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권
아직 분이 덜 가셨는지 목검들을 몇 개 불러들였다.
그리고 아직 신령조차 뒤흔드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땅에 처박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칭호를 가진 존재를 마구 후려갈겨갔다.
퍼억-! 퍼억-!
“악-! 악-!”
도대체 왜 진리대리가 때리고 자신들은 맞고만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칭호를 받은 존재들은 억울하기만 했다.
맞는 이유가 자신은 고생했는데 너희들은 현세계에서 편하게 지내서 수준미달이 원인이란 것은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정말 할 말이 많았다.
‘우리도 고생했다.
조금만 잘못하면 가중처벌을 해서 자리를 잡고 세력을 만들지도 못해서 떠돌이 신세였단 말이야.
‘난 정말 악마족들이 신이라고 떠받들 정도의 힘이 있단 말이다.’
조금만 행성에 세력이라도 만들어서 편하게 살려고 하면 현세계의 투신과 창조신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방해를 놓았다.
결국 혼자 일해서 먹고 살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방법뿐이었기에 대부분 도망자나 유랑자 신세였다.
무엇보다 허계는 잘 모르지만 현세계에서 자신들은 분명 강자였다.
칭호를 완전개방하면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들과 싸워도 밀리지는 않을 수준이었다.
하나 아무리 항의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렇게 말도 못하고 비명만 지르면서 한참을 맞다가 마신 부우가 의식을 잃고 조용해지자 시선은 다음 대상으로 변했다.
“너 칭호와 이름.”
“불복종(不服從)의 디스입니다.
진리님께 칭호를 받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약합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비록 지금은 약하나 나중이 더욱 기대가 된다고 모두에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불복종’이라는 칭호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아주 예의가 바른 대답이 들려왔다.
바로 앞에서 함부로 대답했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보았으니 지극히 공손해진 것이다.
‘맞다가 쓰러진 동료의 목에 묶인 줄로 연결된 자신의 목도 위태롭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불복종’이란 칭호가 단계적으로 수준이 향상되는 것이 아닌 개념권능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명단과 자신을 교차하면서 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펜으로 약간을 수정했다.
그리고 내용을 수정하면서 한탄하듯이 중얼거렸다.
“본래는 ‘절대복종(絶對服從)’인데 ‘불복종(不服從)’으로 변질이 되었군.
하위의 신격이나 정신력을 가진 존재에게 절대적인 명령권을 발휘하는 지배에 특화된 칭호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지?
이제 단지 상대 권능의 영향을 거부하고 반격하는데 특화되어 있군.
정말 아까운 위력의 칭호를 쓰레기로 만들었어.”
바로 앞에서 쓰레기라고 매도당한 불복종의 디스는 허무의 베인 다음의 강자였다.
앞에서 목줄을 쓴 채 고개만 숙이고 있던 칭호를 받은 존재들이 입을 딱 벌리고 경악할 소리를 내뱉은 차원창세신 코아는 명단 내용의 수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취조에 들어갔다.
“변질은 그렇다 치고 넌 뭐야?
개념권능이 왜 이렇게 법칙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
본인의 의지박약이 문제인가?
뭐 좋아-!
어차피 죽여 버리고 칭호를 추출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니 상관은 없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신들을 죽여서 칭호를 추출하겠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칭호는 이미 자신들의 신령과 신체에 일체화되어있다.
칭호만 추출하면 신령이 무사할 리가 없다.
간단하게 자신들의 소멸을 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는 짓을 보아서는 그러고도 남았다.
하나 놀라서 잠시 더듬거린 일이 또 치명타였다.
“허허-! 이놈이나 저놈이나 모두 구제불능이로군.
칭호가 모두 변질되어서 형편없이 발휘되고 있지 않는가?
두말하지 않겠다.
소멸시키기 귀찮으니 전부 자살해서 칭호를 반납할 의사는?”
“……살려주십시오.”
모두 자살하라는 소리가 절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더구나 약자는 용서 없이 처분하는 진리의 대리라면 이건 분명 진심이었다.
마치 사형수들처럼 목을 줄로 묶어 놓은 사실이 증명했다.
“핫-! 넌 칭호가 불복종이라며?
부당하게 억압과 폭력을 당하는 이럴 때에야 말로 앞에 나서서 자기희생으로 자살하여 너의 진가를 발휘할 때가 아닌가?
진리에게 칭호를 받은 존재답게 이를 악물고 칭호대로 살아야지 그러지 못하니 이렇게 된 것 아니냐?
냄새는 나지만 화끈하게 분신자살은 어때?
그렇게 자살하기 싫으면 내 손에 죽을래?
자살도 타살도 싫어서 결정을 내리기 힘들면 내가 이렇게 계속 도와주라?
자살하라는 내 말을 순순히 들으면 고통은 없을 것이다.”
가볍게 양손을 푸는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근육이 약동하고 관절이 전투태세가 되는 소리가 울렸다.
우둑-! 둑-!
‘빛의 창조신이면 부당한 짓인지 알면 하지 말고 자살도 권유하지 말란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들을 약하다고 다 죽일 셈이다.
여기에 아직도 전력이 아니었나?
근력도 심상치가 않다.’
지금까지 보여준 힘만으로도 항거불가능인데 아직도 끝도 없이 여력이 남았다는 사실에 전율할 뿐이었다.
더구나 말하는 내용들이 하나하나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혹하고 과감했다.
여기에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칭호를 받은 존재들에 대해 거의 파악이 완료된 모양이었다.
‘변화직전의 칭호까지 다 알고 있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렇게 몰리게 된 이유는 아까부터 보면서 수정하고 있는 저 명단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디선가 본 것 같더니 진리의 손에 쥐어져 있던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연명부였다.
‘저 명단은 설마 진리님에게 받은 것인가?
분명히 처음 칭호를 받을 때 진리께서 직접 우리들의 존재를 기록한 명단이다.
저것이 있으면 우리들의 위치나 모든 것을 손바닥을 보듯이 알 수 있다.
이러면 도망은 고사하고 숨지도 못해.
정말 마음만 먹으면 전부 죽는다.’
제대로 불복종을 하려면 상대방의 의도와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복종하라는 협박이 아니라 모두 죽이고 칭호를 축출하려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불복종의 디스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까 서우리나를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주 박살내는 것을 보았을 때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은 했지만 약하다고 전부 자살하라니 이건 확실히 미쳐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저런 황당한 미친 사고방식으로 말하는 것을 전부 실천할 힘이 넘치도록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직접 부딪쳐 보니 은둔 중인 칭호를 가진 존재들이 다 덤벼들어도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나고 있었다.
‘우리들이 약하고 칭호를 변질시켜서 약화시켰다고 아주 안 좋게 보고 있으니, 정말 모두 잡아 죽이고 칭호만 축출하겠다고 나설 확률이 크다.’
결국 살 방법은 하나였다.
강함에 미친 차원창세신 코아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는 것이다.
‘강자를 알려주면 된다.’
어찌되면 동료를 파는 일이지만 저 기세와 읽은 성향대로라면 결과는 같았다.
전부를 찾아내서 원하는 대로 할 것이기에 결국 만나게 된다.
“현세계에서 칭호를 받은 존재 중에 만족하실만한 강자는 서우리나 근처에 은둔해 있습니다.”
“말해봐.
진리께 받은 절대복종(絶對服從)을 불복종(不服從)으로 변질시켜 말아먹은 죽어 마땅한 놈아.”
눈빛에 살기가 은은하게 섞여있는 것을 보니 정말 죽일 생각이었다.
하나 다행히 구명줄이 있었다.
아니 자신들에게서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릴 방법이었다.
“저희들 중 유일하게 칭호가 변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강합니다.
또한 가끔 진리님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기도 하고 최고위원회를 압박하여 대부분 감시만을 하게 만든 허무(虛無)의 베인입니다.
아마도 명단 처음에 적혀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역시 시선을 명단으로 바꾸는 차원창세신 코아를 보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방법이 정답이었다.
“응? 맨 위에 쓰인 이놈인가?
그래도 서열 1위의 값을 한단 말이지.
정말 진리님을 몇 번이나 만나고도 무사하고?”
진리님을 만난 적이 처음 칭호를 받은 적밖에 없기에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전혀 거짓말은 없었다.
“가장 먼저 은둔했지만 현세계와 이제까지 힘의 균형을 맞추어온 저희들의 대표입니다.
진리님과 마주치고도 무사하고 외부의 일에는 침묵하는 허무가 있었기에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들도 극단적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잡히면 변호까지 해주며 빼주었기에 허무가 나서면 다른 칭호를 받은 존재들은 모두 따를 것입니다.
하나하나 이렇게 직접 처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 하긴 이 정도의 수준이면 내가 직접 나설 가치도 없지.
시간낭비니 시켜야지.”
결국 약하다는 이유로 바로 죽는 최악의 첫 만남을 잘 넘기게 된 불복종의 디스는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했다.
보아하니 허무를 바로 만나서 자신들을 떠넘길 모양이니 살아남은 것이다.
‘정말 미안하다. 허무(虛無).’
허무의 베인은 강력하나 자신들이 모이면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다.
모든 권능을 흡수하여 무(無)로 돌리는 강대한 칭호의 특성을 보면 도망은 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관심을 보이게 하면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허계의 창조주이면서 소수의 반역자들을 쫓아서 현세계까지 직접 추격한 진리였다.’
그런 진리의 대리로 보내질 정도면 더 지독하고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격을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실망하고 수련만을 하면서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허무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동안 도움만을 받은 자신의 이런 배은망덕한 행동은 배신이나 다름이 없다.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힘들어도 같이 살자.’
허무는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없는 세상에 관심을 끊고 은둔을 가장 먼저 했다.
하지만 칭호를 가진 존재들의 일이라면 그래도 동료라고 몇 번이고 나서준 고마운 존재에게 못할 짓을 하게 되어서 마음이 너무나 찔리는 불복종의 디스였다.
하나 아직도 목이 줄로 묶인 예비 사형수의 신세이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의리에 대한 보답도 살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허무의 위치를 확인하고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연명부를 챙기고 일어서서 차원의 문을 열었다.
하나 아직 나빠진 기분이 원상회복이 되지 않아서 그대로 목줄을 당겨서 전원을 차원의 문 저편으로 던져서 처넣었다.
“켁-!”
“컥-!”
“윽-!”
차원문 너머의 땅에 처박히면서 또 쇠줄이 목을 파고들자 숨이 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는 칭호를 가진 존재들에게 나직하면서도 살기가 넘치는 경고가 들렸다.
“빨리 걸어-!
그리고 약자 주제에 시끄럽다.
너희들도 목만 남겨서 마도구로 써주라?”
“…….”
목을 잘라서 마도구로 쓴다는 말이 협박도 아니고 진심이 풀풀 풀리니 반항 따위는 꿈도 못 꾸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집단으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 꼴이다.
그래도 투쟁이 전부인 투신이니 불안보다 불만이 하늘을 찔러서 의지를 교환한다.
당연히 분통을 터트리면서 대책을 강구하였다.
‘빌어먹을-! 약한 것이 죽을죄냐?
보자마자 왜 이러는 거야?
악마족도 이러지는 않는다.’
‘최고위원회의 창조신에게도 1대 1로는 지지 않는 우리가 왜 약자라는 거야?”
‘조용히 있어.
잘못하면 정말 칭호를 추출당하고 소멸된다.
허무가 마음에 들기를 바래야해.’
‘허무(虛無)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 의견에 잠시 말을 하지 못한 불복종의 디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현세계에서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허무(虛無)라고 해도 칭호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을 4명이상 한꺼번에 상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위 서열이 5명이나 모여 있었는데 별다른 권능을 보지도 못하고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럴듯한 전투는 고사하고 바로 제압당해서 이 꼴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무의 베인에게 승산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엉덩이에 극심한 통증이 오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날려졌다.
뻥-!
“잔머리 돌리지 마라.
약해빠진 쓸모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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