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6화
13권
창조신장의 어이없는 음성이 500주우주의 모든 신의 심정을 대변한다.
지역우주를 파괴할 수 있는 신은 많기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나 지역우주를 이렇게 송두리째 부수고 다시 복원하는 신은 거의 없다.
파괴보다 복원이 몇 십 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완전복원은 시간에서 초월의 권능을 가진 극소수의 창조신들만이 가능하지만 이 범위와 속도는 상식을 벗어난다.
‘이정도면 창조신의 규격도 완전히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도 겨우 예비 창조신이라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놀라움의 대상인 차원의 마도신은 지금 죽을 맛이었다.
칭호의 개방으로 얻은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신체가 마력과 신력의 충돌로 삐걱거리고 지금이라도 피를 토할 지경이다.
그리고 자격도 되지 않은 주제에 억지로 남발하고 있는 12써클의 권능에 당장에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신체를 근원의 칭호가 강제로 붙잡고 있는 상황이다.
신력과 정기가 아무리 높아도 자신의 신격은 겨우 1천억의 권능을 다룰 수 있는 예비창조신인데 거의 5천억에 달하는 권능을 사용한 대가였다.
수십조의 정기가 있어도 활용하지 못하는 비참한 상황에 저절로 한탄만이 나온다.
‘그래보았자 그가 준 12써클의 승급조건도 달성 못 할 정도의 권능이지.
거기에 아차하면 신력과 마력의 융합이 아닌 폭발로 끝장이다.
완전 활성화된 근원의 칭호로도 간당간당하다.
정기와 신력은 충분한데 신격이 버티지를 못해.
예비 창조신의 신격으로는 이게 한계다.
힘이 있어도 신격이 모자라서 쓰지를 못한다니?
입 한번 잘못 놀린 대가로 평생 이게 무슨 꼴인가?
그가 정해준 일반보다 2써클 이상의 평가기준을 만족시키자니 미칠 지경이다.
하나 그것도 곧 끝난다.
창조신이 되어 주신성을 만들 수 있는 권능만 얻으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와 동급의 창조의 권능을 얻어야만 돼.’
지금도 아른거리는 그가 준 차원의 8써클 마도서에 적힌 승급조건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9써클을 마스터를 하면 행성을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
10써클을 마스터를 하면 행성과 속한 위성까지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
11써클을 마스터를 하면 태양계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
12써클을 마스터를 하면 은하계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
13써클을 마스터를 하면 우주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은 일반 기준에 따른다.
그리고 ‘근원(根源)’은 창조까지 가능해야 하며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써클을 인정하고 승급한다.’
자신의 경솔한 입이 불러온 저 가혹한 조건은 평생의 족쇄다.
11써클은 주신이며 12써클은 창조신이다.
본래 주신은 행성정도를 파괴하면 되고 창조신은 행성과 위성정도를 없애면 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저 기준인 11써클은 창조신이상의 벽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저 창조의 기준이다.
파괴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처럼 행성들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그럼 알아서 별들끼리 연쇄폭발하고 지금처럼 끝장을 내줄 수 있다.
하나 창조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완전히 이해하고 하나하나 쌓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생존마탑을 만드는 것처럼 노력과 정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벽돌을 하나하나 차원의 벽의 혼란 속에서 밀어 넣어 약간의 오차도 없이 쌓아가다 약간의 실수라도 모두 무너지고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그 무한에 가까운 반복 작업이 바로 창조의 실체였다.
지금처럼 시간의 권능으로 되돌리는 것은 단지 파괴에 따른 뒤처리일 뿐 창조가 아니기에 결코 승급조건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존재들이 감탄을 하든 증오를 하든 상관이 없다.
오직 끝없이 그가 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악착같이 시도할 뿐이다.
덕분에 이제 준비는 다 되었다.
이것도 안 되면 정말 주신성의 창조 권능 외에는 대안이 없다.
카르마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안정되는 것을 보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본편이다.
성공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직 거의 ‘절대선’에 도달한 카르마의 가호와 이제까지 쌓아온 필사적으로 쌓아온 마도의 가능성을 믿을 뿐이다.
전장특화의 흑마도만이 지금의 전장에서 유일한 답이다.
‘흑마도사는 전장에서는 최강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삶의 선택은 무의미하다.’
본래 적당한 마도를 택해 인간의 한계인 7써클의 마스터로서 화려하게 살수도 있었다.
모시고 있는 신은 지금 전쟁터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있는데 지금도 희희낙락하면서 연회장을 주름잡고 있는 전 용사였던 전쟁신의 교황처럼 살 수 있었다.
하나 ‘최강’과 ‘친애’라는 감정 때문에 선택한 길이다.
그러하기에 ‘최강’이라는 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 동안의 고난은 헛일이다.
‘친애’ 때문에 수정도 못한다.
그래서 비록 그것이 ‘전장’의 한정이리라 할지라도 기필코 달성해야할 목표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해야만 겨우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의 전장에서는 어지간한 능력을 가지고는 방해밖에 안 된다.
적어도 저 주우주의 군세를 압도할만한 힘과 대신할 창조력이 있어야 한다.
쪼르르르륵-! 뚝-!
환청처럼 귓가에 술잔에 술이 채워지고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어딘가에서 그가 보고 있다.
항상 하는 영원의 심판이 아닌, 단지 보기만을 한다.
비록 절대등급의 카르마의 계약서로 인하여 생긴 일이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
물론 그의 성향 상 실망스런 전투라면 계약을 주선한 특급 전뇌신과 같이 처분당할 것이다.
하나 최소한 영원의 심판보다는 나은 깨끗한 최후 일 것이기에 차라리 다행이다.
평화롭게 죽느니 전장에서 최선을 다하다 죽으면 그것이 영광이라고 말하는 오래된 용병신들의 입버릇을 미친 소리로 치부했는데 지금이 딱 그 꼴이다.
‘그럼 가볼까?
성공하지 못하면 끝이군.
영원의 심판만 아니라면 나쁘지는 않아.’
자신의 근원의 칭호가 차원의 권능이 미친 듯이 확장을 하며 신체의 그릇을 키운다.
거기에 마력이 신력과 만나 폭발을 하듯 단련시킨다.
이미 통제는 포기한지 오래다.
오직 완전가동한 근원의 칭호만이 속에서 터지는 충격과 부상의 회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조금의 정신이라도 잃어서 포기했다가는 최소한 항성계는 소멸하는 자폭이다.
다루는 권능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신격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신령연옥(神靈煉獄) 최대출력-!
정령신들에게 연산력과 권능 강제 활용 시작-!”
화르르르르륵-!
이마의 창조신의 보석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기하급수적으로 권능을 강화해간다.
붙잡아 놓은 오리진들의 신령과 창조신급의 존재들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가진 권능들이 발동을 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며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는 것을 느낀다.
하나 쓸데없는 반항이다.
정령신계란 구조자체가 정령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정기와 권능을 강제로 뽑아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할 방법은 신체를 극도로 강화하여 흡수에 저항하거나 스스로 신격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생 고통과 손해를 경험하지 못해본 이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고 돼지 목에 진주였던 권능들이 나의 차원의 권능에 더해지는 것을 느끼며 희열에 찬다.
‘역시 가능하다.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모든 것은 지금을 위해서였다.
신계에서 매장될 신령을 억압하는 짓을 하면서 시도한 이유다.
이것이 완벽하게 성공만 하면 500주우주의 주우주의 모든 신족이 아니라 마신족이 몰려와도 내가 지키는 방어신계를 넘어설 수 없다.
성공만 하면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신들의 정기는 나의 힘이 되며 신령조차 나의 권능이 될 것이다.
투지가 있는 한 무한의 생명력을 보장하고 잠재력을 올리는 근원의 칭호가 그 밑바탕이 된다.
더구나 지금도 어설프지만 지역우주급의 파괴와 복원까지 가능한데 그것을 1단계 더 올릴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신령연옥’이며 ‘근원의 정령계’의 힘이다.
내 앞에서는 어떤 대군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예비 창조신이 지키는 창조신급의 방어신계는 499주우주의 창조신들도 돌파가 불가능하다.
생명력의 ‘근원’이며 법칙을 만드는 ‘차원’이면서 현실을 부정하는 흑마도사인 나는 차원의 마도신이다.
‘어떤 상대도 끝까지 버티고 싸우다 보면 결국 이길 수 있다.
내가 그렇게나 힘든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여기까지 온 것처럼 여기의 전장 또한 그렇게 나의 승리를 끝날 것이다.’
비록 사회경험이 부족해 사는 것은 엉망진창이고, 신계운영조차 자신보다는 낫지만 악명이 자자한 부하들에게 맡기고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전장에서만은 내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나는 신격을 얻고 신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대신족의 인증전을 비롯한 수많은 절망적인 전투를 승리로 이끈 용병신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상승불패의 전투신’이란 영광의 칭호를 얻었으나 승리를 얻기 위해 부족한 힘을 메우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결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최악최흉의 마도신이라는 악명까지 얻었으나 후회는 없다.
어차피 다시 선택의 기회가 온다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최선이었기에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현실이 설사 괴롭고 힘들더라도 전뇌신처럼 과거를 바꾸는 짓 따위는 안한다.
그것이 세상을 부정하지만 현실에서 살기위해 치열하게 싸워가는 전투신이자 마도신으로서 최후의 자존심인 것이다.
‘아무리 힘든 과거라도 현재 살아있고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상 나의 승리다.’
화아아아아아악-!
차원의 권능을 상징하는 빛의 날개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근원의 정령계’라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창조신의 권위로서 사용하려 했으나 지금은 스스로 ‘신령연옥’이라 개명시킨 창조신의 보석이 이제 태양보다 더하게 가열되며 붙잡힌 신령들의 권능과 신격을 짜낸다.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인간들이 말하는 지옥에서 들리는 비명에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신령들의 비명이 섬뜩하게 우주를 울려갔다.
아무리 권능의 수준이 낮고 어리석어도 지역우주를 다스리는 창조신에 도달한 고귀한 신족들이 강제로 통제되려는 권능에 저항해 발버둥치는 비명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치욕을 당했어도 결코 자신의 주우주로 향하는 창끝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고집으로 저항을 하고 거기에 차원의 마도신의 마도 연산력이 달려들어 방어를 분해하고 자신의 권능에 더한다.
필사적인 저항은 곧 끝나고 권능의 통합이 이루어진 듯 차원의 신력의 날개가 늘어나는 것이 가속화된다.
오리진들의 무수한 저항을 근원의 칭호가 주는 생명력에 기대어 상처를 감수하고 정면 돌파해 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신족의 오리진인 우리 모두가 가진 권능을 모든 분야에서 능가한다고?
한낱 인간출신의 신이…….’
‘그것도 태어나고 신이 된 것이 백년도 안 된 신에게 밀려?’
‘우린 도대체…….’
‘이것이 진정한 칭호의 힘인가?’
허탈감에 절망에 빠진 오리진들의 음성과 함께 승리의 증거로 얻은 권능을 더한 빛의 날개들이 활짝 펴지며 우주공간을 잠식해 간다.
차원의 마도신이 선택한 ‘차원’의 진정한 모습은 법칙의 창조이기에 영역 내에서 현 우주의 모든 규칙을 조정해 간다.
날개의 수가 12개를 넘어 20개를 넘어가자 그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결국 대부분의 법칙의 변화를 손에 넣는다.
파괴도 창조도 저 안에서라면 의지 하나로 가능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500주우주의 창조신장의 입에서 너무 놀란 나머지 마음속의 말이 새어나왔다.
“창세(創世)인 것인가?
주우주에서 완전히 독립된 주우주를 구축하고 있다.
이건 빛의 신의 창조력의 극치이자 또 하나의 이상인 세계 창조다.
여기에 범위만이 아니라 수준조차 절대급이란 것인가?
그런 창조신장급의 창조의 권능을 가진 더없이 고귀한 신이 겨우 예비 창조신라고?
나는 도대체 그 동안 무엇을 해왔는가?
신족과 우주의 안정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승가람마가 이런 신들을 만들고 있을 동안 나는 도대체 무엇을?”
낯선 감정들을 느끼는 순간 머리에 스치는 것은 최고위 지배층주제에 그 신격을 자신의 의사를 사사건건 가로막으며 자신의 일족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던 오리진들이었다.
잘난 척만 하며 신계에 최고위 종족의 대표로서 거들먹거리던 저들이 신계의 명운이 걸린 전투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잡혀서 인질이 되고 이제는 적의 권능을 저렇게까지 강화시켜 주고 있다.
그런 오리진들이 자신이 다스린 신족이 만들어낸 최고위 창조신들이었다.
신족의 오리진은 말 그대로 권능의 정화이며 기원이기에 신족 중 최강의 존재들이다.
그런 창조신들을 너무나 손쉽게 죽이고 억류한 것은 적에게 용병신으로 참전을 하는 굴욕을 감수하고 칭호를 비굴하게 받았다고 비웃었던 승가람마였다.
거기에 우주의 해악인 악마족과 손을 잡은 창조신장의 수치라고 공개적으로 비난까지 했는데 막상 싸워본 결과는 이 꼴이다.
‘본인은 보지도 못하고 겨우 예비 창조신들에게 밀리고 있다니.’
얼굴이 굳어지고 처음 느끼는 스산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것은 자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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