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4화
23권
차원의 오리진님이 자신보다 강자고 마도신의 오리진님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대적불가다.
의뢰를 포기하고 차원의 권능으로 이계로 도망을 가도 손쉽게 잡힐 것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지독한 현실만 자각이 된다.
절망적인 의뢰의 수정이고 거부고 이미 늦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한참 또 막대한 보상에 눈이 어두워서 저지른 잘못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차원신전의 접견실의 신호음이 울린다.
삐이이익-!
그리고 문 밖에서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방님.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문 밖에 느껴지는 신력은 5개였다.
이계의 정령신을 능가하는 속성력을 가진 환수주신들이었다.
‘환수주신들인가?
그러고 보니 이번에 가장 큰 도움을 받았군.’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신세를 진 것이 있다.
이 고풍스러운 복장과 말투를 가르쳐준 것이 저들이다.
499주우주는 대부분 투신이고 힘이 모든 것이라 주신이상의 고위신들은 예의범절과는 모두 담을 쌓은 지가 오래다.
그런 것을 배울 시간에 수련을 하는 것이 더욱 살아남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계에서 환수신들의 왕녀들로서 철저하게 궁중예절을 배운 그녀들밖에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맡기었다.
“들어오라.”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는 환수주신들의 모습을 보니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영 껄끄러웠다.
무슨 인형의 옷을 입히는 것도 아니고 복장을 끝없이 가라 입히고 장식하는데 질릴 정도다.
하지만 상위자로서 오만해지고 가면을 쓰고 꾸밀 필요도 있다는 조언에는 이제 동감하고 있다.
결과도 확실했다.
허름한 용병신의 모습이 사라지고 자신이 보아도 이게 누군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벽한 창조신의 모습이 된 것이다.
덕분에 무사하게 돌아왔다.
‘마도신의 오리진님께 단 1대도 안 맞았다.
이 복장과 말투가 확실히 효과가 있어.
이대로 밀고나간다.’
귀찮다고 고집을 피우고 전투용의 로브를 그대로 입고 갔으면 보나마나 치도곤을 당했을 것이란 예상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환수주신들이 치마의 양쪽을 양손으로 들어서 아주 약간 위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영 부담스러웠지만 받아줄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답례를 하자 바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와 복장이 흐트러졌사옵니다.
고쳐드리겠사옵니다.”
그 말에 자신의 정돈된 머리카락이 꼬이고 장식구가 떨어진 것이 느껴진다.
아까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괴감에 몸부림을 칠 때 흐트러진 모양이다.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당장은 할 일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는 무리다.’
고개를 끄덕이자 5명이 그림같이 다가와서 품 안에서 꺼낸 머리를 빗는 빗과 도구를 꺼내 정리를 시작을 했다.
품위가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처럼 보여주는 5명의 여신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머리와 옷을 정리해 주는 것은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마치 예술품을 만드는 것처럼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정될 정도이다.
처음 이 모습을 꾸며줄 때를 생각하면 꽤 긴 시간이 들어갈 것이니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자신보다 높은 고위의 신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도 적대적인 존재라면 어찌 해야 하나?”
멈칫-!
환수주신들의 조심스런 동작들이 놀라서 멈추었다.
자신들에게 묻는 것인지 확인을 하는 눈빛들에 자신의 실책을 알았지만 대답을 해보라는 의지를 보냈다.
그제야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더니 말 그대로 황금을 녹여 만든 것 같은 찬란한 금발과 사슴과 같은 황금의 뿔을 가진 환수주신이 대표로 말을 한다.
환수주신의 대표인 황룡신족(黃龍神族)이다.
“고위신은 결코 하위신의 부탁을 받지 않습니다.
오로지 명령을 하고 복종에 대한 보상을 해줄 뿐입니다.
이것이 지배입니다.”
“그렇지.”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급자의 부탁이라고 해보았자 별 것 아니지만 들어주다 보면 누가 상급자인지 모르게 된다.
그래서 부탁은 들어주지 않고 다만 상이란 개념으로 충성과 바꾸어서 돌려줄 뿐이다.
그리고 10중심에게 있어서 자신의 존재란 회색의 절대자의 과거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나 예외는 있사옵니다.”
황룡신족의 여성이 머리카락을 정돈하던 손을 다시 움직이면서 정리정돈을 하며 말했다.
“상위자조차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이나 소용이 있는 하위자라면 부탁을 들어주옵니다.
서방님께서는 제가 이계에서 본 어떤 신보다 강하시고 뛰어나신 분입니다.
어떤 상위의 신이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시고 부딪치시옵소서.”
“…….”
이것도 정론인데 할 말이 없다.
강함과 유용성은 상대적이다.
주우주의 창조신이라면 결코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지만 절대계의 10중심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여기에 회색의 절대자가 하는 짓의 반작용까지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흑염의 절대자에게는 창조신에게 부과된 절대선의 카르마가 아니었다면 당장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황룡신족의 환수주신이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추가로 말을 한다.
“자세한 내용을 몰라서 제한이 되오나 이것은 저희들의 짧은 생각이옵니다.
서방님께는 유능하고 현명한 주신들이 많으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꿈틀-!
‘그 골치 덩어리들-!’
이제는 생각만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고 투기가 일어날 지경이다.
자신의 차원의 권능은 이미 차원 창조신성과 주신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지성체와 신들의 행동과 의지의 전달까지 전부 확인하고 있다.
모든 신들이 새로 만들어진 주신성으로 강제 이주된 지성체들의 혼란을 수습하고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데 정신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싸울 기세다.
과거야 어떻든 지금 신계는 최고위 창조신성급으로 발전되어 있다.
기본적인 자신들의 자리를 잡기 위해서 지금 할 일이 태산인데 감정을 죽이지 못하고 저 꼴이다.
아무리 보아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자신의 불편한 기분을 읽었는지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달래듯이 말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의 고집과 삶의 신념에게서 비롯되옵니다.
어떤 신념과 이상도 완벽하지 않고 오류가 있기에 시간이 흘러 축적되어 본인조차 위협할 정도로 문제가 커지게 되옵니다.
그렇기에 혼자서 고민을 하면 해결이 힘드옵니다.
만약 해결이 안 되는 고민을 신계 주신이 가지고 있다면 신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큽니다.
그때는 다른 생각과 사고를 가진 부하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구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옵니다.
그들은 서방님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조화가 되지 않지만 다른 해결방식을 제공을 할 수도 있사옵니다.
미력한 힘이나마 도움이 필요하신다면 준비를 시키겠나이다.”
“음?”
이제 보니 차원의 신전에 상위의 주신들이 모여 있었다.
각 세력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구성이었다.
신계주신대리인 가이아나부터 여신혈맹의 여주신들과 정령주신, 지식의 주신, 이계의 정령신까지 있다.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하라는 눈빛에 환수주신들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저들이 모두 화해를 자청했사옵니다.
충성스러운 부하로서 명령을 받는 대신 신계자아의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옵니다.
모두가 서방님의 강함과 위엄의 덕이옵니다.”
그 말에 갑자기 간과했던 사항이 떠올랐다.
신계자아는 자신보다 등급이 떨어지는 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계자아에게 신들의 수준이 떨어져도 잘 도우라는 말을 하지 않았군.’
최고위 창조신계급의 신계자아가 예비 창조신도 아닌 겨우 주신들을 순순히 도와줄 리가 없다.
신계관리주신인 가이아나에게도 막 대하는 모습을 보니 아마 이것저것 조건을 달거나 무시를 했을 것이다.
각 계파를 위해 신계의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야할 수장으로서 신계자아의 무시는 정말 견딜 도리가 없는 압박일 것이다.
그렇다고 신계주신에게 청탁을 할 정도로 좋은 관계도 아니고 협박도 안 된다.
이제 자신이 저들보다 더 강하다.
‘접근전으로 기습만 안당하면 말이지.’
간단하게 말하면 신계주신인 자신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못 이기겠고 워낙 커진 신계의 운영에 힘이 부쳐서 도움을 바란다는 뜻이다.
힘들어지니 바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들이 괘심도 했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 자신이 받아온 최악의 의뢰에 대해서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나 조언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인 회색의 절대자를 제외하니 누구와도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그마나 저들은 많은 신들을 이끄는 수장들이니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들어오라고 해라.”
그 말과 동시에 접견실의 문이 열리면서 사뭇 긴장을 한 신계관리주신들이 들어섰다.
얼마나 신계자아에게 무시당하고 시달렸는지 모두 지친 표정들이었다.
항상 얼굴까지 가리는 시꺼먼 전투용 로브를 벗고서 고위의 창조신으로서 완벽하게 치장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모두가 놀라면서 서있는 모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원이 뭔가에 흘린 듯이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예 그대로 굳어 있을 모양이었다.
‘외모가 어떻든 결국 나는 나인 것을 어찌 모르는가?’
주변의 환수주신들이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지금 사정이 급했다.
딱-!
가볍게 손을 튕기자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화들짝 놀란 여주신들과 대표자들이 황급하게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중앙에 나타난 탁자의 자신들의 자리에 앉았다.
서열은 참 간단했다.
가장 신계주신대리인 가이아나가 첫 번째였고 그 뒤로 이면주신(裏面主神) 로키나가 앉는다.
그리고 그랑라하로 이어지고 정령주신과 여주신들이 뒤섞여 있었다.
서로 신계의 주도권을 노리는 적과 마찬가지라서 당장 뭐라도 일어날 험악한 분위기이지만 지금만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조용했다.
원래 신은 본인의 신전 안에서 최고의 힘을 발휘한다.
이제 전원이 덤벼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해진 신계주신의 개인 신전의 안이었다.
이계의 정령신이 당한 것으로 보아서 경거망동을 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몰랐기에 더욱 조심하는 눈치이다.
‘여기는 나의 신전이지.
이들이 만에 하나라도 나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런 것이 아니고 내 문제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지시를 한다.
밀고 당기는 정치적인 토론은 딱 질색이었다.
“신계자아는 신의 등급에 상관없이 최대한 조치하라.
지금은 긴급 상황이다.”
“알겠습니다.”
간략하게 신계자아의 대답이 들려오고 본래대로의 신력지원이 돌아오자 다들 더욱 놀란 표정이다.
속으로 이번 일의 조치로 얼마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주신의 권능은 주신장이 된 이상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신신력을 높여주는 ‘헌신서약’조차 소용이 없어서 조치를 받는 대신 주신성을 주기로 한 카르마의 계약조차 자동 해제된 상황이다.
“지원은 최상으로 한다고 했다.
합당한 결과만 보여라.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간단한 말에 모두 알아들었는지 시선을 모았다.
약간의 존경심과 호의가 드러났지만 일단 신경을 쓰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의 상위자의 의뢰로 문제가 있어서 조언을 듣고 싶다.”
“?”
다들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이다.
나는 독립신계의 신계주신이다.
그래서 생명체에서 주신을 탄생시킨 공로와 이런 저런 업적으로 일반 창조신에서 중급 창조신이 되신 프로프라이티님은 나의 직속 상위자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해당영역을 관리하는 창조신이시기에 명령을 따를 의무는 없다.
그게 누구냐는 표정이지만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아니 알게 되면 모두 포기할 것이다.
주우주에서 절대계의 일반적인 존재라도 경이의 대상인데 최고의 지배자인 10중심이나 바람가의 오리진이라면 너무 격이 높았다.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적대하는 세력과의 화해이고 그 증거로서 서명을 받아오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는 단순한 사인을 원하는 것에 불과하다.
강자를 좋아하고 힘을 신봉하는 무가인 바람가에서 자라 절대계에서 최고의 강자인 10중심에 대한 호감이 지나치다는 점은 인식했다.
하나 바람가의 오리진이 그렇게 순진하고 어수룩할 리가 없다.
더구나 다른 바람가의 오리진에게 전권을 위임받을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다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를 고려해야 했다.
아니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다들 장난으로 알 것이다.
과연 심각한 말이 나오자 모두 말을 멈춘 채 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적대하는 세력의 수장들은 나보다 까마득하게 높고 그 성향은…….”
여기까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흑염의 절대자가 미쳐 날뛰면서 싸우던 모습과 숨겨진 ‘진실의 침묵’의 신령이 생각난 탓이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말 그대로 자신만의 능력으로서 모든 것을 이룬 투사이자 전사였다.
어떻게 해도 닿을 것 같지 않았던 위압감이었다.
그런데도 겨우 서열 4위다.
그것도 필사적으로 폭주까지 하면서 이룬 상위의 서열이다.
그럼 그 위인 황금의 절대자나 하위의 서열들이 어떤 성향과 능력을 가진 존재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정도다.
“패도의 정화이자 극치이다.
모든 것을 힘으로 이룬 진정한 강자들이다.”
“!”
주신장의 서열 1위에 오른 내가 강자라는 뜻이 무엇인지 이들은 안다.
그리고 패도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온다면 어느 정도인지는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얻으려고 한다면 그 이상을 주어야 한다.
“유일한 장점은 그들 중 하나가 나와 인연이 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 하나조차 다른 강자들에게 좋지 않은 관계이다.
그 중 2명은 거의 원수이며 모두를 대표하는 상위의 서열이다.
그래서 전면적인 협조를 바랄 수 없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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