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204화 (204/228)

(1)

"크큭."

오크로드여. 오랜만이구나.

* * * * * * * * * *

"무슨 일인가?"

체구가 커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보다 존재감이 더욱 상승했다.

외성밖에 있는 하이오크들을 제외하고도 오크로드인 그에게도 무언가 발전이 있었기에 이러는 것이리라.

'거참.'

왠지 쓴웃음이 나온다. 오크로드의 이런 강함은 너무 사기적이지 않은가. 자신이 기억하기로 분명 대결에서 오크의 주술도 사용했던 것이 로드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이제는 초보적인 기술에서 벗어나 주술도 어느 정도 완숙한 경지에 들어섰을 것이다.

"오랜만이군. 도움이 필요해."

오크로드에게는 인간 귀족끼리의 대화 같은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말만 하면 되는 것이다.

"으음? 도움이라? 그대에게 내가 도움이 줄 것이 있는가.

"응. 지금 여유병력이 없는데 적이 쳐들어 와 버렸거든. 인간 사이의 문제는 인간끼리 해결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손이 부족해."

"손이 부족하다라.."

로드의 곁을 가만 지키고 있던 쓰랄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전에 말한 귀족파라 했던 적들이 먼저 쳐들어 온 것입니까? 침공지는 블라디 후작령이라 불렸던 곳이겠군요."

역시 쓰랄. 인간이 아니면서도 인간에 대해서 파악하고, 오크면서도 계책을 부릴 줄 아는 자다. 멍청한 오크라고 보기엔 그가 가진바 지식은 이미 보통의 인간의 것을 뛰어 넘었다.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그의 맑은 눈에서 현기가 느껴질 정도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보통의 오크들과 달리 인간처럼 계산을 할 정도의 머리를 가진 쓰랄이지만 로우드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맞아."

아니라 말해도 어차피 곧 밝혀질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가 많이 부족해. 우리 쪽에서 침공 준비를 하는데 만도 벅차거든. 전략 병기들도 만들고 있는 중이고. 원래 가지고 있던 영지는 수비가 가능하지만 블라디 후작령이었던 곳은 힘들어. 솔직히 말해서 피를 많이 흘릴지도 몰라. 로드 네가 그리도 아끼고 싶었던 오크들의 피가 말이지. 그래도 나는 요청을 해야 해..."

"인간의 군주이기 때문인가?"

"그래. 이기적이지만 내 사람들을 지켜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 그래서 인간의 군주로서 부탁하며, 너를 복속시킨 자로서 명령한다. 나를 도와주겠는가?"

"..."

억지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크 주술사 쓰랄은 가만히 그둘의 대화를 지켜본다. 오크들이 부상당하고 죽임을 당할 수 있음에도 가만 있는 것은 쓰랄만의 오크로드에 대한 충성심 표현이리라.

"흐음.. 오면서 보았겠지?"

무엇을 보았냐 묻는 것일까. 성에서 보았던 배 이상 늘어난 하이 오크들?

"보았다. 하이 오크들을 말하는 것이 맞겠지?"

"그렇다."

"수가 많이 늘었더군."

"인간의 군주인 그대덕분이다. 오러 연공법이라는 것. 오크 주술사 쓰랄이 연구를 했다."

왜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지? 당장에 급한 일이 있긴 하지만 오러를 다루는 인간으로서 오크들의 강함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도 커 오크 로드의 말에 말려들어 간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강해진 것이지? 인간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속도다. 아무리 주술사가 연구를 했다하더라도 말이지.. 우리 인간들도 주술사는 아니더라도 마법사를 가졌고 기사를 가졌다. 모두가 쉼 없이 오러에 대해 연구하고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만 너희 오크들같은 속도는 나오지 않아."

"우리는 너의 오러 연공법을 가지고 오러를 연구하지 않았다. 투기를 연구했다. 우리의 투기에 대해 알고 있겠지?"

"안다. 오크들만 가능한 방법이지."

오크 주술사는 동료의 죽음에서 깨달음을 얻고, 전사는 동료의 죽음에서 동료 오크가 가졌던 투기의 일부를 이어받는다. 그것이 오크의 투기의 정체다.

동족의 죽음이 없으면 강해지지 못하는 한계성을 가진 오크들만의 강해지는 방법이다. 인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 아니 오크처럼 빠르게 자라지 못하기에 하지 못하는 방법.

이 세상에서 오크들만이 가능한 방법이리라.

"네가 준 오러 연공법을 통해서 우린 그것을 보완했다. 전에는 죽음을 보아야만 강해졌었다. 동족의 죽음 그것이 곧 강함이었지. 그런데 우린 그것을 바꿨어. '죽음'이 아니라 '피'를 보면 강해진다."

"하."

죽음이 아니라 피라. 그것만 들어도 답이 나왔다.

죽음. 말 그대로 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죽으면 끝이라 할 수 있다. 영혼이니 뭐니 하니 하는 문제들은 넘어간다.

그런 죽음을 피로 대체했단다. 피. 죽음과 관련된 단어.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피라는 단어 그 자체는 죽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꼭 죽음이 아니라 부상만 입어도 나는 것이 피다.

그럼 죽음이 아니라 피로서 대체했다는 것은 무슨 말이겠는가? 오러 연공법을 어떻게 연구했는지는 몰라도 단지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고 피를 보면 죽음이 아니더라도 오크들은 강해진다. 이것도 동족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죽음보다는 낫다.

부상이야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준 오러 연공법으로 피에 투기를 입힌다. 우리 오크들만 가능하지. 그리고 서로 대결한다. 싸우고 또 싸워. 다만 죽이는 것은 안돼. 죽이는 것은 그대로 끝이니까."

"그리고 강해진다 이건가? 하. 여전히 사기군."

"그래도 한계는 있다. 쓰랄의 말로는 너희의 기준에서 오러 익스퍼트 급이 끝이라 한다. 마스터가 되는 건 하이오크라 할지라도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그래도 사기다. 오러 익스퍼트를 찍어내는 것이지 않은가.

"지금의 하이 오크들 수는 주술사를 포함해 2천이 넘는다. 그리고 더 늘어나겠지. 하지만 이것 조차도 쓰랄의 말로는 일정 수가 되면 멈출 거라 하더군. 그 뒤에는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강해졌고, 이 세상에서 힘의 한 축을 담당할 만해졌다."

그래. 그렇곘지. 몇 천 잘하면 몇 만의 익스퍼트급 하이 오크들이 생겨버린다라? 그건 인간에겐 재앙과도 다름 없는 말이다. 자신이 장난스레 건넨 오러 연공법이라는 씨앗은 너무나도 빨리 열매를 맺었다. 그것도 독을 품은 열매로.

"하아... 정말 한숨이 나올만한 존재다. 오크로드 너라는 존재는 말이지."

"과찬의 말을. 너보다야 아니다. 너는 지금도 강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니까. 영지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강해지는지 모르겠군."

"지켜야 할 것이 많으니까."

"지켜야 할 것이 많다라.."

로우드의 말을 읊조리는 오크로드.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한다.

"오크는 원한도 잊지 않지만 은혜도 잊지 않는다. 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는가? 출정한다."

로우드로서는 그 어떤말보다도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오크면서 시간이 지나 말장난도 익혔군. 급한 나를 흥밋거리로 잡아놓는 것을 보면 말야. 거의 인간이 되버렸어. 안 그래 오크로드?"

"나는 오크다. 그리고 로드지."

"오크로드의 발전을 만들어내는 존재지. 아니 진화라 해야 하나? 좋아. 은혜를 갚는 다는 말. 고맙다. 바로 가능하겠는가?"

"그렇다."

"그래. 그럼 가자고!"

잠시의 짧은 회담. 그것으로 오크들의 출정이 결정 되었다.

수는 2천. 전부가 하이로드.

최소가 오러 익스퍼트급 오크들의 출정이다.

군주의 시간 201편 - 막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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