“예.”
오리진은 삼대와 다른 창조신과 주신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번 일의 책임을 물어서 삼대의 직위를 박탈한다.
지금부터 차원신계에 파견된 고위신들이 전원 복귀하기까지 사회신족의 창조신으로서만 일하라.”
“!!!”
“!!!”
“!!!”
창조신들과 후계, 여창조신까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후계에게는 큰 사업의 관리를 맡겨 기회를 주었는데 삼대만은 용서 없이 혈족으로서 인정을 박탈해버린 것이다.
차원신계로 파견나간 모든 고위신들이 복구라는 기한을 정했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장기간이 된다면 사실상 정령계와 동급의 중징계였다.
후계자로서 신력상승이 정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창조신들에게 추월당할 수도 있었다.
이번 결정의 충격은 후대인 파퓰리스트가 가장 컸다.
‘아버지는 손자를 누구보다 귀엽게 여기셔서 혹시라도 후대로 바로 임명하지 않을까 견제까지 했다.
그런데 설마 나에게 속았다고 삼대의 자리를 박탈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자신은 후대의 자격을 박탈되는 문제가 있어도 바로 아들이 후계가 될 것이기에 마음껏 일을 벌일 수 있었다.
임폴로이먼트는 그 모든 것을 꿰뚫어보듯이 최후의 보루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제 내가 후계의 자리를 잃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회신족의 창조신이 되어버린다.
저 자리로 밀려난 수많은 배다른 형제들처럼 말이지.’
오리진의 바로 밑의 의자에 앉아있는 창조신들 대부분과 원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주신들 중 일부는 바로 경쟁에서 밀려난 오리진의 혈족들이다.
그래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는 창조신과 주신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삼대까지 확정되어서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후계구도에 변동이 생긴 것이다.
모두의 의지가 바쁘게 교환되었다.
‘후계에 다시 도전할 기회가 이렇게 오는가?’
‘그렇게 결정하신 것 같군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이런 큰 사업에서 성과를 보인다면 무시할 수 없는 명분이 됩니다.’
명문 중의 명문인 사회신족의 후계가 되기에는 능력부족을 자인하고 일족의 일원으로서 만족했다.
하나 상황이 이렇다면 다시 오리진의 후계를 꿈꾸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일족 전체가 요동치는 분위기였지만 임폴로이먼트의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고 삼대에게 재차 확인을 했다.
“대답은?”
“합……, 당하신 처사이옵니다.”
이제 자격을 잃은 삼대가 힘겹게 대답하면서 직계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장 마지막 창조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어느새 오리진의 바로 앞에 있던 자리는 사라지고 맨 끝에 나타나 있었다.
저기에 힘겹게 앉자 자리 위의 명패에 빛나던 삼대라는 직위가 사라지고 이름만이 남았다.
이제 삼대가 아닌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후계의 눈빛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차라리 내가 후계의 자리를 잃는 것이 상황이 나았다.’
솔직히 자신보다 잘나서 질투했지만 효심도 깊고 너무나 자랑스럽던 자식이었다.
그런데 못난 아비의 질투 때문에 추락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견딜 도리가 없었다.
‘그보다 나마저 후계의 자리를 잃는다면 견딜 수 없는 사태가 되어버린다.’
후계의 혜택은 오리진 다음이다.
아들이 저렇게 강해진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었다.
잘못하면 모든 것을 잃고 다른 능력을 충족하지 못한 다른 혈족들처럼 사회일족의 일원으로 만족해야 할 사태였다.
아니 과거의 경쟁자들이 모두 그렇게 떨어져 나갔다.
후계경쟁은 용납해도 분란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일족의 오리진으로서 냉철한 조치였기에 누구도 반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실제로 옳았다.
이제까지 최소한 후계문제로 분란이 없고 필사적으로 일만 해왔으니 말이다.
“모든 사회신족의 창조신들과 주신에게 명령한다.
이번 천국개조사업 ‘영웅과 악당’의 성공에 전력을 기울여라.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에게 합당한 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 상이 무엇인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다.
완전히 멀어졌다고 생각한 후계의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
“핫-!”
사회일족의 열의에 찬 힘찬 대답을 들으면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임폴로이먼트였다.
삼대를 독단으로 직위를 박탈한 것에 대해서 반발이 있어야 하지만 전혀 없었다.
혼자서 진리의 시대를 이겨내고 올라선 상위 오리진의 힘과 기세는 모든 사회일족의 창조신들과 주신들을 누르고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반항심보다 모두의 눈에서 오로지 열의만이 피어올랐다.
‘다시 필사적으로 뛰어야 하는 시기가 왔군.’
‘이번에야말로 나의 능력을 보여주겠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임폴로이먼트는 일족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느끼면서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삼대의 자격을 잃은 손자나 원인이 되고도 후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들에게는 더없이 잔혹한 조치였지만 후회는 없었다.
‘비록 자식들에게 못할 짓은 했지만 일족이 유지되어야 가족도 살아남는다.
일족이 망하면 모두 끝이야.’
찻잔에서 반짝이는 아기발도의 신기가루를 보면서 은은한 투기를 피워 올렸다.
‘과거에 비해 많이 평화스러워진 창조신계라서 잠시 잊었지만 과거 창조신계는 지독한 격류 속이었지.
후계고 직계고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것은 오로지 승자와 패배자뿐이었다.’
하루에도 몇 명의 창조신들과 오리진들이 실각하고 그 자리를 전혀 모를 창조신들이 채웠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강자들과 기존의 지배층간의 너무 격화된 결투에 투기장까지 마련될 지경이었다.
‘그 때는 투기장에서는 자발적으로 참전한 강자들이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소리가 멈추지가 않았지.
승리로써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만 하면 성공하는 그런 기회의 시대였어.
그리고 더없이 순수한 투쟁의 시대였지.
진정한 약육강식!
약하면 먹히고 강하면 먹어치우고 나아간다.’
진리가 직접 개입한 격동의 시대에서 수없는 사투를 거치고 살아남은 상위의 오리진들은 강하다.
지금의 인증전으로 만들어진 존재들과는 격이 달랐다.
몇 번만 버티면 창조신이 되는 지금의 세대와는 달리 자신들은 매일 사투의 연속이었으니 힘과 각오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아기발도도 죽이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나 최상급 특위 창조신들과 최고위 특위창조신님이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그 후 다른 방법으로 전리품을 회수했을 뿐이었다.
다만 차원의 마도신이 너무 완벽하게 처리해서 엄청난 용병 대가를 치렀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일족 창조신들의 전력만 온전할 수 있다면 감수할 수 있었다.
‘특위 창조신들과의 문제?
후계의 걱정이라?
이 정도의 위기야 과거에는 일상이었지.
덤빌 테면 덤벼보아라.
왜 상급 오리진들은 창조신장님조차 함부로 못 대하시는지 깨닫게 해주리라.
이번 사업만 성공하면 나는 드디어 최상급 창조신이 된다.
그걸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지.
마도신과 협조이든 아니면 특위 창조신들과 정면충돌이든 말이야.’
후우우우우우우-!
신력에 의해 뜨겁게 달아오른 차의 김을 부는 임폴로이먼트의 눈에는 더욱 뜨거운 투지가 서려있었다.
* * *
그리고 촬영장에 도착한 차원의 마도신은 기겁을 했다.
수많은 고위 천족들이 엄청난 숫자의 의상과 화장도구를 가지고 도열하고 있는 것이다.
들고 있는 옷은 온통 반짝이는 보석과 장식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거기다 여기저기 활짝 핀 꽃 천지에 조명까지 현란하니 이게 무슨 촬영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니 기본적으로 이런 분위기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만두고 도망칠까?
그냥 내 신계에서 얼굴사진만 보내주고 알아서 하라면 될 것도 같은데?’
진심으로 그렇게 고민을 하는데 열세 쌍의 하얀 깃털의 날개를 가진 최고위 천족이 기품 있게 인사하면서 말했다.
“로브를 벗으시지요.”
“……빠르군.”
이미 도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강행돌파는 쉬운 일이지만 이렇게 준비까지 했는데 도망치면 나중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천족들이 호기심과 존경심 어린 수많은 시선이 주시하고 있으니 뭔가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아니 생소했다.
‘호의적인 시선이라?
오백 주우주의 정예 앞에 혼자 설 때부터 더 긴장되네.’
그래서 살짝 로브를 당겨서 눈 바로 밑까지 들러나게 했다.
그 모습을 본 최고위 천족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영 하기 싫어하는 모습이 못 마땅했지만 상급 창조신 대우이면서 후계님과 삼대님까지 혼자서 박살을 내고 특위 창조신들과 혼자 싸운 강대한 창조신이었다.
감히 뭐라고 하지 못하고 침묵과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
“이게 벗은 것이다.
얼굴은 이정도만 나오면 되지 않는가?”
차원의 마도신의 말에 최고위 천족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다시 말했다.
“일단 목욕부터 하셔야겠습니다.”
최고위 천족이 보기에 얼굴과 옷도 중요하지만 복장이 더 큰 문제였다.
지금 차원의 마도신의 복장은 언제나 입던 검은 로브 밑에 간단한 수련복을 겹쳐 입은 형태였다.
무엇보다 막 회복을 끝내서인지 피 냄새와 살이 탄 그을림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그리고 차원의 마도신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기는 투기와 위압감은 지독했다.
사명의식에 불타는 최고위 천족들이라서 버티고 있지 일반적인 천족이라면 모두 기절했을 정도였다.
하나 갑자기 목욕을 하라는 소리에 더욱 어이가 없어져 반문을 하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뭐?”
“기초부터 튼튼히 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바로 이 드러난 기초의 외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만 그게 이 상황과 무슨…….”
그 말과 동시에 수십 명의 아름다운 여성천족들이 커다란 도구들을 들고 나타났다.
우르르르르르르-!
마치 벽을 만들듯이 병풍을 겹겹이 치고 욕조를 내려놓고 향기가 나는 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혼자만 있게 하고 물러나는 모습이 워낙 익숙하여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최고위 천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욕시중이 필요하시다면 아이들을 들여보내겠습니다.”
“됐다.”
결국 알몸이 되어야 할 상황인데 여기서 천족들의 시중까지 받으면 더욱 황당해졌다.
바로 간단하게 거절을 하고 복장을 풀고서 욕조에 몸을 넣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이왕 할 바에는 빨리 처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불필요한 털을 없애는 전신제모(全身除毛)도 과정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준비를 할까요?”
“……하지 마라.”
우우우우웅-!
갈수록 더 심해지는 권유에 은은한 살기까지 비치자 그제야 주변에서 기척들이 사라졌다.
비록 남의 신계지만 오래간만에 욕조에 있으니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따스한 물이 주는 포근한 느낌에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이건 나름대로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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