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6화
22권
마치 시험을 내리는 선생님과 같은 말투에 이를 갈면서 대답하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단 둘이었으면 당장 멱살을 쥐고 대들었겠지만 다른 10중심들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말을 잘못하면 끝장이었다.
“으득-! 강자를 위한 공정을 선택하지.
일단 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지?
무력으로는 안 된다.
그리고 자료의 회수만으로는 안 돼.
관련자의 기억에 남아 있으니 언제인가는 또 자료로 바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잠시 입을 막는 유화책을 들고 나온 이유였다.
자료가 사라져도 기억에 남고 특위 주신장들만이 가지고 있다는 보장도 없다.
모든 기록의 삭제는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호감을 사서 넘어가는 방식 외에는 없었다.
“이렇게 하지.
499주우주의 창조신장계의 신계 자아는 회색의 절대자의 의지를 받으라.
나는 현자의 정점이며 모든 만들어진 자아의 주관자이노라.”
갑자기 절대계에 울리는 엄청난 신력이 담긴 음성이 공간의 문을 넘어서 499주우주의 창조신장계로 갔다.
그리고 그것은 강제력이 되어서 창조신장계의 신계 자아를 그대로 현장으로 이끌어냈다.
우우웅-!
몸 전체가 반투명한 27쌍의 빛의 날개를 가진 창조신장의 모습이 허공에 투영되면서 음성으로 예를 표현한다.
“499주우주의 총괄 신계 자아가 절대계의 회색의 절대자님을 뵈옵니다.”
“용건은 이미 알고 있겠지?
나의 과거인 차원의 마도신에 대한 모든 자료의 삭제를 지시한다.
주신장이 되기까지의 공적이든지 월권행위이든 전부 지워버려.
용병신이 아닌 나의 추천으로 신계에 올라서서 주신장이 된 것으로 바꾼다.”
마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사무적으로 지시하는 것과 같았다.
본래 영원체들이 관리하는 주신계와 10중심들이 분할하여 관리하는 절대계는 넘을 수 없는 힘의 격차는 있지만 대등했다.
모든 신계 자아를 총괄하는 창조신장계의 신계 자아에 명령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나 신계 자아는 아무런 반대 없이 바로 처리를 해갔다.
“……삭제 완료했습니다.
하나 개인의 정보체계에 있는 자료와 각자의 기억은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위치는?”
“화면에 출력 하겠습니다.”
수많은 좌표가 허공에 떠오르자 그것을 흩어본 회색의 절대자의 주변에서 수많은 회색 점들이 떠올랐다.
초소형 시공간폭탄인 코아와는 색이 달랐지만 무엇인가 더욱 흉악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찍어낸 것 같은 동일한 의지의 연합체가 뿜어내는 기세였다.
꽤나 익숙했기에 바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도 두뇌?
초소형 인공 자아의 군집?”
말을 안 듣는 신계의 인공 자아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낸 마도 두뇌를 극도로 축소시킨 형태가 저기 있었다.
하나 회색의 절대자는 부정했다.
“아니-! 그런 허접한 것이 아니다.
네가 구상하였지만 연산력 부족과 피해 우려로 포기한 이데아(idea)다.
이미 절대계와 주우주의 모든 인공적인 자아는 나의 통제에 있다.
전뇌계조차 예외가 아니다.
모든 정보와 관리체계의 통제의 가능여부가 진정한 회색의 절대자의 증거다.
이게 가능하면 나의 개인적인 힘이야 나중의 문제이지.
1대는 무수한 전뇌신들을 동원해서야 가능했지만 나는 혼자서도 가능하니 2대이다.”
그 말에 다른 10중심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표했다.
회색의 절대자는 모든 현자, 즉 투신을 제외한 모든 관리신들의 정점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무력이 아닌 관리능력이고 그들에 대한 통제력이다.
절대계와 주우주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목적대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인공 자아를 통제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혼자서 할 수 있다면 힘의 부족은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전 인공 자아를 통제해 현재를 완전히 마비시킬 수도 있다.”
모든 전력을 절반 이상을 사용을 하지 못해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럼 현재를 이루는 질서가 붕괴가 된다.
현재의 번영된 신계는 신계 자아의 도움이 없이는 유지가 되지 않는다.
절대계도 전뇌계의 도움이 없이는 지금 전력의 절반도 못 낸다.
실질적으로 절대계와 주우주의 과반수이상의 회색의 절대자의 통제에 있다는 뜻이다.
전뇌계의 초장거리 이동이 제한되자 흑염의 절대자도 바로 복귀를 못하고 뛰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전뇌계를 통해서면 1초도 안 걸리는데 자력으로는 지금 1,000년 이상이 예상이 된다.
이건 10중심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면 결코 절대계도 무사하지 못한다.
진리가 개입하여 초기화 할 것이다.’
그렇게 무서운 의미가 될 수 있는 말을 쉽게 내뱉은 회색의 절대자가 공간의 문을 열고 이데아들을 그대로 투입을 했다.
파아아아앗-!
눈부신 빛과 함께 허송에 떠오른 좌표들이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개인 정보체계에 있던 모든 자료들이 삭제를 했다는 뜻이다.
하나 아직 기억은 남았다.
“다음에 각자의 기억인가?”
14겹의 마력의 원에서 마력이 찬란하게 빛난다.
광역으로 발동되는 ‘퍼스널 히스트리’였다.
기억과 감정까지 기록하는 마도가 공간의 문을 통해 499주우주 전체를 덮었다.
이제 감정이 사라진 것 같은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회색의 절대자로서도 엄청난 연산력을 소모한다는 증거였다.
“검색은 차원의 마도신, 고귀하고 위대한 흑마도사…….”
과거에 자신이 이름대신 가졌던 명칭이 떠오르고 서류의 산이 모여진다.
499주우주 전부에서 올라온 기억의 서류였다.
파라라라라라랏-!
끝없이 쌓여져 가는 서류의 바다도 끝났다.
“완전 삭제…….”
낭랑하게 울리는 영창소리와 함께 그 모든 서류가 전부 절반으로 찢겨지고 조각이 되어 날아간다.
찌이이이이익-! 파가가가가각-!
“설마…….”
끝없이 쌓여있던 차원의 마도신에 대한 기억을 담은 서류들이 사라진다.
기억은 단지 열람만이 가능했다.
하나 저렇게 사라진다는 의미는 하나였다.
“기억의 부분 말소-!
내 과거에 대한 기억을 전부 지웠는가?”
499주우주의 모든 생명체, 지성체의 기억에서 방금 차원의 마도신에 관한 기억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대신 회색의 절대자이 추천으로 신계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타인이 기억하는 자신의 인생과 신생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폭거였다.
“내 인생을 전부 부정했는가?
너 회색-!
어…….”
다른 10중심들도 설마하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사자로서 당연히 극도로 분노하려던 순간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상식적인 인간으로는 화를 내는 것이 맞지만 자신은 아니다.
인간시절부터 시작해서 주신장이 된 지금까지 스승과 진리와의 사건을 제외하고 좋은 인연이나 기억 따위는 없었다.
지우기 아쉬운 과거는 없기에 삭제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잠깐-! 나쁜 일이 아니네.
어차피 타인이 기억해서 좋은 일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지 않아?
아쉬울 것도 없고 깔끔해서 좋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미친 회색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그래도 10중심의 추천으로 들어온 것으로 변경되었으니 상황이 나아진 셈이지.’
그런 생각에 얼굴에 떠오른 분노의 표정이 사라지기도 전에 회색의 절대자의 말이 들려왔다.
“걱정하지마라. 과거의 나.
난 그렇게 냉혹하지 않다.
오히려 관대하기에 너의 차원 신계는 삭제영역에서 제외했다.
너의 신계의 신들과 생명체들은 전부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
할 말을 잃었다.
남의 인공 자아를 멋대로 점유하고 기억도 말소하는 주제에 관대하다고 자평한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하들의 기억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는 통보였다.
왜 그들의 기억은 남겨두었냐고 화를 내며 추가로 지우라고 하자니 주변의 시선이 무섭다.
최소한 자신의 상황과 판단이 남들이 보기에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
그대로 말을 하면 바로 저 회색 놈하고 똑같은 취급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끙끙 앓을 뿐이다.
‘으-! 미치겠네.
차라리 다 지워버려-!
일부러 나 힘들어지라고 남겨둔 것이지?
이 빌어먹을 미래의 나.’
이렇게 일단은 자신의 문제는 사라졌다.
이제까지 미루어졌던 자신의 주신장 등급에 대한 통보도 바로 떨어졌다.
놀라울 정도의 처리속도였다.
정말 인공 자아를 모두 통제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떨어졌다.
“평가는 주신장 서열 1위인가?
하긴 나의 추천으로 바뀐 과거와 서열 1위인 전능의 휘를 이겼으니 당연하겠지.
이제 너의 문제는 모두 끝난 것이지?
나의 고민이 남았다.”
회색의 절대자의 말에 부정할 수 없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기존의 기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차원의 신계가 문제지만, 본래 변방중의 변방이다.
다시 원위치로 가져다 놓으면 그 먼 곳에서 주신계까지 영향이 클 리가 없다.
나중에 잡음도 있겠지만 주신장 서열 1위인 자신에게 쉬운 문제였다.
‘어떤 과거의 사실이 들려도 일상적인 하급자의 불만과 모함으로 하면 된다.
특위 주신장들에게 약점이 잡혀서 주신성이나 창조신성을 침묵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났다.’
자신의 고민이 깔끔하게 해결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신계주신에게 속아서 신계에 든 실제의 사실보다 회색의 절대자의 추천으로 신계에 입성한 것은 커다란 장점이었다.
이제 최소한 지지 세력이 없다고 얕보여서 당할 수 있는 문제들은 전부 사라졌다고 보면 되었다.
고마움에 미래의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의 고민은 10중심이 진리를 이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포기할 것이니 네가 좀 고민해봐라.”
이 말을 듣고서 바로 후회했다.
미래의 자신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역시 미쳤구나.
진리에 의해 수련을 받은 10중심이 어떻게 진리의 상대가 되냐?”
이제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흥분한 차원의 마도신에게 심드렁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지극히 정상이야.
자신의 힘만으로 안 되면 당연히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지.
가만히 있는 것이 멍청이지.
지금 나의 문제는 회색의 절대자가 될 정도로 강해지고 현명해진 것에 있다.
무력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불가능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하나 그 덕분에 잃은 것도 있었다.
네가 원래 불가능한 주신장이 되는 것을 보고서 자각했지.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전하는 무모함과 위험을 감수하는 어리석음이 사라진 것이다.
진리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무모함의 극치이고 이기려고 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다.
이런 쓸모없고 불가능한 고민 자체가 회색의 절대자인 내게 가능할 리가 없지.
그러나 지극히 무모하고 어리석은 과거의 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허어-! 그게 말이 되냐?”
이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본인은 방법이 없으니 떠넘기는 방식이었다.
결국 발작하려는 차원의 마도신의 머리를 회색의 절대자가 손으로 잡았다.
덥석-!
당연히 수준차이가 너무 커서 피하기는 고사하고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꼼짝없이 유일한 급소를 붙잡힌 차원의 마도신의 귀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리를 이긴다는 사실 자체가 당연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현자계열의 정점인 회색의 절대자인 내가 과거인 너를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누가 어쩔 건데?
그리고 마도신도 현자계열이라는 것을 잊었나?
회색의 절대자인 나의 관리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나설 수 있는 것이지만 대가는 받아야 하겠다.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진리를 이길 고민을 하라면 해-!
염원하던 주신장이 되자마자 미래의 자신의 손에 죽기 싫으면 말이야.”
꽈아아아아악-!
손으로 가해지는 무시무시한 압력이 머리를 통해 전해진다.
아차하면 그대로 박살을 낼 기세였고 살기였다.
2써클 상위의 마도신이기에 대항은 고사하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내 과거라고 지시를 어기면 용서 없다.
나는 나 자신에게 더욱 더 엄격하다.
진리처럼 말이지.”
‘이건 틀려-! 이 자식아-!
현실부정인 마도신인 넌 과거인 내가 죽어도 아무상관이 없잖아?
그래서 이렇게 막 나가는 것이잖아?
그러니 이 상황에서 할 말이 아니잖아?
무엇보다 너는 실패했지만 과거인 나는 주신장이 된 것이 못 마땅해서 일부러 이러는 것이지?
인간이 그따위로 살면 안 된단 말이다.
왜 내가 이렇게 변했지?
정말 도움이 되기는 하는데 후속조치에 돌아버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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