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31권
자신 있게 나라고 말해야 하지만 아직 자신이 없었다.
아니 처음 나타날 때 이미 깨달았다.
아직 한 명을 상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지금 싸우면 반드시 진다.’
자신이 익힌 바람가의 오의는 분명 뛰어난 절대권능이다.
하나 종합적인 권능이기에 하나하나 따지면 다른 10중심들의 오의에 손색이 있었다.
그러니 이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수없는 결투를 겪고 보완을 한 먼 미래의 일이다.
그래서 대답을 늦추는데 흑염의 절대자가 갑자기 눈을 빛내면서 묻는다.
“아니면 사이안이 이미 미쳐서 한 헛소리냐?
머리만 쓰던 놈이니 미친다면 우리 중 가장 먼저일 것 아니냐?”
“…….”
흑염의 절대자의 아주 본능적인 질문이었다.
‘상당히 말을 조리 있게 한다고 했더니 이 질문 때문이었나?
잘 나가다 아주 감정을 담아서 말하는군.
흑염이 그러면 그렇지.’
아주 사적인 개인감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 흑염의 절대자 입장에서는 심각했다.
사이안이 직언을 한다고 욕을 한 것이 한두 번도 아니니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하나 대놓고 끝장을 낸다고 10중심을 전부 쓰러트릴 도전자를 만든다고 한 적은 결코 없지.’
갑자기 나타난 위협적인 상황에 자극받은 본능이 일시적으로 강화되어서 느낀 직감이었다.
자신들보고 미쳤다고 했지만 사이안 본인도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회의석상에서 섬뜩한 발언만 내뱉는 그 모습은 결코 현자계열이 정점 회색의 절대자가 아니었다.’
격렬하게 분노하면서 세계 전부를 매도하던 사이안은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던 현자가 아니었다.
마치 혁명자처럼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변화가 없는 세상을 증오하여 파괴하려는 의도만이 넘실거렸다.
10중심이라는 최고의 위치에 도달한 자신들은 그런 반항의 시기가 절대 아니었다.
‘사이안이 정상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미친다는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
오히려 혁명의 대상이 된다.
방금 한진안이 이야기한 것처럼 반드시 처리해야할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색의 절대자 사이안이 미쳐서 잘못된 발언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잘하면 파괴신이 되는 결과를 벗어날 수도 있다.’
사실 모든 10중심은 자신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점과 미친다는 말은 납득하지 못하지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정도로 최고의 현자인 회색의 절대자의 예측은 완벽하다.
그러나 완벽한 예측이 미쳐서 실수한 것이라면 아닐 수도 있다.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직감이라서 이렇게 묻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었다.
‘아니면 내 바람이 직감이라고 착각한 것인지도 모르지.’
그래도 희망을 품었다.
한진호가 아들이 너무 똑똑해서 사이안과 맞먹는 현자로서 인정받았다고 입이 닮도록 자랑을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확한 사실이었다.
사이안이 부재할 경우 대리를 해내는데 조금의 손색도 없었다.
아니 불필요한 부분을 처분하는 단호한 면에서 더 완벽하기까지 했다.
‘사이안과 동등한 현자라면 회색의 절대자의 이상 유무를 감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정말 사이안과 똑같았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지 환하게 알면서도 잔혹하게 끊어버린다.
“둘 다입니다.
사이안님도 미치기 직전이고 제가 계획의 주 대상이 맞습니다.
본래는 꽤 먼 미래에서 시작하려고 했기에 아직 미진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10중심들이 미친다는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 몇 마디의 무심한 말로 무참하게 박살나자 저절로 울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최대한 참았다.
이미 발전단계에 들어간 절대계는 이미 10중심 개인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가치의 기준을 세우고 조율한 반드시 회색의 절대자가 있어야 했다.
미친다는 사실보다 회색의 부재가 더욱 위협적이었다.
다른 10중심들도 만만치 않은 머리와 경험을 가졌으나 현자로서 소양은 떨어졌다.
현자처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상과 벌의 기준을 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회색의 절대자 사이안이 스스로에게 영원봉인 이그드라실을 걸고 침묵해버린 이상 대체할 현자가 시급하게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까지 대리를 해온 진리의 절대자가 반역을 하고 도전을 했다.
위기를 느낀 다른 현자들은 모두 침묵하고 은거해 버렸으니 완전히 외통수지.’
각 계열의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준이 없이 각자의 가치와 힘에 의해 흔들리면 결국 서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놓고 반역 어쩌고 한 진리의 절대자이지만 사이안과 대등한 현자라고 하니 성향을 파악하고 반드시 회유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말을 섞어보니 슬슬 겁이 나려고 한다.
아니 너무 잘할 것 같아서 결과가 무서울 정도였다.
‘이건 정말 무섭네.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냉정하기가 짝이 없다.
가족이나 혈족 외에는 거의 영원체로서 대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군.
그리고 실행력은 사이안보다 더 뛰어나.
여기에 머리도 누구보다 잘 돌아가고 힘조차 우리와 비견될 정도로 강하다.
이렇게 냉정한 판단력과 실행력이 있다면 이건 지배자로군.
더구나 힘까지 이 정도면 정말 회색의 절대자 노릇은 잘하겠다.
아아-! 나도 이 정도로 잘난 아들이 있었다면 다른 10중심들이 부럽지 않은 세력을 만들었을 것인데 이것조차 뜻대로 안 되네.
아무리 씨를 뿌려도 왜 한 명도 안 생기나?
아무리 내가 돌연변이라고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젠장-! 내 덩치가 커서 맞는 상대를 찾기도 힘든데 이것도 포기해야 하나?’
잡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회색의 절대자를 대리할 수 있는지 성향파악의 결과는 합격이었다.
다른 10중심들이 보내기 전에 한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내 마음에 안 들면 회색의 합격이라고?
말 하는 걸 보니 확실히 제정신들이 아니야.’
말을 몇 마디 나누어 보니 도저히 용납이 안 되려고 하니 합격이다.
그래서 일단 회유하기로 결정했지만 한마디는 꼭 해야 했다.
‘결국 또 사이안의 말대로 될 것 같다.’
영원체이면서 한진호의 아들이기도 하니 이길 수는 있어도 제압하여 봉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대로 급성장해서 만약 10중심 전부가 패배한다면 정말 후련하게 죽어줄 수도 있다.
‘다만 그 이후의 미래가 두렵다.’
영원체와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신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구 취급하는 무지비한 창조주는 싫다는 명분으로 반기를 들었던 자신들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사이안의 영향을 잔뜩 받아서 과거 창조주보다 더 할 것 같으니 결국 잔소리를 해야 했다.
“너 정말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나 가차 없이 말하고 처리하는구나.
사이안이 키운 것은 확실해.
그러나 그렇게 냉정하게 처분만 하지만 말고 벌 준 다음에는 반드시 따로 챙겨주고 달래줘라.
안 그러면 지금 사이안의 처지처럼 완전히 혼자가 된다.
너도 그렇게 될까 하는 말이다.
아니 우리와 싸운다고 하는데도 아무도 안 따라온 걸 보니 이미 늦은 것 같다.
너 벌써 혼자지?”
“!”
또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을 긁고 있었다.
평소라면 코웃음을 쳤겠으나 지금은 현상이 이러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영원을 같이할 반려이고 혈족이고 직계라서 특별하게 대했던 아들이었다.
설마 직접 오지 말라고 했다고 대놓고 자신과 상관없다고 선언까지 할지는 몰랐다.
용신족을 10중심의 분노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지만 화가 안 날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나의 상황과 사이안님의 처지까지 생각해보면 분노만 할 일은 아니군.’
사이안님이 스스로 봉인했는데 아무도 풀려고 하지 않는다.
둘 다 현자로서 절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결국 누구도 도우려 들지 않는다.
현자로서 합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모두에게 이해득실을 따졌으니 똑같이 대우를 받았으니 당연했다.
‘알지만 씁쓸하군.’
말이 없이 술잔을 기우려서 마시는 한진안에게 흑염의 절대자는 신신당부를 했다.
“네가 먼 미래에 창조주가 되면 누구에게라도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끝장은 내지 말고 반드시 기회를 주어라.
도저히 안 되겠으면 최소한 가족만이라도 예외를 두어라.
바람가의 가주는 가족에게 존경을 받아야지 지금처럼 외면을 당해서는 안 돼.
네 아비 한진호의 체면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묵묵히 이야기만 들다가 긍정하자 흥이 돋았는지 흑염의 절대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상은 말이다.
사이안이 말하는 것처럼 이해득실이 전부가 아니야.
정기나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 차는 단어-!
의리-! 의리도 있단 말이다.
현자들은 그걸 몰라.”
이것만은 넘어갈 수 없다.
저 말을 인정하면 모든 현자들이 직업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대부분이 돈 아니 정기로 이루어집니다.
돈과 정기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의 전부를 버리고 감정과 의리로 극히 작은 것만 어렵게 얻을 수 있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10중심이 되셔도 진심으로 그렇게 주장하시니 다른 10중심의 용병 노릇을 못 면하시는 겁니다.”
“…….”
흑염의 절대자도 10중심이 되고 나서야 깨달은 정확한 현실이고 사실이다.
‘다른 10중심들은 1억이 넘는 친위 세력을 이끄는데 그 고생을 하고서 겨우 50명이다.’
잘 알고 있으나 본능적인 감성이 우선이라 마지막에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되지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이런 성향을 도저히 바꿀 수 없어 힘들어 하는 본인 앞에서 할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다.
이를 가는지 고기를 씹는지 모른지만 이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우드드득-!
흑염의 절대자는 안주인 고기를 뼈까지 씹어 삼키면서 말 했다
“으득-! 너 회색 잘하겠다.
사이안이나 한진안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모처럼 아주 아픈데.”
“그래도 동료라고 생각해주신 것이겠지요.
세력이 필요하시면 저 싸가지가 없는 불한당 범죄자들부터 당장 내치시고 모집 기준부터 똑바로 하십시오.
저것들을 데리고 의리를 말씀하시면 어떻게 의미가 변하는지 아십니까?
체제 부적응으로 미쳐 날뛰던 놈들이 가끔 외롭다고 서로 위로하는 꼴이 됩니다.”
참아주는 한계치를 아주 넘은 말에 흑염의 세력들이 발끈했지만 한진안의 다음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뭘 쳐다 봐? 이 동족 학살자들아!
절대계 최상위의 흑염의 세력이 되고도 아직도 그때의 자신들이 잘 했다고 생각하나?”
흑염 세력은 모두 엄청난 수의 동족들을 직접 죽였다.
전쟁이나 결투가 아니라 납득할 수 없는 차별에 분노하여 멋대로 날뛴 결과다.
외모가 조금 다르고 힘이 특출 나서 돌연변이라고 경외되고 따돌림을 받다가 폭발했다.
‘돌연변이라고 놀리며 학대하던 일족들이 너무나 쉽게 처리되자 흥분하여 멈출 추가 없었겠지.
자신의 강함에 취한 것이다.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너무 피해가 컸다.’
억압받고 핍박받던 개인의 반란과 난동.
일족에서 개인이든 어디서나 있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지만 이들이 너무나 강했던 것이 문제였다.
‘해당 일족과 지역이 거의 몰살을 당하는 피해가 생겼지.
주변 우주와 다른 일족까지 초토화되었으니 용서할 수 없다.’
결국 견디지 못한 일족들이 10중심에게 토벌을 의뢰했다.
그리고 흑염의 절대자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제압되었다.
그 이후에 다른 10중심들의 분노 속에서 공개처분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과거의 자신을 본 흑염의 절대자에 의해 친위 세력으로 거두어졌다.
그런 존재들이 50명이 넘고 나서야 겨우 절대계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죄는 조금 조용하고 일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들에게 무참하게 당했던 동족들은 아직도 계속 처벌을 주장하고 있다.
죄는 벌과 피해자가 만족할만한 보상으로만 덮을 수 있다.
10중심치고는 무식하게 가난한 흑염 세력에게 그 정도의 피해보상은 정말 힘든 일이다.
‘흑염 세력은 동족 학살자의 모임이다.’
감히 10중심의 하나인 흑염의 절대자의 친위세력에 계속 이런 평가를 받게 하는 저들은 발목을 잡는 원죄나 다름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죽을상이 된 부하들을 보다 못한 흑염의 절대자가 막아섰다.
“그만해라.
알고 보면 다 사정이 있어서 한 일이다.”
“무슨 사정이요?
본인들이 차별받았다고 탁월한 힘만 믿고 일족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십니까?
저항할 힘도 없는 상대는 물론 살던 행성들까지 전부 파괴 했습니다.
복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정기가 들었는지 아십니까?
더 큰 문제는 저것들을 항상 감싸시는 흑염의 절대자님까지 동격으로 보고 있단 말입니다.
직접 처분하시면 감사해하면서 부하가 되겠다고 할 일족들이 줄을 설 것입니다.
가지신 힘은 거의 황금의 절대자와 동등하시면서 결국 용병 두목 신세가 된 이유를 정말 모르십니까?
왜 저런 골칫덩어리를 껴안고 계셔서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십니까?”
“도저히 말로는 안 되겠구나.
이건 영락없는 회색의 절대자인가?
아니 사이안보다 더 하네.
술과 안주는 마저 먹고 한판 붙자.
본래는 그냥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버릇부터 가르쳐 주마.”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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