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227화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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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단에는 휠튼 남작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귀족파에서 세습 귀족이랍시고 거들먹 거리던 인원들 대부분이 있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저마다 잘 차려 입은 것을 보면 여기서도 꽤나 대우를 받으며 있었나 보다.

"오랜만이다?"

휠튼 남작. 그에게 반말을 해 줄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 회담 자체가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사가 되지 않는 회담이다. 이미 힘의 추는 귀족파가 아닌 로우드에게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적에게 남은 영지는 얼마 되지도 않고 로우드가 가진 것은 많다. 병력도 자원도 땅도 그 무엇도 귀족파가 앞서 있지 않은 거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 이 성을 제외하고는 카오딘 공작령 반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로우드의 전 군이 출동하면 끝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니 로우드가 지금처럼 거만하게 굴 수 있는 거고.

"크윽. 오랜만입니다."

"왜? 떫나? 하긴.. 내가 얼마전에 그대 집에서 밀린 월급 좀 받았지! 많이도 쌓아 놓고 살았더구먼? 크크큭."

로우드의 말에 수치심이 든 것인지 휠튼 남작의 얼굴이 욹그락붉그락 하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한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몸관리는 한 것인지 꽤나 곱상한 상태로 있었음에도 보랏빛 피부가 되다니! 속이 쓰리긴 쓰린 거구만?

"왜? 싫냐? 어? 네가 너에게 얼마나 시달렸겠어?"

"예, 예의를 지켜주시길..."

"예의는 개뿔? 지금 여기서 회담 인원 전부를 죽여 버리고 포를 쏴버려도 할 말도 없을 것들이. 기어. 남을 괴롭히며 지냈으면 길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

휠튼 남작을 포함해 다른 이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설마 로우드가 이 정도로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다. 그래도 세습 귀족이니 대우를 해줄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로우드는 여기에 쐐기를 박아 버렸다.

"아아. 너희들이 믿는 게 뭔지를 알아. 병사가 없고 영지를 잃어도 수백년간 보관 한 그 무지막지한 금력을 믿는 거겠지? 그 돈이면 어느 나라로 망명을 가더라도 적당한 귀족 작위를 받고 대우받으며 살거라 생각하는 거잖아? 그래서 목숨만 살려달라 하고 이 곳으로 온 거겠지. 크큭."

움찔하는 사절단. 로우드가 확실히 정곡을 찔러 이러는 거다.

"근데 그거 아나? 너희 정말 잘 숨긴 건 알겠어. 그 보석과 금화 온갖 보물들... 많기도 많더구만. 마법에 물리적 함정 그 외에도 별의 별 트릭까지! 아주 대단했어! 근데 말이지.. 그거 아나?"

"...."

이들을 놀리는 게 이렇게 통쾌할 줄이야!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신중에 고르렘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있지. 그는 아주 세. 속. 적인 신이라 거래를 할 줄 안다 이거지. 돈만 주면 그 무엇이든 해준다 이거야. 알고있겠지?"

"..."

"아 대답이 없군. 뭐라도 좋아. 계속이야기 해주지. 그 신이란 존재는 우리 인간보다 멀리 그리고 아주 잘 보더군! 가장 먼저 휠튼 남작? 너의 보물도 모두 털렸어. 30%를 고르렘 교에 기부한다는 조건으로 너의 보물 창고 위치와 함정을 모두 알려줬거든. 많기도 많더군? 수백만 골드라니! 어느 왕국 아니 제국을 가도 대우받을 만한 보물이었지. 하지만 이거 어쩌나? 이제는 모두 내것이 된 것을. 크큭."

"네, 네놈!"

열이 받은 것인가? 휠튼 남작이 오러를 끌어 모은다. 하지만 오러를 끌어모아 로우드를 위협하기엔 둘의 경지 차이가 심하다. 질 생각이 없는 로우드는 오러, 마나, 신력 전부를 끌어 올린다.

이번에 벌어들인 돈으로 고르렘 신에게서 신력을 보충받은 로우드이기에 전보다 좀 더 강해졌다. 이런 기세를 휠튼 남작이 어떻게 버티랴? 그는 고작해야 익스퍼트다.

"크으윽."

로우드의 기세에 그대로 밀려버리는 휠튼 남작.

"어허. 네놈이라니 그러다 죽는 건 너라고. 가만히 닥치고 들어. 네놈이 그래도 한 때는 내 상사가 아니었나. 그러니 목숨만은 살려주지. 여기 사절단에 있는 전부를 살려주겠어."

고개를 들어 올리는 사절단 인원들. 재산이야 이미 뺐겨서 망연자실한 상태지만 로우드가 살려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가 보다.

"거기다 너희들의 재산 일부를 돌려주겠어. 너희를 죽인다는 것 자체가 손을 버리는 일이니 살려주겠다 이 말이지. 그러니 꺼져 버려."

로우드는 자신의 오른 편에 위치한 금화 주머니를 들어 금화 하나씩을 사절단 인원들에게 던져버린다.

또르르르르.

세습 귀족의 가슴을 치고는 그대로 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금화들.

달랑 하나다. 금화 하나.

마을 하나를 관리하는 베일리프가 받는 월급보다도 낮은 금액! 그거를 재산의 일부라고 돌려주는 로우드다.

로우드의 희망 고문에 당황하는 사절단의 세습 귀족들. 그런 그들을 두고 로우드는 회담장을 벗어났다.

"크크큭. 그래. 이제 성을 차지 하러 가볼까나?"

시간이 얼마 가지 않아 세습 귀족들이 사라지고, 로우드는 속도를 더해 성을 차지했다. 귀족파의 병사들 사이에서는 항복만 하면 살려준다는 소문이 이미 나있는지라 괜히 반항하는 병사들이나 기사는 없었다. 그리고 그 기사들마저도 자신을 순백의 기사단으로 만들어내거나 소모품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로우드를 환영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로우드 쪽으로 전향하는 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카오딘 공작은 자신의 직할지만 가진 채 버티고 서있었다. 아니 직할지도 아니다. 외성은 넘어간 채 내성을 걸어잠그고 버티고 있을 뿐이다.

세습귀족의 귀족파로서의 마지막 오기일까? 아니면 한때의 수장이기에 버티는 걸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로우드와 카오딘 공작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늙은 여유 카오딘 공작. 로우드와 다시 한번 만날 때가 왔다.

로우드는 작은 내성에 자신의 전력적으로 주요인물들을 끌고 들어 왔다.

마법사 스피든, 스승 첼로스, 부관 다리운, 오크로드와 오크주술사 쓰랄까지. 일인으로서 가장 강력하다 싶은 이들은 전부 끌고 온 것이다.

로우드조차도 긴장한 채 들어서는 카오딘 공작의 내성. 그곳에는 모든 인원들이 사라지고 남은 채 홀로 앉아 있는 카오딘 공작만이 있었다.

'고르렘 신의 예상과는 다르군...'

신은 카오딘 공작이 마지막 반항을 한다 했다. 자신의 가문이 가진 힘인 악마의 힘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반항한다고 말이다. 헌데, 신의 예상은 틀린 것인가.

"전지전능에 가까울뿐.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니까..."

고르렘 신이 신탁에서 했던 이야기다. 이걸 어떻게 아는거지?

"허.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로우드의 물음에 카오딘 공작이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크크큭. 악마의 힘을 사용하려면 악마가 되어야 해. 그렇다면 악마는 과연 타락하기만 한 존재일까? 아니면 신과 같은 존재일까?"

무슨 물음이지?

"돈. 그 자체 하나만으로 신이 된 고르렘 신이 있다. 그는 인간이었고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지. 그리고 그에 대해 우리 가문은 수백년을 생각했다."

카오딘 공작. 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왕국에서 가장 돈이 많다 여겨졌던 가문이 우리 가문이다. 신은 공평하지. 그러니 우리 가문은 몇 번이고 신탁을 받았다. 바로 고르렘 신의 신탁을! 그래서 어지간한 사실은 다 알고 있지."

"하.. 신은 공평하다가 여기에서 나올 줄이야. 공평하다면 공평하군."

그러고보면 카오딘 공작. 그의 몸이 전에 비해 젊어 보인다. 늙은 여우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정정한 40대로 보이고 있는 거다.

"크크큭. 그래 공평하지? 우린 그에게서 알게 된 많은 비밀을 실험하고 또 실험했다. 인간으로서 타락했다 해도 좋은 것들 마저도!"

"하.."

한숨이 나온다.

군주의 시간 222편 - 인간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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