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0화
16권
잠시 대화가 멈추었다.
허탈한 말투지만 속에 담긴 의지와 전달된 사정은 뒤가 없음을 알게 해주었다.
“후퇴가 봉쇄된 총력전이로군.
잘 알겠네.
이번에 받은 생명은 계약자를 위해 쓰지.”
쿠우우우웅-! 쿠우웅-!
주신전에 키가 10km를 초과하는 거신족의 주신들이 허공에서 나타나 신계에 내려앉기 시작하고 그 진동에 주신전이 뒤흔든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거신족의 주신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키가 수 km를 넘나드는 상위 거신족들의 모습이 그 밑으로 나타난 것이다.
신족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긴장을 나타냈다.
행성 위라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무한하게 생명력을 보조받는 신체특성을 가져 거의 1써클 이상으로 판정되는 거신족의 특성상 그 전력은 창조신 12명과 주신들의 세력으로 평가해야 했다.
그리고 무슨 수단을 사용했는지 행성표면이 아닌 신계인데도 불구하고 그 위압감은 어지간한 주신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들 위로 찬란한 빛을 뿌리며 황금빛의 양피지가 나타난다.
주신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뿌리는 완벽한 창조신급의 카르마의 계약서였다.
창조신급 이상이 된 차원의 마도신과 새로운 육체를 얻어 부활한 거신족의 주신들과의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으로 자신의 등급을 알린 카르마의 계약서가 표면에 적힌 내용을 연속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거신족의 주신 12명과 휘하 1,004명은 마도의 계약에 따라 정기를 받고 신계와 신족과의 전투에 참가한다는 과거의 계약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육체를 받는 대신에 죽음의 순간까지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을 추가한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항목은 카르마의 평등한 계약에 따라 정당하지 않기에 개인과 신계의 수호와 발전으로 한정한다.
또한 이 계약의 파기는 주계약자이며 강자인 차원의 마도신이 아닌 약자인 거신족에게 있다.
그러하기에 약자의 수호조항을 추가한다.
계약의 진행 간 카르마의 부정방지와 종료나 파기할 경우 불인식과 추적금지를 포함한다.
또한 전뇌계와 절대계에 긴급 조정건의를 할 권한 역시 준다.’
행성 위라면 창조신에 준하는 거신족의 주신 12명과, 천 명의 상위 거신족 전부를 차원의 마도신에 비해 약자로 규정한 카르마의 계약서에 내용에 놀란 신족과 거신족이었다.
약자에 대한 수호조항이 이렇게까지 철저한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이 차원의 마도신이 변경된 계약서에 신속하게 서명한다.
과거에 많이 해보았던 내용이라 특별할 것도 없다.
단지 이제 약자의 수호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강자의 견제를 받는 입장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보지 못한 독특한 조항이 하나 있었다.
‘전뇌계와 절대계의 긴급 조정건의라고?
그렇게나 참견하고 싶으신가?
도움을 주지 않는 관심은 참견이니 전혀 고맙지 않은데?
크크큭-! 뭐 이제 눈치 볼일도 없다.
절대계의 10중심이 관련된 이상 그 이하는 신경을 쓸 가치도 없지.’
생각이 다시 복잡해지지만 할 일은 아주 많고 시간제한이 있었다.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서열전이 끝나고 10중심의 서열 1위가 된 황금이 직접 진리의 명령을 전달하러 오고 자격을 시험할 것이다.
법칙의 주제자인 황금과 법칙외의 규칙의 주제자인 회색이 앙숙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과거의 8인의 절대자와 1인의 초월자, 1인의 현자인 시절에도 회색과 황금의 의견충돌은 유명했다.
나중에는 투쟁본능의 집합체인 흑염보다 더한 반목을 하고 결국 진리를 탄생시킨 계기가 될 정도였다.
그걸 아는 지금의 황금이 회색을 곱게 대해줄 리가 없다.
최악의 경우 황금의 바람성에 벌레로 끌려가는데 이번에는 대책이 없다.
황금의 바람성은 이미 과거에 조성이 완료되어 흑염의 바람성처럼 편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아니, 법칙을 주로 사용하는 황금일족은 마도와는 완전히 상극이라서 대등이상이 되지 않는 이상은 결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력보다 더한 흑염의 정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승급은 불가능한데 흑염의 권능은 연산력과는 상극이라 마도신이 완전하게 사용하기에는 제한이 너무나 많다.
“승낙한다.”
“찬성한다.”
“인정한다.”
과거에는 자신들이 우월했는데 지금은 완전한 약자로 규정된 거신족의 주신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약간 머뭇거리지만 전혀 손해가 될 이유가 없어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또 일반 인간크기인 신계관리주신의 자리에 거신족이 앉을 수가 없어 허공에서 그 위를 쳐다보다가 놀라고 말았다.
영광의 자리에 차원의 마도신이 앉아서 발동시킨 마도에 주신전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신족은 등급이 있지만 마신족처럼 완벽한 서열체계는 아니다.
같은 등급이면 동료와 같다.
그래서 원탁의 신계관리주신, 최고위 신계관리주신의 자리는 영광의 자리를 둘러싸고 원의 형태로 겹겹이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차원의 마도신은 그 원칙을 비틀었다.
“갈 길이 너무나 급하다.
누가 위인지 아래인지 명확하게 정해주지.
인정할 수 없다면 싸워 이겨라.”
우우우우우웅-!
주신전 전체가 진동하며 원형태의 자리를 바꾸어 간다.
위에서 바라본 거신족의 눈이 커져간다.
신계주신의 영광의 자리를 둘러싼 원의 중복이 아닌 나선형의 자리배치를 바뀐 것이다.
거기다가 아예 서열 몇 위라고 쓰여서 떠오른다.
마신족의 완전한 서열제를 비틀어서 같은 등급이라도 서열을 만들어 버렸다.
이제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 저 서열표와 좌석이 알려준다.
신족으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놀란 것은 자신들의 서열이었다.
자신들이 육체를 가진 이상 어지간한 주신은 상대가 안 된다.
2개의 초월권능을 가진 창조신급의 강자인 상급마신인 전율의 진군이 10개의 원탁의 신계관리주신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과거 지배세력 중 하나였던 전능신족의 가이아나가 최고위 관리주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1명의 마도를 가진 정령여주신과 또 다른 덩치가 큰 1명의 정령여주신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여주신들이 14명이나 위치하고 있고 이계의 환수신과 정령신들이 다음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도 아직 자신들의 자리는 나오지 않았다.
지식의 신이라고 광고하듯이 두꺼운 책을 붙잡고 있는 남주신이 너무 황당하다는 표정을 하며 입을 딱 벌리고 앉아있고 놀랍게도 주신급의 여신이 한 명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거신족의 주신들의 이름이 나열되기 시작한다.
1위인 차원의 마도신, 2위인 전율의 진군, 3위인 전능신족 가이아니, 4위인 이면주신 로키나, 5위인 헤파이스, 6위인 그랑라하를 시작으로 17위까지 본래의 신계 여주신들이 맡았다.
그리고 이계 환수신과 정령신들이 27위까지 채우고 남주신이 28위, 특이하게 주신급의 여신이 29위다.
그럼 거신족의 주신인 자신들이 겨우 30위 이하라는 소리이다.
결국 성질 급한 거신족의 주신들이 발을 크게 굴러 신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꽈꽈꽝-!
“말도 안 되는-!
개인의 순수 전투력만으로는 동급의 주신과 비교할 수 없는 거신족의 주신인 우리다.
행성 위가 아니라고 해도 결코 지지 않는다.
그런데 창조신도 아닌 주신들의 서열에서 겨우 30위이하라고?
이런 일을 참을 것 같으냐?
허어어억-!”
우르르르르르릉-!
꽈아아아아앙-!
투기와 살기가 유형화되어 번개처럼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30위 이내인 여주신들이 발산하는 기운들이다.
정확한 서열이 정해졌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서열에 분노한 것이다.
“뭐……, 뭐야? 마신족을 능가하는 투기와 살기가 유형화해?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것이 신족인가?
타락해서 마신족이 안되었나?”
“무슨 주신들이 모두 초월급의 권능을 가져?
그런 여주신들이 20명이라고?”
“그럼 신력만 증가하면 창조신급 이상-!”
“이러니 계약자가 감당이 안 되어서 우리를 억지로 부활시킨 것인가?”
“이거……,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2명 이상은 감당이 안 된다.”
“우리와 전투능력이 동급이다.”
아니, 기동력이 거신족에 비해 비할 수 없이 빠른 신족들의 특성상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느껴지는 살기와 투기는 신족과의 전투로 오랜 시간을 보낸 자신들조차 처음 볼 정도이다.
여주신들이 본색을 드러낸 분위기 자체는 살벌함의 극치였다.
그것이 자그마한 신체를 가진 여주신들이 터무니없이 거대한 거신족의 주신들조차 압도하며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전율의 진군이 정말 유쾌하다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신계조차 살기와 투기가 유형화되어 공간자체를 파열시키는 번개를 부를 정도의 존재들은 거의 없다.
최고 수준에 도달한 투신이 무수한 전장경험을 겪어야 일으킬 수 있는 이상 현상인 것이다.
더욱 발전되면 유형화된 살기와 투기는 공간을 찢고 권능을 분쇄하며 상대를 멸망시키는 권능이 된다.
아무런 신력이나 정기의 소모 없이 전투능력이 폭증하는 것이다.
과거 상위의 마신계를 통치하던 자신조차 소멸직전에 겨우 도달했었던 투기의 경지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것은 마신족의 고유기에 가깝다.
살기와 투기를 유형화시켜 능력을 폭증시키는 것은 마력이지 안정과 번영을 이끄는 신족은 당연히 익히기 극히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는 10명이상의 여주신들이 그런 기미를 보이고 있다.
마신계에서도 희귀한 투쟁의 화신들이 이렇게 하나의 신계에 모여 있다니 정말 두근거리는 일이다.
정체도 물론 알고 있다.
‘마신계에서도 악명이 높던 그 이름을 어찌 모를 것인가?
지배세력이 교체되는 초기 시절에 무능한 남주신들을 몰아내고 신계를 장악하여 주신계를 거의 초토화시키던 ‘여신혈맹’이군.’
지배세력의 교체만으로도 혼란하던 시기에 남신과 여신의 우열을 가리자면서 더한 전란을 불러들이다 결국 신계와 행성 자체가 파멸되어 징계로 정령신계로 보내졌던 존재들이다.
용케도 자멸 안하고 살아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차원의 마도신이 맡고 있는 신계라니 정말 즐거울 뿐이다.
제한적인 재생으로 약간 남은 정기로 소멸을 조용히 기다리던 자신에게 갑자기 제안 받은 최고위 창조신성의 신계관리주신의 자리와 완전한 재생, 마신족과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조건에 응한 보람이 있었다.
미련도 없고 따분하고 조용한 신계관리주신이라는 점에 망설였는데 다음 말이 결정적이었다.
‘심심하실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과거 여신혈맹의 주축이었던 여주신들이 신계관리주신으로 있습니다.
그들과의 내전을 방지하지 위한 제어력으로 있으시려면 무척이나 바쁘실 것입니다.’
신계 지배세력을 재편성하는 주신전쟁 때에 마신족보다 더 악명이 높고 강대했던 ‘여신혈맹’의 전투 여주신들이 상대라니 무척이나 흥겨울 것 같아 카르마의 계약에 응답했다.
그리고 직접 보니 과연 기대이상이다.
“오호호호호호호홋-!
주신전쟁에서 남주신들의 피로 주신계를 물들였던 여신혈맹의 주축들이 여기 모여 있다더니 정말이었군.
정말 대단한 살기와 투기의 경지-!
이건 마신족으로 안 바뀌어도 마신계로 소속만 바뀌어도 바로 인정받겠는데.
어지간한 마신보다 더 잔혹하고 강대했다던 전투와 피의 여주신들 답군.
그나저나 이 정도의 전투능력과 성향이라니?
계약자가 하위 주신들 덕에 골치가 아플 만도 하네.
하지만 능력상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하지만 못된 성격으로 쓰지는 못하는 골칫덩어리로군.
마신계라면 철저하게 힘으로 굴복시키면 되지만 신계는 어느 정도는 감화시켜야 되니 안 되겠지?
하지만 일족도 배경도 없는 마도신이 이걸 어쩌나?
유지라도 하려면 무조건 잘해주는 수밖에 없나?
불쌍한 신계주신이로군.
오호호호호-!”
“……저는 아니, 예요.
신계와 신계주신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할 각오를 항상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가이아나였다.
신족의 주신이면서도 바로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가이아나의 모습에 조금 놀란 전율의 진군이었다.
일반적인 주신이 결코 자신의 상대가 될 리가 없는데 비슷하다는 평가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자세하게 확인을 해본 결과는 놀랄 정도였다.
“아라? 전능신족의 여주신이라고?
용케 상급 여주신이 남아있었네?
모두 진리와의 일전에서 신력의 원이 파손되어 전부 봉인된 줄 알았는데?
그런데 설사 멀쩡하게 살아있다고 해도 주신급도 아닌 너무나 귀중한 주신을 외부 신계로 보낼 리가 없는데?
혹시 복귀명령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외부 신계소속이라도 일족의 오리진의 명령은 완전히 거부할 수 없지 않아?
아니면 여기를 전능신족의 새로운 근거지로 삼으라는 밀명이라도 받았나?
하긴 아무 배경도 세력도 없고 거기에 인간출신의 신이 가지고 있기에는 최고위 창조신성이 너무 귀한 보물이기는 해.
창조신들도 가만 안 있을 걸.”
“아니에요-!”
갑자기 첩자로 낙인찍으려는 전율의 진군에 놀라서 부정하는 가이아나를 더욱 몰아붙이는 전율의 진군이었다.
본래 이런 말싸움에 관리신이 아닌 이상 신족이 마신족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다.
“훗훗-! 반드시 그렇게 될 걸.
내가 전능일족의 예비 마신왕인 ‘전지의 성’을 잘 아는데 전능신족을 위해서 마신이 되는 것까지 감수한 독한 년이었지.
거기에 일부 전능신족을 받아들여 마신성을 개조하여 성마신까지 된 존재야.
물론 반대하는 마신들을 모두 처분하고 말이야.
그런데 주우주 지배 신족의 중심 신계로도 차고 넘치는 신생 최고위 창조신성을 모른 척한다고?
거기에 상급 여주신이 반려도 아니고 대리로 있는데?
어떻게든 추가 세력을 투입해서 통째로 신계를 뺏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분을 확보하려 하지 않아?
마신족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생존경쟁이고 신족으로서는 전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하지.
개인으로서 막을 수 없는 조직의 흐름이란 것이란다.
막으려고 하면 목숨을 걸고도 고립을 각오해야 하는데 그런 독한 성정은 아닌 것 같은데?
각오는 되었는지 몰라?”
“…….”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을 잃은 가이아나였다.
확실히 신력의 원을 복구하자마자 전능신족에서 수없이 독촉하던 복귀명령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것은 최고위 주신성으로 승급하고 나서 바로였다.
그리고 차원의 마도신이 치료한 과정을 말하기 곤란한 내용을 제외하고 알려주자 전능신족의 봉인된 여주신들을 몇 명을 보내겠다는 연락이 바로 왔다.
신계주신 대리의 권한으로 승낙했는데 이것이 패착이 될 것 같았다.
과거 창조여신으로서 너무나 존귀했던 존재들이니 당연히 수행하는 신들도 고위급이다.
더구나 본인들조차 어렵던 전능신족의 몰락시절에도 이들을 포기 못하고 봉인을 하며 버티게 할 정도로 강대한 권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런 여주신들이 시험적으로 3명이나 보내졌고 치료가 된다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건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여신혈맹의 여주신들과 다름없는 개인세력의 확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개인세력의 확충은 바로 주신에게로의 도전으로 이어지는 수순은 본인의 의사와는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질 일이다.
자신이 거부한다고 해도 세력의 다른 하나가 벌일 것이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거부를 하려고 해도 이미 도착한 전능일족들이 신전의 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완전히 고개를 숙인 가이아나를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추가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차원의 마도신이 영광의 자리에서 제지했다.
그나마 신계주신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여주신인데 망치는 꼴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전율의 진군이여.
그만하십시오.
당신의 주된 임무는 친위세력의 관리와 신계질서의 유지이지 주신의 감찰이 아닙니다.
개인세력의 확충은 이미 승인했습니다.
저의 신계에는 너무나 신이 부족하니 오히려 장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 하나만 제외하고 신계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이상 마음대로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신계 안에서 전투를 벌이지 마라.’만 지키면 됩니다.”
그 말에 전율의 진군이 크게 웃는다.
말 그대로 반역을 추구하든 내란을 계획하든 신계 발전의 틀 안에서라면 자유라는 뜻이다.
‘반역조차 힘이 있으면 자유란 것인가?
어떤 신계 주신이 이걸 허락할까?’
반역자는 바로 소속 세력까지 모두 죽여 정기로 바꾸는 마신족의 입장으로 이해 못할 정도의 배포다.
“호오-! 놀라운 자신감-!
부하의 반란 따위는 고려도 하지 않는가?
그대는 이정도의 하위 주신들이 뭉쳐도 이길 정도의 힘을 가졌는가?
아니면 자신의 효용성에 대한 믿음인가?
하긴 개인의 발전가능성을 극대화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차원의 권능지원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만 너무 과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인데?
신족이든 마신이든 개인적으로 완벽하게 믿을만한 존재라도 집단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지.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말이야.
그것까지 무마할 힘이 있는가?”
“당연히…….”
차원의 마도신의 입에서 미소가 떠오른다.
그것은 명확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여기의 시간은 겨우 하루가 지났으나 영원의 심판을 받으며 흑염의 바람성에서 보낸 2만 5천년이다.
거기서 벌인 사투는 자신의 능력의 편중을 더욱 극대화했으며 가장 큰 소득을 올렸다.
그 힘은 주신에게 밀릴 정도로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의 자신이 하려고 하면 주신계조차 멸망시킬 정도다.
“호오? 개인의 강함과 집단의 수장의 강함은 너무나 다른데?
믿을 부하 주신이 없어서 소멸된 나를 재생시킬 정도인 그대가 자신감을 보이다니?
설마 여기 전능일족의 새로운 기대주를 믿는다면 꿈 깨라고 말하고 싶군.
일족이 전부 원한다면 영원한 반려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지.
그런데 겨우 신계주신 대리를 맡긴 은인?
이걸 어떻게 믿나?”
마신족답게 교묘하게 현실을 강조하며 마음을 뒤흔드는 소리에 가이아나의 표정이 더욱 창백해진다.
“그만 하지요.
무엇보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외부의 침략과 반역과 내란에 쓰러질 신계주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를 넘어설 힘을 가진 신이 신계에서 태어난다면 기꺼이 넘기지요.
그것은 저의 강함과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증명이니까요.
그러니 신계주신 대리 가이아나여.
전능신족의 치료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시행하겠습니다.
신족의 권능의 기본인 신력의 원의 복구의 대가는 당연히 신계로의 편입이니 휘하 세력으로 삼으십시오.
태초의 투신들과 더불어 성과를 기대하겠습니다.”
“예-! 반드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이겠습니다.”
한없이 부드러워진 대화에 전율의 진군이 입을 삐죽이며 다시 상관을 한다.
마신족의 본성은 이런 것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니 반사적으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맥 빠진 밝은 과정은 재미가 없어.
그럼 나도 마신족들을 불러서 개인세력을 만들어 볼까?
신계관리주신이니 당연히 승인하겠지?”
반장난삼아 한 이야기에 답변은 놀라왔다.
“물론입니다.
전율마신족과 진군마신족의 유입과 선전을 기대하겠습니다.
단 주신급 이상으로 가급적 받으십시오.
이런 신계이다 보니 아무리 상위 마신족이라도 약자라면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너무나 태연한 대꾸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전율의 진군이었다.
마신족의 개인세력을 인정하는 신계주신이라니 기가 차지 않는다.
아니, 전투력만큼은 창조신급인 상급 마신인 자신에게 겁도 없이 신계관리주신의 자리를 제안할 때부터 이상하기는 했다.
마신족이 신족의 다른 반대세력을 받아들여서 온전히 세력을 유지할 때 부여되는 영광의 이름이 있다.
‘성마신(聖魔神)’이라 하며 마족의 파괴능력에 신족의 창조능력을 더한 초월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위대한 마신이다.
하지만 반대속성을 모두 가지고 융합하여 운용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기에 주우주를 통틀어도 극소수다.
마신족에서 예비마신왕 서열 1위인 전지의 성이 유일할 정도다.
“어라라라라?
성마신이라도 되어 볼 생각?
차원의 마도신인 그대에게 그럴 재능은 결코 없는데?
더 이상의 권능을 받아들일 잠재력과 연산력이 없어.”
“훗-!”
기묘한 자신감이 넘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차원의 마도신의 얼굴을 보며 잠시 얼굴이 붉혀진 전율의 진군이었다.
과거 용병신의 힘든 임무에 눌려서 발버둥 치던 여린 모습은 사라지고 성장한 남신다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투기가 넘치는 분위기와는 다른 여린 미소년 같은 모습에 흥미가 동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절규하는 것 같은 처절한 목소리가 주신전에 울렸다.
언제나 항상 움켜쥐고 있던 책을 책상위에 던진 지식의 신이었다.
“위대한 신계주신이시여-!
지금도 너무나 위험합니다!
그런데 마신족의 세력을 추가 유입하다니요?
주신계와 주변 신계에서 가만히 안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에 차원의 마도신이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지금 여신혈맹의 여주신들만으로도 악명이 끝도 없이 높다.
그런데 신족의 대항자인 거신족에 반대자인 마신족들까지 받아들이면 이건 신계인지 마신계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다.
오래 신계에 몸담을 정도가 아니라 신계를 처음 만든 태초의 투신이니 더욱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식의 신이 생각하는 위험수준은 진작 초과했다.
주신계가 사태를 모두 파악하면 당장 탄핵이 아니라 토벌부대를 보내올 정도이다.
결정적으로 소멸한 마신왕급 마신을 재생하고 죽은 거신족들을 부활시켰으니 말이다.
생명체라도 법칙을 벗어나 시끄러울 것인데 이들이 모두 신족의 적인 이상 파국은 피할 수 없다.
‘저들이 모두 죽거나 소멸한 존재들로서 마도로서 부활하고 재생시킨 것을 알게 되면 당장 쓰러질 것인데 모르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로군.
하지만 10중심이 문제이니 주신계가 뭐 별거냐?
가뿐하게 처리해 주지.
창조신계도 주신들의 일에 직접적으로는 나서지 못하니 주신들이 어디 덤빌 것이면 해보아라.
가만-! 생각해보니 지식의 신의 과거도 재미있었지.
이것도 바로 사용해야 하겠군.
이제 가릴 것이 없다.’
딱하게도 아직 상황파악이 안된 지식의 신에게 근엄하게 명령한다.
“지식의 신이여.
그대도 세력을 만들라.
그러기 위해 모든 것을 허용한다.
나의 신계는 너무나 신들이 부족하다.
모든 존재들은 신계를 위해 모든 능력을 기울여서 확보하라.
이것은 신계주신으로서 명령이다.”
위이잉-!
최고위 창조신성급 자아로 성장한 신계 자아까지 적극 개입하여 발동한 명령권에 신계에 소속된 모든 존재들에게 아로새겨 진다.
이러한 전면적인 유입허용이 신계의 기본방침이 되었다.
이것은 이제 모든 업무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신계발전에 관련된 사항은 최고의 강제력을 가진다.
거부하려면 신계를 이탈하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다른 세력의 유입을 막으려다 자신의 과거 세력까지 끌어들여야 할 지식의 세력의 얼굴이 완전히 멍해졌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이대로는 신계의 파멸이 눈앞에 보인다.’
아무리 예비 창조신인 차원의 마도신이지만 통제를 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하게 넘은 것이다.
신계주신의 힘이 부하보다 부족하면 바로 바뀔 것이고 만약 그 부하가 마신족이면 마신계가 된다.
그런 것을 주신계가 용납할리 없다.
주신들의 일이니 창조신계는 나서지 않겠지만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그 위험성을 간과하는 차원의 마도신의 모습에 지식의 신은 절망감마저 느낄 정도다.
넋이 나간 지식의 신을 쳐다보며 차원의 마도신이 정말 딱하다는 듯 속으로 생각을 한다.
‘이미 주신계와는 거의 끝난 관계인데 내 입으로 말하기가 참 힘들군.
그렇다고 내 전력을 다 밝힐 수는 없지.
일단 시끄러워질 주변 신계부터 쓸어버릴까?
아니면 창조신이 되기 위해 마신계나 대신족과 인증전부터 해야 하나?
쿡쿡-! 할 일이 끝이 없는데 혼자 해야 하니 어처구니가 없어.
개인의 힘은 있는데 세력이 너무 약해.
그러니 최고위 창조신성부터 제 역할을 하게 조정해야 하겠군.’
시끄러워진 주변은 이제 알바가 아니다.
자신에게 세력을 이끌고 도전하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이런 혼란기에 함부로 움직이면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는 기본은 다들 알고 있다.
각자 세력을 만들고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격돌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당장 내전은 없다.
그럼 그 시간에 창조신성을 정비를 해야 신계의 지원을 더 받을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급되는 정기의 양뿐만 아니라 수준까지 향상시켜야 한다.
단순한 생명체의 약한 정기로는 창조신계를 정상 활용할 수 없다.
그러니 진화를 통한 초인적인 존재들이 기본생명체가 되어야만 한다.
바람성의 벌레들이 주신이상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차원의 마도신의 시선이 신계 아래의 중간계로 향하는 순간이다.
나름대로 자기들이 잘 났다며 아옹다옹하며 살고 있는 가소로운 지성체들이 보였다.
‘너희들도 당해봐라.
바깥세상 참 살기 힘들더라.
너희들도 그동안의 보호에서 벗어난 차가운 바람을 견딜 때가 왔다.
견디면 영광이고 포기하면 몰살이다.’
주신성에서 창조신성으로 진화가 시작된다.
진화는 희생과 선별을 필요로 하기에 막대한 희생이 올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선별’은 자신이 하지 않더라도 언제인가는 벌어질 일이다.
자신이 패배하거나 이 별에서 손을 떼는 일이 발생하면 새로 파견된 창조신이 창조신성의 격에 맞는 지성체들로 채우기 위해 정리를 할 것이다.
무수한 행성에서 가볍게는 대홍수나 별의 충돌로 생명체들이 정리되고 진화된 생명체들로 채워졌다.
전단계의 생명체는 모두 정기로 바꾸어 새로운 지성체들의 바탕이 된다.
그것을 아는 차원의 마도신의 입장에서 꺼릴 것이 없었다.
그나마 인간출신인 자신이 하는 것이 희생을 줄이는 길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개인적인 욕망이다.
그래서 숨기지 않고 영창을 한다.
“바빌로니아의 탑은 무너지지 않고 하늘에 있도다.”
차원의 창조신성의 모든 하늘에 다시 차원의 마도신이 모습이 투영된다.
과거 흑마법사들의 종주로서 낙인찍혀 신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26쌍의 찬란한 빛의 날개를 가진 창조신의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하는 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삼엄하고 냉정한 말이 떨어진다.
“선별을 한다.
창조신성의 기준에서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증명하라.
기준이하는 모두 처분한다.
방식은 전쟁이며 최후에 살아남은 종족이 모든 것을 차지한다.
최선을 다해 승리하라.
그리고 창조신성에 살고 있는 한 어떠한 예외는 없다.
종족 대표자 소환.”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진 신탁에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진 중간계의 생명체들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아는 일부의 초월자들은 기겁을 할 일이었다.
아니, 그 전에 신계로 강제이동 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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