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화
4권
지금 몸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충동은 문제지만 절로 미소가 나온다.
여주신들이 그런 내 반응과 표정을 보더니 더욱 흥미가 동한 듯 눈웃음 지어 온다.
그리고 서로 의사를 교환한다.
‘정말 좋은가 보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남신에게 흥미가 가는데.’
‘헤라 혼자에게는 정말 아까워. 어차피 우리도 결혼은 글렀으니 애인자리나 차지할까?’
‘여주신인 우리라면 태도로 보아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차피 헤라도 그랑조아를 주신으로 하려면 우리 도움이 꼭 필요하니 결사적으로 반대를 못할 것 아냐?’
‘능력도 있고 성격도 좋고 절대 간섭하며 귀찮게 안할 것 같지 않아?
정말 애인으로서는 최고인 것 같은데?’
‘저 정도라면 약간의 무리수도 상관없겠지.
뭐 말 안 들면 지금처럼 같이 하자고.
이런 것도 꽤 자극적이고 좋은데.’
‘정말 싫다. 모두 미친 것 아냐? 저게 좋아 보여?’
‘네-! 처녀는 다음에 이야기하죠,’
‘호호홋-! 어차피 너도 의식을 주관해야 하잖아? 저 정도 주신은 없으니 언니들 말 듣는 것이 좋아.’
‘애인이 싫으면 본처자리라도 노려보던가? 아-! 너도 주신계에 악명이 만만치 않지. 그럼 애인 당첨-! 호호호홋!’
‘누가 언니고 본처에 애인이야!’
‘그럼 의식만 하고 포기?’
‘그…… 그건 아냐. 솔직히 저렇게 자기 여자에게 잘해 주는 주신도 없기는 해. 생각 없이 임신시키지도 않고 능력도 출중하고 공사구분도 명확해. 휴우-! 뭐 영겁동안 같이 살아왔으니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어차피 그럴 거면서 뭐 하러 빼는지,’
‘하지만 이런 의식은 반대야-! 우리 명예가 달려있다고-!”
‘그럼 혼자서 독점하려고? 누가 그걸 용납해?’
‘그것도 그러네.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의식을 종료하면서 이미 상황이 끝이었지. 그랑라하가 6개월을 쳐다만 보며 선택한 남주신이니 어느 정도 이렇게 될 것을 예상을 했을 거야.’
‘이번에는 모두 잘해보자고,우리 차원의 주신님하고 같이 말이야.’
정말 이 여주신들은 상상을 초과한다.
내가 그녀들의 의사교환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절대 비밀로 해야겠다.
그러나 여주신인 그녀들의 애인이면 나도 불만은 없다.
이정도로 강대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경애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물론 이렇게 주어진 신력으로는 창조신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끝없는 단련과 신력의 강화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녀들과의 이런 관계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여주신들과의 교류 속에서 나 역시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의 세계 속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빨리 올 것이다.
어릴 때부터 끝없는 위험 속에서 생존만을 바라고 살던 그 마음은 아직도 나를 지배한다.
살아야만 행복도 누릴 수 있고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갈수록 힘에 대한 갈증이 거세져 간다.
단지 강해질수록 상대해야하는 적도 강해진다는 것이 기가 막힐 나름이다.
“그럼 우리 차원의 주신님. 승급대상 여신 100명의 명단은 다음 방문에 드리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방금 전과는 무척 다르다.
“그럼 헤라의 회복을 잘 부탁합니다. 필요하시면 그녀 쪽으로 편하게 연락을 주십시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흑발의 여주신에게 시선을 보내고 여주신들이 서로 의지를 교환한다.
슬쩍 의사를 들어보니 이런 감상이다.
‘헤라의 독점은 용서 못해. 모든지 공평해야해.’
‘알았어. 걱정은 하지 마.’
‘호홋-! 잘해 봐. 처음 인식이 안 좋았으니 잘 부탁해.’
‘절대 독점은 못하게 할 테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갈수록 대화가 음란해지는 것에 부담스러워질 지경이다.
빨리 대화를 마무리 짓고 보내야겠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가 끝나려하는데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여기 같이 머문다고? 누구 마음대로?”
검고 맑은 청조한 큰 흑색눈동자가 은은한 분노를 보이며 로브로 몸을 감싼 채 일어나는 헤라였다.
그녀의 눈에 흑발의 여주신이 비치고 있었다.
“모두 이게 뭐하는 거야?”
“뭐하기는? 네가 친 사고 뒤처리하는 중 이지.”
화난 음성에 비해 천연덕스런 대꾸다.
그 말에 화가 폭발한 듯 헤라의 신력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뭐라고? 이 년이 말이라면 다……!”
“너 애인 앞인데 성질을 보일 셈 이야?
그러다 버림받는다.”
“합-!”
황급히 자기의 입을 막고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화는 나는데 성질을 못 부리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단 최종결정은 합격이니 회복이나 잘 하고 와. 그리고 누구도 단독으로 만나는 것은 금지야.”
“이이이익!”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부드득 가는 것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다.
“대신 여기 있는 것은 2인 이상이면 용납하지.”
“누가 그걸 용납한다고-! 내가 결혼과 탄생의 주신이란 것을 잊었어? 그런 부도덕한 행위를 용납할 것 같아-!”
신력이 광폭하게 폭증하고 완전 전투태세다.
그녀의 맑고 검은 눈동자가 심연처럼 깊어지고 13쌍의 날개가 최대한 펼쳐졌다.
그런데 앞의 여주신들은 태평한 기색이다.
신력 개방도 하지 않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육체봉인을 풀고서 우리와 싸울 생각이야?”
“정말 그랑라하가 바보가 되었나?”
“화가 나면 앞뒤 안 가리는 성격이 또 나오네.”
여주신들의 말에 헤라의 얼굴이 급변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누구보다 풍만한 육체가 보인다.
자신이 여주신이 되고나서 전투의 단련을 위해 봉인한 전 육체다.
순수하게 강한 신의 탄생을 위한 주신의 반려의 육체이다.
‘전투가 아닌 탄생을 위한 육체.
이걸로는 결코 1명의 여주신도 이길 수 없다.’
“머리나 식혀. 지금은 네 말대로 대신족과 전쟁 중이야. 무엇보다 우리를 따르는 여신들의 안전이 우선이야. 정령계 대기소에서 우리를 따라 이 변경까지 따라온 그 아이들을 남신 때문에 버릴 셈이야?”
“…… ”
헤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날개를 접고 신력을 풀었다.
“통합결정이야. 차원의 주신을 적극 지원하여 계약의 성취를 돕는다. 모든 친목행동의 시행은 자유로이 한다. 단 독점이나 단독행동은 금한다. 모든 것은 공평해야 한다는 우리들의 의지지.”
“이견은 없어.”
힘이 완전히 빠진 듯 헤라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 위로 냉정하고 준엄한 신언이 울린다.
“명심해-! 우리는 개인이 아닌 각 신계의 수장이란 것을-! 감정적인 행동으로 멸망은 한번으로 족해.”
“알고 있어. 그러니 닥쳐-!”
흉험한 투기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앉은 자세의 헤라에게서 쏟아지는 권능의 느낌은 ‘주신살’이었다.
“난 천공의 여왕 헤라다. 이 몸으로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어. 왜 천공의 권능이 주신의 권능 중 최고위인지 보여줄까? 어디 ‘주신살’이 섞인 ‘천공의 벼락’에 직격되고도 멀쩡한지 볼까?”
파지지지직-!
앉은 자세 그대로 은은한 번개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흐른다.
‘천공의 벼락’은 말 그대로 모든 권능 중 최고위다.
속도와 파괴력, 범위에서 어떤 권능도 능가한다.
비견되는 것은 오직 신멸의 권능인 태양의 권능이지만 위력에서 약간 처진다.
‘그런데 그 ‘천공의 벼락’의 권능에 ‘주신살’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합이 가능하다는 거야?
암살자처럼 덤비면 눈 깜짝할 새에 주신이라도 죽을 수 도 있다는 뜻이잖아? ‘
더구나 최상급신이하는 결코 ‘천공의 벼락’을 못 견딘다.
중급정도의 신계는 그녀 혼자서 정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수십의 주신을 말살했다는 이야기가 이제 완전히 이해가 간다.
온 몸이 위기를 경고하고 근육이 바짝 긴장하며 체모가 일어선다.
정말 무방비 상태에서 ‘주신살’의 ‘천공의 벼락’에 연속 직격당하면 어떤 주신도 못 버틴다.
지금 주신이 꼼짝 못하고 결전을 미루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흑발의 여주신이 일어섰다.
“금방 분위기 정리를 할 테니 조금 있다 다시해요.”
그녀가 교태를 흘리며 번개가 몰아치는 헤라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번개가 모두 그녀에게 흘러간다.
그리고 번개는 남김없이 발을 타고 대지로 흘러간다.
대지로 흘러간 번개가 몇 배로 강화되어 다시 그녀의 오른 손으로 몰린다.
파지지지지직-!
아무 효과를 못 보인 번개가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위협적인 거대한 번개의 형상을 갖춘다.
그 속에 실린 거대한 투지가 흑발의 여주신이 노린다.
“호호호호홋-! 난 원래 신계 주신보다 더 강했다고-! 그래서 카르마가 날 주신과 별도의 여주신으로 인정하였으니 ‘주신살’은 안 통해! 무엇보다 난 ‘천공의 벼락’이 아닌 ‘천둥’ 자체야. 벼락의 신력은 모두 이렇게 된다.”
뭉쳐진 번개 그 자체를 오른손으로 쳐서 허공으로 날리는 듯 했더니 남김없이 그녀의 오른팔로 흡수된다.
흡수된 번개를 가볍게 손을 한 바퀴 돌리자 흑발의 머리카락으로 남김없이 모이며 그녀의 신력으로 전환된다.
이제 완전히 번개가 사라진 휴게실을 가로질러 헤라의 소파 옆에 털썩 앉았다.
“이봐 그랑라하-! 나도 결혼의 신이었지만 결혼 전에 순결에 독점 어쩌고 그런 것은 강요는 안했다.”
“…….”
“언제 죽을지 모르는 험한 세상인데 무슨 순결에 독점인가? 이 남신이다 싶으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잡아야지. 그러다 버림받으면 어쩔 수 없고. 결혼 후에도 그러면 영혼까지 태웠지만 말이야. 주신의 형제 놈들이 주신이 죽었다고 주신의 반려를 놓고 다투어서 그 놈들을 지질 때는 참 좋았는데 말이야. 캬하하하핫-!”
끔찍한 소리를 하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고 헤라의 등을 치며 웃는다.
“남신은 다 발정 난 도둑놈들이라 어차피 묶을 수 없어. 게다가 우리는 결혼할 처지도 아니잖아? 나중에 결혼해서도 이러면 같이 지져 줄께.”
“알았어.”
“그럼 신생을 즐기자고-! 빌어먹을 너구리 주신과 태초의 투신들도 신계에 없는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마음을 놓겠어. 썩을 것들-! 차라리 한바탕했으면 좋겠네.”
“아직 완전히 못 이겨.”
“괴물 같은 놈들이지. 나도 내 신계에서는 무적이었는데 말이야. 주신은 고사하고 태초의 투신 15명이 한계니 말이야.”
그건 그것대로 무서운 소리다.
마황급의 강자 15명이면 중급 마신과 맞먹는다.
물론 여기 주신성의 규격외의 마신은 아니다.
단지 마신왕을 제외한 마신들 중 상위 급이란 소리다.
“너희들도 같이 즐길 거면 이리오고.”
“지금은 됐어. 주신전에 신력을 다시 보충해야하니 우린 이만 실례.”
“화 풀어. 그랑라하. 어차피 이리 될 것을 알고 있었잖아?”
“결혼을 할 수 도 없는 우리 처지에 저 정도 주신을 언제 또 만나겠어.”
“이 신세는 나중에 꼭 갚아줄게.”
여주신들이 나가며 하는 말에 헤라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휴우-! 설마 했는데 정말 이러네.”
“꺄하하하하핫! 산전수전 다 겪은 과거 유부녀들를 무시하면 안 되지. 아-! 한명은 처녀지.”
“그래도 자존심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남 말 한다. 너는 자존심 있어서 ‘헌신 서약(Vow of Devotion)’까지 동원했냐?”
“그게 그렇게 되나?”
“저 정도 주신을 잡으려면 어쩔 수 없지만 하필 그거야? 그러니 저 년들이 다 눈이 뒤집히지. 60억의 본신신력을 가진 창조신 급의 권능을 가진 주신이 어디 있다고? 더구나 굉장히 성격도 좋고 합리적이고 금욕적인데다가 그것도 잘하지. 결혼은 못해도 애인자리만 차지해도 남는 장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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