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권
지휘부의 이상을 확인하고 호위투신들이 달려왔으나 밖에서 대화를 듣고 분위기를 파악하고 바로 대기할 뿐이었다.
간부들은 몰랐지만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의 투신들은 이미 돌아가는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허계 봉쇄군의 정예투신들과 친분이 있는 투신들이 현장에서 몰래 확인한 것이다.
언제나 고귀한 척하던 사령관과 참모들이 죽도록 맞고 있지만 저것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재구현의 제약이 없는 더없이 막강하고 끝없이 성질 더러운 허계의 창조신이 진리대리로 왔다고 했지.
사령관과 참모들, 자신들까지 무참하게 박살을 내고 여기로 끌고 왔다고 했다.’
혼자서 본성의 방어선을 박살내고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들을 전부 제압했다는 사실도 물론 알았다.
물론 상부로 보고하려 했지만 일단은 반란군과 진압군의 관계다.
적과 내통했다는 의심을 받을까봐서 일반투신들만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이니 호위군인 자신들에게도 정보가 왔다.
설마 했지만 사령관과 참모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니 사실이었다.
허계 봉쇄군이 전부 덤벼들었는데 상대가 안 되었다고 하니 더 약한 3방어군 입장으로 이렇게 물러서서 쳐다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거기에 비록 투신으로서 자질이 의심되지만 분명 창조신인 사령관이다.
그런데 공간이동을 반복하여 갈기는 발길에 채여서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으니 일반 투신은 가만히 있어야 했다.
‘정말 일반 창조신은 상대가 안 되는군.’
‘더구나 서열 1위로 자처하실 정도면 이미 상황은 끝났다.’
‘이후는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조율하시겠지.
우리가 끼어들 필요가 없다.’
상급자들이 군법이란 법칙이 있다면 하급자는 처신이라는 철칙이 있다.
처신에서 창조신님과 주신님들의 세력다툼은 하급자가 절대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금기중의 금기였다.
어차피 권력자들의 다툼은 별 의미가 없었다.
상급자들의 권력다툼은 언제나 있던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급자들이 정색해서 끼어들어보았자 나중에 화풀이로 죽어나니 이렇게 모른척할 뿐이었다.
그런데 높으신 창조신님과 거들먹거리던 주신들이 비명조차 못 지르고 무참하게 맞는 꼴을 보니 정말 뭔가 변할 것 같았다.
‘이제 정말 뭔가 바뀔까?’
‘진리와 허계를 저지하기 위한 허계 봉쇄군이 진리 친위군이 되었다.
1명을 이기지 못하고 본성까지 점령당한 이상 변할 수 없다.’
‘모든 권력은 힘으로 나온다면 이제 차원창세신 코아님을 막을 존재는 없겠지.’
긴 세월을 권력자 곁에서 신계의 흐름을 보아온 자신들의 감각이 폭풍과 같은 격변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높으신 분들을 두들겨 패는 소리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말 그대로 피에 절은 걸레가 되어버린 창조신들과 주신들이 탈영했다가 두들겨 맞고 끌려온 신병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서 필사적으로 일어나서 차려 자세를 취한다.
사령관의 의자와 책상, 거기에 참모들의 자리까지 다 박살을 내고서야 겨우 성질이 가라앉은 차원창세신 코아가 이마에 오른손을 얹고 열을 식혔다.
직접 보고 있으면 또 때리게 될 것 같아서 시선을 바닥을 향하고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전진해라.
밀리고 포기하면 너희들은 전부 내손에 죽는다.”
“알겠습니다!”
“하-!”
“예-!”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워낙 정신없이 맞다보니 대답도 중구난방이었다.
결국 또 울화가 터진 차원창세신 코아가 파멸유혼검을 꺼내들고 다시 모두 후려갈겼다.
“본성 방어군이 겨우 이 정도에 제식과 복명도 제대로 못해-!
너희들이 인간들의 농민 징집병이나 노예병이냐?
제대로 목숨 걸고 싸울 생각도 오기도 없지?
오로지 이 자리만 모면하거나 도망칠 생각이냐?
이 약해빠진 쓸모없는 것들-!”
퍼어어억-!
또 다시 한참을 두들겨 패고 나서 전부가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밖의 호위병을 불렀다.
“호위투신-!”
바로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부르자 바로 달려와서 말없이 경례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휘부가 모두 제압된 돌발 사태인데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아주 유연한 대응이었다.
무엇보다 당황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상급자가 무능하면 하급자가 유능하다는 법칙은 이계에서도 통하는군.
이것들은 아무리 해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대로 놓고 가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이동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또 자신이 나서서 강제로 진행해야 했다.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라도 말이다.
“호의투신들은 전령 역할도 하겠지.
3방위군에게 나의 명령을 전달해라.”
“하-!”
역시 바로 대답을 한다.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난 것이다.
자신을 감당할 힘이 이계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진리대리 회색현재 차원창세신 코아.
이계 서열 1위로서 진리님의 명령과 이계의 요청대로 다시 새로운 신족의 시대를 연다.
그러니 투신과 전신들은…….”
차원창세신 코아의 말이 잠시 끊어졌다.
자신 앞에서 완벽한 부동자세로 명령을 기다리면 서있는 호위투신들과 바닥에 널브러진 창조신과 주신들을 쳐다보았다.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다.
내가 바라는 수준이 되기까지 얼마의 정기와 심력이 소모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나 해야만 한다.
창조신으로서 두고 볼 수 없다.
신족의 명예와 나의 출세를 위해서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할 수 있었다.
용병신으로서 최악의 전장만을 무수히 경험한 감각은 이미 승리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힘겨운 승리를 대가로 자신이 감당해야할 최악의 악명도 이미 알고 있었다.
성질을 못 이겨서 저절로 이렇게 되자 이가 갈렸지만 이미 시작했다.
허무가 칭호를 받은 존재들을 모아서 가장 악한 자와 존재를 하루에 하나씩 소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자신은 이계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역할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으득-! 가장 먼저 신족이 최강임을 증명하라.”
“!”
“이계 창조주님께서 전 우주의 지배권을 신족에게 내린 사실의 정당함을 모든 존재에게 증명하란 말이다!
오로지 승리로써-!”
잠시 말을 잊지 못했지만 바로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항상 대기만 하던 투신이나 전신이라면 그렇게나 바라던 일이었다.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힘찬 대답으로 답할 뿐이었다.
“하-!”
“검은 선을 따라서 진군(進軍).
뒤는 돌아보지 마라.
그리고 군세가 도저히 못 이기겠다고 포기하고 멈추거나 회군하면 전부 처분한다.
나는 포기하는 약자만은 용납하지 않는다.
정말 구제불능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
과거 배신자들이 반역자를 토벌하러 갔다가 압도적인 전력에 겁을 먹고 오히려 저쪽에 붙어서 지금까지 싸워온 수치스런 역사가 있었다.
당연히 투신과 전신의 책임을 물어서 그 뒤부터 신족은 몰락했다.
강력한 무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니 성장을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투신과 전신에 대한 과도한 감시나 견제는 이미 법칙이다.
그러니 신계의 무한지원을 받을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원정군의 회군이라는 오명을 씻고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무엇보다 방금 이야기한 구제불능은 포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왔다.
신족 전부를 지우고 다시 만들 생각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
하나 이미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허계 봉쇄군과 본성이 전부 패배를 당하고 제압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복명을 하고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3방어군이 전부 전선으로 이동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령관인 창조신과 참모인 주신들이 피 떡이 되어서 쓰러져 있지만 이미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힘의 차이도 절감한 각 부대의 주신들이다.
그들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호위투신이 전한 진군명령을 듣고 당황하여 미적거리면서 반대하려던 주신이 강제공간이동으로 끌려가서 죽도록 두들겨 맞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것도 3방어군 전부가 듣고 보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상급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어야지.
아주 기개가 있어.
그런데 아느냐?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명령을 거부하면 그게 바로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이란다.
군대에서 명령을 거부하고 무사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래서 약자의 기개를 어리석은 만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강력한 주신을 강제로 공간 이동시키는 것은 위원회가 힘을 모아도 힘든데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쉽게 끌고 간다.
그리고 반항할 엄두조차 못하게 무참하게 패버리는 모습을 보니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결국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명령을 거부한 주신이 쓰러지자 다른 주신들은 저 꼴이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이동-!”
“빨리 이동하란 말이다.”
“뭘 분해해?
그냥 뜯어내서 처넣어-!”
급박해지자 현장지휘관인 주신들은 절차는 무시하고 장거리 공간이동의 문을 최대한 열고서 장비와 투신들까지 함께 처넣어 버렸다.
거기에는 시설인 건물들조차 예외가 없었다.
3방위군 전 병력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쓰레기 버리듯이 피투성이의 창조신과 주신들을 차원창세신 코아가 들어서 공간의 문으로 던져 넣자 이동은 끝이 났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1달 이상 걸린다는 10만의 군세의 이동이 완료된 것은 반나절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리 친위군과 본성은 하도 황당해서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아군은 허계 봉쇄군 진압 후 진리 친위군으로의 전환을 시키고 혼자서 아군 본성과 위원회를 제압하였다.
적군은 1할 이상이 소멸되고 본성과 지휘부는 파괴되었다.
그리고 지금 전력을 집중시켜 과거의 영역을 되찾는다고 진군시키고 있다.
전부는 모르지만 지금 벌어진 일만해도 기가 질릴 지경이다.
500억 년 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원했지만 불가능하던 일들이 순식간에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허계에서 진리대리가 온 이후로 단 하루만이었다.
자신들과 대치하던 3방어군이 차원창세신 코아에 의해서 1군으로 공간이동을 해버리자 진리친위군이 된 허계봉쇄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1군 전선을 통해 진군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본성의 위원회가 파괴되어서 통신상태가 안 좋기에 최전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탓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리고 나름대로 정예인 3방어군의 창조신과 주신들이 제식과 복명을 제대로 못하고 명령을 거부한다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두들겨 맞자 아픈 기억이 또 떠올랐다.
하루 전에 저렇게 된 것이 자신들이었으니 남의 일이 아니었다.
3방어군이 놀랄 정도의 경이적인 속도로 이동을 완료하고 사라지고 차원창세신 코아만이 남았다.
그리고 살기와 투기가 흘러넘치는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경직된 표정으로 군기가 바짝 들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미 한 번 당해보았으니 잘못하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나 트집을 잡은 구타는 다행히 없었다.
“쯧-! 그래도 최정예가 맞기는 하군.
본성에 주둔하라.”
지극히 못 마땅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은 차원창세신 코아가 본성으로 이동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허계 봉쇄군이었다.
강제로 반란군이 되어서 정식 계급장대신 가슴에 숫자가 적힌 그들로서는 순간순간이 영원한 수명조차 감소되는 기분인 것이다.
완전히 타의와 억지로 총책임자 대신 ‘1’의 숫자를 받게 된 넘버 1은 다급하게 하위서열들을 소집했다.
“도대체 지금 상황은 무엇인가?
1방어군 전선에서 3방어군이 진군?
정보가 너무 없어.
통신망은 아직도 정상화가 안 되었나?”
“지금 비상회선으로 1군과 연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비상회선?”
“……그런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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