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5화
23권
다른 주신계와 싸울 때 전력이 될 만한 주신들을 모집하고 다니고 있었더니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자신들의 개인 신전에서 이탈하여 한 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신계를 전체 확인을 해본 결과로는 주신들이 모여서 회의 중이었다.
여신혈맹의 여주신이나 정령여주신들이나 각자의 수장과 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는 주신의 개인 신전에 모여 있는 것을 깨닫게 되자 골치가 아파졌다.
‘주신들의 집결장소는 여신혈맹은 그랑라하와 그랑조아이고 정령여주신은 이면주신 로키나인가?
원래 이 신계를 만든 그랑라하는 그렇다 치고 로키나는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연락망과 지휘체계를 구축하다니 과연 대단하군.
그나저나 어쩐다.
참전 대가는 줄 수 없는데 이렇게 뭉쳐있으면 설득이나 명령권이 잘 안 통해.
이것 때문에 각개 격파를 하려했는데 눈치를 챘다.
이제 무리이군.’
신계주신의 절대명령권은 신격의 차이가 큰 하위신일수록 위력이 크다.
그러나 만약 하위신들이 집단을 이루어서 신계주신을 넘어설 정도로 힘을 가지면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가진 힘이 신계의 모든 주신들을 능가할 정도이지만 이 정도로 합일된 주신들에게 강제적인 명령권을 발동하기 힘들다.’
방금 전처럼 1대 1의 상황이면 감히 고개도 못 들지만 다수가 모이면 고개를 들고 따질 정도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신계에 관계된 일도 아닌 개인적인 주신장으로서 하극상 문제 때문이니 강제하기도 힘들다.
자신을 위해서 아무 대가도 없이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할 정도의 친분도 없었다.
신계주신과 휘하 신계관리주신은 결국 계약에 의해 운영되는 관계이기에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수하라고 할 수 없다.
“이걸 어쩐다.
멸신홍염 살신흑뢰(滅神紅炎 殺神黑雷) 리아스나와 히메지나는 서열 2위 페미니스트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고, 대신일신(代神日神) 쿠에자나는 대신족 주신의 핵을 준 것이 있으니 문제는 없는데, 다른 주신들은 이렇게 모여 있으면 설득이 안 되는데 문제로군.”
개인적으로 만나서 하는 설득은 쉽다.
상위자로서 원하는 것을 주거나 권한을 약속하면 된다.
그러나 다양한 요구를 가진 집단을 설득하는 것은 힘든 문제였다.
아무리 주어도 누군가는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자신의 성향이었다.
참전을 대가로 이런저런 요구를 당하면 그 자리에서 또 성질이 폭발해서 판을 뒤집을 것이 당연했다.
주신장이 논의를 하자고 그러면 당연히 안 되는 것은 알지만 쉽게 바뀔 수 없는 성향이다.
본질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으니 문제가 발생할 만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현명했다.
더 이상 단독 면담은 무리일 것 같으니 자신의 주신전으로 돌아가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어쩔 수 없군.
이럴 때 조언과 도움을 구해야 하겠다.
이해관계가 얽힌 신계의 신들이나 주신계는 안되고 아무 관련이 없는 외부에서 조언을 구할만할 존재가 있던가?’
하극상을 용서해 주는 대가로 관리주신들의 목을 달라고 하였더니 자기 목숨이 아까운 관리주신들에 의해 과연 생각대로 전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본래 그걸 노렸지만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관리주신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정령계 전투나 주신전의 전투를 조사했으면 감히 덤빌 리가 없는데 귀찮아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연락처를 허공에 띄우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같이 고민을 해서 좋은 해답을 낼만 한 상대가 없었다.
‘마도신의 오리진님은 본가에서 폐관수련 중이시고 회색이야 나보다 더 답이 없는 성향이니 마음 놓고 논의를 할 상대가 없네.
하-! 나 왜 이렇게 살았지?’
현실시간으로는 120년을 넘게 살았다.
그리고 시간을 압축시킨 곳에서 수련한 시간 5만 년을 넘게 신으로서 있었는데 막상 허심탄환하게 고민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대부분 하위의 신들이고 그나마 동격이상의 존재는 모조리 싸워 이겨 올라온 결과였다.
덕분에 주신장까지 되었지만 그러다보니 인간관계가 완전히 적이 아니면 부하였다.
그래서 자괴감까지 밀려오는데 갑자기 최상위의 연락처에 새로운 이름이 떠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최우선의 연결망이었다.
“어라? 이건 뭐지?
이런 것을 입력을 한 적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연결이 되었다니 나보다 상위의 존재인가?”
하위의 존재의 연락처라면 당연히 이름이나 상태까지 확인이 가능하지만 상위의 존재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처음 연결이 생기면 직접 확인하고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반짝이는 연락처를 눌러서 확인을 해보려는 순간 손을 멈추었다.
빛 속에서 자신의 차원의 권능과 유사한 신력이 풍겨져 나온 것이다.
그것도 자신보다 엄청나게 높은 차원의 권능이었다.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님이로군!
그렇군-!
나는 주우주의 차원일족의 오리진이니 당연히 지원관계가 성립이 되는군.”
상위의 오리진과 하위의 오리진은 거의 같은 일족과 같다.
물론 직속상위자는 아니라서 강제 명령권은 없으나 바람가의 오리진 정도의 세력과 권능을 가진 존재에게 덤빌 하위 오리진이 있을 수 없다.
‘주우주 차원일족의 오리진이 자신이니 차원의 오리진님에게 당연히 조언을 구할 수 있지.
그리고 이렇게 연락처를 주신 것은 분명히 인사라도 하라는 뜻이지.
마침 감사인사라도 드려야 하니 해볼까?
혹시라도 도와주실 지도 몰라.’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의 연락처에 자신의 신력을 불어넣고 영광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아직 차원일족은 없지만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이면 주우주의 오리진에게 있어서 까마득하게 높은 직위다.
본래는 절대계의 오리진이 중간관리를 하여 얼굴을 보지도 못한다.
다만 자신이 10중심의 의뢰대가로 얻은 자격이고 절대계의 오리진이 없으니 아직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창조신이상의 존재들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고립무원의 입장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어떻게든 차원의 오리진님에게 호감을 사서 지원을 이끌어내야 했다.’
그러니 회색의 절대자의 현재인 자신이지만 바람가의 오리진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 진리의 혈족이니 얼마든지 부탁이 가능하다.
제발 조금만 파견시간을 늦추어달라고 청탁만 할 수 있어도 결코 손해가 보는 일이 아니다.
삑-!
간단한 연결음과 함께 허공에 떠오른 화면에 검은 장발을 단정하게 묶은 소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검은색 수련복과 오른 손에 목검을 쥐고 있는 모습은 진리의 평상시 모습과 유사하다.
진리의 혈족이면서 무조건 추종하는 바람가의 오리진의 모습은 대부분 저러니 외모나 복장으로는 구별은 힘들다.
하지만 신력은 분명 차원의 권능이니 본인이 확실했다.
“어라? 연락이 빠르네요.
차원의 오리진간의 연결망이 벌써 활성화되었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잠시 조사 좀 해볼까요.”
일방적이고 장난기가 담뿍 담긴 가벼운 어조이지만 같은 차원의 권능을 가졌기에 그 속에 담긴 무서운 힘을 모를 정도도 둔하지는 않았다.
막을 수도 없지만 적의나 살의는 없기에 화면 너머로 차원의 권능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에 경계심을 풀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차원의 오리진의 나직한 감탄성이 울렸다.
“호오오오? 이것 참 놀랍네요.
과연 10중심 중 현자계열의 최강이라는 회색의 절대자의 현재답다고 할까요?
본래 차원의 권능도 가지고 있었고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권능을 발동시킨 여파인 것도 같지만 정말 엄청난 적응속도인데요.
본신신력만 올린다면 주우주 차원일족의 대표 오리진으로 임명해도 될 정도의 권능의 숙련도로군요.
축하해요.”
상위의 오리진으로서 순수한 칭찬의 말에 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진리 할아버님의 이계에서 대리를 맡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준비는 다 되었나요?
갑자기 제게 연락을 하다니 주우주의 업무가 정리가 안 되었나 보군요.”
다짜고짜 본론에 나오자 속으로 놀랐지만 원래 힘든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얻으려던 입장이니 차라리 잘되었다고 하고 사정설명을 했다.
주신장이 되고나자마자 생긴 하위 주신계의 하극상의 문제와 골치가 아픈 부하들의 관리, 그리고 이번 일을 처리하는데 생기는 문제와 하려는 방향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정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답답하여 폭주하려는 마음속을 가라앉힐 목적도 있으니 말이 많아져만 갔다.
그런데 자신의 하소연을 묵묵히 듣고 있던 차원의 오리진은 이야기가 끝나자 간단하게 정리한 말이 들려왔다.
“그렇군요.
결국 주우주의 일이 많고 대리로 맡길만한 신이 없어서 이계로 파견을 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예.”
“갑자기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새로 받은 부하들이 말을 안 듣고 오히려 덤벼서 버릇을 고쳐주려고 하니 상위자가 가만히 있으라고 오히려 혼을 낸다고요.
그래서 소문나기 전에 최단기간에 끝장을 보아야 하는데 그러면 혼자서는 안 되고 기존의 부하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들이 더 말을 안 들어요?
몇몇은 설득했는데 나머지가 똘똘 뭉쳐서 파업을 할 기세라고요?
모든 이유가 개념이 없는 부하들의 하극상 때문인데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고요?
그래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맞나요?”
“예!”
뭔가 이상하고 너무 간략화가 되고 있지만 맞는 소리였다.
부하들이 사고를 치고 지시를 안 들어서 힘든 상황이라 이계로 가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즉 이계 파견만 아니라면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바람가의 오리진이면 진리에게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으니 파견만 늦추면 직접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한 것이다.
그런데 화면 너머의 차원의 오리진님이 약간 개념 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묻는다.
“그런데 물어볼 말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하극상이 도대체 뭐예요?
그리고 왜 하급자들이 상급자 말을 안 들어요?
조직의 상위자가 필요해서 시키면 하위자는 당연히 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덤벼요?
주우주는 가정교육이 그 정도로 문제인가요?”
“!!!”
‘갑자기 무슨 가정교육?
이거 농담이지?’
정말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황당한 물음에 차원의 마도신의 얼굴이 확 굳었다.
그런데 저 순진한 얼굴을 보니 정말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차-! 바람가는 진리의 혈족이면서 독자전승(獨子傳乘)이라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에게 철저히 수련과 효(孝)의 정신을 교육받지.
그리고 10중심급의 강함으로 오리진이 되어 현재에 개입하니 감히 덤빌 존재가 있을 리가 없지.
이러니 하극상이란 말 자체를 모르지.’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것이다.
진리의 혈족으로 절대계 최고의 재능으로 누구보다 존귀하게 태어나 10중심급으로 올라서고 오리진까지 된 바람가의 후손에게 하극상을 당할 상황 자체가 없다.
모든 바람가의 일원은 단순하게 힘만을 고려해도 진리와 10중심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까마득한 하위이며 바람가의 선조만이 유일한 상위이다.
그리고 바람가의 선조들 중 후손보다 약한 자는 단 하나도 없다.
자신보다 강한 선조들이 500만 명이 치열하게 강해지기 위해서 수련만 하고 있는 바람가에 태어나서 감히 약해빠진 후손이 하극상을 벌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반골적인 성향이고 독종이라도 500만이 넘는 바람가의 선조들이 못된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파멸유혼검을 들면 정말 무서울 것이다.
더구나 파멸유혼검은 어떤 공격에도 죽음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까마득하게 높은 신격을 가진 존재가 마음껏 휘두른 일격에 무수히 당해본 자신의 입장으로는 그렇게 맞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진리나 마도신의 오리진님을 보더라도 바람가는 조금만 말을 안 들으면 당장 매부터 먼저 드니 고집을 부리고 버틸 수도 없을 것이다.
‘아예 사는 세계가 다르시네.
이러면 말이 통할 리가 없지.
아아-! 바빠 죽겠는데 헛짓 했다.’
강함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바람가라서 유일하게 제외된 것이 하극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극상을 처리하느라 힘들다고 하소연한 말을 바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릴 수도 없다.
‘그럴 여유도 없다.
뭐……, 뭐야? 이거?’
이제껏 몰랐는데 차원의 오리진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숨도 못 쉴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절대계에서도 최고 수준의 강자들을 하도 많이 만나서 상위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의 면역력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심각한 착각이었다.
상위의 존재에게 확실하게 주시와 관심을 받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신령이 뒤흔들렸다.
‘컥-! 시선만으로 숨이-! 숨이 막힌다.
이것이 14써클의 차원의 오리진?
아니 바람가의 오리진이면서 완벽한 영원체의 위압감인가?’
단지 주의 깊게 쳐다보고만 있을 뿐인데 거의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제 보니 흑염의 절대자와 같은 강자들이 자신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무사했지 이런 식으로 직접 관심을 보여서 집중을 했으면 한순간에 끝장이었다.
고개를 황급히 숙이고 땀만을 뻘뻘 흘리고 있자 차원의 오리진님의 말이 들린다.
“어라? 흑염의 절대자에게도 덤비기에 이 정도는 잘 견딜 줄 알았는데 아직 부족하군요.
아니 주우주의 차원의 오리진이라서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인 나와의 능력 차이를 파악이 가능한 것인가요?
어쨌든 이거 실례했네요.
일단 눈을 감고 신경을 쓰지 않을게요.”
팟-!
그 말과 함께 몸 전체를 압살시킬 것 같은 감각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헛구역질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시선을 들자 과연 차원의 오리진님은 고개를 뒤로 돌리고 딴 짓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편해졌다.
‘그런데 파멸유혼검은 왜 불안하게 자꾸 흔들지.’
차원의 오리진이 마치 마음에 드는 장난감처럼 자신이 받아준 10중심의 서명이 새겨진 파멸유혼검을 손에서 돌리면서 흥얼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장난꾸러기 아이였다.
그러나 방금 약간의 관심어린 시선만으로 질식이 될 뻔했던 차원의 마도신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바람가의 오리진의 문제는 10중심을 제외하고는 막을 자가 없는 강자라는 것이다.
더구나 저렇게 꺼리는 것이 없다면 아차하면 정말 큰일이 난다.’
어떻게 하면 이대로 무사하게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고 끝낼까 고민을 하던 차원의 마도신의 귀로 장난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울렸다.
“아-! 하극상의 의미가 정확히 뭔가요?
우리들은 절대계와 주우주의 정보체계와 직접 접속하면 정보가 역류되어서 안 되니까 자세한 설명을 부탁해요.”
“아-! 그……, 그러십니까?
바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대답은 쉽게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랐다.
‘정보역류?
바람가의 오리진은 혼자서 주우주와 절대계의 정보량을 능가한다는 것인가?
설마 그래서 접속 금지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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