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223화 (22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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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름의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르렘 신이 인상을 찡그린다.

"고작해야 인간이라 하지 마. 나도 인간 출신이라고."

그래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은건가? 하긴 그럴만도 하군.

"마음을 읽히는 대화라는 거, 신경쓸게 많군요. 좋아요. 이제 알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렇게 새로운 삶을 얻은 게 악마의 장난이 아닌 신의 선택이라는 것을요."

이제는 고민스러운 표정이라? 표정변화가 풍부한 신이구나.

"으음.. 선택이 아냐. 이건 역시 깊게 들어가는 듯 해서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인간의 표현으로 하면 운이라고 하자고. 너처럼 죽을 당시에 후회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 거라 생각하지? 죽음에 있어 후회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뿐, 누구나 죽을 때면 후회를 하지. 그 무언가에 의해 선택 됐다기 보다는... 아아. 설명이 힘들군. 그냥 운. 운이라고 보도록 해. 네가 보았던 로데스란 녀석은 운이라고 생각지 않는 거 같지만 말이지."

영지에 다른 것은 다 해도 신관은 피하고 신전을 건립하지 않았다. 혹시나, 악마가 벌인 일이 아닐까 해서 그런 거다. 그런데 그게 단지 운과 신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 더 복잡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인간인 로우드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지.

그래도 조금은 허무하다. 신전을 건립하지 않고 신관을 영지에 잘 들이지 않은 것. 그것때문에라도 많은 영지민들이 고생 좀 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치료라는 부분에 있어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들은 신관 아닌가. 리세트 성에 있는 신전이라고는 원래 있던거나 혹은 순례를 도는 신관들이나 겨우 있을 뿐이어서, 치료에 있어서는 영세했다. 그나마도, 약초에 대한 연구가 더해져서 많이 나아졌다지만, 역시 신의 힘을 사용하는 신관보다는 못한 것이다.

로우드는 짧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운인가요? 그런데 로데스는 어떻게 생활 하는 거지요?"

"크큭. 그 녀석, 불만에 가득차서 생활하고 있다지. 너랑은 아주 대조될 정도야. 하기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녀석이니 오죽할까. 하여튼 그 녀석 볼 때마다 재미있다니까. 네가 있는 왕국이 아니라 제국에서 생활하고 있어. 마의 숲을 건너서 말이지. 이 정도야 지금 네가 가진 힘을 가지고 알아보면 금방 알아 볼 테니 가르쳐 줘도 괜찮은 거겠지? 흥미롭냐? 흥미로우면 나중에 일 끝나고 한번 가서 보라고? 크큭. 하여튼 그 놈은 재밌어."

재밌다라. 나와는 다르게 로데스라는 녀석은 신과 자주 만나는 건가? 잘 모르겠군. 하여튼 흥미롭다.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존재가 로데스라.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삶을 얻은 두 번째 삶을 사는 사람. 그 둘 중 누가 제대로 된 사람일까? 아니 세상 누구가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냥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데 이 일 자체가 신전에서 말하는 그리고 그들의 교리에서 말하는 세상의 균형과 맞는 일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실험? 아니면 그 무언가 있군요."

"빙고. 홀로 알게 된 것은 알려줘도 상관없지. 그래도 그 뒤는 네가 상상하라고? 신도 완전한 신이 아닌 이상 전지전능은 아니란다. 전지전능에 가까울 뿐이지."

전지전능에 가까울 뿐. 전지전능은 아니다라. 그래서 하급 신이 있고 상급의 신이 있는 건가?

이 세계의 일면을 본 듯한 기분이다.

"신들의 일면은 재미있군요. 아까부터 여기까지라 하시는 것을 보면 저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 생각이듭니다. 뭐, 여태 신관들을 피해 다닌 게 억울하긴 하지만. 제 무지에서 나온 것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뭐야? 인간치고 포기가 빠르구나. 보상해 달라 떼라도 쓸 줄 알았는데 말이야. 로데스 그 녀석은 그랬거든. 흐음.. 너 이번에 돈 많이 벌었지?"

돈? 갑자기 왜 돈을 말하는 거지?

"네, 많이 벌긴 했지요. 원수같은 녀석을 털었거든요. 크큭."

"아아. 좋은 행동이었어. 원한이 있으면 갚아야지. 너가 뒤끝을 갚는 모습들도 재미있었다고. 어찌됐든 좋아. 딱 10만 골드. 10만 골드만 줘봐."

"예?"

신이 10만골드만 달라니. 아무리 돈의 신 고르렘 신이라지만 이건 좀 이상한데? 마치 동네 양아치가 삥 뜯는 거 같잖아!

"어허! 삥이라니! 나는 그런 거 하지 않는다고. 다 너를 위해서야. 이 신이 네 목숨 한번을 살려주지. 단 돈 10만 골드에 말이야. 네 자체가 균형에 어긋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 수백년 후에나 등장할 마검사로서 존재하잖아! 그거 자체가 균형에 어긋난다고. 그런데 그런 힘을 가지고도 너는 죽을지도 모르거든? 무조건은 아니지만 확률이 높아! 이건 신으로서 장담할 수 있지."

허. 죽을 수도 있다라. 왠지 약장수가 약을 파는 느낌이지만, 신이 해서 그런 것인지 솔깃하다. 이 신. 이렇게해서 돈 모으고 신이 된 거 아닌가?

아차, 또 마음을 읽겠지.

"불경하긴! 어쨌든 너의 10만은 내가 가져가지. 나도 공짜로 해주고 싶지만 내가 '신격'을 얻은 방법 자체가 돈에 관련 되어서 돈이 없어서는 힘을 써주지 못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 네 돈 10만 지금 가져가 마. 그리고서 이걸 받아."

돈을 그냥 가져가겠다는 건가? 피땀 흘려 번 돈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원한을 갚고 얻은 돈인데! 갑작스럽게 이상한 금빛이 다가온다. 이제는 익숙한 고르렘 신의 신성을 뜻하는 금색의 빛이다. 의외로 따스하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자리라는 듯 어느 순간부터 몸의 중간에 머물러 있다. 심장에는 마법의 힘인 서클이 배꼽 아래에는 오러 연공법의 오러가 크게 머물러 있다면 그 사이 딱 중간에 고르렘 신의 힘이 머무르기 시작한 거다.

신기하다. 이런 미묘한 기운이라니. 이게 신의 힘인 건가?

"흐흣. 아까워하지 말라고. 이게 너의 마지막을 한번 살려줄테니까. 자아, 이제 신탁의 내용 중 마지막을 알려줘야겠지?"

마지막이라. 지금까지 들은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잊고 있었다. 이제는 순백의 기사단 그들에 대해서 들어야 할 때인가.

챕터 11. 전력의 다함.

궁금했다. 그들에 관한 내용들이 대체 그들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힘을 얻는 것인지가 말이다. 악마적인 그 힘에 왜 신들이 관여를 하지 않는가! 어째서 다른 세계의 신이라는 고르렘 신만 다가와 이야기하는가 하는 그 모든 것들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있겟지?

"순백의 기사단에 관한 내용이겠군요. 그들에 대한 것들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런 방식으로 힘을 얻는 것. 오크들이나 가능한. 아니 오크들도 그런 식으로 힘을 얻지는 않습니다. 투쟁 그 자체를 하다가 힘을 얻는 것과 학살을 일으키고 힘을 얻는 것은 그 격 자체가 다르다 생각하니까요."

"격이라. 딱 좋은 표현이군. 그래, 격이 다른 방식으로 힘을 얻지. 아주 조잡한 방법이지만 효율성 측면만 놓고 보면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지. 악신들은 누구나 사용 할 수 있는 그런 방법. 아니 선악이라는 것 자체도 이 세계에선 아직 정립이 되지 않았으니 넘어가야 하나. 어찌되었든 힘을 얻는 법을 알았으니 더 깊이 알려줄 수 있겠지?"

"알려주신다면야 얼마든지요. 그들에 대해 뭔가를 알아야 뭐라도 할 테니까요."

"자아, 지금까지 네가 고생한 게 불쌍해서라도 많은 것을 알려주지. 일단 그들은 인간이 아니야. 악마? 악마라는 것을 아나? 떨어진 자들. 타락한 자들. 등등으로 불리는 악마라는 존재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신의 힘과 대변되는 그 무언가지요. 설마했던게 정말인 겁니까? 그들은 악마의 힘에서 나온 뭐 그런거란 말이지요?"

군주의 시간 218편 - 전력의 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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