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권 29권
지극히 기분이 나쁘지만 정답인 것 같은 대답에 일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파편을 튕겨내고 천천히 걸어 나온 1대 흑염의 절대자가 파호톤에 맞은 머리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그리고 손가락을 바로 확인하고 신경질을 내며 외치기 시작했다.
“또 피났다.
아오-! 저걸 그냥 확-!”
그래도 상처를 입기는 모양이다.
겨우 피부에서 조금 피가 새어나온 정도이지만 말이다.
듣는 입장으로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겨우 피만 흘러?
흑염의 가호를 얻은 내가 전력으로 쏜 뇌음 파호톤인데 피부만 조금 갈라졌다고?’
더 큰 문제는 흑염에 파호톤 이상 가는 파괴권능은 없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겨우 4위일 리도 없다.
그런데도 큰 상처조차 주지 못한다면 이길 방법은 전혀 없다.
1대를 이긴 2대 흑염의 절대자가 유일한 해결책이란 생각이 자꾸 흔들린다.
그리고 굉장히 무성의한 추가적인 해답이 들려왔다.
“두려워하지 마라.
저렇게 파호톤에 상처도 입고 피는 나잖느냐?”
“예?”
“상처를 입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회복력은 보통이하다.
일반신족보다 조금 더 좋은 정도?”
“……그래서요?”
회복력이 전 종족에서 최고인 신족보다 약간 좋은 것이 보통이하인지 의문이지만 10중심의 기준이라면 정확한 평가이다.
“나와 1대는 일반 공격은 서로 무효이나 파호톤을 쓸 수 있는 내가 공격력은 약간 위였지.
그래서 파호톤으로 무수히 찍어서 이겼다.
참 지긋지긋하게 시간이 걸렸다.”
“…….”
양쪽 다 일반적인 공격은 안 먹힐 정도로 방어력이 강하다
그러니 근접전으로 파호톤을 사용해서 작은 타격을 축적시켜 승리했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2대 흑염의 절대자 외에 또 있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저런 끔찍한 육체와 비슷한 신체가 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의 자신도 육탄전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아니잖아!’
바로 멀리 도망칠 고민을 하는데 1대 흑염의 절대자가 살기어린 목소리로 선고한다.
“넌 죽었다.”
극도로 짜증이 난 목소리에 차원의 마도신은 바짝 긴장했다.
권능은 없고 본능만이라서 빈틈투성이에 허점이 넘쳐나니 당연히 통하리라고 생각하던 회심의 일격이 겨우 피부를 조금 찢은 정도다.
그 회심의 일격이 절대계 최고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파호톤과 폭혈의 조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사태였다.
‘흑염권능의 집합체인 파호톤의 위력이 1대 흑염의 절대자의 신체보다 위력이 위라서 바로 덤벼들 기미는 없다.’
그래도 바짝 긴장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1대 흑염의 절대자가 양손을 앞으로 뻗고 주시를 했다.
그리고 짧은 기합을 내질렀다.
“흠-!”
그와 동시에 모든 손가락의 손톱이 갑자기 칼날처럼 튀어나온다.
슈가가각-! 투하하학-!
마치 고양이과의 맹수가 숨겨놓았던 발톱을 꺼내는 것처럼 새파란 예기가 넘치는 손톱들이 외부로 솟구친다.
겨우 30cm 정도로 길지는 않았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손톱은 존재자체만으로도 주변의 공간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여기에 검은 불꽃까지 깃들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
권능이 온전하게 물질에 담기고 위력을 증폭한다.
그것이 바로 신기(神器)였다.
하나 방금 보이는 현상으로 추측한 위력은 절대로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저……, 저거 분명 신기? 아니 절대기(絶代器)다-!’
흑염권능의 계보에 없는 신체변형 절대기에 당황해서 뭐라고 질문을 하기도 전에 2대 흑염의 절대자의 의지가 또 음성으로 변해서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저거 뭐야-!?
신체를 변형시켜 신기로 삼는 것인가?”
“…….”
‘흑염의 오리진이 모르는 흑염권능을 내가 어떻게 압니까?’
과거에는 절대계 최고의 현자였다는데 흑염권능의 오리진이 되더니 이런 한심한 행동을 한다.
“흑염 권능을 견디어내는 물질이 없으니 손톱을 늘려서 자체적으로 만든다고?
그게 말이 되나?
빨리 확인 좀 해보란 말이다.”
‘확인을 하려 하다가는 죽습니다.’
지금 무슨 화기애애한 대화시간도 아니고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자기가 저렇게 머리가 나빠졌다면 흑염의 절대자를 언제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점점 2대가 1대를 이겼다는 사실에 신뢰가 사라지고 있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이기셨다면서요?
저건 못 보셨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신령도 의지도 없는 신체만 본능으로 덤벼들었으니 몰랐지.
진리가 준 자료에도 없었어.”
진리는 10중심의 권능이든 바람가의 오의이든 전부 개방한다.
그래서 익힐 수 있으면 해보라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누락되어 있다면 진리도 본적이 없는 기술이란 뜻이다.
‘엄청나게 위력적으로 보이는데 왜 안 사용했지?’
그 의문은 손톱을 길게 늘어트리고 혼잣말을 하는 1대 흑염의 절대자가 풀어주었다.
“쳇-! 영원불멸의 신체와 권능만 믿고 개기는 영원체 놈들을 조지려고 준비를 했는데 아직도 이 정도인가?
역시 잘 안되는군.”
그러면서 가볍게 손톱을 튕기자 주변의 모든 시공간이 절단되어 버렸다.
좌아아아악-! 가가가가각-!
손톱에 깃들인 흑염 권능에 시공간이 잘라지는 것을 본 차원의 마도신과 2대 흑염의 절대자는 침묵했다.
시공간에 개입하는 것은 최고 난이도의 권능이다.
그런데 방금 한 행위는 힘으로 시공간을 부순 것이 아니라 세련되게 절단했다.
이 일은 권능을 사용하지 못해 물리력만 강하다는 흑염의 평가는 완전히 뒤집는 일이었다.
“…….”
“…….”
거기에 영원체에 유효한 절대권능은 회색의 절대자의 절대봉인 ‘이그드라실’하나 뿐이다.
그와 비견되는 권능이 흑염에게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제까지 몸으로만 싸우던 맹수가 무기를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투기와 살기를 유형화하여 만든 신기와 육체 자체를 변화시켜 만든 신기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위력이 강한지 말할 필요도 없다.
‘절대기의 그릇으로 삼은 대상이 유례가 없는 최강의 육체라면 말이지.’
이제 파호톤이 발휘하는 위력의 우위가 완전히 무산되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기세를 높이던 차원의 마도신의 투기가 확 줄자 1대 흑염의 절대자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좋군. 사냥감은 그래야지.”
이제야 사냥꾼인 자신을 겁내면서 도망을 치던 익숙한 환경에 돌아온 것이다.
가볍게 길어진 손톱을 까닥이면서 말했다.
“너 아까 나를 상처 입힌 도끼를 다시 던져봐라.
강도실험을 위해서 받아줄 것이니 마음 놓고 전력으로 해라.”
하나 기다릴 필요도 없다.
도발하는 행동에 결정적인 허점을 발견한 차원의 마도신이 반사적으로 공격을 발동한 것이다.
“뇌음 파호톤-!”
꽈까가가가가가가-!
자신 정도의 육탄전 실력으로 접근전을 하면 바로 찢겨 나간다는 경고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가깝지만 투척된 파호톤의 도끼날은 무섭게 회전하면서 정확하게 아까 상처 입혔던 부위를 노렸다.
하나 이번에는 달랐다.
1대 흑염의 절대자의 검은 불길이 타오르는 손톱으로 날아든 파호톤의 도끼날을 교차해서 막아버린 것이다.
파가가가가가가가각-!
서로의 위력과 견고함을 경주하듯 불꽃을 튕기던 경합은 싱겁게 마무리 지어졌다.
꽈가가강-!
파호톤이 강화손톱에 짓눌려 박살나면서 형체를 잃었고 손톱에는 작은 일자모양의 상처만 남았다.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면 아주 놀라운 결과였지만 1대 흑염의 절대자는 아주 불만족스러워했다.
“쯧-! 강화 손톱에 상처 났잖아?
역시 이대로는 못 쓰겠군.”
“내……, 내 파호톤이 저렇게 허무하게…….”
지독하게 연산력을 소모시켜 가장 싫어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위력이라고 자부하던 권능이다.
그 자랑이 완전히 무력화된 충격에 혼이 나간 듯한 2대 흑염의 절대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대 흑염의 절대자의 본능에 뭔가 이상한 것이 걸려들었다.
동시에 날려진 것은 아니다.
살기가 없는데 굉장히 위협적인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직접 시야에 확인된 것은 더없이 날카로운 날이 달린 신기도 아까 보여준 검은 구슬 같은 위험한 권능의 집합체도 아니었다.
“목검?”
목검을 양손으로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이제까지 추적하던 창조신이 공간을 넘어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단지 평범한 목검이었는데 굉장히 익숙해보였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보았던 목검인데?
그런데 죽어라 도망만 치던 놈이 왜 갑자기 달려들지?’
저런 장난과 같은 공격이야 몸으로 받아도 상관없지만 워낙 이 창조신은 이상했다.
자신이 상처 입을만한 권능을 보여준 것이 두 번째였다.
‘나를 안다면 접근하면 당연히 죽는다는 사실을 알겠지.
그래서 필사적으로 하던 도주와 거리두기를 포기했다면 뭔가 있다.’
본능적인 감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조심해야할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강화한 손톱으로 막아내었다.
하나 그것이 실패였다.
바로 뚫려버린 것이다.
꽈드드드드드드드드득-!
강화손톱들이 겨우 목검을 막지 못하고 바로 안쪽으로 휘어지면서 꺾여버린다.
방금 도끼 같은 신기도 손쉽게 막아낸 자신의 강화 손톱들이 겨우 목검을 막아내지 못할지는 상상도 못한 1대 흑염의 절대자의 당혹성이 터져 나온다.
“허?”
갑자기 소환되어서 이 괴상한 창조신에게 몇 번이나 놀라는지 몰랐다.
그리고 너무 촉박해서 피할 기회조차 놓쳤다.
꽈아아아아앙-!
목검에 강화손톱들이 형편없이 꺾여나가고 그대로 이마를 강타당한 흑염의 절대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으흡-!”
죽을듯한 부상이나 치명상을 주지는 않는다.
단단함과 휘두르는 완력만은 정말 대단했다.
더구나 거기에서 발생한 위력을 전부 신령과 몸 자체에 부과하면서 죽음만을 피하게 하는 생소한 권능에 몸이 일순간 마비될 지경이었다.
하나 쓰러질 지경은 아니었다.
단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떠는 1대 흑염의 절대자의 귀로 악착같이 힘을 쥐어짜서 탈진한 목소리가 들렸다.
“뇌음 파멸유혼검(雷音 破滅有魂劍)!”
2대 흑염의 절대자의 가호에 혼신의 힘으로 휘두른 파멸유혼검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에 기가 질렸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궁여지책으로 짜낸 수가 기가 막히게 먹혔다.’
파멸유혼검은 어디까지나 교육용이다.
절대 죽음을 내리지 않기에 살기가 없다.
그래서 살기와 투기를 융합해서 공격과 방어에 써먹는 흑염의 절대자에게 아주 유효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의외로 발견한 흑염권능의 약점이었다.
‘다시 말하면 흑염에게는 살기와 투기가 완전히 섞이지 않는 공격은 통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이건 약점도 아니군.’
공격에 살기도 투기도 없는 공격이 위력적일 리가 없다.
죽음 자체를 거부하기에 살기가 절대로 섞일 수 없는 파멸유혼검의 타격이라서 절반정도는 통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일반 공격은 먹히지도 않는 1대 흑염의 절대자가 충격과 고통에 일순 마비되었다는 사실만은 증명했다.
하지만 이걸로 쓰러트리기는 애초에 역부족이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은 안든다.
단지 소모시켜서 사라지게 하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역시 진리-!
이것만은 어디서든 통하는군.”
손에 쥔 파멸유혼검에 더없이 자부심이 넘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전혀 생소한 고통과 타격이지만 어느 정도 회복한 흑염의 절대자가 서서히 고개를 들면서 입을 열었다.
“진……, 진리? 그게 이번 반란세력의 수장이냐?
그놈 어디 있나?”
“힉-! 우와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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