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1화
23권
이계에서 진리를 대신한 파견이라니 위험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미래인 회색의 절대자가 자신의 독단으로 받아온 일을 이렇게까지 해주었으니 거부할 수 없다.
만약 이번 일을 거부하면 미래의 자신만이 아니라 이일을 알고 관련된 모든 이들과 인연이 끊긴다.
누구도 받을 줄만 아는 공평하지 않은 거래만 하는 존재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상위로 갈수로 철저하게 서로 이익이 되지 않으면 버려지는 것은 가혹할 정도라는 것은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리의 대타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자 자신이 받기로 한 의뢰의 대가에 대한 회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차원일족의 오리진이 과연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아니지.
이미 의뢰는 거의 성공이다.
자신에 대한 회의와 후회는 의사결정을 흐리게 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용병신의 임무를 추진 중에 전투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망설였던 존재들이 생각이 났다.
그러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용병신이 투입될 만한 전투는 극도로 가혹하다.
모든 것을 걸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까 한데 목적의식이 흐려져 집중력이 떨어진 자들은 모두 패배하고 죽었다.
후회는 여유가 있는 강자만이 할 수 있고 평범한 존재들은 앞만 보아도 힘들어.’
꽉-!
불가능하리라 생각하던 바람가의 파멸유혼검에 10중심의 서명을 받는 것을 9할을 완료했다.
어차피 바람가의 의뢰이며 혈족인 차원의 오리진님께 갈 것이기에 유일용신제가 거부를 할 리가 없으니 거의 성공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흑염의 절대자와의 욕설전이 식상해졌는지 회색의 절대자가 가까이 왔다.
그리고 파멸유혼검의 황금의 절대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하-! 가장 난관인 황금의 절대자의 서명을 이렇게 쉽게 받았는가?
역시 주신장의 직위와 ‘절대선’인 카르마가 도움이 되는군.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대신(大神).”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는 회색의 절대자를 보면서 대신이 미소를 지었다.
‘절대계에 미친 회색이라고 두려움을 주고 있어도 은혜는 아는가?
현자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는군.
이래서 도움을 주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
오른손으로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한다.
“나중에 내가 부탁할 일이 생길수도 있으니 빚으로 보게.
그러나 저러나 자네의 현재인 차원의 마도신이 이계의 파견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안한 것 같은데 괜찮은 일인가?
우리들이 이계로 가려면 신체와 신령까지 모두 재구성을 해야 하는데 겨우 본신신력 100억 가지고는 100만 이하로 떨어질 것인데 대책은 있나?”
절대계나 주우주의 존재가 이계로 가면 신력이 1만분의 1로 하락한다.
완전히 구성 자체가 다른 세상이라서 신체뿐 아니라 신령의 구조까지 재구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권능까지 마치 정신체가 행성결계로 들어가면 9할의 힘이 감소하는 것처럼 급감을 하는 것이다.
그 위험성은 일반적인 정신체가 아무 대책이 없이 이계로 갔다가는 단숨에 존재자체가 위협을 받을 정도다.
그 말에 희색의 절대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우리들은 권능은 차원(次元).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하고 운영하는 권능이기에 이계라고 해도 저희들은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오히려 카르마의 법칙이 없기에 더욱 강화될 수 있습니다.”
“호오? 차원의 권능이 세계창조라?
그렇군.
그럼 아무문제가 없겠어.
하나 정기보급의 문제와 일부의 지배층도 문제일세.
강자들도 꽤 있기는 하지.”
신력을 소모하는데 정기가 보충되지 않으면 어떤 강대한 존재도 결국 죽거나 소멸한다.
무한의 권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신체를 유지하고 권능을 발휘하면 언제인가는 한계는 온다.
이것이 정신체가 영원체를 이길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물론 10중심들은 그 시간을 거의 무한대로 늘렸지만 영원체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아무런 연고도 신도도 바랄 수 없는 이계에서는 그 소모는 더욱 극심할 것이다.
하나 회색의 절대자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훗-! 회색의 바람성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오-! 그렇군. 그럼 상관없겠어.”
무한의 정기를 보장하는 바람성이 있다면 정기 문제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차원의 마도신 본인은 최대 출력이 1,000억밖에 안되지만 바람성을 보유한 창조대신이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이미 ‘성멸(星滅)’이라는 흑염의 창조대신은 흑염의 최고위 일족을 일격에 소멸시켜 그 강력함을 증명하였다.
확신에 찬 회색의 절대자의 말이 마침표를 찍었다.
“차원의 마도신과 흑염의 창조대신 성멸의 조합만으로도 이계를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추가로 투입하면 됩니다.
힘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과연 차원의 권능으로 필연적인 재구현의 제약을 풀고 차원의 마도신의 기동성과 성멸까지 있다면 현재 이계의 상황으로는 별 탈이 없겠군.”
만에 하나의 경우에라도 회색의 절대자까지 나서서 흑염의 절대자까지 몰아붙인 차원의 삼위일체를 발동하면 이계는 견딜 도리가 없다.
왜 진리가 차원의 마도신의 파견을 받아들였는지 납득한 대신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10중심의 현재라고 하지만 겨우 주우주의 창조신을 진리의 대리로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 정도면 과다한 전력이다.
“이번 일이 적당히 잘 마무리되면 진리도 일을 하나 덜어낸 셈이지.
그럼 우리도 좀 더 여유를 찾겠지.
이러면 나도 호의를 더 베풀어야 하겠군.”
또 나온 상당히 애매모호하고 이상한 말과 호의라는 말에 회색의 절대자와 차원의 마도신의 얼굴이 굳었다.
대신은 황금보다 더 오래 살아왔고 거기다가 다른 10중심의 영역에 비해 몇 배의 세력을 가지고 운영을 하고 있다.
비록 개인의 강함은 황금이나 다른 일족에 뒤진다고 할 수도 있으나 압도적인 숫자와 합일된 힘은 수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신족의 특성상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 장대한 세력을 운영하는 대신이다 보니 이건 힘이나 지식과는 다른 의미로 만만하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호의가 고맙기는 한데 갈수록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회색을 경멸하고 무시하던 황금이 서명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대신의 부탁이라고 해주는 것을 보니 자신들도 늪에 빠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호의라도 사절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쉬운 것은 자신들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자 대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유일용신제는 파멸유혼검에 결코 서명을 해주지 않을 것일세.
파멸유혼검이든 뭐든 진리에게 관계된 것을 훼손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지.
진리의 아들이며 후계라는 자부심이 거의 전부이고 그래서 효도만을 하려는 유일용신제에게 이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지.
바람가의 혈족이라도 그런 말을 했다가는 치도곤을 내니 다른 존재는 살아남을 수도 없지.
유일용신제에게 진리의 권위에 대해 의문이나 부정을 직접 표시한 존재가 이제까지 살아있는 적은 없다네.
같은 10중심이라고 해도 유일용신제에게 직접적으로 진리의 헌담이나 권위에 도전을 이야기하거나 권유하면 반드시 죽었지.
과거의 10중심들도 진리에 대해 유일용신제에게 몇 번 말실수 했다가 죽어나가고 공석이 되기도 했었어.
황금과 흑염이 서명을 쉽게 해준 이유도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이지.
자네들이 유일용신제에게 파멸유혼검을 서명을 하여 훼손을 부탁하면 바로 죽일 것일세.
진리는 자신에게 반말을 하고 덤비라고 하니 적극적으로 나서서는 못 막지만 본인이 직접 당하는 경우는 다르거든.
유일용신제에게 진리가 이야기하는 파격의 모든 것이 역린(逆鱗)이라고 할까?
효자로서만 살려는 유일용신제에게 감히 아버지에게 반말을 하고 도전하려는 존재들이 어떻게 보일지는 상상에 맡기겠네.
10중심이야 진리의 제자이기도 하니 여기서 예외가 되지만 이것도 가끔 위태롭지.”
“!!!”
갑자기 유일용신제가 진리에 대한 효도를 언급하면서 유일용신제에게 서명해달라는 말을 꺼내면 살해당한다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이 점은 바람가의 오리진들도 알고 있지.
유일용신제를 힘으로 누를 자신이 있지 않으면 파멸유혼검에 어떠한 서명도 하지 않을 것을 말이지.
아마 10중심 중 2명이상은 목숨을 걸고 합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 상호간에 불화를 일으키기도 좋은 방안이기는 한데 겨우 서명 때문에 그럴 리가 없지.
그래서 불가능한 의뢰라는 내 생각이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다양한 효과를 노리고 있군.
지금의 안정을 부수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치명적인 것이 여러 개야.
굉장히 뛰어난 책사이지만 아직 어린 모양이야.
너무 일반적인 상식과 기준으로 하다 보니 특이한 상황과 존재들의 관계파악에서는 허점이 많아.
유일용신제의 효도는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지만 모든 것에 완벽이란 없으면서 예외는 항상 있지.”
“…….”
그러면서 회색의 절대자를 흐뭇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부담을 느낀 회색은 차원의 마도신을 끌어다가 자신의 앞에 세웠다.
척 보아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으니 차원의 마도신이 알아서 처리하란 뜻이었다.
‘아무래도 보통의 말이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정말 곤란해.
이쯤에서 사라져야 하는데 일이 끊이지가 않아.’
현재의 차원의 마도신의 바람이 은거를 통한 마도의 연구라면 미래인 자신은 편안한 종말이었다.
그러나 회색의 절대자로서 흑염의 절대자게에 복수를 하기 위해 벌인 일의 마무리가 안 되면 아무리 스스로 말소를 해보았자 헛일이다.
진리에게 바로 재생되어서 강제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손해의 보충이라는 면에서 철저한 진리이기에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확률이 컸다.
그러니 대신이 저렇게 길게 이야기할 정도의 일은 더 이상 사양이다.
물론 갑자기 앞에 내세워진 차원의 마도신의 입장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야-! 너 나의 영원한 아군이라며?
이게 같은 편이 하는 짓이냐?”
“네가 쓸데없이 받아온 의뢰다.
그래도 나도 할 만큼 했어.
더구나 이 정도로 하고도 보상이 겨우 주우주 차원일족의 오리진이라니 어이도 없고 힘도 안 난다.
과거는 이미 되돌렸으니 이 이상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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