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녀오십쇼!"
부관 다리운이 성문 아래서 끝까지 로우드를 바라본다. 역시나 충직한 이다.
"가볼까?"
"응."
여행길은 여유로웠다. 아니 한가롭다고 표현할만큼 쉬웠다. 로우드가 누군가? 영주다. 그것도 이 왕국의 실세에 가까운 영주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가고있는 길은 자신에게 속한 영지다.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말이다.
영지의 주인인 로우드가 가는데 그 누가 방해되랴? 그나마도 얼마 되지 않는 몬스터들은 토벌당하고, 가는 길 곳곳이 정비되었다. 그러니 여행이 편하고 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렐리안이야 너무 요란하게 이동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귀족파의 준동을 걱정했지만, 로우드가 누군가. 그 자신도 오러마스터이며 고서클의 마법사다. 어지간한 군대를 데리고 오지 않는 한 다 막아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이가 로우드인 거다. 군대급으로 오려하면 왕도를 지키고 있거나 경계를 지키고 서있는 로우드의 군대가 막아낼거다. 적 자체가 규모를 크게 키워서 로우드를 건드릴 수 없단 소리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로우드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할거다.
편안한 여행길.
"룰루루루~"
이렐리안이 콧노래를 부른다. 로우드와 같이 여행을 하는 게 그리도 좋을 것일까?
"그렇게 좋아?"
"응! 우리 둘이서 여행하는 건 처음이잖아."
"그런가.."
"그런거지!"
여행이라. 하긴 로우드 자신이 삶에 여유가 없었다. 귀족이면서도 사치도 여행도 즐겨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좀 더 여유를 가져봐야겠어...'
이렐리안과 약속했듯,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다. 그 뒤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영지를 지키는 쪽으로만 할 거다. 그 때쯤 되면 자신의 여인들과 여행을 다녀도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의 영지 안에서는 말이다.
조심스레 그녀를 부른다.
"이렐리안?"
생긋 웃으며 로우드를 바라보는 이렐리안. 아름답다!
로우드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것에 그녀가 행복해서가 아닐까.
"응?"
"평생 함께하자. 그리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잠시 뜸을 들여 볼까? 그녀가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상상을 해보게 말이야.
"여유가 생기면?"
".. 같이 여행도 다니고, 행복하게 살자. 뭐 그냥.. 그렇다고."
왠지 모르게 이 말 한마디가 쑥스럽다. 달달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그런 것 아닐까?
그때다. 그녀의 얼굴이 로우드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쪼오옥.
고요한 숲 한가운데서의 갑작스러운 스킨쉽.
그리고 둘.
"후아.."
깊은 숨이 나온다. 한숨이 아닌 감탄의 긴 숨!
적의 검은 피하면서도 어떻게 된게 그녀의 입술은 피하지 못한다. 너무도 달달하니까.
"헤헤헷."
이렐리안이 웃는다.
"기습을 해놓고는... 왜 그렇게 즐겁게 웃는 거야?"
"히힛. 이런 기습이라면 매일이라도 아니 하루에 백번이라도 좋잖아?"
"...."
이런. 할 말이 없다.
'그러고보니.. 예전엔 당하기만 하더니!'
자신이 이렐리안을 놀린 게 한, 두 번인가? 수십번도 넘게 그녀를 놀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녀가 자신에게 기습(?)을 하다니!
아아. 그녀가 변해버렸어.
'그리고 더 이상 그녀에게 질 생각은 없다!'
아직도 밀착해 있는 그녀를 품안에 꼬옥하고 안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둘만의 신호를 보낸다. 아주 은밀한 신호를!
"어? 어! 로우드 여긴.."
신호를 알아들은 그녀. 하지만 이내 당황한다.
지금 그와 그녀가 있는 곳은 숲! 전에도 숲에서 거사(?)를 치뤘다지만. 지금은 좀 그러하지 않은가!
"몰라. 안 들려! 그러니까 낭군을 놀리면 이렇게 된다니까?"
주도권은 로우드에게 넘어왔다.
* * * * * * * * * * *
영지를 지키기 위해 분주한 주요인물들이 아닌 고르렘 교의 신관이 로우드와 이렐리안을 반긴다.
"오셨습니까? 모든 준비는 다 됐습니다."
빠르군. 역시 돈 하나면 행동도 빠른 것인가! 서비스로 오천 골드를 더 준 게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히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래 된 것 같군.'
신관에게 집중하는 와중에도 영지 주변을 휘휘 돌아본다. 전쟁을 지속하느라 떠나 있었더니, 굉장히 오랜만에 영지에 온 기분인 거다.
"반갑습니다. 처음의 인사와는 다르군요."
"허허. 정중한 한번이면 되었지요. 자, 이제 들어가지요. 저기 저 제단에 올라가시면 됩니다."
눈앞에 위치해 있는 제단을 바라본다. 보통 건물의 2층이 조금 넘는 높이다. 하지만 대단한 장식 같은 것은 없었다. 돌로 아닌 나무로 된 제단에 온갖 금화로 만들어진 표식이 있다. 고르렘 신을 표현하는 표식이다.
"신탁은 처음 경험하시겠군요. 가운데로 가시면 됩니다. 저 표식의 가운데로요."
그 누가 신탁을 여러번 겪어보겠나. 구경하는 것도 평생에 한번이나 겨우 일거다.
"아, 예."
자리에 위치해 섰다.
"그럼 있다 뵙겠습니다."
이어지는 신관의 진언. 로우드는 갑작스레 빛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화려하디 화려한 금 빛이!
"으음...?"
잠시 정신을 잃은 건가? 순백의 기사단과의 전투도 그렇고 요즘들어 정신을 자주 잃는 그다.
눈앞에 있지않던 존재가 생기고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들려오는 투박한 말투. 아니 싸구려 말투.
"오호. 빠른데?"
신인가? 아니 신이라고 보기에는 행동에 진중함이 없잖아!
"신 맞아."
허. 마음을 읽는 건가?
"마음을 읽는 겁니까?"
"신이니까. 일단은 신이야. 이 세계에서 태어난 신은 아니더라도, 신은 신이지! 어차피 이 세계의 신들은 전부가 완전체가 아니니 나같은 놈도 신으로서 활동할 수 있달까? 자세한 것은 넘어가도록 하자고."
신? 이 세계의 신? 이상한 신? 완전체?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 때. 고르렘신이 배를 퉁퉁 두드리며 말한다. 이제보니, 말투도 그렇지만 외모도 신기하다. 아니 괴이하다. 신치고 뚱뚱하다니. 거기에 뭔가 후줄근하게 생겼잖아?
"아아, 신이라고 다 아름답고 잘생기고 대단한 건 아니라고. 인간인 네 녀석이 이해하기엔 힘든 거야. 적어도 반신정도 되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니까. 뭐 너 정도면 반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후보 중에 하나니까 말이야."
반신이라? 내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군. 그리고 후보 중에 하나라니. 나 말고도 있었다 이건가. 도무지 신들의 행사라는 것은 이해를 할 수 가 없다. 아니 인간이니까 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가?
"네가 다시 태어난 것. 시간을 초월한 것. 그 모두가 안배야. 그리고 너도 후보를 하나 만났었지. 로데스라고 말이야. 흐흣."
로데스라. 나에게 오러 연공법을 넘겨준 그 작은 인연을 말함인가.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 오러 연공법이라는 것은 중요한 거니까.
"하아.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요."
"흐흣. 그런것들 자체를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중요한 것은 네가 신들 중 하나에게 선택받은 거고. 신들만의 일이 있어 그렇게 다시 태어난 거야. 그래도 신이라는 존재들 자체가 완전체가 아니기에 네가 태어남으로서 미래가 달라졌고, 지금의 상태까지 온 거다."
이야. 신기하군. 그 모든게 인연이고 선택이라니 말이야. 미래가 달라진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였어.
"그렇지. 신이란 허술한 듯 해도 허술하지 않은 게 신. 많은 힘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거지."
신이 힘을 잃었다? 왠지 보통의 인간이 알면 안 될 만 한 것들을 알려주는 느낌이다.
"맞아. 보통의 인간이 알면 안되지. 어쨌든, 네가 태어난 이유 그 자체는 대충 알겠지? 비록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없어서 여기까지지만 말이야."
"하아. 신의 일을 안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되겠지요. 고작해야 인간이 말입니다."
군주의 시간 217편 - 기부. 그리고 신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