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5화
21권
시공의 틈에서 승리한 하급신들이 복귀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투를 거듭하다 겨우 기회를 잡아 이기고 복귀하자마자 주변에 가득 깔린 벌레들의 모습에 당황한 하급신들이다.
그러나 벌레들에게서 느껴지는 신력들로 상황을 짐작하고 혼이 나간 모습으로 멍하게 있을 뿐이었다.
겨우 신이 되었더니 최하급이라 이건 완전히 과거보다 못한 상황이란 것을 실감한 것이다.
그 모습에 용사신과 동료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용사신의 권능발동을 방해했다는 죄로 벌레로 바뀌어서 수없이 발로 밟혀서 죽은 경험이 있는 동료신들은 진절머리를 쳤다.
무엇보다 고위신 1만을 압도한 100만의 하급신들의 절반이 아무것도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창조신을 능가하는 신계주신이라고 하더니 이건 반역이고 뭐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신의 불변성까지 무시하는 이런 위력의 흑마법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완벽하게 신성을 확립한 주신급 이상이 아니면 무리인가?
창조신의 신력으로 마도를 구현하니 이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더구나 신력으로 발동까지 했다면 해제는 불가능해.’
벌레보다 고위의 존재인 앵무새로 변화시켜 파악이 그마나 나은 레드 크라우드를 보고서 확실하게 안 것이다.
직접 당하고 한 번 보니 대충 어떤 성질의 마법인지 깨달은 마법신은 특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현실을 왜곡하는 마법은 일반적으로 폭발하는 폭탄과 같기에 저런 안정적인 변화는 무리다.
어떤 높은 써클도 길어야 하루 정도인데 다시 돌아오려는 기미가 없다.
그 해답은 바로 불안정한 마법을 둘러싼 신력에 있다.
신력으로 안전장치를 채운 셈이다.
이걸 풀려고 시도하려고 했다가는 마법이 폭발해서 시도한 당사자조차 벌레가 된다.
아니, 폭발하는 흑마법에 터져나가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신력과 마력의 조율을 모르면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전설적인 초월자라더니 울지는 않고 넋만 나가있는 앵무새가 된 레드 클라우드다.
하지만 저것이 남의 일이 아니다.
마도사의 가장 큰 적은 마도사다.
‘흑마도사고 뭐고 상위의 마도사에게는 입 조심을 좀 할 것이지.
꼭 당해야 알지.
하나 나도 위험해.
마도를 익힌 존재에게 같은 마도를 익힌 존재는 위협이니까.
같은 직종인 주제에 동료의식은 고사하고 하나같이 남이 피땀 흘려 쌓은 마도를 노리는 도둑놈들 같으니라고…….’
마도사는 혼자서 육체단련을 통해 강해지는 전사와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상대의 지식과 경험, 자료를 얻기만 하면 급격하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부로 모시고 힘들게 봉양할 필요가 없이 마도서만 빼앗으면 높은 등급에 수월하게 올라설 수 있다.
그래서 권사나 검사와 같은 부모 같은 사제관계는 고사하고 아차하면 제자에게 마도서와 자료뿐만 아니라 마력까지 갈취를 당한다.
늙은 몸이 젊은 몸을 완력으로 이길 수 없고 수면을 취하거나 집중하면 완전히 무방비가 되니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마도사가 죽기 직전이 아니면 제자를 결코 두지 않는 이유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초월자 중에 가장 뛰어난 마도사를 뽑으라고 하면 분명 자신을 제외하고는 저 레드 클라우드다.
그런 존재를 겨우 불경스런 말 한마디에 앵무새로 바꾸어 버린 것은 모든 마도사들에게 경고인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스런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증명이지.
하긴 나도 내 마도서와 자료를 수시로 노리는 마도사를 믿을 수는 없지.
그럼 최우선 감시 대상인가?
그럼 일단 나부터 잘 보이고 볼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다른 존재들에게 납득시켜야 할 현자 놈들은 신력도 마력도 모두 어설프게 익혀서 방해나 하지 도움이 전혀 안 돼.’
결국 입만 살은 현자들이 문제였다.
그것들이 합리성 어쩌고 하면서 발동을 말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징계를 받는 일은 없었다.
물론 자신도 용사신과 동료들을 설득했다는 사실은 싹 무시했다.
머리가 돌아가는 마도사답게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서 변명과 후속조치를 생각하고 있는 마법신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생각이 간 마법신의 뒤통수에 누군가의 주먹이 작렬한 것은 동시였다.
빠아아아악-! 꽝-!
“컥-!”
급작스럽게 터진 어마어마한 신력과 힘에 그대로 머리를 땅에 처박혔다.
“좋은 말로 할 때 들으라.
이제 너만 남았다.
넌 안 갈 것이냐?”
어느새 모습을 드러냈는지 황금의 왕관과 화려한 보석으로 만들어진 의상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여성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급신에 도달한 자신을 이렇게 마구 대우하면 화를 내야 하는데 감히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변을 자연스럽게 위압하는 그 분위기는 어떤 황제에게도 보지 못한 위엄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지배자라는 자연스럽게 각인시키고 있는 존재였다.
“나는 차원의 교황 중 하나인 여황제이다.
너는 마도사인 것 같은데 쓸데없이 생각만 하지 말고 빨리 움직이라.
우리의 위대한 신께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비로우시나 인내심은 전혀 없으시다.
지금도 너를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마라.”
어느새 생각에 빠져있는 자신을 팽개치고 용사신과 다른 동료들은 물론이고 하이엘프 퀸들조차 주신들에게 영겁윤회를 발동시켜서 전투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신격이 워낙 높은 주신들이라서 이들의 마도의 발동만으로는 완벽하지 않아서 반투명하게 시공의 틈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화면너머에서 차원의 마도신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운을 풍기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위기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큰일 났다.
현자들처럼 몰라서면 모를까 마도사는 알고서 방해가 되면 정말 영원히 벌레신이 되어버린다.’
용사신의 불굴의 권능은 자신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자신들과 권능의 연동이 그 정체다.
신계의 지원이 없으면 어중간한 용사신이나 마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권신이나 검신만으로는 ‘영겁윤회’와 같은 마도의 위력은 떨어진다.
결국 자신까지 포함되어야 본래의 위력을 발휘하여 주신들의 신격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원의 마도신의 심상치 않은 시선이 몸에 내리꽂히는 것을 보니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당장 징계가 떨어져도 이상하지가 않다.
아니, 저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고 있었다.
이것도 권능의 일종인가 하면서 의아스러웠지만 상황 상 거부할 명분도 여유도 없었다.
“바로 가겠습니다.
너도 도와.”
“빼에에에에엑-! 싫어-!”
적마도사가 전투에 들어가느라 내려놓아서 바닥에 펴져 있던 앵무새의 목을 잡아서 들어올렸다.
이제 자신이 새인지 인간인지 슬슬 헷갈리는지 종의 구분이 모호한 비명을 지른다.
그걸 무시하고 신기의 영겁윤회를 발동시켰다.
“필사적으로 공을 세우지 않으면 영원히 그 꼴이니 고맙게 생각해.”
“빼애애애애액-!”
일단 마력이 있고 앵무새라서 주문은 외울 수 있으니 새의 몸은 상관이 없었다.
주신과의 전투는 8써클의 중급신에게는 너무나 힘들기에 어떤 수단이라도 써야했다.
인간의 몸으로 신격에 도달했던 초월자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 주제파악을 못한 본인의 의사 따위야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관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결정한 그 모습은 현실을 왜곡하는 마법신으로 어울렸다.
그리고 전력으로 발동시킨 마도로 반투명한 모습으로 버티던 주신들을 시공의 틈새로 완전하게 끌어들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황제는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저 마법신이 참전을 지시하는 자신의 말에 아무 반응이 없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무런 효과가 없는지 알고 놀랐다가, 혼잣말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을 보고서 기가 막혔다.
자기 생각에 빠져 아예 말을 듣지 못하면 자신의 권능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이다.
그래서 제정신을 차리게 하고 전원을 참전시켰으니 맡은 일은 다한 셈이다.
‘주신에 신격에 압도당했으니 나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설득이 힘들어.
아니, 내가 앞장서서 싸울 수 없으니 효과가 반감된 탓이지.
단련이 필요해.’
자신들보다 2써클 위의 신격을 가진 주신과의 전투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막대한 보상과 협박, 현실파악으로도 망설이고 있어서 결국 자신까지 나서야 가능했다.
인간시절에도 신을 설득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권능이다.
최상급신이 된 지금 하급신의 설득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나 막상 해보니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도 몰랐지만 주변상황과 인식이 변화되어 있어서 효과가 많이 감소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 부족한 중에서도 주신과의 결전을 망설이던 모든 인원을 신조차 따르게 하는 ‘노블리스 오빌리제’의 권능으로 참전시킨 차원의 교황이자 여황제는, 허공을 쳐다보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인간시절에 모든 전쟁에 자신이 앞장섰을 때는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가 되고나서는 그런 기회도 없었고 주변에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의 권위의 보충만으로도 효과는 넘쳤으니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신계주신이 아니니 그런 권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가장 선두에 서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여황제였다.
그러려면 영령들 중에서도 발군의 힘을 수련으로 다시 되찾아야 했다.
차원의 마도신이라면 다시 모든 군세의 선두에 서게 할 힘을 되찾게 해줄 기회를 줄 것이다.
“다 되었나이다.”
“수고했다.
원하는 포상을 신청하도록 해라.”
여교황이 나선 결과에 만족한 차원의 마도신이 그대로 원탁에서 현황판을 치우고 시공의 일그러짐을 비춘다.
그 안에서는 하늘 위에 군림하는 후계와 용사신과 동료신, 차원의 교황이 힘을 합쳐 싸운다.
그리고 주신하나에 용사와 동료, 차원의 성녀가 힘을 합쳐서 대항하고 나머지 하나에는 하이엘프 퀸들이 일진일퇴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의외로 대등한 전투였다.
주신들이 모두 마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하위신들의 연속공격에 대응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신들이 하위신들에게 밀리다니?”
당연히 주신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가운데 육체희생을 통한 필살의 일격을 날리는 것을 반복할 것을 예상한 전능의 휘와 주변 예비 창조신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시 완벽한 주신이 아닌 것인가?”
하나 주신이상의 신격을 가진 자신들이 하위자의 신격을 잘못 볼 리가 없었다.
적어도 중급주신이상의 신격을 가진 하늘위에 군림하는 주신의 후계가 최상급 신이 포함되었으나, 겨우 중급신들의 공격에 상처를 입고 물러나는 상황이 믿을 수가 없을 뿐이다.
“용사신과 동료신들은 주신과 동등한 신격을 가진 마왕 토벌 경험이 10회 이상입니다.
그리고 저 하급신들도 2회의 토벌실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왕토벌의 숙련자들입니다.”
“오-! 비록 행성결계로 1할의 힘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나 주신과 동등한 마왕들을 그렇게 많이 처단하다니 대단하군?
그래서 주신들도 저렇게 쉽게 상대가 가능한가?
응? 뭔가 이상한데…….”
전능의 휘와 예비 창조신들이 하위신들이 보이는 의외의 선전에 경탄하는 반응에서 갑자기 떨떠름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주신과 마신은 당연히 다르다.
행성결계 안에서 신계의 전력지원을 받은 용사들이 마왕은 토벌을 할 수 있으나 주신을 토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지고 있는 신력이 우월하기에 신계의 신력지원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의문의 답은 바로 앞에 있었다.
예비 창조신과 주신들은 차원의 교황과 성녀들이 발동시키고 있는 차원의 권능을 보자 몸이 오싹오싹 해졌다.
이 느낌은 차원의 마도신이 주신계를 돌파했을 때 발동시킨 권능을 마주 대했을 때와 똑같았다.
전능의 휘조차 다시 차원의 권능을 살펴보았지만 워낙 복잡하고 난해해서 알아볼 수가 없으니, 결국 본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주신살(主神殺)을 차원의 광역권능에 포함시킨 것인가?”
“거기에 신기에는 신력을 마력으로 전환시키는 기능까지 추가 되어있습니다.”
그 말에 다시 보니 찬란한 빛의 신력을 품어야할 신기에서 검은 진주와 같이 농축된 마력이 공격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격발되어 주신의 신체에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건 다수의 주신들과 하위신들과의 전투를 상정하고 작정하고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지금 상위의 존재와 싸우는 것에 숙련되었다지만 겨우 하위신 5명이 주신을 상대하고 있다.
물론 하급이나마 신기를 모두 완전준비하고 광역 권능까지 지원한 탓이다.
그러나 광역권능이나 신기제작에 있어서 잘 모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00만에 가까운 하위신들이 모두 신기를 들고 있고 저기에 들어간 노력과 정기를 계산하면 신에게도 아득한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신계주신이 왜 마신족도 아니고 주신들과의 전투에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이건 여신혈맹의 여주신들과 정령주신들의 반란을 우려한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주신살의 광역권능에 신기에는 마력부여를 한다고?
어디 주신들과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가?”
“제 입장을 아시면서?
해야 한다면 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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