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권
도주했다고 방심도 할 수 없는 것이 조금의 틈만 보이면 바로 기습을 하려는 의도가 넘치도록 보였다.
자신에 대한 주의는 한시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직접 상대하기 힘든 적들은 저렇게 상대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과거의 적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이를 갈며 분해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은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더구나 오리진들이 어찌나 도망속도가 빠른지 이미 숲을 가로질러 거의 신전들이 모인 경계선에 도착한 것을 본 차원의 마도신은 고개를 흔들었다.
‘서로 죽이겠다고 날뛰던 둘이 공동의 적이 나타나자 바로 힘을 합하는 것도 의외였는데 기습에 도주까지 서슴없이 하니 정말 만만치가 않네.
나도 이렇게 얄미웠나?
내 힘으로는 끝장을 낼 수 없으니 이걸 어쩐다?’
잘못하면 놓칠 지경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차원신계로 멸신흑뢰마신족(滅神黑雷魔神族)과 이상신족(理想神族)이 합공으로 몰려오는 수가 있었다.
‘아니 지금 하는 짓들로 보면 반드시 그럴 것 같다.’
혼자서 일족을 전부 거느린 상위 오리진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아무리 자신이 강해도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직접 상대를 피해서 이계로 파견을 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갔다 왔더니 차원신계와 주신계가 박살이 나서 갈 곳도 없는 용병신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신계에 올라와서 인정을 받겠다고 발버둥을 치던 시절이 어제 같았다.
수없이 목숨을 걸고 얻은 전공과 용병대가로 겨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다시 그런 꼴이 될 수는 없었다.
조금 있으면 이계로 가야하는데 이런 우환거리를 남겨서는 안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조금 불안하지만…….’
슬쩍 차원의 오리진님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위로 올려서 이제 도착해 있는 창조신급 기계신 안타레스를 보았다.
이미 완벽하게 포위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
오른손을 들어서 약지손가락으로 열심히 도주하고 있는 오리진들의 뒤통수를 가리킨다.
그리고 약간 안쓰럽다는 말투로 명령했다.
“쏴 버려.”
명령과 동시에 안타레스의 표면으로부터 오리진 주변을 완전히 덮을 기세로 빛들이 떨어졌다.
피하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인 물량의 집중포화에 그대로 오리진들이 당한다.
물론 방어막을 만들어서 저항하려고 하지만 쓸모없는 짓이었다.
슈가가가가가가가가각-!
그렇게 안타레스로부터 오리진들에게 허공에서 내리꽂히는 무수한 유성우와 함께 전투는 끝이 났다.
이번에는 피하지 못하고 수없는 목검에 꿰뚫려서 땅에 쓰러져 신음하는 오리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 셀 수도 없이 지면과 세계수에 박혀있는 유성들은 모두 파멸유혼검이었다.
진리의 불멸이 담긴 파멸유혼검을 포탄으로 삼아서 안타레스로부터 초고속으로 쏘아낸 공격은 차원의 마도신에게 강림한 흑염의 절대자의 육체조차 관통했다.
그런 절대의 공격을 주우주의 오리진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너무나 쉽게 전투가 끝나가는 광경을 본 차원의 오리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라라? 저걸 빌려주시고 회수 안하셨네요.
그런데 저래도 되나요?”
파멸유혼검의 불멸(不滅)의 속성을 가진 대신 불살(不殺)의 특성이 있다.
파괴되지 않는 내구성 영역에서는 절대적인 무기지만 적을 죽이지도 않는다.
최고 수준의 절대기라서 사용한 본인들의 권능도 어느 정도 담겨있지만 미비한 수준이라서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힘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어릴 때와 자칫하면 한계를 넘는 힘을 사용할 수 있는 후계를 훈육할 때를 제외하고는 전부 본가에 보관한다.
무기가 아닌 변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바람가의 일원이라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일용신제 할아버님을 절대계 서열 1위로 만들기 위해서 마도신 할아버님이 본가에 보관 중인 파멸유혼검의 500만 자루를 요청했을 때 쉽게 내어준 것이다.
그런데 겨우 포탄으로 저렇게 써먹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나 마도신 할아버님은 절대계와 주우주에서 활동 중인 바람가 오리진 중에서도 유별났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희생과 노력도 감수하여 훈육과 업무추진 분야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영역에 올라있었다.
그런 분이 필요하다고 직접 빌려준 파멸유혼검들을 겨우 주우주의 오리진들을 잡는데 사용했다고 화를 내고 회수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확실히 분노를 살 확률이 컸다.
‘아-! 선대들에게 미움 받기는 싫은데…….’
마도신의 할아버님은 권능보다 성향이 더욱 무서웠다.
더구나 바람가의 문제아들의 훈육담당이라서 후대에 대해서 발언권도 컸다.
저 놈은 선조도 몰라보는 예의 없는 문제아라고 낙인 찍혀서 잘못하면 평생 제사만 준비하고 향을 피워야 하는 사태가 올지도 몰랐다.
‘잘못 보이면 정말 귀를 잡혀 끌려가서 혼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겠지.’
물론 자신이라도 막을 힘 따위는 없었다.
선대가 한두 명이면 어떻게 도주라도 하겠는데 5명이상이 모이면 어떤 바람가도 견딜 도리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위로 있는 선대가 5명이 아니라 수백만이 넘었다.
활동을 하지 않고 본가에서 자신의 강함을 위해 수련만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바람가들은 현재 질서를 뒤흔드는 사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온건파이지만 극도의 보수파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마음먹고 움직이면 정말 어떤 존재도 견디기 힘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아무리 강력한 바람가라고 해도 선대들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절대로 좋은 꼴을 못 보니 결국 다들 효자들이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이 보이면 버릇을 가르쳐 주겠다고 수만 명이 자기 일처럼 달려오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뭐……, 상관은 없겠지만요.
어차피 대부분 쓰지도 않는데…….”
결국 그대로 넘어가기로 했다.
“적을 죽이지 못하면 그것은 무기가 아닌 도구이지요.
그래서 성인이 되어 후계의 교육을 끝내면 대부분 자신만의 절대기를 만드니 거의 필요가 없어서 보관만 하지요.
저걸 포탄으로 사용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대로 재미가 있네요.
아무도 쓰지 않는 관상용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 계속 눈을 감아주기로 하지요.”
나름대로 이유도 만들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곧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이 세상은 재미만 있으면 되요.
끝없는 발전을 이루어서 진리 할아버님이 지루해 해서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지요.”
영원한 행복을 위한 영원한 발전의 유지라는 전제조건만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장애물을 돌파하는 것이 10중심들의 일이라면 돌파된 길을 넓히는 것은 절대계와 일족들이다.
이 돌파과정에서 생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바람가의 오리진의 주임무였다.
너무 나약한 세계와 일족들은 끝없는 발전을 견딜 수 없으니 강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봉문 되었지만 새로운 일족을 만들고 부흥을 돕는 것이 용납된 이유였다.
‘물론 일족의 오리진을 만들면 자율권을 주니까 주된 임무는 진리 할아버님과 바람가의 일이 잘 되게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자신이 할 일을 해야 했다.
1,001주우주에 대한 핵심정보까지 제공하면서 일부러 절대계도 아닌 499주우주에 직접 개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진지한 어조로 호명한다.
“람.”
그 말과 동시에 26쌍의 빛의 날개를 가진 존재가 공간에서 나타나서 무릎을 꿇으면서 공손하게 대답했다.
“제 499주우주 창조신장 가람(伽藍)의 승가람마(僧伽藍摩).”
창조신장을 간단하게 약칭으로 호출한 차원의 오리진은 거침이 없었다.
“란.”
“제 499주우주 마신황제 진마(眞魔)의 아란야(阿蘭若).”
26쌍의 암흑의 날개와 1쌍의 빛의 날개를 가진 마신족의 최강자인 마신황제도 그 부름에 바로 나타나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었다.
주우주를 대표하는 2명을 불렀으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또 한 명의 창조신을 호출한 것이다.
“라.”
“제 499주우주 중급 창조신이자 특위인 진멸(殄滅)의 비하라(畏訶羅).”
차원의 오리진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이고 명령을 기다리는 이 3명은 주우주에서는 최강으로 불려도 부끄럼이 없는 투신들이었다.
절대계까지 와서 목숨을 건 사투를 통해 칭호와 힘을 얻고도 주우주로 돌아가서 여기까지 발전시키고 유지시켜온 소문난 강자들이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이렇게 복종적인 태도를 보일 성향도 아니었다.
그러나 창조신장 승가람마나 마신황제 아란야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긴장만 하고 있었다.
진리에게 직접 휴가를 받았다고 세상을 무시하고 푹 쉬면서 놀던 비하라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진리의 기준에 맞는 그들을 바라보는 차원의 오리진의 눈은 지극히 따스했다.
아니 바로 웃음까지 터져 나왔다.
“풋-! 붙여서 람란라? 라랄라?
무슨 가수들 이름 같아요.
그런데 왜 그런 위태위태한 꼴들이에요?
힘들여서 받은 칭호와 수련상태도 정말 이상하네요?
일부러 그러고 있는 거예요?
누가 어려서 고난은 사서도 한다고 헛소리를 하던데 설마 믿는 것 아니지요?
어릴 때 고생하면 나이 먹으면 쓰러져요.”
“…….”
“…….”
“…….”
다른 누군가가 자신들의 이름과 칭호를 가지고 이렇게 놀렸다면 당장 죽여 버렸을 것이다.
하나 상대는 정신체의 진화이면서 정점인 영원체 중에서도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바람가의 오리진이었다.
창조주를 직접 모시고 대면하는 입장으로서 그 무서움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몸 상태와 권능까지 우습다고 언급하자 정신이 더욱 바짝 들었다.
잘못하면 보완할 방법이 없어서 숨겨왔던 약점들이 모두 까발려질 위기였던 것이다.
아니 수련부족이니 보완해 주겠다고 강제로 바람성에 보내버려질 것이 더욱 두려웠다.
‘개나 참새가 되는 것은 싫다.
잘못하면 끝장이다.’
바람성에 끌려가면 그래도 수련을 쌓아온 수준이 있으니 벌레나 새는 아니겠지만 인간도 아닌 개로 시작될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아니 과거에 강함만 믿고 영원체인 창조주님에게 건방지게 굴던 마신황제가 바람성에 참새로 끌려갔다가 겨우 복귀한 전적으로는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주우주에서나 최고의 강자로 인정받지, 절대계에 가면 상급 전사도 힘들었다.
영원체는 하위 존재인 정신체의 부활이나 재생이 쉬우니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최고위 지배층이라고 안심하고 있다가는 말 그대로 벌레처럼 처분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하급신만 되어도 절대로 흘리지 않는 식은땀이 등에서 배어나왔다.
“카하하하하하-! 수련부족?
너무 놀아서 그런 것 아닌가요?
제가 도와줘요?
역시 바람성이 주우주나 절대계의 존재들이 단련하기 가장 좋지요.
마음에 드는 바람성이 있어요?
내가 주선해 줄까요?”
“!”
“!”
“!”
차원의 오리진은 웃으면서 호의로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개로 끌려가서 언제 빠져 나올지 모르는 투신들의 연옥에 갇히게 되는 입장으로는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소리였다.
더욱 쩔쩔매는 3명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음성이 옆에서 들려왔다.
“여기 잡아왔습니다.”
그리고 피투성이의 인영 둘이 차원의 오리진의 앞에 던져졌다.
당연히 완전히 넝마가 되어버린 오리진들이었다.
털썩-! 퍼억-!
수십 개의 파멸유혼검에 관통당하고 숨만 붙어있는 오리진들을 보면서 창조신장과 마신황제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들의 명령대로 차원의 오리진의 처분에서 구하기는 했다.
하나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라고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목숨은 붙어있기는 하군.’
‘파멸유혼검의 불살(不殺)속성이 아니라면 몇 번이나 죽었을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살아 있기는 하다.’
어떤 타격을 입어도 오리진이 살아있기만 하면 일족에 대한 가호는 유지된다.
태도도 그렇고 일 처리 방식도 너무 과감한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일단 완수는 했으니 넘어가야 했다.
아니 차원의 오리진님 앞에서 문제를 삼았다가 자신들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차원의 마도신이 덤덤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사태가 생각보다 더욱 심각했다.
“이제 오리진들이나 관리신들의 목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계의 파견일은 저의 힘만으로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차원일족의 명예를 걸고서 반드시 만족하실 수준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저를 믿고서 맡겨주십시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