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화
4권
마신의 검이 이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심연이 되어 공간을 먹어간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니 마신족 최강의 권능을 발현한다.
‘저것에 맞으면 어떤 상대도 소멸이다.’
모든 시간과 빛과 공간까지 흡수하여 초고온과 초고압으로 분쇄하는 절대기 중 하나다.
적중되면 창조신미만의 모든 존재를 소멸시킨다.
‘문제는 발동시간이 많이 걸리고 준비하는 대상자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2배 이상의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주신역시 오른팔로 검을 역수로 잡고 무엇인가를 준비한다.
주신의 검이 하얗게 변해가며 역시 하얀 태양과 비슷한 구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거기서 신력이 요동치며 마신의 심연과 연동하며 하나가 되어간다.
어떤 굉음도 파동도 없이 단지 그것만 존재한다.
이 우주 위에 오로지 그 것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장엄한 존재감이 넘친다.
대신족의 최고위의 주신마저 존재감이 짓눌리고 있다.
‘최상급의 주신과 마신만이 가능한 합격기다. 창조신과 마신왕미만이라면 적중되는 순간 힘의 차이와 관계없이 소멸한다. 이 우주의 존재라면 말이다.’
‘대신족의 주신을 단 한순간만 묶어라. 너와 동등한 카르마의 동등계약이라도 하겠다. 흑마도사의 11서클을 위해서는 11서클을 초월한 최고위 마신의 정기와 마기가 필수다. 아무리 대수림의 마기가 정순해도 10. 5서클 이상은 한계다.’
쿵-!
뜻밖의 말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주신급인 10억에 10개가 된 고리가 320억이 되어도 11개로 늘어나지 않는 원인을 깨달았다.
‘단지 순도의 문제였는가? 그러니 아무리 마력을 흡수해도 안 되지. 대수림의 정순한 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탁한 마계로는 가지 않는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마기와 미력의 원은 자석과 거기에 붙는 철과 같다.
무엇보다 정순한 대수림의 마기를 기반으로 끌어 모은 광대한 마력이 나의 10. 5서클이다.
그런데 이것 이상의 순도가 없어 잠시 생각에서 제외하는 실수를 했다.
그러나 12서클을 바라보는 최고위의 마신의 정기라면 대수림의 마기를 능가한다.
우우웅-!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카르마의 계약서다.
주신급이라도 하기 힘든 절대의 계약을 벌써 나는 몇 번을 하고 있다.
그때마다 목숨이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최고위의 대신족의 결전까지 왔다.
덕분에 주신도 되고 힘도 얻었지만 위험한 상황에 말려들어간다.
나의 목표인 생존과 편안하고 행복한 삶과는 갈수록 멀어진다.
‘영원히 군림하는 마신은 고귀하고 위대한 흑마도사와 동등한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마신의 정기와 마기를 주어 11서클로 이끌어 준다. 그 대가로 고귀하고 위대한 흑마도사는 지금 대신족 최고위 주신의 행동을 막는다.’
너무나 간결한 계약내용과 내가 갈망하는 11서클이 보인다.
마신왕을 바라보는 최상위 마신이 이런 최악의 소멸을 바라보는 상황이 아니라면 동등계약을 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 넓은 우주에도 저 정도 마신은 단 10명 정도만 존재한다.
주신성(主神星)을 놓고 신력 200억 이상인 괴물과 같은 주신들과 결전을 벌이는 한없이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이정도의 마신이 아무리 내가 주신이지만 동등계약을 할 리 없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당장 별을 동결하고 다른 마신들과 같이 토벌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지금 대신족의 주신의 본체와 싸울 힘이 없다.
싸우다 소멸하면 신계를 못 가진 나는 재생의 기회도 없다.
‘역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겠다. 11서클도 좋지만 소멸하면 끝이다. ‘
살아서 행복해지는 것이 우선의 목표지 11서클이 목표가 아니었다.
11서클은 생존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나는 목표와 수단을 구분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다.
주신과 카르마의 공동전선의 계약으로 나는 최선을 다해 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대가로 거의 탈진상태다.
이런 공적을 감안하면 카르마의 부정적인 적용은 없다.
결말을 못낸 것은 어디까지나 주신과 마신의 부진이기 때문이다.
나의 신계가 있는 별도 아닌 이상 내가 소멸까지 각오할 필요는 없다.
깔끔하게 별을 동결시키고 다른 주신들의 지원을 바라는 것이 낫겠다.
엄청난 시간이 들어가겠지만 그동안 그랑조아와 저 신계를 지원하면 그만이다.
흑마도사인 나는 여기 주신과 마신처럼 저 별이 모든 힘의 근원이 아닌 것이다.
결국 정중한 거부의 의사를 전한다.
‘정말 지금은 힘이…….’
‘선금으로 조금 정기를 주도록 하지. 11서클을 약간이라도 맛보아라.’
마신이 자신의 아래 입술을 살짝 깨물어 피를 내고 타액을 조금 섞더니 나에게 이동시킨다.
눈앞에 마신의 정기와 마기가 섞인 단 1방울의 정이 나타났다.
나의 10. 5개의 마력의 원이 요동친다.
나의 마력이 모두 저 정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모든 감각이 저것을 취하라고 아우성친다.
이성과 감성이 맹렬하게 충돌하며 그 정에 다가가는 육체를 막는다.
저 것에 손대면 탈진된 이 상태로 신력 200억 이상의 대신족의 주신의 본체를 막아야 한다.
초거대 대신살의 창에 박힌 생체갑옷이 거의 사라지고 그 안에서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살기어린 투기와 신력이 일렁이며 항성계를 겁박한다.
‘만전의 상태에서도 방심한 상황을 노려 치명상을 입힌 것이 전부였다. 지금 적은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들 것이다. 틈 따위는 없고 같이 소멸하자며 눈앞의 나만을 노릴 것이다. 지금 이 상태로 가면 순식간에 소멸이다. ‘
그러나 나의 눈은 마신의 정기와 마기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한다.
나의 마도사로서 서클 상승의 욕망이 점점 이성을 잠식한다.
‘역시 마신족의 영원히 군림하는 위대한 마신이로군. 흑마도사를 유혹하는 법을 알고 있어.’
한없이 망설이면서도 점점 다가가는 나의 육체였다.
그러나 결국 그 정기를 입 바로 앞에서 겨우 외면했다.
‘살 확률이 있어야 달려들지 이건 정말 아니다. 순도가 문제이니 다른 상승 방법도 있겠지. ‘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주신과 마신의 의사교환이 이루어진다.
‘젠장, 역시 안 하려나?’
‘정말 한계인 모양인데. 흑마도사가 서클상승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11써클의 흑마도사가 되려면 최고위 이상의 마신의 정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인가?’
‘아니!’
‘뭐야-! 너도 사기를 쳐?’
주신과 마신의 의지교환을 훔쳐 듣는 순간 멍해졌다.
저 마신이 주신처럼 사기를 친다는 말인가?
정말 믿을 존재가 없다.
그러나 다음 말에 주신도 기가 막혀했고 몰래 듣던 나도 기가 막혔다.
‘마신왕님의 정기와 마기로도 가능해.’
마신왕이라면 나 같은 주신은 벌레처럼 학살이 가능한 존재다.
저 괴물 같은 주신도 아마 10초 이상 못 버틸 것이다.
특히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질계의 초월자는 아예 보는 대로 죽인다.
‘그런 존재와 계약하라니 불가능하다.’
그것도 자신의 힘과 정기를 나누어주는 동등계약을 하려니 차라리 불속에 뛰어드는 나방이 낫다.
‘미안하다.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뭐가?’
‘그런 것이 있어. 아 나도 정말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신계와 별 생기고 결혼하니 이렇게 되는군.’
‘신계에서 제일 미친 검이 사기를 치고 다닐 지는 아무도 예상 못했지.’
‘아하하하하. 제발 그 별명 좀 잊어주라.
그리고 그때 미안했다.’
‘그럼 내 손에 죽어주면 안 되겠니?
아니 어차피 소멸이 될 거니 상관없겠군.
창조신이 잘하면 부활시킬지도 모르니 잘 해봐.’
‘글쎄? 난 이 바닥에서 혼자 커서 그런 기회는 없어. 이 정도만 해도 신계의 기적이지. 그래서 자식 놈이라도 기반 잡아주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말이야. 너는 그래도 마신왕의 직계이니 부활이 가능하지?’
‘10,000명이 넘는 직계에서 주신에게 패해 계승권도 없는데? 다른 마신 놈들이 좋다하고 마계를 접수만 할 거다.’
‘으득-! 어떻게든 묶어놓기만 하면 되는데.’
‘저 대신족의 주신 놈이 눈치를 챘는지 가까이 안 온다. 이 합격기는 도대체 어떤 놈이 만든 거야? 강한 것은 좋은데 상대가 눈치를 채게 만들고 발동도 너무 느려.’
아예 포기한 어조다.
주신과 마신의 합격기는 완성이 되었지만 척 보아도 누가 맞아줄만한 기술이 아니다.
나처럼 공간을 이동시키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투척형이다.
그리고 소모되는 마력과 신력으로 보아서는 오래 유지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대신족의 주신이 핵에서 본체를 끊고 행성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크기가 거의 거신족 만하게 구 모양으로 줄어들었지만 신력은 거의 200억을 초과한다.
그리고 주신과 마신의 합격기 쪽으로 신력포를 집중한다.
‘하하. 정말 끝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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