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권
그런데 지역우주 내의 거대 행성만을 모두 집어 삼키듯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반투명하게 겹쳐 보이는 행성의 숫자도 이미 수십을 넘어서 수백을 초과하고 있었다.
별들의 공간이동이 거의 완료되고 잠시 후 떨리는 음성으로 보고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공간이동이 된 행성의 수……. 1,000개 이상입니다.”
“큭-!”
최고책임자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허계 봉쇄결계의 총책임자는 의원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빠른 길이었다.
현세계(現世界)의 지배층으로서 1만분의 1로 능력이 제한되는 재구현의 제약이 있는 허계라고 우습게 여기지 말고 진리의 무서움도 깨달으라는 뜻도 있다
무사히 보직기간을 마치고 위원회로 승진하고 떠난 전임자들이 신신당부하고 자신도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인수인계의 말이 맞았다.
“허계 봉쇄결계를 절대로 과신하지 마라.
저들은 얼마든지 부술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으니 가만두고 있을 뿐이다.
만약 저들이 진심으로 방어막을 파괴하려고 하면 반드시 전력을 후퇴시켜 불필요한 희생을 막아야 한다.
이곳의 병력이 현세계의 최정예 전력의 거의 전부라는 것을 명심하라.
총책임자의 가장 큰 책무는 필사적인 방어가 아니라 전력을 유지하고 후퇴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가의 일원이라는 영원체가 나서서 방어막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들었을 때도 결계를 자멸시키고 총퇴각의 지시를 내리려 했다.
그렇게 되면 바람성이라는 저 행성이 있는 지역이 통째로 지워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리에게 통할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그렇게라도 해야 안심이 되어서 만들어진 자폭장치다.
다행히 다른 바람가의 일원들이 바로 그 자를 끌고 가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벌써 2번째지만 첫 번째는 뭐가 뭔지도 모르게 당했고 뻔히 보고 있는 지금은 정말 무서웠다.
바람성에서 아직도 물밀듯이 솟아오르는 신력이 적어도 수천억을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의 직접 관리에 있는 허계 투신들의 힘인가?
어마어마한 신력과 권능이다.
이번에는 자폭을 명령하고 후퇴시켜야 하나?’
이계의 총력으로 만들어낸 봉쇄결계를 자폭시키면 자신의 경력에 치명적인 오점이 생긴다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하나 그보다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신력과 마력의 파동은 정말 두렵기 짝이 없었다.
주위의 투신들도 더 이상 뭐라고 말도 하지 못하고 몸만 떨고 있는 판국이었다.
허계의 존재들을 막고 비웃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선발한 최정예들이 겁에 질린 꼴을 보니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행성들의 급작스런 공간이동이 끝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시커먼 우주공간만 보였다.
흡수된 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최악의 사태였다.
‘이 항성계 주변의 빛을 내뿜는 항성과 행성들이 모두 남김없이 빨려 들어갔다.
이런 권능은 상정외다.
무엇보다 허계 봉쇄결계는 권능 방어와 대인용이다.
이런 행성규모의 권능은 봉쇄결계로는 대응할 수 없다-!
후퇴다.’
바로 후퇴를 결정하고 방어막의 자폭장치를 찾았다.
자신이 무능해서 도망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곳의 총책임자 직위는 결코 합당한 실력 없이는 배정이 안 된다.
아무리 현세계(現世界)에 직위와 관직을 사고파는 부정이 있어도 여기만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진리였다.
‘가끔 외출을 나서는 진리가 방어막을 지나가다가 방어군의 책임자가 부하보다 약하다고 판정하면 바로 죽여 버리지.’
정말 어이없게도 이곳의 총책임자는 진리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말소된다.
부하보다 약자인 책임자는 쓸모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최고위 지배층의 신들이 말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막으려고 아무리 위원회에서 항의를 해도 진리는 피식 웃으면서 부하보다 약한 주제에 위에 올라서 거들먹거리는 추한 몰골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소를 계속 시켜버렸다.
그렇다고 재구현의 제약을 가지고도 더없이 강력한 허계를 봉쇄하는데 약한 투신들을 배치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배층에서도 고르고 고른 진정한 주신 중에서도 강자만이 여기에 올 수 있었다.
이런데도 진리의 기준이하라고 절반은 말소되니 정말 총책임자로서 진리를 만나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의원의 자격을 입증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분명 위원회의 의원으로 가는 최단의 출셋길이지만 주신미만은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리를 직접 보고서 살아남아있는 나는 최고이다.’
군부에서 최고의 투신이라고 칭송받는 자신도 여기의 임무는 거의 목숨을 걸고 결정한 일이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진리를 대면해야 하는 이곳의 총책임자로서 인정받으려면 개인능력은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위기 감각이었다.
지금 그 위기 감각이 맹렬하게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아니 바람성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게 했다.
사라졌던 별들이 바람성 주변을 새까맣게 메우면서 모습을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마치 폭발할 것처럼 행성들의 표면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하나의 행성이 파괴되면 주신이라도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수백 개의 행성이 동시 폭발을 하면 당연히 전멸이었다.
자신들의 희생만이 문제가 아니라 폭발여파가 어디까지 퍼질지 예상하기 두려웠다.
하나 일단 병력은 온전하게 보전해야 했다.
이미 내려진 후퇴지시에 여기저기서 공간의 문을 열면서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울렸다.
“별이 폭발한다.
공간이동으로 후퇴하라-! 빨리-!”
“허어어어어어-!”
“후퇴-! 헉-!”
“커어억-! 뭐냐?”
공간이동으로 물러서라고 지시를 끝내고 자신들도 바로 공간이동으로 피하려는데 저절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공간에 개입을 하려는 순간 엄청난 반탄력에 내부가 진탕되어 치명상을 입어버린 것이다.
무슨 사태인지 다급하게 파악한 고위신들의 찢어지는 보고가 뒤를 이었다.
“헉-! 이 항성계의 공간좌표가 모두 일그러져 있습니다!”
“모든 공간 좌표가 무효화되어 있습니다.
공간이동으로는 후퇴할 수 없습니다.”
다급하게 열어젖힌 준비된 공간의 문들이 모두 자신들을 뛰어넘는 거대한 권능의 힘으로 닫혀있었다.
보고를 받은 총책임자는 이를 갈았다.
처음 빛의 날개를 처음 볼 때 느꼈던 위기감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으으-! 아까 황금빛의 날개의 권능이 벌인 짓인가?
이 항성계의 모든 공간좌표를 점유했단 말이지-!
아까 방어막을 아무런 파괴도 하지 않고 관통하여 무의미하게 영역만 넓혀가던 빛의 날개의 권능이 설마 공간이동을 봉쇄하는 힘이 있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수천의 행성들을 통째로 공간이동을 시키고 다른 이의 공간이동을 봉쇄하는 이런 권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폭을 발동시키고 공간 이동을 해서 도망가야 하지만 하나 이미 늦었다.
지금 자폭시키면 우리도 전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결계를 강화하고 지원을 요청하나?’
손실 없는 후퇴는 고사하고 별의 폭발로 전멸이 예상되자 총책임자가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방어막을 주시한 순간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방어막에 무엇인가가 계속 충돌을 하고 있었다.
둥-! 두둥-! 둥-! 둥-!
비록 재구현의 제약으로 1만분의 1정도만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바람성에서 사는 저 강대한 존재들의 권능조차 대부분을 막아내던 허계 봉쇄결계다.
하지만 아까 공간이동으로 사라진 행성들이 방어막 내부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 바로 반전하여 방어막과 충돌하며 짓누른다.
절대적인 방어막이 마치 종이가 되어서 거대한 바위에 밀려나가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찢겨져 나가려하고 있었다.
파열되어가는 모습에 저절로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안 돼-! 권능방어와 충격에는 거의 완벽하지만 저런 거대한 질량에 대한 대비는 없다-!
방어막이 사라지고 별들이 폭발한다.
모두 자력으로 후퇴하라.”
저런 거대 행성들의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질량들에 대한 대비가 없는 방어막은 이미 파열 직전이었다.
완전히 허점을 찔려서 방어막 뒤에서 농성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방어막에 연쇄충돌을 하는 행성들이 당장 폭발할 기세였다.
방어막이 완전히 사라지고 거기에 행성들이 폭파하여 연속 폭발이 되는 날이면 잘못하면 이 항성계만이 아니라 지역우주 전체가 날아가는 수가 있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었다.
‘후퇴도 방어도 안 되는가?
그렇다면 공격을……, 누구에게?
진리에게 공격?
말도 안 되는 소리-!
냉정해지자.
냉정해져야해.’
짝-!
하도 궁지에 몰리다보니 이계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까지 떠올린 총책임자는 이마를 오른손으로 쳤다.
이성은 약간 돌아왔지만 어떻게 해야 대응을 할 수 있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총책임자의 눈에 또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바람성의 주변을 채울 정도로 거대하게 확대 된 로브를 입은 13쌍의 빛의 날개와 13쌍의 암흑의 날개를 펼친 창조신이 보였다.
증명서도 없이 감히 진리대리(眞理代理)라고 주장하면서 통과하려던 이계의 신이었다.
“방금 전의 불법침입자-!
설마 바람성에서 살아있었는가?”
허계를 탈출한 존재가 바람성에 떨어지면 당연히 다시 끌려가거나 바로 처분된다.
바람가 행성표면으로 보냈으니 당연히 바람가의 손에 의해 바로 처분되거나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살아있었다.
현세계의 존재도 예외 없이 똑같이 처리된다.
그러니 방어막에 충돌하거나 접촉한 존재가 모두 바람성의 표면으로 강제이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특성이 만들어진 이유는 진리가 가진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강자에 대한 인식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지극히 높고 까다롭다는 점이다.
더구나 허락도 없이 바람성에 들어왔는데 기준미달의 약자라고 판정되면 신분고하를 불문하고 바로 처분되어 버린다.
진리를 자리에 없어도 저기 살고 있는 수백만의 존재들의 성향이나 기준도 예측불허라서 결코 무사할 수 없다.
‘이계에 완전히 침식된 저 행성에는 재구현의 제약이 없이 본래의 힘만 발휘할 수 있다면 단 한 명이라도 이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추정되는데, 강대한 존재들이 관측된 인원만도 이미 500만이 넘었다.
그 손에서 살아남았다고?’
더구나 저 거대한 검은 비석들로 만든 결계로 만들어진 허계화 결계(虛界化 結界)의 작용으로 저들은 본래의 힘을 모두 발휘한다.
그런 강자들이 우글대는 진리의 바람성에 불법적으로 떨어지면 당연히 누구도 무사히 살아남거나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현세계에서 감당이 안 되는 파괴신이나 너무 신격이 높아서 소멸이 안 되는 골칫덩어리들도 그렇게 처리해 왔다.
더구나 처리과정도 지극히 신속하여 던져지는 순간 끝장이 났는데 멀쩡하게 살아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말도 안 돼-!
바람성에 불법침입을 용서받을 정도로 진리에게 인정받았단 말인가?”
그런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로브를 쓴 거대한 창조신의 환영이 이를 갈면서 외쳤다.
“뿌드드득-! 역시 바람성에 함부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구나.
이계도 똑같이 속임수뿐이냐-!”
규정을 들먹여 인증서를 가져오라고 계속 요구한 것과 방어막에 충돌시켜 바람성에 처박히게 한 것도 모두 진리의 손에 죽이려는 함정이었다.
이들도 진리와 바람성에 대해서 잘 알면서 벌인 짓이었다.
그걸 모르고 책에서 읽은 대로 지배층은 솔선수범해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진리에게 가서 인증서를 받아온다는 최악의 선택을 고민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자신보다 강자라면 어쩔 수 없이 참겠는데 상대도 안 되는 약자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내가 살아서 돌아왔다.
그래서 너희들은 모두 몰살(沒殺)이다.
주신미만에게는 차원 신멸포(次元 神滅砲)도 아깝다.
전부 행성들로 으깨어 죽여 버린다.”
분에 못 이겨 지르는 외침과 동시에 행성들의 충돌은 더욱 가속화되며 굉음을 울렸다.
꽈-! 꽈-! 꽈-! 꽈-! 찌찌지지지지-!
연속충돌과 질량의 중첩을 못 이기고 방어막이 결국 완전히 무너진다.
그리고 거대 행성들은 방어막 뒤의 이계의 신들을 덮쳤다.
양팔을 하늘을 향해 펴고서 마도를 발동하며 폭주하듯이 날뛰는 차원 창세신 코아를 보는 바람가 오리진들의 눈빛들은 복잡했다.
진리에게 받은 타격에서 스스로 회복하여 제정신을 차린 것도 놀랄 일이다.
그런데 바로 정신체 주제에 영원체들이 군집한 이곳에서 분노를 터트리면서 저런 행성들을 소환하여 이계의 신들을 공격하고 있다.
‘아예 주위가 안 보이는 모양인가?
바람가에서 저러는 존재는 처음 보는군.’
겁이 없는 것인지 감각이 마비되어 있는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주우주 창조신정도면 충분히 영원체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정신체라면 공포나 경외로 꼼짝도 못하는데 흥분하여 완전히 무시하며 날뛰고 있다.
덕분에 공통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정신체는 바람가 근처에 오는 것만으로도 거의 기절하는데 신기한 놈이야.
열 받으면 주위가 안 보이는 모양이군.
진리 할아버님이 안주하지 않는 폭주라고 신격을 내려주셨던가?
딱 맞는 것 같군.’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