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권
어느 시대에서나 권력은 힘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런 혼란의 시기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자를 거스른 자는 모두 숙청된다.
또 지금까지 한 일을 보니 혼자서 전부를 소멸시키는데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폭군이라면 목숨이라도 걸고 다시 싸우겠는데 차원창세신 코아가 내리는 명령과 행동은 분명 자신들의 바람과도 일치했다.
‘싸워서 승리한다.
그리고 신족의 영광을 되찾는다.’
이 가슴 떨리는 바람은 투신의 길을 선택한 어린 시절부터 변하지 않는 꿈이었다.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알고 점점 출세에만 신경을 썼지만 바로 눈앞에서 단 한 명에 의해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배신자의 봉쇄를 넘어서 이미 미지가 된 본래 영역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정기 가공 노동자로 여기는 시건방진 초월자 놈들과 싸울 수 있어.’
그렇다면 반드시 차원창세신 코아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최종선택은 끝났다.
어색하지만 명령을 내렸다.
“군기가 작아서 본성과 주변에서 잘 안보일 것 같다.
깃발 크기를 키우고 계속 들고 있으면 힘드니 고정식으로 바꾸라.”
“하-!”
하위 서열들의 힘찬 대답을 들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현세계의 권력을 완전 장악하지 않는 한 위태로운 반역자의 신분인데 뭐가 좋은지 신이 나서 움직이고 있다.
물론 자신도 절대적인 힘을 지녔다는 허계의 창조주님인 진리의 깃발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영광이었다.
비록 현세계에 충성을 맹세했으나 혼자서 세상 전부를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힘에 대한 갈망은 투신의 근본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대치가 끝나고 드디어 전쟁인가?
정말 순식간에 이렇게 되는군.
모두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뜻이지.’
변화를 선택하자 흔들리던 지휘권도 돌아왔다.
결국 지휘관의 권위란 개인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부하들의 전체적인 바람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들어주는 가에 있다는 점을 다시 절감했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진리친위대가 깃발을 키우든 고정식으로 하든지 별 상관이 없었다.
이계의 최고 정예로서 본성을 수호하면 되었다.
본성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최고 정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전력이 도망자의 진입을 막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전력낭비였다.
언제나처럼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해결책을 진행한 것뿐이다.
‘재구현의 제약에다 이런 정기상태로는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잖아?
나도 여기로 도망쳤으면 바로 되돌아가겠다.’
그리고 아무 기능이 없이 자리만 차지하여 자신이 잘라버린 공동신전들을 허공에서 내려다보면서 혀를 찼다.
‘늦다. 늦어.
신족이 왜 이렇게 복구가 느리지?’
완전히 박살낸 위원회의 공동신전은 지붕과 벽이 거의 날아가서 개방된 형상과 같았다.
거기에 굳은 안색으로 서 있는 창조신들의 몸 상태는 마신왕의 마력의 손톱에 난도질되어서 정상이 아니었다.
지배층이 이런 꼴이니 환영식은 고사하고 다들 숨기 바빠서 쥐새끼 하나도 거리에 나와 있지 않는다.
파괴신처럼 날뛴 자신이 한 행동을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입맛이 썼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결국 성질을 못 이겼다.
내 방식은 너무 과격해서 탈이지.
그런데 복구 속도가 너무 늦는군.
하여간 무능한 것은 알아주어야 해.’
창조신의 창조력을 고려할 때 이 정도의 피해는 순식간에 복구해야하는데 아직도 파괴된 그대로다.
상황을 대충 파악한 코아는 허공에서 위원회 공동신전의 정문에 내려앉았다.
쿠웅-!
정문에 내려앉자 얼굴에 긴장이 역력하지만 전신갑옷을 입고 대충 전투태세를 완료하고 도열한 위원회의 주신들을 쓸어보고 그대로 지나쳤다.
이들로는 자신의 몸에 상처조차 주지 못한다.
‘호오? 멀쩡한 주신들은 덤비려고 했나?’
하나 말만 주신이지 주우주 주신급보다 못하다.
이들이 전부 덤벼보았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덤비려면 어디 해보라는 듯이 무방비의 자세로 걸어가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발밑에서는 둔중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쿠쿵-! 쿠쿵-!
코아로 만들어낸 행성규모의 전신갑옷의 중량이 내는 소리였다.
그러자 바닥에 깊은 발자국을 찍으면서 나아가는 코아의 앞에 섰던 주신들이 그대로 썰물처럼 물러섰다.
이미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1군 사령관의 보고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전선 돌파와 본성 파괴가 이미 끝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이다.
적의 본성 ‘피오리나’의 전력은 자신과 거의 대등한데 그대로 소멸되었다는 보고에는 전율할 뿐이었다.
그러니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뚜벅-! 뚜벅-!
마치 도열한 것처럼 된 주신들의 자리를 지나 창조신들의 위치인 최고위원회에 오른 코아의 앞에는 원탁이 보였다.
맨 위에 있는 최고 책임자인 진리의 자리를 창조신들이 둘러싼 전형적인 신족 원탁의 자리였다.
자신의 신계에서도 똑같은 형식이지만 하나 지금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자인 이들은 자신과 동격의 자리에 놓을 수 없었다.
영원히 사는 창조신이니 언제인가는 자신에게 도달할지 모르나 지금 상태로는 가망이 전혀 없었다.
기본 환경부터가 너무 달랐고 이 모든 것은 이들의 책임이었다.
“쯧-!”
퍽-! 파가가가가강-!
가볍게 발로 쳐서 최고 위원회의 원탁을 위로 날렸다.
그러자 신계와 같은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원탁이 그대로 허공에서 박살이 나서 흩날린다.
현세계의 숭고한 평등사상을 알려온 상징이 허계의 존재에게 박살이 나자 창조신들의 입에서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음-!”
“끅-!”
결코 있을 수 없는 무례이나 제지할 수가 없었다.
둥근 원탁의 의미는 절대적으로는 공평한 평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신이든 주신이든 서로 대등한 존재들만이 모여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상대적인 공정함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분명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비할 수 없었다.
‘힘이 문제가 아니다.
결과의 차이가 너무 크다.’
자신들은 배신자들의 내전과 초월자들의 반란으로 거의 전부를 잃었다.
다시 전력을 수습하고 일어서려 해도 같은 신족인 배신자들의 방해 때문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500억 년이란 긴 시간을 서서히 망해가는 상태를 벗어나려고 노력해왔는데 불가능해서 진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데 그 결과로 진리대리로 온 차원창세신 코아는 단 하루 만에 모두 해치웠다.
길목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들이 너무나 간단하게 치워진 것이다.
각 방어군 사령관이 알려온 정보라면 확실히 배신자들의 군세는 재기불능이었다.
창조신 100명이 모인 최고위원회가 현세계를 이끌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500억 년이 단독으로 움직인 허계의 창조신의 하루보다 못한 것이다.
이 처참한 결과에 어떤 반대도 할 수 없었다.
“쯧-! 쯧-!”
바삭-! 바삭-!
원탁이 박살난 파편 위를 못 마땅한 듯 계속 혀를 차면서 지나가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얼굴은 로브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니 같은 26쌍의 권능의 날개를 가진 창조신으로서 면목이 없다는 표현이 맞았다.
주신들을 싹 무시하고 창조신들의 원탁을 박살내고 진리의 자리 앞까지 도착한 코아는 빈자리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바로 뒤로 돌아서서 영창 했다.
“바빌로니아의 탑은 무너지지 않고 하늘에 있도다.”
- 마법계열 : 환상마법, 통신 및 번역계, 발현시
- 효 과
10서클 중 살상력이 없는 통신마법이다.
기존 통신마법에 비해 뛰어난 화상을 제공하고 지성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의사를 전달한다.
이계의 극장이나 각종 영상장비를 보고 고안해낸 마법으로서 대규모의 인원에게 의사를 전달하거나 영상을 전송하는데 사용된다.
그 전송거리나 크기와 규모는 마력이 허용하는 한 무한대이며 정보의 반복적인 전달을 통한 간단한 암시도 가능하나 화면을 계속 보게 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현재는 단순한 화상과 음성뿐 아니라 입체적인 화면과 냄새, 촉감 등을 추가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개발목적은 생략한다.
- 처음 발현 후 주인공 한마디 : 역시 화면이 커야 실감나지.
화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본성 서우리나의 허공을 전부 덮을 것 같은 거대한 로브를 쓴 창조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허공에서 모든 도시의 신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취한 코아의 입이 울리면서 행성 전체에 뚜렷하게 거대한 신력이 담긴 음성을 토해냈다.
“나는 진리대리 회색현재 차원창세신 코아(眞理代理 灰色現在 次元創世神 Core).
이계 최고책임자로서 말한다.”
이미 저 강대한 창조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신은 서우리나에 없었다.
창조주님께 지배권을 위임받은 창조신들의 대표로서 영겁의 시간동안 군림해온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들을 혼자서 이겼다.
거기에 본성의 최종방어까지 해체한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침묵하고 올려다보고 보았다.
“현시간부로 이계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전시체제로 전환한다.”
그리고 갑자니 나온 전쟁 명령과 선언에 입을 딱 벌렸다.
아까부터 현세계를 이계로 낮추어 부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배신자들에게 의해 길목이 막혀서 꼼짝도 못하는 답답한 신세였지만 정기가공을 통한 초월자들과의 무역활동으로 그럭저럭 잘 먹고 살았다.
너무나 답답했지만 평화로운 시절이었는데 갑자기 전쟁선언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뭔가 소요가 일어나려는 순간 하늘을 가득 채운 동영상에 완전히 얼어붙어버렸다.
거대한 별들의 폭발이 항성계를 가득 매우고 영역에 있던 신과 행성들을 전부 소멸시켜버리는 장면이었다.
마치 전공을 자랑하듯이 느릿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배신자들이 만든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였고…….”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별의 폭발이 적의 진영을 뒤흔든다.
도대체 얼마의 신과 행성이 저 속에서 소멸되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적 전력의 1할 이상을 제거했다. 그리고…….”
1할 이상이면 150만이 넘는 정규투신들이 배신자들에게 있었으니 최소한 15만이 소멸되었다는 뜻이다.
그보다 수십만의 신을 죽였으면서 마치 귀찮은 해충을 처리한 것처럼 아무 감정도 없이 말하는 저 창조신이 갈수록 무서워졌다.
그리고 다음 광경에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는 신들이 속출했다.
적의 본성 ‘피오리나’가 행성파괴 신력포 아르카나 시스템을 발사하려했던 것이다.
그 목표가 어디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자신들의 본성이었다.
“적이 최종병기 아르카나 시……, 풋-! 이거 참 웃기는군.
뭐 이계라면 수준이 맞겠지.
크크크크크크크-!”
신들은 비명을 지르는데 한껏 비웃음을 터트리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음성이 흐르고 화면은 바뀌었다.
코아가 만들어낸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구슬과 암흑의 구슬이 바로 앞에서 충돌하고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타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절대로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우주에 위성 굵기로 검은 선이 그어지면서 적의 아르카나 시스템의 포격을 집어삼키고 적의 본성 피오리나를 직격한 것이다.
슈각-!
작은 소음과 함께 적의 본성 피오리나의 중심도시와 행성의 절반을 차지하던 아르카나 시스템의 포신이 사라지고 위성크기의 검은 구멍만이 남았다.
신들은 그 순간 전율했다.
폭음도 폭발도 없지만 적의 지휘부가 있던 중심신계 전부가 수백만의 신들과 함께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적의 본성과 신계는 괴멸되었다.”
“…….”
배신자들로 이루어진 오랜 숙적이 멸망하고 사라졌다.
분명 승리이지만 환성은 없었다.
자신들의 힘이 아닌 광폭한 허계의 창조신 하나로 이루어진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의 본성에는 투신이나 전신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일반신들도 수백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일반신들을 수백만을 학살하고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괴멸되었다고 말하는 저 창조신이 자신들과 같은 빛의 신이라고 믿겨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적의 본성을 저렇게 파괴했으니 자신들도 똑같이 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도 커져갔다.
“나는 적에 대한 압도적인 승리로서 내가 이계 최고의 강자임을 증명하였다.
그래서 이제 나는 신족 서열 1위로서 이계를 지배하겠다.
누구보다 강대한 힘으로 이계의 신족을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현세계의 완전한 지배선언이었다.
허계의 창조신 한 명에게 현세계 전부가 제압되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막을 힘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북소리와 같은 울림이 들려온다.
쿵-! 쿵-!
어디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면서 커져가고 있었다.
그 울림 속에서 거침없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음성이 행성을 더욱 크게 뒤흔들었다.
“이제부터 나는 이계의 모든 법과 규칙 위에 선다.
대신 나의 힘과 모든 권능을 걸고 이계를 다시 부흥시킨다.
그 과정이 선(善)하든 악(惡)하든 상관없다.
신족의 발전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적으로 규정하고 완전히 파괴할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쿵-! 쿵-! 쿵-! 쿵-!
울림이 더욱 커져간다.
이제 알 수 있었다.
허계에서 방금 왔으면서 오로지 힘과 전공으로 절대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미친 말에 찬성하는 엄청난 수의 신들이 땅을 두들기는 발 구름 소리였다.
본성의 어디선가 찬성하는 신들이 발로 대지와 허공을 차며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창조신들과 주신들의 얼굴은 당혹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수백만의 동족이 소멸되었는데 환호하다니?’
‘모두 미쳤느냐?
이게 무슨 짓이냐?’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