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권
빨리 입장을 결정하라는 거의 협박과 같은 말에 입술을 깨문 총책임자였다.
결국 가장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진리 친위군이라고 서류 적으로 명시되었는데도 허계 봉쇄군들은 아무런 반발도 없이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도망자들조차 쉽게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끝없이 발전하는 허계와 망해가는 현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극히 위험한 상태였던 것이다.
‘허계 봉쇄군의 대부분은 이미 진리와 혈족들이 보이는 강함에 매료되어 있다.
이들은 지휘부뿐만 아니라 주요 직위자들을 대부분 교체했어야 했어.’
하나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 만한 투신은 현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가끔 허계의 존재들이 신체 재구현을 포기하고 허신상태로 탈주하며 일시적으로 뿜어내는 강함은 무시무시했기에 일반투신은 상대할 수 없었다.
전 투신 중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들을 고르고 골라서 배치시켰는데 교체 병력의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허계의 허신들을 버틸 전력은 이들뿐이기에 교체시킬 여력이 없었지.’
최고의 투신들의 합공 덕분에 도망자들을 겨우 막아낼 수는 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현세계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허계 봉쇄군들이 수천이 달려들어도 쩔쩔매게 하는 허계의 탈주자들은 차라리 싸우다 자멸을 택했지 절대로 진리가 있는 바람가의 본가에는 가까이 가지도 허계로 돌아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신체도 없는 허신의 상태로 권능을 계속 발휘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필사적으로 도주를 막는 자신들에게 의해 자멸을 맞는 순간이 오면 그제야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대부분 정중하게 절을 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소멸을 맞이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진리를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증오하지는 않는다.’
진리에게 끝없는 경애만을 바치고 자신의 약함에 한탄을 하면서 사라지는 모습들은 충격적이었다.
신체가 없는 허신들이면서 비겁한 도망자가 분명한데도 몇 천 명이 달려들어야 막을 수 있는 이 정도의 강자들이 무한한 존경을 바치는 존재는 현세계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순수한 강함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투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위자다.
혼자서 현세계를 뒤흔들고 허계를 끝없이 발전시키고 있는 진리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더구나 최고의 주신들이라 불리면서 총책임자들로 오는 주신들은 진리에 의해 약자라고 절반이상이 말소되어 사라져 간다.
겨우 인정받고 살아남는 주신들은 그야말로 두말할 필요도 없는 능력자가 되어 출세가도를 달리니 그 동경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진리를 가장 존경하는 지극히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일이 벌어졌다.
잠시라도 정신을 잃어서 지휘권을 놓친 것이 치명적이다.’
전대의 책임자들이 항상 우려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진리는 이계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자신들의 목숨이 가장 먼저 위험하니 개인수련을 해서 필사적으로 강해지느라 그 부분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서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진리대리로 온 차원창세신 코아가 반란군으로 몰아넣는 황당한 행동으로 인하여 터져버린 것이다.
‘반란군이 되기 싫으면 진리의 군기를 지금이라도 버리면 되는데 아무도 놓지 않는다.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이미 분위기가 완전히 진리 친위군 쪽으로 넘어갔다.
당장 군기를 버리고 물러서라고 들을 것 같지 않다.
부하들이 대부분 반대할 명령을 내리면 자칫하면 지휘권을 모두 잃는다.’
넘버 2가 된 투신이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지휘권을 가진 자신의 자리를 원하는 것이다.
‘차라리 반역군의 수뇌가 되지 지휘권을 부하에게 뺏긴 무능한 지휘관은 될 수 없다.’
무능하다고 낙인이 찍히느니 차라리 소멸되는 것이 나았다.
더구나 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수습을 할 수 있지만 지휘권이 넘어가면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결심을 굳힌 총책임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이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본성을 봉쇄한다.
세부 봉쇄명령을 내려라-!
넘버 2-!”
“알겠습니다. 총책임자님.
아니 이제 넘버 1이군요.
진리 친위군의 첫 임무다.
단 한 명도 통과시키지 마라-!
우리는 현세계 최고 정예인 진리 친위군-!
오직 최고의 강자만을 따른다.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대군 봉쇄형태(大軍 封鎖形態)-!”
“대군 봉쇄형태(大軍 封鎖形態)-!”
환호는 없었다.
단지 복명하는 소리만이 우렁차게 울린 뿐이었다.
숨기지도 않은 이들의 대화는 이미 모든 허계 봉쇄군의 투신들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결정을 내린지는 오래였다.
강함을 추구하는 투신으로서 절대적인 강함을 보이는 진리에 대한 감정은 비록 과거에 현세계를 초토화시켰다하나, 그때의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상관없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 못하는 허계의 탈주자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상을 보낸 자신들에게 강력한 힘을 가진 강자란 찬란하게 빛나는 빛과도 같았다.
더구나 공통적인 불만도 있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서 방어선만 유지하면서 긴장을 유지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배신자들과 차라리 결판을 보고 싶다.’
이미 본성의 혼란한 사정과 갈수록 줄어드는 보급으로 인해 현세계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진리대리라는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으면서 강제로 줄이 세워졌을 때 원하던 무엇인가가 다가옴을 예측했다.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결전의 순간이 다가온다.’
‘의미 없는 기다림은 끝이다.’
‘우리는 투신이다.
지키는 신이 아니라 쟁취하는 신이다.’
좌좌좌좌좌좌-!
진리라고 적힌 군기들이 일제히 허공에 치솟아 올랐다.
깃발을 머리 위로 올리고 각자의 신기를 꺼내든 그들의 기세는 현세계 최고의 군세인 진리 친위군이었다.
설마하면서 대치하던 전선 방위군의 얼굴은 불신과 당혹으로 물들었다.
숫자는 자신들이 우세하지만 겨우 2배의 군세로는 저들을 이길 수 없었다.
허계의 강력한 존재들과 실전을 거듭하면서 진리에 의해 강제로 걸러진 최고의 주신들만을 지휘관을 모시고 강화되어온 저들의 전력은 이미 다른 방어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전선 방위군의 지휘관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허계 봉쇄군의 투신들은 한번 파견이 되면 거의 영구적이라서 개인 세력화될 우려가 컸다.
그래서 항상 우려하던 부분이 현실화된 것이다.
“정말 반역했나?”
“그러게 전원 교체를 한번은 해야 한다고 했지 않은가?”
“무슨 수로?
어디서 허계의 허신들을 막을 전력을 또 구해?”
“이런 제기랄-! 진리대리가 온다기에 각오는 했는데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무단 침입한 허계의 창조신을 막아야하는 전선 방위군과 그것을 가로막는 이제 진리 친위군이 된 허계 봉쇄군이었다.
목적이 극단적으로 다르니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정도로 험악한 투기가 양쪽 군세에서 물밀듯이 터져 나왔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이계 본성 서우리나의 최종 방공망의 필사적인 저항을 코아로 먹어치우면서 내려온 차원창세신 코아의 눈빛은 즐거움으로 물들었다.
‘워낙 수준이 엉망진창이고 다 망한 이계라서 조금 흔들었더니 바로 이렇게 되는군.
그러게 아무리 통제를 강화하면 뭘 하나?
부려먹은 만큼 대우를 잘하고 희망을 주어야 배신을 하지 않지.
손발이 될 세력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권력을 잡는 것도 너무 쉽겠군.’
이계로 오자마자 최소한의 수족이 될 정도의 병력을 손에 넣었다.
물론 아직 불안한 상태이지만 나름대로의 성과에 만족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였던 행성표면에 피해는 고사하고 오히려 공격을 정기로 바꾸어 권능을 강화시킨 차원창세신 코아가 내려섰다.
두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행성표면과 코아가 충돌직전에 둔중한 울림을 내면서 멈추었다.
그리고 동심원의 모양으로 퍼져나가는 진동과 충격이 서우리나 전체를 뒤흔들었다.
발밑에서 공격을 막으면서 흡수하던 코아를 머리 위로 이동시킨 차원창세신 코아는 주변을 보았다
원하던 목표인 이계의 지배층이며 위원회라 불리는 주신과 창조신들이 모여 있는 ‘케이프’라는 공동신전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깃발과 몽둥이를 들고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일반신들이 비명을 지루면서 도망을 치는 것을 보았다.
행성에 가득 채워진 공동신전 주변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투기와 살기를 뿜어내던 하위신들을 돌아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무장수준은 약간 이상했지만 인증전과 살기 위해 하루로 쉬지 않고 전쟁이 터지는 주우주와 전혀 다른지 않은 분위기에 아주 만족한 것이다.
“카하하하하하하-! 여기도 활기찬 혼란과 전쟁-!
신생은 투쟁의 연속인가?
그래 마음껏 싸워라.
상황만 바뀌면 오늘의 아군은 내일의 적군이다.
결국 강자만이 살아남는데 여기서는 무조건 나로구나.
아아-! 과정은 아직도 예측불허이지만 결과는 확실하니 이계에서는 정말 즐거운 신생이로다!
자-! 일단은 침략자가 여기 있다.
모두 덤벼보아라.”
“으아아아아-!”
“까아아아아-!”
하나 대답도 응전도 없었다.
감당 못할 살기와 투기를 쏟아내는 창조신에게 존재를 걸고 덤빌 용기 따위는 없었다.
단지 분에 못 이겨 몽둥이는 들었지만 목숨을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시위만을 원하던 일반신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만 칠뿐이었다.
그 꼴을 보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이마에 잠시 핏줄이 솟았다가 사라졌다.
“참으로 한심하기가 끝이 없구나.
기대를 아예 하지 말아야겠다.”
무장을 하고도 본성을 강습한 침략자에게서 도망치는 한심한 일반신들에게서 아예 관심을 끊고 다시 주변의 투신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반신들의 입장에서는 도망은 당연했다.
공동신전의 불편함을 참다못해 항의를 위해 시위에 나왔지 절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안전한 상황에서 분통을 터트릴 기회만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방어만 하던 치안유지군 대신에 상공에 가득 메운 투신들이 바로 전쟁을 벌일 듯이 대치하고 있다.
거기에 처음 보는 창조신까지 살기와 투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면서 행성을 박살낼 기세로 강하했는데 버틸 용기 따위는 없었다.
무분별한 도망이 자연스런 반응이었는데 그것이 본성방위를 맡은 투신들에게는 최악의 장애가 되었다.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일반신들의 퇴거를 서두르라.”
“창조신 수준이 이대로 전투에 들어가면 일반신들은 모두 죽는다.
어떻게든 행성 외곽으로 방출시켜야 한다.”
“투입이 불가능…….”
창조신에게 일반 투신은 견제와 시간 끌기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정도는 이계의 투신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 신속하게 병력을 집중하여 행성에 적응하기 전에 반격을 한다면 최소한 권능의 발동을 막고 밀어낼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시위 중이었다가 도주하는 일반신들에게 진로가 막혀서 병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완전히 지휘부를 무방비로 내주어 버린 셈이 된 방위군들이 방해가 되는 일반신들을 어떻게 통제해서 길을 열고 집결을 하려고 했다.
하나 숫자가 너무 많고 반항적이어서 제한이 많았다.
오히려 시위할 때보다 더 거세게 저항하는 인파에 의해 병력이 분산되어 버린 것이다.
투신들이 일반신들의 물결에 의해 오히려 외곽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저절로 혀가 차졌다.
“쯧쯧-!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군.
진군에 방해가 되면 전부 죽여서라도 길을 열어야지.
전부 같이 죽을 셈인가?
이러면 본성 방위군도 볼 것이 없군.”
자신이 강하하여 내려선 곳은 바로 이계의 심장부인데 고위 창조신이 낙하했다면 신속한 대응의 분초단위로 피해규모가 달라진다.
그 피해는 일반신 몇 만이 문제가 아니고 신계 자체가 멈출 수도 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본성을 지키는 최종 병력은 정예이고 최종 방위수단이다.
그런 본성 방위군조차 아무런 대응도 못하는 한심한 꼴을 본 차원창세신 코아의 마음속은 너무나 즐거웠고 아쉬웠다.
‘신계가 멈추면 부활도 없지.
그럼 끝장이다.’
본거지에 침입한 적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신속히 배제해야 하는데 배려 따위로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원하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는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이계 전력의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낸다.
그리고 패배시켜서 내가 최강임을 증명한다.
그렇게 변화를 위한 절대 권력을 내 손에 쥔다.’
혼자서 이계 전부를 이긴다면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절대 권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총책임자에게 얻은 정보라면 혼자 뒤집을 수 있지만 허계 봉쇄군을 억지로 진리 친위군이란 반란군으로 만들어서 끌고 왔다.
세력도 좀 얻고 이계의 지배층에게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총책임자를 기절시키고 얻어낸 정보대로 최고위원회와 위원회가 공동거주하고 있다는 공동신전 ‘에프키’가 진동한다.
‘역시 자극을 조금 많이 했더니 과연 제대로 대응을 할 모양이군.’
쿠쿠쿠쿠쿠쿠쿠-!
하늘 높이 솟은 탑형태의 건물들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마치 거대한 의자형태로 변했다.
마치 신계주신의 영광의 의자처럼 변한 건물의 허공 위로 만들어진 자리 위로 정확하게 26쌍의 빛의 날개를 휘날리는 100명의 창조신들과 300명의 주신들이 떠올랐다.
‘영광의 자리의 공동 형태인가?
통합된 권능은 위원회의 300주신들과 최고 위원회 100창조신인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들의 무시무시한 살기가 어린 시선들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후후후-! 재미없게 인상만 쓰지 말고 너희들도 오래간만의 투쟁이지 않는가?
서로 즐겨보지 않겠는가?”
“닥치고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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