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권
저 허계가 있는 행성은 이계의 존재들은 아예 접근불가이니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잘 알 수가 없다.
이계의 총력을 동원하여도 조사가 가능한 것은 주우주 정도였다.
겹겹이 주우주로 싸여있는 절대계는 이계에서 알 수 없다.
그래서 주우주의 기준으로 이계의 신들을 파악했는데 재구현의 제약을 생각하면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재구현의 제약으로 설사 본신신력이 10조라고 해도 현세계(現世界)에 오면 10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와 저 행성에 있는 존재들의 가공할만한 능력을 보아서는 그런 권능을 만들 가능성은 있었다.
주우주와 재구현의 제약만 믿고서 안심해온 현세계의 입장에서 엄청난 비상사태였다.
‘하나 지금 보니 심각한 오류다.
이건 다시 보고를 하고 조치를 취해야 해.
한데 이계에서 활동하는 진리대리가 그런 권능을 가졌다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아군이니 전력이 강하고 제약이 없을수록 좋다.
하지만 이건 툭하면 폭력인가?’
자신이 알기로는 진리대리는 최고위원회와 위원회가 진리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해서 받은 강력한 전력이다.
하나 도주자들을 잡는다고 이계를 송두리째 파괴하려던 진리의 대리가 아니라고 할까봐서 다짜고짜 폭력이다.
‘권능조사를 하려고 해도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더구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이 10만이 넘는 투신들을 동시에 목검으로 후려갈기는 권능을 가졌다.
겨우 목검의 공격에 이계의 최정예들이 너무 쉽게 모두 뻗으면서 포기하는 꼴을 보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나 몇 대 맞아보니 이유를 바로 알았다.
목검에 실린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상위의 권능이었다.
최고의 주신으로 평가받는 자신조차 이런데 하위신들이 견디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더구나 권능보다 더 험악한 것은 성질과 입이었다.
“이계 전력에 대해서 다시 보고해봐-!
이 입만 살은 꼴통자식아.
고통에 이렇게 쉽게 굴복하는 약골들을 군대라고 잘도 가지고 있다.”
“…….”
‘수준이 너무 다르잖아-!’
이런 폭거에 할 말도 많고 비밀사항을 공개적으로 보고할 수는 없지만 막무가내다.
그러나 진리(眞理)라면 최고위원회에서도 가장 발언권이 크다.
물론 진리가 위원회에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방어선에 총책임자의 임무를 수행한 위원들에 의해 그 강력함은 계속 증명되고 인정되어 왔다.
재구현의 제약으로 1만분의 1로 약화되고도 너무나 쉽게 주신들을 말소시키는 그 힘에 모두 경외감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최고위원회의 일원에 지나지 않았던 직위는 공석이나 이미 비공식적으로 서열 1위로 올라가 있다.
이것은 본래 창조주님과 거의 동격이며 정기부족으로 잠들어 계신 지금은 거의 최고 지배자일 정도다.
덕분에 보안등급 역시 최고 등급이다.
본래 전투력분야는 극비사항이 많으나 하도 공개되어서 대부분 다 알고 있느니 숨길 이유도 없다.
아니 눈앞의 이계의 신이 진리대리가 정확하다면 가장 먼저 현황보고부터 드려야 한다.
허계 봉쇄결계를 맡고 있는 총책임자는 군부의 핵심이니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억지력으로도 부족한 전력이야.
이대로라면 주변 반역자들의 세력에 끝장이 난다.
어떻게든 전력을 더 확충해야 해.
하나 다른 위원회의 놈들은 그걸 몰라.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예산권을 가지고 있으니 깎으려고만 하지.
싸움을 해본 적도 없고 죽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뜻이지.
쳐 죽일 놈들.’
예산을 주관하는 위원회의 대부분이 투신이 아니니 말이 안 통한다.
그래도 진리대리라고 하는 이 허계의 신은 일단 폭력부터 휘두르는 것을 보니 투신이 확실하다.
투신인 진리대리에게 군부의 전력 확충에 대해 납득을 시켜서 예산을 증액시키는 것은 군부의 가장 급선무였다.
“투신 전력은 주신 100명에, 고위신 55만입니다.”
“…….”
전력을 보고하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단지 험악하게 인상을 일그러트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유사시 예비 전력이 약 300만이 있습니다.
이들은 정규 투신과정을 마치고 일반신으로 복귀하여 생활하는 존재들입니다.
간단한 교육으로 본래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 그게 말이 되나?”
뭔가 단단히 틀어졌는지 비꼬는 것 같은 탄성과 짧은 물음이 나왔지만 그 이상 말이 없기에 계속 보고를 했다.
“전력분포는 방위목적으로 40만이 운용됩니다.
여기의 방위와 특수목적으로 활용되는 최정예 전력이 10만 정도에 비밀강습용 부대가 5만이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이계의 총 전력입니다.”
“…….”
우둑-! 우둑-!
거기까지 보고를 하자 오른손에 쥔 목검에서 섬뜩한 괴음이 울렸다.
근육과 핏줄이 솟는 것을 당장이라도 휘두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바로 방금 전에 저 몽둥이에 수도 없이 구타당했던 사실이 생각나서 섬뜩했다.
무슨 권능인지 당장이라도 소멸될 타격을 받았는데도 죽지도 못하고 처음 겪는 지독한 고통만 당했다.
‘그러고 보니 진리가 항상 손에 쥐고 있던 목검과 똑같군.’
“총 전력 55만에 예비 전력이 350만이라고?
거기에 주신이 100명이라고?
평균적인 수준은 너와 이들을 보아서는 보나마나이겠군.
정말 이게 전부냐?
그래도 절대계와 규모는 같다는 이계잖아?
숨겨진 전력은 당연히 있겠지?”
지극히 비꼬는 어조에서 하찮게 보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듣고 있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울컥-!
‘누가 진리대리가 아니라고 할까봐서 이런 가소롭다는 물음도 똑같아-!’
새로 부임하고 나서 감히 진리를 찾아가지는 못하고 외출을 나갈 때 들리면 이런 식으로 정식보고를 항상 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마지막에 이런 식으로 물음을 받았다.
바짝 긴장해서 정직하게 대답했는데 방금 이계의 신과 거의 같은 대답을 듣고 웃으면서 떠났다.
‘후후후후-! 발전하기는 어려워도 망하기는 정말 쉽구나.’
비웃음을 당한 격이라서 화가 났지만 감히 내색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기도 하고 총책임자를 맡은 강자로서는 인정하고 살려주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눈치를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약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소당한 절반이상의 전임자와 똑같은 꼴을 당할 수 없었다.
‘말만 들었는데 전임자의 절반이 정말 진리를 만나자마자 말소를 당한 결과가 바로 책상 위에 똑똑히 나와 있었지.’
총책임자들이 대대로 물려서 사용해온 사무실은 이상하게 빨간색으로 치장되어 있다.
거대한 책상과 보고를 위한 장치들도 모두 피처럼 빨간 색이고 마치 여인의 방처럼 짙은 향기가 방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자 놀람은 더욱 커졌다.
모든 책임자의 책상 위에는 전임자들의 이름과 역사가 새겨진다.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이상을 바라보라는 조치다.
허계 봉쇄군의 총책임자라면 신분이나 능력이 모두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존재들이다.
당연히 모두 출세하여 대부분 위원회나 그와 유사한 높은 직위가 이름 옆에 적혀 있었다.
한데 그런 영광된 그들의 부임순서대로 숫자가 적혀있었는데 이름이 지워진 전임자가 절반이상이고 옆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약자라고 판정되어 진리에게 말소됨.’
그 수는 거의 300명 이상이다.
1억 년이 임기이니 500억 년 동안 500명의 절반 이상이 죽어나간 것이다.
자료를 보면서 황당해 했지만 직접 보고 당사자가 되니 그야말로 번개가 뇌리를 치는 경악이다.
더구나 의자의 등받이에는 전임자들의 한탄과 같은 말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수련해라.
단련해라.
강해져라.
그래서 가능성과 유능함을 증명하라.
그러지 못하면 정말 죽어서 존재조차 지워진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의 사무실이 왜 빨간색이고 진한 방향제가 풍겨 있는지도 알았다.
빨간 색으로 숨겨진 것은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었고 짙은 향기 속에 숨겨진 것은 피비린내였다.
‘진리가 기준미달의 약자라고 말소시킨 전임자들의 죽은 흔적이었다.’
진리는 갑자기 예고도 없이 들어 닥치니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러니 바로 약자로 판정되면 여기서 신체가 갈가리 분쇄되고 신령이 말소되었을 것이다.
신체가 갈려나가고 신령이 산산조각이 나니 주변에 피가 가득 튀는 것은 당연하다.
부하들은 어떻게든 그 끔찍한 흔적을 지우려고 했겠지만 주신이 말소되면서 뿌려진 피는 원한에 가득차고 신격도 높아져서 하위신들의 권능으로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무실 자체를 바꾸는 교체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아예 대부분의 바닥과 가구를 빨간색으로 한 것이다.
‘교체를 포기할 정도이니 사무실에 뿌려진 총책임자들의 피와 시체가 얼마인지 상상도 안 갔다.’
최고의 투신이라고 자랑하며 보냈는데 약자라고 낙인찍혀 말소를 당했으니 이런 수치도 없다.
그래서 말소당한 본인들의 가문의 요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져 온 것이다.
이러니 정확한 통계도 없고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다.
이렇게 개인적인 강함에 따라서 존재 자체가 왔다 갔다 하는 판국이니 자존심을 가릴 여력 따위는 없었다.
평생 처음으로 극한대로 다시 단련을 거듭하여 완벽하게 주신의 권능을 일깨웠지만 개인입장으로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여기로 보내기 위해 군부에서 뽑은 후보자들보다 자신이 특별하게 강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봉쇄군 총책임자로서 보고를 했다.
‘아슬아슬했다.
진리가 쳐다보면서 몇 가지 묻는 것을 대답하는데 난생처음 다리가 덜덜 떨렸으니 말 다했지.’
만약 그런 입장을 취했는데도 더듬거나 쓰러졌다면 말소된 전임자들과 똑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리대리에게까지 똑같이 현세계(現世界)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을 들으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덤벼봤자 못 이기니 포기하고 허계 봉쇄군의 총책임자이며 군부의 최고 수뇌부의 하나로서 의무를 다해야 했다.
물론 이계에는 아직 강력한 전력이 있었다.
“여기에 위원회에 있는 예비 창조신급의 주신이 300명, 최고 위원회에 창조신이 100명이 있습니다.”
창조신 400명이면 정말 막강한 전력이다.
의원회가 전원 나서면 60만이 넘는 투신들을 모두 제압이 가능할 정도도 강하다
실질적으로 현세계(現世界)를 유지하는 힘이며 최고 권력기관인 이유다.
하나 진리대리인 허계의 신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나왔다.
“휴유우우우우-! 네가 최고 수준의 주신이면 창조신도 그저 그러겠지.
주우주의 수준보다 거의 1써클 이상 아래인가?
권능만으로 보면 절대계와 주우주 이상의 차이로군.
규모만은 절대계와 동급이라던 이계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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