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0화
23권
회색의 절대자가 서열전에 참전하지 않는 10중심의 일족은 멸족시킨다고 협박하자 본인의 어머니만을 바람가 본가로 대피시켰다.
오리진으로서 일족의 멸족을 외면한 것이다.
이 점은 10중심으로서도 큰 충격이었다.
‘착한 사람이 화가 나면 무섭다더니 정당한 이유만 있으면 멸족시켜 버릴 정도로 화를 내고 있었을 줄은 아무도 몰랐지.
이제 보니 도저히 안 되는 용신족은 배제하고 바람가만을 전력으로 강화시켰군.
그럼 바람가의 오리진들이 저렇게 강력한 것이 이해가 가.
하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유일용신제가 본체를 되찾는다면 과연 진리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가려하자 머리를 흔들었다.
‘너무 나갔군.
여기까지는 진리의 뜻 대로이니 앞으로도 그러하겠지.’
하도 회색의 절대자가 그동안의 고착상태를 뒤흔들어서 숨겨진 사실들을 다 까발려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누구도 흑염이 회색의 자리를 원하는 것을 몰랐었고 저 인망이 높은 유일용신제가 본인의 일족을 멸족시킬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것도 상상도 못했었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대신족의 대두였다.
대신족은 바람가의 오리진이 만들어서 기존의 창조신을 개조하여 주우주에 뿌린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중상 급의 전사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최상위의 창조대신(倉曹代神)들은 동급의 신력을 가진 10중심의 일족과 비교하여 막상막하로 평가되고 있다.
최상급 전사가 제거되었다고 하지만 놀랄만한 일이다.
황금의 절대자의 대리에게 관리가 되어 안정적인 발전이 되었던 회색영역이 순식간에 절반이상의 영역을 빼앗기고 악전고투를 하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바람가의 오리진이 만든 대신족이 저렇게 강력하다니?
우리도 안심할 때가 아니군.’
영원한 발전을 목표로 하는 진리에게 약자가 지배층이 된다는 것은 더없는 죄악이었다.
주우주의 대신족에게 10중심의 일족들이 밀리는 일이 발생하면 정말 큰일이 벌어진다.
유일하게 특별하게 생각하는 혈육에게조차 이렇게 용서가 없는 것을 보아서는 결코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여기에 대신족이 가진 우수한 전투능력뿐 아니라, 모든 10중심의 일족을 능가하는 창조력은 정말 큰 문제다.
절대계의 고농도의 정기를 획득하면 어디까지 번성할지 예측이 안 된다.
소수인 바람가와는 상대도 안 되는 위협이 될 확률이 컸다.
‘아무래도 다른 10중심들과 최우선적으로 대화를 나누어봐야 하겠어.’
흑염과 회색이 서로 폭언과 욕설을 교환하고 있지만 결국 진리 앞에서는 공동운명체다.
문제가 생기면 같이 처분을 당하기에 힘을 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사태를 만든 회색의 현재인 차원의 마도신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감사드립니다.”
“대신(大神)은 고대신족의 원형이기도 하지.
자네가 신족인 이상 나의 가호는 당연하기도 하네.
그리고 자네를 도우면 차후에 회색에게도 도움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말게.
이런 작은 호의도 나중에 곤란할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저금과 같으니 자네도 잊지 말게.
이번에 황금의 절대자의 서명처럼 말이지.”
“호의는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저금과 같다는 점 명심하겠습니다.
대신께서 그동안 쌓아 오신 호의를 제가 소모하게 되었으니 반드시 나중에 갚도록 하겠습니다.”
깊게 생각하며 대답하는 차원의 마도신에게 대신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핫-!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너무 맹신은 하지 말게.
최소한 상대가 호의가 귀중한지 알고 이해관계가 명확해야지 효과가 있지.
그런데 자네 준비를 하지 않고 이런 의뢰를 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군.
파견 준비는 다 했나?”
“예?”
“회색에게 이야기를 아직 못 들었나?
이번 이계로 파견을 가는 것을 자네가 하는 것으로 진리에게 결재를 올려서 통과가 되었는데?”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이계파견을 왜 가?
난 아직 주신장의 임명식도 못하고 신계도 난장판에서 겨우 복구 중이란 말이야.
이것들이 내가 이계로 파견을 간 것을 알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또 벌어지는 전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는 일의 진행에 마음속에서 소리 없는 비명과 절규가 울리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굳어버린 차원의 마도신의 표정을 보면서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지은 대신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역시 아직 이로군.
이 일은 이계가 10중심 중 1명을 업무협조를 위해 파견을 해달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요구였지.
고려할 가치도 없지만 진리가 이계에서 최고 지배층의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주우주와 우리들의 일로 항상 공석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는 명분이니 완벽하게 거부하기도 곤란했지.
이 파견임무는 이계에서 진리의 대타라고 보면 되네.”
“!!!”
진리의 대타를 겨우 자신에게 맡기겠다는 소리에 입이 탁 벌어졌다.
그리고 다음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물론 파견이니 너무 잘하면 안 되는 것을 명심하게.
계속 보내달라고 하면 곤란하지.
그렇다고 진리의 대리역할이니 결코 못해서도 안 되네.
어디까지나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 하게.”
“…….”
뭔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임무이기는 하지만 파견이니 잘해도 안 되고 못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차라리 깽판을 치라거나 목숨을 바쳐서 성공하라고 확실하게 하란 말이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하나 물어볼 수가 없었다.
따지고도 싶었지만 본인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황금의 절대자의 서명을 자진해서 받아준 호의가 무겁게 걸렸다.
거부할 방법을 찾으려는 머리회전을 멈추는 소리가 추가로 들렸다.
“회색 본인의 현재이니 자격이 있고 이번에 주신장도 되었으니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자신 있는 추천이니 통과되었지.
철저하게 준비해서 대충 잘하고 오게.”
“…….”
또 미래의 자신이 벌인 일이다.
이제 속에서 한탄과 의심만이 솟아날 뿐이다.
‘뭘 대충 잘해?
도대체 무슨 뜻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놈의 미래는 날 뭘 믿고 자신 있게 진리의 대리로 추천해?
이게 정말 나까지 죽일 작정인가?
혹시 미래의 내가 아니라 미래에서 찾아온 내 원수인가?’
그러나 저 회색의 절대자가 자신의 미래이면서 결국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받은 것이 워낙 많아서 회색의 절대자의 부탁을 거부할 방법도 없었다.
회색의 절대자가 받아준 10중심들의 서명이 적힌 파멸유혼검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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