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6화
19권
아무리 회색의 절대자의 함정이라고 해도 자신의 대리인과 최상위 일족들이면 해결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네 대리인?
회색에게 얼마 전에 죽었잖아?
벌써 부활했어?”
“큭-!”
흑염의 절대자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며 하는 말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대리인은 단독으로 면담을 하다 회색의 절대자에게 갈기갈기 찢겨서 바람성에서 부활 중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잠시 외면한 사실이었다.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다른 8인의 절대자들을 쳐다보았지만 다들 거부의 의사를 표시했다.
대리자가 죽으면 부활까지 자신들이 직접 일족과 절대계의 영역을 다스려야 한다.
이런 서열전이 수시로 벌어지는데 개인 수련이 멈추면 엄청난 부담이다.
무엇보다 정말 회색의 절대자의 함정이면 황금의 일족을 제외하고는 막을 가망성이 거의 없었다.
현실부정을 권능으로 하는 마도신의 힘이 어떤 지는 모두 이번에 뼈저리게 체험했다.
상식을 초월하는 기동력과 광역권능, 그것을 능가하는 예측불허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 앞에 회색의 영역의 지배종족이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거기에 대신족을 동원하고 용신족조차 전원 참석을 시켰다.
방식이 어떻든 결과만 보아서는 무서울 정도로 성과이고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지금 절대계에 아무도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 회색의 절대자는 10중심의 일원으로서 힘과 영향력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는 강자였다.
그런데 흑염의 절대자가 드물게도 납득을 했다는 듯이 말을 한다.
“알았어.
내 대리인과 일족들을 보내 해결하지.
주우주면 싱겁지만 다들 오래간만의 외유이니 좋아하겠군.”
그 말에 기겁을 한 다른 8인의 절대자들이 이동구성으로 외쳤다.
“안 됩니다-!”
“안 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희들이 전투를 자력으로 멈춘 적이 있어?”
“또 모두 폭주해서 얼마나 부수려고?”
“흑염일족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냐?
너희는 우리가 부르면 마무리나 해-!”
“해결? 외유?
차라리 깽판이라고 해라.”
불길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길길이 날뛰는 8인의 절대자를 대표해서 황금의 절대자가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저번에 박살낸 절대계와 주우주의 영역도 아직 복귀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미완성된 흑염의 일족은 전투를 벌일 경우 스스로 자제를 못하니 영역에서 벌이는 전투는 너무나 피해가 큽니다.
특히 너무나 나약한 주우주라니 절대로 용납을 할 수 없습니다.”
“무시하십시오.
서열전이 끝나고 손을 봐주면 됩니다.”
“그래-! 하위의 수준도 안 되는 일족의 전투야 신경만 거스를 뿐이지 않는가?”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흑염의 바람성에서 영원의 심판을 치룬 차원의 마도신은 너의 일족이나 회색의 절대자의 과거다.
직접 관여하기는 무리가 있다.”
“참아-! 모든 것은 서열전이 끝나면 바로 잡는다.”
다른 8인의 절대자의 면박과 반대에 얼굴이 팍 구겨진 흑염의 절대자가 한숨과 함께 불만을 터트렸다.
“휴우-! 젠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이지?”
그러나 대놓고 반대나 고집을 부리지를 못했다.
모든 원인은 아직 흑염의 권능이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본인 덕분에 흑염의 일족은 불완전하다는데 있다.
본인이 완벽한 흑염의 절대자가 되면 해결될 문제지만 ‘언제나 동전의 앞면’이 걸림돌이었다.
‘이제 조금이면 완벽해질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절대계 최고의 현자였던 경험이 방해하고 있다.’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 전투를 하는데 완전히 감에 자신을 맡기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황당한 논리를 완전히 납득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흑염 일족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전력으로 날뛰기 시작하면 자력으로 전투를 멈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끝없는 투지와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는 흑염 일족의 가장 큰 장점이나 최악의 단점이었다.
그리고 그 전력의 기준은 바로 폭혈(爆血)의 사용이었다.
사용과 동시에 어지간한 수준의 일족은 이성이 거의 날아가고 본능에 따라 날뛴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최상위 일족 정도나 되어야 이성이 유지된다.
그 이하는 여차하면 투기와 살기를 뿜어내는 적이 존재하는 한, 끝없이 전투를 벌이다 죽는다.
그게 아니면 폭혈의 부담에 신체가 못 견디고 폭발해서 죽는다.
결과적으로 발동과 동시에 적이나 자신 중 하나가 죽을 때가지 멈추지 않는다.
괜히 투기와 살기의 정화인 흑염의 일족이 아닌 것이다.
‘저 회색의 과거는 그걸 알고서 사용을 하나?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나 네가 죽거나 상대가 몰살되기 전까지 이제 안 멈춘다.’
저렇게 된 흑염의 일족을 막으려면 상위의 존재가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하나 주우주에서는 그럴 존재가 없다.
아무리 신력이 1조도 안 되는 최하위이나 흑염 일족에다 폭주 중이다.
제압이 쉬울 리가 없다.
남은 것은 신력이 고갈되거나 신체가 폭혈에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는 길뿐이다.
무엇보다 차원의 마도신은 지금 회색의 절대자의 과거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다.
회색의 절대자로 인하여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공동 해결책임이 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진리가 그렇게 인정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능력은 겨우 주신계의 예비창조신.
칭호나 모든 면을 고려해도 절대계에서 보면 겨우 하급전사 수준이다.
그러니 10중심의 일을 처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진리가 받아들였다.
이번만은 예외를 인정했다.
그 진리가…….’
자신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재능과 무수한 전생과 주어진 시련을 이겨낸 대가로 선택을 받아서 황금의 절대자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예외와 파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오로지 완벽하게 준비된 황금의 절대자로 길을 가는 것만을 허락했고 결국 도달했지만 예정된 결과일 뿐이다.
진리에게 절대계 서열 1위가 될 수 있는 자신의 재능조차 결국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다.
지금의 10중심들은 진리의 절대적인 보호 속에 완성되어 당연하다는 듯이 절대계에 군림하고 있지만 결국 진리가 없었다면 흔하디흔한 강자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저 차원의 마도신은 다르다.
진리는 어떤 교육이나 보호가 없이 처음으로 방치하고 있다.
즉 혼자서도 가능하다고 믿으신 것인가?
아니면 지금 회색의 절대자가 있으니 보호의 필요가 없다고 방치하신 것인가?
후자여야 한다.
반드시-!’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눈에서 피가 솟구칠 지경이다.
비교가 불가능한 진리를 제외하고 최고의 존재라는 자부심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회색의 절대자의 자폭 저주에 황금권능이 하락된 순간부터 시작된 감정의 불길이다.
파괴력 면에서 최고인 흑염조차 자신을 침범할 수 없다.
모든 권능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면서 압도하는 황금의 불멸성을 회색의 저주가 하락시켰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질투-! 아니, 자신의 직위에 도전하는 존재에 대한 끝없는 증오.
이건 최고의 위치를 가지는 황금일족의 최대의 문제점이다.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다.
모든 권능 중 최고위에 위치하는 황금의 불멸성과 영원성은 자신이상의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점에 있으니 막을 수가 없지.
그러나 그 종착지인 파멸의 운명에 도달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는다.’
과거 황금일족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잘 알고 있다.
생명체 중 가장 신에 가까운 일족이며 전투력 면에서는 능가했다고도 전해지던 최강의 일족이었다.
신족조차 이들이 사는 행성에서는 접근하지 않고 대리역할조차 맡길 정도였다.
그러나 다른 생명체들이 점차 진화되어 자신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질투에서 벌어진 지성체들의 대살육에 경악한 신족과 마신족의 합공에 의해 멸족되었다.
그 유일한 생존자가 1대 황금의 절대자 아리오리나 라마세스였다.
‘영원한 사랑’이란 영광된 이름을 받은 신족을 뛰어넘었던 황금일족 최강의 전사이자 대족장이었다.
무엇보다 신족과 마족의 합공 속에서도 홀로 싸워 살아남을 정도의 초강자였다.
그러나 혼자서는 일족의 멸망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일족이 신족과 마신족의 공격에 모두 소멸되고 홀로 남았다.
그 후 일족을 전멸시킨 신족과 마신족에 대한 증오보다는 일족의 폭주를 막지 못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후회 속에서 타인을 위한 싸움으로만 살았다.
그래서 1대의 10중심이었던 다른 8인의 절대자와 1인의 초월자, 현자를 만나 영원체를 능가하고 지배권한을 위임받아 절대계를 만들어도 그 슬픔과 결의는 변하지 않았다.
다른 모든 이들의 만장일치로 10중심의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어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절대기(絶代器) ‘에반젤리’의 깃발에는 단 1글자만 적혀있었다고 한다.
‘한(限).’
그 의미는 몹시 억울하거나 원통하여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한정하며 가지런하게 하다.
경계를 지워 같게 하다.
한정하고 끝을 낸다.
과다한 것을 멈추게 한다.
모든 부정적인 의미가 넘치는 말이 절대계 최강의 황금을 상징하는 깃발에 자연스럽게 새겨졌다는 것에서 1대 10중심과 절대계의 운명은 결정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대 황금의 절대자가 아무리 그 말을 바꾸려 해도 어느새 다시 되돌아와 있었다고 한다.
절대기는 만들어낸 본인의 본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쳐서 현재 진리에게 쓰러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전력을 발휘하기를 거부하고 깃발을 펼치지 않았다.
아무리 강해도 결국 생명체다.
영원한 시간의 흐름에 마모되어 미쳐버린 정신으로도 깃발을 펼치지 않은 그 고고함은 정말로 존경스러웠지만, 모두의 지지를 얻은 위대한 절대자의 지배자로서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모든 비극적인 결과를 알고 있는 자신조차 그러하니 비난할 수 없었다.
‘나는 다릅니다.
아리오리나 라마세스 1세여.
당신의 이름을 이어받은 2세인 나는 절대계 최강으로서 황금의 운명조차 넘어 보일 것입니다.
그래도 회색의 절대자를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한다.
회색의 저주는 대비를 하지 않으면 나조차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그냥 둘 수 없다.
너무 위험해.’
결국 돌고 돌아서 원점이란 것을 애써 무시했다.
자신의 직위를 위협하는 존재의 배제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바람가가 아니다.
자신을 능가할 존재가 후손이라고 좋아하며 더욱 본인들의 수련을 채찍질하고 가속화하는 광기의 초월자가 아니란 말이다.
황금은 예정된 지배자이기에 현재의 번영을 더욱 승화시켜야할 책무가 있다.
기존의 체제를 위협할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거나 제한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잠시 고양된 감정에 감정을 정리하고 있는데 흑염이 또 일을 벌인다.
“아 젠장-! 시야가 멍청한 이놈이니 도저히 답답해서 못 살겠다.
어떻게 적을 영역 안에서 놓칠 수가 있지?
그러고도 어떻게 이렇게 하지?
전뇌계-! 아직 창조신이 아니니 차원의 마도신 놈은 주시하고 있었지?
당장 보여라.”
“예.”
어느새 달려온 전뇌신이 재빨리 커다란 화면을 흑염의 절대자의 앞에 놓고 사라진다.
뭐라고 제지도 하기 전에 화면이 켜지고 차원의 마도신을 비춘다.
전뇌신 다운 놀라운 처리 속도와 정보의 권능이었다.
‘역시 빠르다.
역시 전문적인 분야는 따를 수 없어.
저들도 인정받으려고 필사적이기는 하군.
흑염이 저러니 강제로 처리하기에는 늦었어.’
다른 8인의 절대자와 유일용신제도 휴식 중이고 회색의 과거이자 현실의 주체가 벌이는 전투라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회색의 과거가 폭주를 멈출 수 없는 흑염의 권능을 발동시켰다니 상황이 궁금하기도 한 모양이다.
모두의 의사가 저러면 아무리 서열 1위라도 반대할 수 없다.
물론 하위 일족의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서열전에 집중하란 소리는 싹 무시한 흑염의 절대자가 괘심하다는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흑염 권능의 파괴력이 자신을 넘어서니 이제 정당한 말도 안 들어 먹는다.
아니, 정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본인의 입버릇처럼 과거에는 절대계 최고의 현자라고 칭송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시절이 있었지 의문이 들 정도다.
아니, 과거가 그 정도이니 저 정도 수준으로 흑염의 권능을 익히고도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지는 알지만 갈수록 통제가 힘들어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려고 하는데 다른 8인의 절대자의 놀란 음성에 화면을 쳐다보게 되었다.
“뭐야? 저놈?
당하네?”
“흑염의 권능이 정말 맞아?”
“뭐 저렇게 약해?”
“어라? 저럴 리가 있나?”
“완전히 미친개일 뿐이잖아?”
이동구성으로 폄하하는 다른 8인의 절대자들의 말에 흑염의 절대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아-! 제길-!
말을 해도 꼭 그 따위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흑염의 권능을 익힌 일족이다.
그런데 대놓고 미친 개 취급을 하는데 좋을 리가 없다.
그러나 부정하지는 못했다.
차원의 마도신의 전투장면이 나오는 화면은 온통 선혈이 얼룩진 처참한 전장이었다.
적의 피라면 그런 평가가 나올리는 없지만 절반이상이 본인의 피다.
적들인 예비창조신들이 던지고 휘둘러오는 신기들을 흑염의 권능으로 부순 것까지는 좋은데 모든 신력을 집중시킨 신체의 일격에는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실력이 못 따라가니 몸으로 때우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꽈드득-! 우지지지직-!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디에도 절대 권능다운 압도적인 위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흑염의 권능을 익힌 몸이 저 정도로 부상을 입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부상을 입은 대가를 확실하게 치러 주고 있었다.
공격이 성공된 순간 상대의 신체는 흑염의 권능에 직접 접촉된다.
그리고 서로의 숨이 닺을 정도로 최 근접거리에 도달하게 되고 그 거리는 바로 흑염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간격이었다.
이런 근접전에서는 흑염의 권능으로 아무렇게나 휘둘러지는 팔다리를 어떤 권능이나 오의로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역시 용서 없는 일격이 신체를 부상을 입힌 존재들에게 뿌려지듯이 쏟아진다.
까득-! 파가가가-! 우직-!
그렇게 본인들의 회심의 전력공격을 성공시키자마자 터진 흑염의 반격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신체의 내부가 박살나는 선혈을 뿌리며 날려지는 예비 창조신들이었다.
저절로 한탄이 터져 나오는 모습이다.
“멍청한-! 흑염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정면공격에서 오는 반격이다.”
“반격만 상쇄하면 이길 수 있는데 왜 그걸 모르나?”
“전투경험이 거의 없군.”
“주우주의 예비 창조신치고는 능력은 비교적 높은데 영 아니야.”
“전형적인 수련으로 경지를 올린 투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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