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9화
11권
중요한 이야기를 방해받은 진멸이 화를 내며 말하자 창조신장과 마신황제가 동시에 인상을 찡그린다.
겨우 정기라는 말에 둘 다 엄청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래서 눈도 가늘게 뜨고서 혼잣말을 하듯 말한다.
“겨우 정기라?
창조신이지만 멋대로 혼자사니 정기의 중요성을 모르는군.”
“겨우 일반 창조신 영역만 관리하며 놀기만 하다 보니 저게 정기를 무시하네.
정말 창조신 맞아?
거지 아냐?
마신족의 마신도 저런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뭐-! 거지-!
누가 멋대로 살아?
언제 놀기만 했다고?
비록 권능을 대부분 봉인했지만 내 창조신의 영역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발전을 거듭?
후훗-! 하위 주신들만 엄청 고생한 결과겠지.”
“그러면서 무능한 것들을 처분을 하겠다니?
염치도 없다.
너나 잘해라.”
당연히 발끈 하며 소리친 진멸을 보며 코웃음을 치며 서류들을 호출한다.
삥-! 삥-! 위이잉-!
빨간색으로 뒤덮인 고발문서였다.
“신계를 방치하며 하위 주신들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고 놀러만 다니는 일반 창조신이 있다는 보고다.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증거를 잡을 수가 없지만 이런 불량스런 창조주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재교육을 꼭 시켜 주십시오.’라고 하는군.”
“주신성을 1만년에 겨우 1번 만들고 힘들어서 푹 쉬겠다는 구제불능의 창조신을 고발합니다.”
“창조신계에서 관리여신들에게 성희롱을 했습니다.”
“일은 안하고 놀기만 하는 가증스런 창조신의 탄핵을 요청합니다.”
파르르륵-!
신고 문서들이 끝없이 쌓인다.
워낙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신들이라 항의 서류와 징계 건의가 끝이 없다.
물론 거짓도 있고 너무 심한 평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되었기에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아까 대신족을 이기기 위해서 신족의 부실한 절반을 숙청해야 한다고 외치던 것이 너무 먼 과거처럼 느껴지며 기가 팍 죽어간다.
분명 자신이 잘못한 것이 맞았다.
처음에는 노는 것이 연기였지만 나중에 익숙해지니 수련만 하고 회복시간에는 정말 열심히 놀게 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 마음 놓고 푹 쉬는 것이 완전히 몸에 적응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휴가라고 해도 작작 좀 놀아라.
그리고 일반 창조신의 고발 기록을 그만 좀 갱신해라.
막아주기 피곤하다.”
“그래도 꽤 유망한 마신왕인데 현황을 보고하면서 완전히 바가지 긁는 마누라처럼 히스테리만 부리더군.
일은 안하고 항상 놀고먹는 너 때문에 승급할 정기를 모을 수가 없다고 난리를 친다.
마신왕인 자신이 왜 신계 지역까지 통째로 관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지.
창조신이 항상 자리를 비우고 놀러 다니니 신계에서까지 자신에게 일을 가지고 오는 것이 어이가 없단다.
무시하자니 당장 모두 같이 망할 지경이라 어쩔 수 없이 해주는데 책임자인 너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단다.
어느 정도 주신성과 정기를 주고 쉬란 말이야.”
과거의 실수가 명분을 왕창 깎아 먹는다.
그래도 할 말은 남았다.
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에 저런 약점이나 모아서 자신을 비난하다니 말도 안 된다.
“치사한 것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할 것이지.
그런 것은 또 왜 모아 놓았냐?
우리 수준에서는 어차피 쓸모도 없는 것을?
당장 없애-!”
거기에 마신왕이 발끈하며 답을 한다.
아까 이야기를 들었는데 물론 기본적인 사상은 찬성한다.
지금 이 주우주는 극도의 발전 끝에 침체기를 겪고 있으니 어느 정도 정리는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것도 책임질 것도 손해 볼 것도 없는 놈이 입 바른 소리를 하며 몽땅 처분을 하자고 하니 배알이 꼴리는 것이다.
막말로 절반을 처분해도 저 놈은 아무 상관도 피해도 없다.
본인 속만 시원할 뿐이다.
‘너도 지배자 해봐라.
마음에 안 든다고 다 죽이면 몇이나 남나?
점령한 행성들만 잘 관리하면 꾸준히 보급을 받으면 이렇게 정기가 부족하지 않을 것인데 이것들이 자신들의 것이면서도 툭하면 행성채로 정기를 흡수하니 죽을 맛이다.’
마신족들은 과거에 행성을 통째로 약탈하던 유랑종족이었다.
그런 습성이 남아있어 약간만 문제가 발생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행성의 지성체들의 정기를 한 번에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본능과 같은 것이라서 잘 통제가 안 되고 그래서 마신이 흥분하면 바로 행성은 초토화된다.
그러니 영겁의 시간동안 그렇게 노력을 해도 행성의 관리자체가 안되어서 말아먹기 일쑤다.
과거처럼 이동하며 약탈하는 것은 조약으로 금지되어있으니 최악이다.
마신들과 휘하 마신족들이 말라 비틀어져서 죽지 않으려면 자신이 엉망으로 만든 행성을 어쩔 수 없이 신족에게 지배권을 다시 넘기는 웃지도 못할 희극이 아직도 벌어진다.
지금은 점령한 중간계의 절대자들을 중간 관리자로 활용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역시 신족의 관리를 따라갈 수 없다.
즉 정황상 창조신들이 반 이상 죽거나 소멸하면 당장 마신족의 정기수급도 반 토막 난다.
‘아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진멸’이 정말 움직일 모양이다.
저 흉악한 녀석은 전장에서 성격이 완전히 전환되어 적과 아군도 구분하지 않고 미쳐 날뛰기로 유명한 녀석이다.
그런데 신족과 마신족을 구분할리는 절대 없다.’
일단 시작되면 절대 막을 수 없고 그 와중에 마신족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자신이 막아 나선다면 멸족을 시킨다고 달려들 놈이다.
그러니 신족의 일이지만 개입을 안 할 수 없다.
“그래 부럽다.
그래서 이건 못 없애고 두고두고 써먹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끝나는 너와 우린 달라.
내가 먹여살려야할 식구가 몇인지 알아?
내 부하들은 또 얼마이고?
과거 조금만 데리고 있을 때는 마음에 안 들면 다 죽여도 되지만, 이제는 너무 수가 많다보니 꼭 필요한 것들도 어기저기 모두 얹혀있어서 그것도 안 돼-!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마신계가 무수한 정기를 소모하고 부족해지면 기능이 저하되어서 모두 나만 바라본다고-!
젠장-! 지들이 언제부터 신족처럼 마신계의 지원을 받고 편히 살았다고 이 난리야.
악마족 때의 과거처럼 대충 살아도 되잖아.
뭐라? 마신계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추가 정기가 필요하고 유지를 해야 한다고?
그러니 좋은 계약을 많이 따 오십시오라고?
지들이 무슨 신족이라고 종족의 미래와 직계타령이야?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었지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럼 정기는 필요 없겠군?”
“물론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긴 해.
100조만 더 빌려줘.
대신 쓸 만한 놈들로 준비는 시켜두지.”
창조신장이 안 빌려주어서 다행이라는 말에 당장 말투가 바뀌어 지는 마신황제였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마신황제성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마신족의 번식능력이야 이미 입증되었기에 정말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고 그들이 대부분 자기의 직계의 직계라서 마음대로 처분도 못할 정도로 강한다.
‘급속성장을 하는데 마신계는 필수다.’
과거처럼 아무렇게나 살 때면 모를까 마신계란 달콤한 과실을 맛 본 이상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게다가 적응 잘 한 극소수의 마신은 아예 주신노릇까지 하며 신앙까지 받으며 잘 나가니 각 마신간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는 고약한 상황이다.
모두 자신의 마력의 강화를 위해 정기의 모집과 마신계의 승급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런데 본래의 악마족처럼 편하게 마음대로 죽이며 살아 가자라고 하면 당장 탄핵과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너나 가난하게 살아라하고 모두 덤비겠지.
돌아버리겠다.
어떻게든 지구력이 떨어지는 이 약점을 없애야 하는데 이건 뭐 수준이 올라가는 것 밖에 답이 없으니’
약점을 들키는 날이면 거대 집단을 가진 강자들의 밥이 확률이 높다.
그러니 마신족을 유지해야 한다.
자신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주우주의 마신황제들이 경악해 하는 신족과의 조약도 우습다.
“대신족은 현재 대기상태이고 기본적인 인증전 외에는 전면전과 같은 상황은 없어 당장 필요는 없다.
대신 500주우주와의 전쟁 때 고용하도록 한다.”
“알았어.
언제나 고맙군.
여기 ‘진멸’이 사고를 칠 것 같으면 적극 돕도록 하지.
물론 대가는 잘 주겠지?”
“야-! 넌 이럴 때는 내 편이었잖아?
본래 이런 신족의 대량 숙청이라면 마신족부터 좋아서 나서는 것이 아니야?
마신족의 본능은 어디다 팔아먹었어?”
진멸이 본능적으로 서로 죽여야 하는 창조신장과 마신황제가 죽이 맞아 나누는 화기애애함에 어이가 없어 하는 말에 마신황제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네가 남에게 빌려줄 정기라도 있냐?
참고로 100억이 아닌 100조 단위다.
없으면 말도 하지 마라.
그리고 정기를 빌려주는 상대가 중요하지 아무 것도 없는 거지를 편들어서 뭐하게?
또 마신족의 살신의 본능 따위는 이미 여기 마신황제의 임무에 필요 없어서 모두 봉인해 버렸다네.
시대는 변했어.
이제는 종족이 다르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야만에서 벗어나 이해관계를 통한 상호협조와 정기의 대량획득이 중시되는 시대야.
너도 그만 놀고 빨리 정신 차려.
언제까지 과거의 고정관념에 빠져있을래?
네가 마신이냐?
마음에 안 든다고 다 죽이게?
요즘 마신들도 그러면서 마신계를 말아먹으면 당장 소멸 당한다.”
“…….”
네가 100조가 넘는 정기를 빌려줄 수 있냐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는 진멸이었다.
솔직히 일반 창조신이지만 주신성을 안 만들다보니 100억도 없다.
용돈으로는 넘치지만 창조신장 단위의 자금으로는 정말 거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신족의 마신황제가 대놓고 정기타령을 하다니.
정말 이 주우주도 많이 바뀌었네.
아니, 나만 뒤쳐진 것이 아닐까?
너무 수련만 하고 놀았나?’
오랜만에 만난 과거 같이 날뛰던 전우가 너무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고서 자신의 행동을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신족의 집단숙청 문제는 언제든지 가능하기에 잠시 미루어 두었다.
이제는 자신도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차원의 주신의 주위에 이제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서있는 정령주신들의 모습에 한숨을 푹푹 쉬었다.
다들 기세도 많이 부드러워졌고 투기도 사라졌다.
이제야 겨우 신입 같은 모습들이다.
물론 허공에는 수백 개의 압축된 행성들이 언제든지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골치가 아파져 온다.
이 정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로 감정의 불씨가 남아있다.
더구나 자신이 앉아있는 소파 밑에는 피투성이가 된 여주신 하나가 팔다리가 꺾여서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한 짓이다.
이 여주신은 끝까지 신계의 질서에 수긍을 하지 못하고 버티고 있다.
‘썩을! 맞아야 정신을 차리니 무슨 애들 데리고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그리고 맞아도 안 되는 이 걸 어쩐다.’
좋게 이야기 하면서 해결을 할 수도 있다.
대화는 그러라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잘 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들고 그 방법으로는 기존의 신계의 주신들과 분란을 결코 막을 수 없다.
더구나 극단적으로 신념이나 이상을 가진 존재들은 결코 말로는 조정이 불가능하다.
대화로 바꿀 수 있다면 이미 신념이 아닌 것이다.
그 신념이 개인에게 잘 맞아도 전체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의 권능과 직결된다면 이렇게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족과 마신족의 동맹은 대신족의 위협 때문에 가능했지 협상으로 한 것이 아니야.
투쟁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기에 어쩔 수 없다.
본능을 누르는 것은 오로지 생존의 위협뿐이지.
거기에 거부할 수 없는 이익의 보장 정도인가?
내가 다 줄 수 있느니 다행이로군,’
그렇게 모두를 굴복시키고 딱 하나 남은 여주신이다.
마지막까지 버티기에 설득 겸 폭행을 한 것은 인신공희(人身供犧) 쿠에자나였다.
상급신의 신력으로도 악착같이 견디어낸다.
그리고 인신공양까지 받으며 올린 권능은 자신의 태양의 권능을 능가할 지경이었다.
권능명은 ‘희생의 태양’이란 극히 희귀한 먼 태초의 야만 투신들이 쓰던 초월권능이다.
1써클 이상의 강자도 재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강하지만 문제가 있다.
워낙 위력이 강하다 보니 들어가는 정기를 스스로는 감당을 못하고 외부에서 얻어야 하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신앙을 바치는 인간들의 생명이고 빛의 신계의 특성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 포기를 못한다고 그래서 가볍게 다루어 주었다.
행성 5개로 몸 전체에 팔 다리를 다 부서트려 버린 것이다.
자신의 발밑에서 아직도 버티며 겨우 상급신의 신력으로 촛불 같은 태양의 권능을 피어 올리는 것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들의 이력을 비밀로 지켜주기로 약속을 했으니 의지로 서로의 의사를 나누고 바로 벌인 징계다.
하위 주신으로 받아들였지만 이 여주신은 용납할 수준을 한참을 넘었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버티자 가한 처벌도 버틴다.
주변의 주신들이 창백해질 정도로 용서 없이 신체를 부수고 의지를 흔든다.
하지만 의지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권능을 포기를 못한다고?
희생이 있으면 주신도 불태우는 것은 확실히 대단하다.
그런데 그 희생이 저장해둔 신도의 생명이야?
이 사실이 밝혀지면 신으로서도 끝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으으으윽-!
광신도의 신앙과 생명을 대체할 재료만 있다면 나는 창조신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하나 야만신의 창조신으로 강제 임명된 과거에도 하위 주신인 지금도 그 이상은 도저히 얻을 수 없어.
이대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기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포기를 못…….”
퍼어어억-! 우두두둑-!
가슴 사이의 간격으로 용서 없이 대못이 박히듯 꽂힌 발이 섬뜩한 뼈가 으스러지는 괴음을 낸다.
붉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은 영롱한 생체갑옷의 마도기계신이 주는 강도가 신체를 마구잡이로 부수어 간다.
방어력이 최고위 주신의 공격을 무시할 정도라면 속도만 맞추어준다면 모든 공격력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하기에 간단하게 상급신의 신체를 이렇게 부수는 것이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갈비뼈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끼면 옅게 미소를 지었다.
결정을 내렸다.
결코 폭력에 굴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쓰는 것으로 말이다.
“그럼 버티어라.
죽지 않으면 신도의 생명 대신 대신할 것을 주도록 하지.
너의 신계 주신의 관대함에 감사하라.”
퍼어어억-!
“카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으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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